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유 모녀-20화 (20/54)

<-- 20 회: [이행] -->

“가, 가도 되요?”

“그럼 안 가려고?”

내가 이리 되묻자, 퍼뜩 정신 차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가로젓는 혜연이다. 그리고는 곧 ‘아뇨, 갈게요.’라고 대답하고는 내가 건네주는 교복을 받아들었다.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렇듯 교복을 건네받은 직후 허둥지둥 옷을 입는 혜연이의 모습에 내가 이리 말하자, 그녀는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한결 더 빨라진 손길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단추라도 잘 못 끼우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아.”

아니나 다를까, 교복 상의의 단추가 잘 못 끼워져 한 칸씩 밀려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에 당황한 혜연이가 몇 번이고 단추를 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자꾸 손이 엇나가며 단추가 잘 풀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금방에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손을 뻗어 혜연이의 교복 상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아, 저기…….”

“걱정 마, 안 잡아먹으니까.”

나는 이리 말하며 혜연이의 교복 상의 단추를 다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하나하나 열을 맞춰서 채워주었다. 사륵사륵, 어쩐지 여자 아이의 교복 단추를 채워주고 있자니 묘한 흥분감이 몰려왔다. 풀어줄 때와는 사뭇 다른 흥분감이다.

“가, 감사합니다.”

이렇듯 내가 교복 단추를 다 채워주자, 혜연이의 입술 사이로 감사의 말이 새어나왔다.

“어, 아……. 응.”

순간 내가 잘 못 들은 줄만 알았다. 세상에, 혜연이가 내게 고맙다고 할 줄이야. 나는 살짝 벙찐 얼굴로 혜연이를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떼어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살색 스타킹을 입는 그녀다.

스르륵.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스타킹의 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뭐랄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그 끝에 탁,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혜연이의 둔부를 치는 스타킹이다.

그 장면에 나도 모르게 꿀꺽, 군침을 삼키는데 불현듯 혜연이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살짝 나를 경계하듯이 노려보고는 재빨리 치마를 입었다.

팔랑.

그러자 3, 4센티 정도 올라갔다가 다시금 우아하게 떨어지는 치마 끝단이다. 뭐, 저리 나비 같은지……. 교복은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것 같다. 괜히 남성을 유혹하는 복장 중에 교복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가볼게요.”

마지막으로 가방까지 챙겨든 혜연이는 나를 쳐다보며 작별을 고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그녀를 배웅해줄 생각에서 현관 앞까지 함께 걸음을 옮긴 나는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문틈 사이로 제 몸을 밀어 넣어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혜연이다. 여기에 있는 게, 그렇게나 싫었나보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손까지 흔들며 입을 열었다.

“조심해서 돌아가.”

이런 내 인사말에 혜연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 ∵ ∴ ∵ ∴

그 날 이후로 혜연이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다. 평소처럼 예림이와 등교를 했고, 교실에선 수연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한다면, 방과 후에 항상 그 남자의 집에 들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혜연이에게 이런저런 행위를 요구했고, 혜연이는 그 행위를 곧이곧대로 받아드리며 따라주었다. 물론 그 행위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질감이라 해도 좋았다. 분명한 건, 하기 싫은 행위라는 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연이가 그 남자의 요구에 순순히 따랐던 건, 딱히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오늘 하루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처럼 그 남자의 집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온 혜연이는 욕조에 물을 받은 뒤에 몸을 담갔다. 그러자 따스한 물이 온 몸을 휘감으며 뭐라 말로 표현 못 할 안도감을 주었다. 어쩐지 행복하다는 느낌마저도 드는 그녀였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혜연이는 코 밑에까지 물을 담갔다. 그 후, 부우우 하고 입김을 내뱉자 뽀글뽀글하고 올라오는 공기방울이다.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혜연이는 이내 오늘, 그가 자신에게 했던 행위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오늘은 어떻게 했더라? 분명 처음에 가슴을 만졌지. 그 다음에는 허리를 만지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어루만졌었다. 혜연이는 오늘 그가 했던 대로 가슴, 허리, 그곳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러자 미미하게 물결치는 욕조 안의 물이다.

