〈 38화 〉새 히로인 헬스트레이너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고, 도시의 간판들은 네온사인 불을 어지럽게 밝히며 집창촌의 창녀들마냥제 존재들을 과시한다. 그중, 한 신축 건물의 2층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 벨라의 GYM ]이라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벨라.`
너튜브에서도 제법 구독자가 많은 여성트레이너로 희안하게도 여성이 아닌, 남성의 근육운동에 박식했는데 그덕에 구독자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뭐, 그녀를 돕는 남성 보조트레이너가 있긴 했는데 아마도 구독자 대부분들은 벨라의 환상적인 몸매와 그 몸매에 꿇리지 않는 미모에 환장해 구독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모와 몸매에 내가 이곳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계단을 올라 헬스장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온갖 헬창들이 저마다의 근육을 뽐내며 벨라의 이쁨을 받기 위해 운동 중이었다.
'오메, 자존감 죽어부러.'
기껏 자존감 좀 올려놨더니, 여기 오니 다시 와르르 무너져내려버렸다.
씹멸치인 난 이곳의 사람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비루한 몸뚱아리였으니까.
잠시 어정대고 있자 카운터에 있던 남성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보조트레이너 백도산이었다.
전형적인 우람근육돼지.
그가 순간적으로 내 전신을 스캔하곤 물었다.
"....운동하러 오신 거죠?"
비아냥과 의아함이 섞인 물음.
나같은 씹멸치가 올 곳이 아니라는 듯한 그의 물음에 주변을 한번 살핀 후 핑거스냅을 튕겼다. 이젠 한듯, 안 한듯 자연스럽게 스냅이 튕겨진다.
ㅡ딱.
"백도산, 넌 앞으로 내게 절대복종한다."
"절대복종.."
ㅡ딱.
이깟 근육덩어리에게 볼 일은 없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철저히 `벨라`때문.
그렇기에 간단히(?) `절대복종`을 암시로 걸어둔다.
이곳 관장인 그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성들의 운동 발란스와 자세를 잡아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일반인들을 두루두루 봐주며 설명해주는 것이 그녀의 주요 컨텐츠이기도 했으니까.
뭐, 이젠 내 개인 트레이너도 겸직을 해야겠지만은.
"야."
"네?"
"관장 데려와."
"넵."
`절대복종` 암시에 걸린 남자들에게는 이상하게도 하대하게 된다. 암묵적 주종관계니만큼, 크게 상관없는 하대긴하지만 그래도 예전이었으면 감히 쳐다도 못 봤을 근돼에게 반말로명령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근데 뭐, 너무 거들먹거리는 건 아닐까싶어 조금 고민은 해봤지만 딱히 존대를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이유없이, 내 맘이지, 뭐.
꼽으면 최면에 걸리질 말던지.
명령을 하달 받은 근돼가 총총 뛰어가더니 이내 다시 돌아왔다.
"뭐냐?"
"아, 지금 촬영 중이라.. 5분만 기다려달라네요."
쳇, 지루한 5분이 되겠군.
그럼 그전에 사전정보나 좀 캐볼까.
"흠.. 야니가 보기엔 내가 운동하면 얼마만에 몸짱이 될 수 있을 거 같냐? 아니지. 몸짱까진 아니더라도 슬림한 잔근육까지라도. 솔직하게 말해봐."
내 전신을 진중하게 스캔하며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다시 태어나는게 빠를 것 같습니다."
"…맞고싶냐?"
"죄, 죄송합니다.. 솔직하게 얘기하라 하셔서…"
개새끼.
하여튼 근육 많은 쉐끼들은 마음에 안 들어. 보는 눈만 없었음 줫나 패버릴까보다.
내 손이 더 아플 것 같지만.
그래도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잖아.
"음.. 그럼 객관적으로 얘기해봐. 트레이너들은 보면 딱 윤곽이 잡힐 거 아니냐."
"사실 잔근육 정도는 한 달만해도 충분할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한 달이면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니까.
"근데… 개인 PT는 받아야 그정도 걸릴 겁니다. 저희 관장님이나 저한테."
"그건 걱정마."
"네?"
때마침, 그의 뒷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야, 꺼져."
"넵."
방해꾼을 치우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이런저런 평가가 필요없을 정도로 그녀의 몸매는 완벽했다. 각선미를 돋보이는 분홍빛 레깅스는 운동으로 딱 벌어진 골반과 튼실한 허벅지를 뽐냈고, 엉덩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너튜브로 봤을 때 진짜 흑누나 못지않게 탱탱하고 커다랬었다.
거기다 흰색 스포츠웨어는 그녀의 상반신에 물을 묻힌 종이마냥 착 달라붙어 굴곡진 몸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근돼의 허벅지만한 잘록한 허리에 또 바스트는 어찌나 공격적인지, 군침이 꿀꺽 크게 넘어갔다.
