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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최면, 거창한 서막 (20/135)



〈 20화 〉최면, 거창한 서막

"으음."

눈을 뜨자 다시금 골방이었고, 이번엔 루시아가 책상에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불빚에 반사된 그녀의 보랏빛 각선미는 언제봐도 침이 고인다.

다리만으로도 이렇게 흥분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서큐버스긴 서큐버스인 모양이다.

하, 개쌔끈하네.


"..다 들린다만?"
"아아. 죄송합니다. 요즘 워낙 히토미에 뇌가 절여져가지고는.."
"어때, 두 번째 시뮬레이션까지 마쳤는데."
"대충 감은 잡힌 것 같습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시뮬레이션해볼 능력도 생각했고?"

그녀의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슬슬 능력 선택이 가시화되어야하니 말이다.


우선 첫 번째 능력이었던 스탑워치는 안전성이 완벽하다는 장점 대비 그 안전성때문에 현실성과 쾌락성이 떨어진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뭐, 배부른 소리일 수 있겠지만은 당장은 그 단점이 대수롭지않게 보여도 반복되면 분명히 큰 위기를 초래하기에 충분해보였다.


인간은 자극에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자극에 결국 만족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하루에 3번의 섹스를 채우기 위해  자극적인 상황을 갈망하게 될 게 뻔했다.

고로 우선 스킵.


그럼 두 번째 능력인 투명인간은 어떤가.


장점은 관음 플레이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자극적인 플레이를 위해선 죄책감을 이겨내야하는 고충이 있었다.
언제까지나 복수 대상만 겁탈하며 죄책감을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가상세계에서조차 나때문에 공포와 경악에 물든 여성을 보곤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현실이라면 더욱엄두가 나지 않을 터.

그렇다고 선미의 어미를 따먹을 때처럼 허구헌 날 속일 수도 없을 테고.

후..
쉽지가 않다.

이래서 서큐버스와의 계약이라는 축복을 받고도 계약자들이 몰락을 하는구나 싶었다.
정기구슬 조건이 하루 1회 섹스만으로도 가능했다면  두 가지  하나를 선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정도는 간단한 자극의 반복에도 충분할 테니까.

하지만 하루 3회에서 4회란 숫자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기에 완벽한 능력이 필요했다.

스탑워치와 투명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능력이라도 당장은 압도적인 쾌락성과 조건이행에 큰 문제가 없어 축복처럼 느껴지지만 장기전으로 보았을 때는 완벽한 선택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 또한 스탑워치나 투명인간의 능력으로 당분간 조건 이행에 자신있었다.
꿈만 같은 여성 유린과 겁탈은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하더라도 당장은 좋은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하니까.

뭘까.
답이 대체 뭘까.

완벽히 안전하면서도 죄책감에 구애받지 않고, 또 다양한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대체 뭘까.


이제 마지막 선택이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한다.

안전성.
죄책감.
다양성.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이라…

"아..!"

얼마나 고민했을까, 일순간 뇌리를 번쩍이며 관통하는 무언가에 입에서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번쩍임이 구체화가 되지 않았음에도 왠지모를 확신이 들었다.
루시아가 작은 검정 날개를 하늘거리며 책상에서 내려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답을 찾은 듯하구나."

나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을 읽고도 그녀가 흐뭇해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능력한계범위 내의 선택일 터.

답은 바로..


최면 능력!

일명 마인드 컨트롤로 불리는 최면은 야동에서는 아니지만 떡타지 소설에서는 상당한 단골 소재였다.
여성의 심리를 조종해 육체를 취하고  나아가 정신까지 착취하는 그 능력!


안전성이야 당연히 상대가  어떤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해버리면 그만이고, 상대의 심리를 조종하는 것이기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게다가 다양한 쾌락까지 추구할 수 있으니 [최면]이야말로 내게 정확히 부합하는 능력인 것이다!

그래, 이거야!

ㅡ짝짝.

절로 박수마저 쳐졌다.


두 번의 실패 아닌 실패로 기어코 정확한 정답을 찾아낸 듯한 기분에 소름마저 돋았다. 10분간고민하다 찍어버린 객관식 답을 맞춘 듯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달까.
루시아의 표정 또한 흐뭇함이 묻어나오는 것으로보아 그녀의 한계로도 선택 가능한 능력인 듯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니, 근데 정기흡수에 최적인 능력은 서큐버스 종족이 제일 잘 알 텐데 계약자에게 선택지를 주면 더 편한 거 아닌가요?"

루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간만큼 다양성이 짙은 종족은 아직  봤어. 역사책에서 배울 때도 정답은 없었으니까. 같은 능력이라도 누구는 계약 만료까지 정기구슬을 꾸준히 만들었고, 누구는 하지 못했어."

"그런가요.. 그래서 계약자가 스스로 선택하도록내버려두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더욱이 서큐버스 법률상으로도 금지되어있어. 계약자의 능력을 강제로 선택시키는 것은."

"에? 왜요?"

"정기구슬이 우리에겐 생명이자 화폐니까. 너희 인간으로 따지자면 불법적인 사기로 돈을 버는 것과 같은 이치지."

"흥미로운 얘기네요. 정기구슬이 생명력이자 화폐라니."


"그래서, 선택은?"


이제 최면말고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다. 다른 것은 떠오르지도 않았고.

"최면 능력을 선택하고 싶은데.. 제약이라던지 능력의 한계를  있나요? 아니면 가능한지라도. 앞전에 성체 전이라 능력 선택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셔서.."


"아마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의 능력일  같군. 그만큼 복잡하고 강한 능력이라는 거야. 제약과 한계는.. 잠시만 기다려. 공부를 제대로  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따분한 건 딱 질색이라."

