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 여섯 번째 촬영] -- >
"이거 그거지?"
하연 선배가 손등으로 대본을 탁 치며 물었다.
"뭐가요, 선배님?"
"그거 있잖아. 피해자가 범죄자를 옹호하게 되는 거……. 그거 뭐냐."
"스톡홀름 증후군이요?"
"그래, 그거! 딱 그거잖아."
내 말에 선배가 손뼉을 짝 치며 소리쳤다.
"확실히 그러네요."
엄밀히 따지자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스톡홀름 증후군.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범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이었다.
이 현상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 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어졌다.
솔직히 나로서는 매우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긴 하지만 사람이란 게, 원래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면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그 중에는 불발탄도 있겠지만 말이다.
"……선배님은 주희나 혜연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글쎄……. 내가 딸을 가진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해본 것도 아니니까……. 이런 건, 역시 젊은 애한테 물어봐야하지 않겠어?"
라며 짓궂게 웃은 선배는 저 멀리서 스태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서아 씨를 부르며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깜짝 놀란 후배님이 큰 눈동자를 한번 껌뻑이더니 곧 쪼르르 이쪽으로 달려왔다.
"부르셨어요, 선배님?"
"어머, 얘는 또 선배님이라고 부르네. 그러지 말고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이리 말한 하연 선배는 스스럼없이 서아 씨의 몸을 더듬었다.
"그거 성희롱입니다."
"그거 동성에게도 적용되는 겁니까?"
내 말투를 따라하며 핀잔을 준 선배는 서아 씨의 어깨를 꽉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서아는 혜연이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쩔 거야?"
"네?"
"나쁜 남자한테 강간당한 다음에 영상을 빌미로 조교되는 거야! 그럼 우리 귀여운 후배님은 어쩔 거야?"
꽤 질 나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딱히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질문은 아니었기에 일단은 잠자코 있기로 했다. 더욱이 서아의 대답이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저도……. 신고하지 못 했을 거 같아요."
"왜?"
"인터넷에 제가 강간당한 영상이 퍼진다니……. 너무해요."
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후배님이다.
이에 하연 선배는 뭐가 그리도 기쁜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 귀여운 서아! 걱정 마, 언니가 다 막아줄게!'라고 말한 뒤에 서아의 몸을 꽉 끌어안아주었다.
============================ 작품 후기 ============================
물ing 님의 역활 / 역할 지적 감사합니다.
역활이란 게 역할의 잘 못 된 말이었군요. 덕분에 좋은 걸 배웠습니다.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