뽀글뽀글.

동시에 입술 밖으로 새어나온 공기방울이 연거푸 톡톡 터지는 소리를 내었다.

‘기분 좋아…….’

혜연이는 저도 모르게 이리 생각했다. 분하게도, 그의 말처럼 자위라는 행위는 기분 좋았다.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혜연이는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끝으로 그곳을 계속 어루만졌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클리토리스를 꼬집기도 하고, 질 내를 손끝으로 찔러보기도 했다.

뽀글뽀글.

그 행위가 거듭될수록 혜연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갔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어쩐지 몸 전체가 붉게 달아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흐읏……!!”

그렇게 얼마간 했을까, 돌연 혜연이의 고개를 들려졌다. 동시에 그녀의 입술 사이로 들뜬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부르르, 한동안 몸을 떨던 혜연이는 이내 살짝 몽롱해진 시선으로 물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달은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인지, 완전히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휘청이며 다시금 욕조에 주저앉고 마는 혜연이다. 동시에 거세게 물결친 욕조 안의 물이 촤악 소리를 내며 화장실 바닥에 쏟아졌다.

“…….”

혜연이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꿈인가 싶어서 손바닥에 물을 받아 얼굴을 헹궈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도리어 방금 전에 자신이 한 행동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일순간 자괴감이 몰려왔다. 설마하니, 자기가 그토록 혐오했던 행위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당혹스러움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마치 자기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혜연이는 한동안 이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헤맸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누구 한 명 붙잡고 말할 수도 없었다.

도움을 구하고 싶어도,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엄마…….”

돌연 겁이 났다. 마치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말이다. 이렇듯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벌벌 몸을 떨던 그녀는 돌연 ‘엄마. 엄마…….’라고 애타게 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금방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화장실을 빠져 나갔다.

뚝뚝, 몸에 묻은 물기가 떨어져 집안 바닥을 적셨지만, 혜연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엄마를 찾기 위해, 길을 잃은 어린 아이마냥 울먹이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 흐윽.”

하지만 아무리 찾고, 또 찾아봐도 엄마는 집 안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텅 빈 집 안만이 그녀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혜연이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하염없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 ∴ ∵ ∴

나는 손 안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쓸데없이 만지작거리며 혜연이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전화하고 싶다. 혜연이의 수줍어해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 ‘왜 전화 했어요?’라고 묻는 퉁명스런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전화를 걸면, 분명히 질색해하겠지?

‘친해지고 싶은데…….’

강간했던 주제에 잘도 이런 생각을 한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스마트폰을 침대 위로 던졌다. 그러자 툭, 하고 푹신한 침대 시트 위에 떨어지는 스마트폰이다. 그리고 한동안 내 할 일을 하던 나는 문득 날짜를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일요일이네.’

그렇다는 말은 내일 하루 혜연이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녀의 엄마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회사 일로 바쁜 건지, 아니면 따로 만나는 애인이 있는 건지 2주에 한번 꼴로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마침 그 2주에 한번이 내일이었다.

‘데이트라.’

어쩐지 신이 났다. 물론 혜연이는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재차 웃음을 터트린 나는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서 침대 위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 후, 곧장 혜연이에게 전화를 걸자 뚜르르 하고 신호음이 갔다.

[어, 엄마?]

그리고 곧 스피커 너머로 울음 섞인 혜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연아? 울어?”

[아…….]

그 목소리에 놀란 내가 이리 묻자, 전화기 너머로 혜연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눈물을 지우는 모양인지, ‘죄송해요. 조금 있다가 제가 다시 전화할게요.’라고 말한 직후 먼저 뚝 하고 끊어버리는 혜연이다.

============================ 작품 후기 ============================

이걸로 세번쨰 소제목인 [이행]도 끝났군요.

이걸로 준비가 되었으니, 그럼... 네. 이제 함락시킬 시간이군요.

*엘스타인 님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ㅎ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