무엇보다 비율이 진짜 좆된다.
160에서 165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키를 8등신으로 만드는 작은 얼굴엔 오밀조밀, 보기 좋게 배치된 이목구비가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겼고, 유려하게 뻗은 목선과 단단하면서도 매끄러운 선을 그리는 어깨까지 모든것이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함과 생기발랄함까지.
'와… 시발 실물로 보니 그냥 좆되네. 진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쿠퍼액으로 오줌을 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역시 이 후줄근한 동네에서 괜히 장사 잘 되는 게 아닌 듯싶다.
이런 몸매와 얼굴이면 상반신 불구가 헹잉레그레이즈로 춤을 출 것이고, 하반신 불구가 100키로 레그익스텐션으로 밤을 지새울 테니 말이다.
그만큼 없던 운동욕구도 불러일으킬만큼 그녀의 몸매와 미모는 환상적이었다. 뒤에서 후광마저 비치는 듯했다.
'씨, 씨팔.. 싸, 싼다..!'
ㅡ찔끔.
트레이드마크인 정갈하게 뒤로 묶은 찬란한 금빛의 말총머리를 찰랑거리며 다가온 그녀가 내게 물었다. 가까이 다가온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이다.
어우, 개꼴리네.
"헬스 배우러 오셨다고요?"
"아, 넵. 근데.."
말을 흐렸다. 뒤에서 음흉하게 지켜보는 수컷새끼들이 너무 많았다. 무슨 애미젖동냥하는 새끼들도 아니고, 그녀의 색정적인 뒷태를 훔쳐보느라 혈안들이다, 아주.
이제 내 껀데 누가 훔쳐보는 건 당연히 좆같은 일.
"저.. 제 눈 좀 봐주시겠어요?"
"네?"
ㅡ딱.
인간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경계를 하게 된다. 그것이 위협적인 것이든, 혐오하는 것이든, 좋아하는 것이든 말이다.
그저 예상 외의 일이 일어나면 경계심이 들고, 그 경계심은 예상 밖의 상황을 일으킨 `주체`에 대해 쏠리게 된다.
지금의 상황에서의 주체는 `눈`.
그렇기에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내 눈을 쳐다보았고, 곧바로 최면에 빠져들게 된다.
음흉한 눈초리들이 많아 뒷짐진 채 핑거스냅을 튕겼지만 다행히 제대로 먹힌 듯했다.
음, 근데.. 생각해보니 본명을 모르네?
`벨라`라는 것은 당연히 가명일 터다.
암시는 무조건 본명에 한해서 각인이 되야했다.
"본명이 뭐죠?"
"이사벨라.."
이사벨라?
특이한 이름이네.
알고 보면 미제산인가?
어쩐지 이국적인 얼굴이다 싶었는데.
"미국출신인가요?"
"한국… 토종…"
"음? 근데 이름이 왜 그렇죠?"
"성은 이… 이름이 사벨라에요.."
호오, 특이한 이름이다.
이국적이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그녀의 미모와 찰싹 잘 달라붙는 이름이긴한데 부르긴 다소 불편해보였다. 하지만 암시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좋습니다, 이사벨라. 당신은 지금부터 절 따라옵니다."
"당신을.. 따라.."
그녀를 이끌고 헬스장 구석에 있는 그녀의 개인집무실로 들어섰다. 음흉한 쉽새끼들이 그녀의 몸매를 핥아대는 시선이 굉장히 불쾌했다.
"후, 한결 살 거 같네."
"후.. 한결.. 살…"
..최면상태에선 혼잣말을 자제해야겠다.
왠지 조롱당하는 기분이 든 달까.
썩 유쾌한 말대답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제 생각해두었던 암시를 그녀의 머릿속에 각인시킬 차례다.
아니, 그전에 돋보기 시스템부터 사용해봐야겠다.
과연 이런 여신급 헬창녀는 어떤 성관념을 가지고 있으려나. 두근두근, 기대감에 심장이 뛰었다.
[ 이사벨라에 대한 돋보기 시스템이 발현됩니다. ]
헌데 그녀의 성관념을 읽어가던 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섹스는 근손실이 생기는 것 같아 싫어… 근데.. 여자랑 하는 건 좋아. 그건 섹스는 아니니까 근손실이 없는 것 같단 말이야. 하아, 씨팔 가위치기 존나 하고 싶다... 》
《음부, 항문, 옆구리, 귀 》
'여자랑 하는게 좋다고…?'
설마, 레즈비언이란 말인가?
레즈비언 육노예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사벨라, 당신은 레즈비언인가요?"
"아니요.. 여자도 좋고.. 남자도 좋아해요…"
뭐지, 그럼 양성애자란 말인가?
양성애자 육노예도 전혀 생각해보지못했기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럼.. 남자는 좋아하지만 섹스를 하기 싫은 이유는 근손실나는 거 같아서.. 가 맞나요?"