....서큐버스 공주님께서는 배움이 싫으셨군요.



그녀가 핑거스냅을 튕기자 공간이 순식간에 바뀌어있었다. 천정이 아득하게 높고 두툼한 책들이 빼곡히 꽂힌 목재 진열대가 끝도 없이도미노처럼 나열된 공간이었다.

그녀는 진열대 위에 적힌 글자를 중얼거리며 뭔가를 찾는 듯 빠르게 이동했다.
물론 상형문자 같은 그 글자는 내겐 그림처럼 보일 뿐이었다.
서큐버스어인 듯했는데, 아마도 이곳은 그녀가 얘기했던 '법률'에 관련된 도서관인 듯했다.


"아, 여깄다."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에 왔다는 생각에 왠지모르게 설레는 마음이 들어 마치 여행이라도 온듯 구경하며 그녀를 뒤따르자 이내 그녀는 진열장 한 곳에 서서 책을 꺼내들었다.

최면술에 관한 책인 듯했다.

대국어사전처럼 두꺼운 책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근력이대단한듯) 읽던 그녀가 다시 책을 덮고 진열장에 꽂았다.
그리곤 딱ㅡ 핑거스냅을 튕겨 다시금 내 골방으로 이동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녀는 설명을 시작한다.

"자ㅡ 잘 들어. 우선 능력의 발현 횟수 제한은 없고 능력 각성 여부에 따라 단일이나 여러 대상에게 시전 가능해. 최면에 걸린 대상은 일명 '트랜스' 상태에 빠지게 되고 지속시간은 무제한이야. 트랜스 상태에 빠진 대상은 너의 노예가 되는 거야. 모는 말에 복종하게끔 되어있지. 그리고 트랜스 상태에서 입력된 지시어나 설정어는 트랜스가 해제되면 즉시 적용돼."


속사포같은 그녀의 설명이 지나갔고,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끄덕였다. 예상대로 압도적인 능력이다.

떡타지 작가들이 서큐버스 법률전을 낭독하고 최면물을 쓰는 것은 아닐까싶을 정도로 설명이 똑같았는데 그덕분에 능력 적응이 훨씬 수월할 듯싶었다.


"시전 방법은 상대와 시선을 마주한 채 핑거스냅을 튕기면 돼. 해제도 마찬가지고."


그뒤로도 그녀는 술술 설명을 풀어갔다. 확실히 복잡한 능력이다보니 스탑워치나 투명인간 같은 능력과는 설명 자체가 달랐다.

겁나 길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는지 전언 시스템에게 물어보면 대답해줄 거라 말하곤 10분여간의 설명을 마쳤다.


"어때. 이걸로 선택하겠어?"


더 물어 뭐하겠는가.
안전성과 다양성이 보장되고 심리적 부담도 죄책감도 없는 완벽한 능력인데 말이다.

"네. 최면 능력으로 선택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마지막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지."


그녀가 막 핑거스냅을 튕기려할 때 난 다급히 외쳐 그녀를 막았다. 루시아가 손을 내리곤 의뭉스레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제 와서 바꾸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뇨,그런 건 아닙니다."
"근데 왜?"

눈동자에 힘을 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결의에 찬 나의 눈빛에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느냐..?"
"마지막 시뮬레이션은 패스하고 바로 최종 선택하겠습니다."
"..뭐?"

그녀가 예상 외인 나의 대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뮬레이션이란 왕족의 특전을 거부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치만 더 이상의 시뮬레이션은 무의미했다.
스탑워치와 투명인간 능력은 이미 반확정적으로 내게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있었었다.


따라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면 능력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뒤진 목숨, 또 뒤진다고 뭐 달라질 것 있겠는가.

게다가 가상세계 시뮬레이션이 조금 지루하기도 했고, 또 가상세계서 테스트하는 것과 현실에서 하는 것도 확실히 다를 듯싶었다.

왜 아이돌이 연습때는 완벽히하다가 실제 공연에서 실수를 하겠는가. 그만큼 가상으로 공연하듯 연습하는 것과 실제 공연은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번의 시뮬로 [최면]이란 답을 찾은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의 10분간의 열띤 설명으로자신도 있었다. 최면 능력으로 계약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말이다.


아니, 스탑워치와 투명인간을 겪으며 느낀 단점을 모두 보완하는 능력이니 이행하지 못하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루시아가 걱정스레 내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느냐?"
"네. 최면 능력으로 최종 선택하겠습니다."

그녀는 잠깐 당황스러워하다 이내 옅은 조소를 지었다. 어차피 그녀는 계약자가 죽으면 새 계약자를 찾으면 그만이니 내 선택을 더이상 말리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 그녀 덕에 뒤지기 전에 원없이 섹스할 수 있으니 만약 실패하더라도 잃을 게 없는 계약이다.


뭐, 마음 같아선 더욱 안전하게 섹스 스쿨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 최면 능력에 스탑워치나 투명인간 능력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아니면 금강불괴의 몸이라도..

"그건 안 돼. 성체 전이라 능력 범주 밖이야. 최면도 내가 왕족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그리고 얘기했지? 능력을 섞은 계약자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는 걸. 그건 역사책에도 나와있어. 보여주리?"
"아, 아닙니다."

이렇듯,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애시당초 최면이라는 압도적인 능력이 있으니 그외 것들을 갖다붙일 필요도 없긴했다. 능력이란 다다익선의 개념이 아니니까.
그녀가 나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대신, 특전 한 가지는   수 있어. 내 능력의 한계치까지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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