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유 모녀-14화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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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 번째 영화 촬영이 끝나고.]

오늘은 좀 웃겼다. 뭐랄까, 제자리 뛰기라니……. 주인공은 어째서 혜연이에게 제자리 뛰기 같은 걸 시킨 걸까? 상대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려고? 아니면 단순히 자기만족? 만약에 후자라면 아주 약간이지만, 공감 표를 던져줄 의양이 있었다. 실제로 내 앞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 서아 씨의 몸은 꽤 훌륭했으니 말이다.

폴짝폴짝하고 말이다. 그에 따라 흔들리는 가슴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샌가 옷을 갈아입은 서아 씨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정말이지, 예의바른 후배님이다. 기특한 마음에서 어깨나 등이라도 토닥여줄까 싶었지만, 혹시라도 성희롱 의혹에 둘러싸일 수도 있었기에 그건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오른손을 살짝 들어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오늘 선배님 덕분에 더 잘 된 것 같아요.”

라며 헤실헤실 웃는 게, 마치 다음에도 또 대사 연습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만 같다. 아니, 실제로도 그래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 후배님은 아무래도 나를 봉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대사 연습 정도는 친한 동료나 매니저를 상대로 해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물론, 실제 상대역을 하는 연기자와 하는 것이 가장 좋긴 하다.

하지만 그 배우의 개인 사정이나 목 사정, 혹은 몸 상태 탓에 둘이 연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그 전에 민폐다. 어지간히 친하지 않은 이상 대본 연습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뭐, 저도 덕분에 잘 됐습니다.”

“아! 저, 저기 선배님.”

“네?”

“말 편하게 하셔도 되요. 제가 한참 어린데, 너무 말을 높여주시는 건 아닌지…….”

주저주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과연, 애교가 주특기라는 건가? 큰 가슴과 더불어 예의바른 몸가짐. 거기에 더해 애교까지 있다. 음, 생각보다 파괴력이 있는 신입 배우다. 분명 이대로 3년……. 아니, 2년만 지나면 A급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뇨, 저는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됩니다. 너무 친하게 지내면 터울이 없어지니까요.”

“네?”

“스킨십 같은 걸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리 말한 나는 옅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양 볼을 불그스레 물들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서아 씨다. 이거 순진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건지……. 그런데 확실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아 씨가 연기하고 있는 혜연이의 모습이 자연스레 비추어 보여졌다. 실제로도 혜연이는 상당히 순진무구한 여고생이니 말이다.

누가 서아 씨를 캐스팅 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괴, 굉장히 철저하시네요.”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처신을 잘 해야 됩니다. 안 그래도 이런 영화만 찍는데, 색골이라고까지 소문이 나면……. 음, 좀 곤란하군요.”

실제로 내가 아는 선배 중에 하나가 상당히 색골이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예쁜 후배가 보이기만 하면 어떻게든 뭘 해보기 위해 찝쩍거리곤 했다. 덕분에 그 선배는 며칠 못 가서 색골이라 찍히게 되었고, 결국 다수의 여배우들이 선배와 영화 찍기를 거부. 그 탓에 현재 그 선배는 실직자 신세다. 다시 이 바닥으로 복귀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역시 사람은 처신을 잘 해야 오래 살아남는다.

“의외네요.”

“서아 씨는 이런 쪽의 영화를 처음 찍어보는 건가요?”

라고 물으며 나는 무의식중에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참 발랄한 후배 앞이란 걸 깨닫고는 ‘아, 죄송합니다. 혹시 담배연기 싫어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 저는 괜찮아요.’라고 허둥지둥 말하는 후배님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허둥지둥 대는 몸짓 가운데 표정은 어수룩하게 싫다고 의사표명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유감이다. 나는 꺼냈던 담배 한 가치를 도로 담뱃갑에 집어넣은 뒤에 입을 열었다.

“……뭐랄까, 조금 어색해하는 것 같더군요.”

“네? 그, 그래 보였나요?”

“뭐,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혹시 경험이 적다거나……. 음, 실례했군요. 제가 너무 입을 떠들었네요.”

“아, 아니에요!”

너무 떠든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상대에게 실례다. 더욱이 그 대상이 나이 어린 여성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는 자숙하는 의미에서 잠시 침묵하고는 고개를 털었다.

“아무튼 내일 촬영부턴 여러 가지로 본격적이 될 겁니다. 영상이라도 보면서 연습해보세요.”

“아, 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한 직후, 나는 매니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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