"네.."
결국 정리하면 그녀는 여자, 남자를 다 좋아하는 양성애자이지만섹스는 남자와 하면 근손실이 나는 것 같아서 싫어하고, 여자와 하는 섹스는 근손실이 없는 느낌이라 좋아한다.
'이건가? 아니, 근데 여자끼리 하는 것도 섹스라 봐야 되나?'
아무튼, 굉장히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육노예다. 제법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나겠는걸.
그럼 이제 암시를 걸 차례다.
"이사벨라, 당신은 제가 운동에 관련된 부탁을 하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고 싶게 됩니다."
"운동.. 부탁… 들어준다…"
"그리고 당신이 가르쳐준 운동을 제가 성공해내면 오르가즘을 느끼게 됩니다. 흥분하는 거죠."
"운동.. 성공... 오르가즘… 흥분…"
이정도면 우선 스타트를 끊기엔 적당할 것이다. 헬창녀 답게 운동에 관련된 암시로 조교 포문을 트고, 거기서 쾌락을 느끼게 만들어 나와의 헬스파트너쉽을 끈끈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각인한 두번 째 암시는 내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실한 수업 중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을 부정하려들 테고, 운동 수위를 내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적정선에서 빡세게 굴리려들 것이다.
그리고 남자인 내게 흥분해 만약 섹스를 한다면 그녀가 극도로 꺼려하는 `근손실`이 일어난다고 걱정할테니 말이다.
그리고 난 그 근손실의 허망함을 깨우치게끔 만들기 위해 좆나 열심히 할 거고.
이것이야말로, 누이 좆고 매부 좆은 서로에게 안성맞춤인 아주 좆되는 암시인 셈이다.
'완벽해.'
ㅡ딱.
이제껏 한번에 2개 이상의 암시를 건 적은 없었기에 우선 이쯤하기로 했다. 최면을 해제시켜주었고, 곧 그녀의 흐릿하던 눈동자에 생기가 가득 차오른다.
"..그래서, 헬스를 배우고 싶다고요?"
"네. 보시다시피.. 씹멸치 몸이라 헬스로 몸 좀 만들고 싶어서요."
그녀가 내 전신을 꼼꼼히 훑었다. 기아난민 같은 나의 몸에 난색이 서렸지만 고개를 긍정적으로 끄덕이며 말했다.영업용 미소를 장착한 채.
"흐음.. 골격은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네요. 보기보다 근육량도 조금 되는 것 같고."
아마 영업용 멘트이겠지만 끄덕,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까 근돼가 그러지 않았던가. 다시 태어나는게 빠를 거라고.
그녀가 자신의 책상에 앉더니 서류정리함을 뒤적여 종이를 내게 건네주었다.
"여기, 등록신청서에요. 읽어보시고 사인해주시면 돼요."
마음만 먹으면 하버드대 총장 똥꼬도 프리패스 가능한 내게 헬스장 등록신청서는 종이쪼가리일 뿐이다.
등록신청서를 예의상 받아들고 읽는 척을 하다가 그녀에게 얘기했다.
"저.. 헬스장 등록은 딱히 필요 없는데…"
"네?"
그녀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 씨발븅신은 뭐하는 새끼야?`라고 묻는 듯한 약간의 혐오끼가 섞인 표정이었는데, 이내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 그럼 사인 받으러 온 거에요?"
"…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살짝 벙쪘다.
사인을 받으러 왔다니?
이제 그런 시답잖은 이유에 움직일만큼 한가한 놈이 아닌데, 난.
'아니, 글고 방금 운동하러 왔다니까? 뭐지, 이 년은.'
벙찐 표정으로 잠시 가만있자 그녀가 살짝 무안한듯 머쓱하게 턱 쪽을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그.. 사인 받으러 온 거 아니에요?"
헛수고하게 만들었다고 화라도 낼 줄 알았건만, 지가 무슨 슈퍼스타라도 되는줄 아는 모양이다.
뭐, 이 동네에선 좀 유명하긴하다만, 그래도 저건 선넘었지.
나중에 무릎에 앉혀놓고 궁디팡팡해야겠다.
"아뇨. 싸인은 필요없구요. 개인 트레이너가 필요한데.. `운동`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암시의완전한 발동을 위해 운동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맞는 말이긴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운동과 내가 생각하는 운동은 육체 근육을 쓰는 것은 동일하니까.
"아.. 그래요? 개인트레이너 찾는 분 있으세요?"
그녀가 살짝 화색기를 띄며 물었다.
암시의 성공적인 발동이다. 뭐, 이정돈 굳이 암시 없어도 충분한 상황이긴하지만.
하지만 파. 렴. 치가 출동한다면?
"벨라님요. 앞으로 제 개인트레이너해주세요."
이곳의 관장, 그녀를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