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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른 김에 왕까지-38화 (38/42)

38화

늦은 밤. 기린은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잠도 자지 않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기다리던 포우가 보였다.

“도련님!”

기린이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포우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러나 하루 새 수척해진 기린의 낯빛을 보고 포우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괜찮으세요, 도련님?”

“응, 나는 괜찮아.”

비단 성기사와의 섹스 때문에 몸이 지친 것만은 아니었다. 기린은 마음이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성기사의 품에 안기면서도 마왕이 그를 정말로 죽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야겜에 빙의가 되었으니 섹스나 실컷 해서 욕정이나 채우자던 기린의 다짐은 어느새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그간 게임이라고 안일하게 행동해 왔던 걸, 기린은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성기사는 걱정하지 말라며 기린을 달랬지만, 기린은 좀체 안심할 수가 없었다.

마왕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그건 기린의 탓이 컸다. 기린이 다양한 남자들의 음기를 가져다 식사로 바쳤으니까. 일전에 마왕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네가 가져다준 음기들 덕분에 다음에 힘이 돌아오면 더 강력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기린은 그 말을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기린과 헤어지며, 성기사는 곧장 왕궁으로 향했다. 마왕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성기사는 기린에게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난 뒤, 왕궁 기사단으로서 입궁하라고 명했다. 기린을 알겠다고 대답했다.

포우가 기린의 어깨에 걸쳐진 로브를 받아주었다.

“겨우 로브일 뿐인데…… 도련님은 지금 바위를 이고 온 것 같은 얼굴이세요.”

“그래?”

기린이 애써 웃었지만, 미소가 일그러지며 이상한 모양이 되었다. 기린은 웃음기를 얼른 거두어 버렸다.

“너무나도 걱정돼. 그래서 미쳐버리겠어, 포우.”

기린이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연거푸 한숨을 뱉었다. 포우가 기린의 옆자리에 앉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주인님께 대충 이야기는 들었어요. 마왕을…… 해방 시켜 주셨다면서요?”

“응…….”

기린이 괴로운 듯이 답했다. 포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린은 고개를 들어 포우를 바라다보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네?”

“질책하지 않아? 왜 그랬냐고?”

“전 그러지 않아요, 도련님.”

포우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련님께서 생각이 있으셨으니 그렇게 하셨겠죠. 저는 도련님이 충동적으로, 혹은 장난삼아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포우…….”

기린은 포우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포우의 듬직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왕에게 마력을 돌려주고 나면…… 그걸로 끝일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시작이었을 줄이야……. 마왕이 성기사님을 죽이겠다고 할 줄 알았더라면 나는 절대로 마왕에게 힘을 돌려주지 않았을 거야. 난 누구도 죽는 걸 원하지 않아.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거야?”

“글쎄요…….”

포우가 기린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며 말했다.

“저도 유니콘 왕국의 왕자로서 누구보다도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평화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바라죠. 마왕도 그랬을 거예요. 마왕은 힘을 되찾은 한 복수를 하고 싶었을 테고, 성기사님과 다시 맞붙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겠죠. 언젠가 이런 날이 찾아오리라는 건 아마 성기사님도 알고 계셨을 거예요.”

“정말 그럴까?”

“네, 저를 믿으세요. 도련님.”

포우가 다정하게 웃으며 기린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그 따스한 품에 안기자 기린은 마음이 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던 심장이 다시 말랑말랑해지는 게 느껴졌다.

“포우…….”

성기사 앞에서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눈물이 기린의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혔다. 기린이 코를 훌쩍이자 포우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세요, 도련님?”

“으응…….”

기린이 멋쩍은 듯이 손등으로 코끝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울려고 했는데…… 바보처럼 눈물이 나네.”

“우는 게 왜 바보 같아요? 저도 도련님 앞에서 자주 울었는걸요.”

“하지만…… 내가 잘못해놓고 우는 건 너무 뻔뻔하잖아.”

“뭐 어때요. 그럴 때도 있는 거죠.”

포우가 기린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도련님은 다정하신 분이세요. 자신의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 지금 힘쓰고 계시죠. 게다가 그 실수 때문에 아파할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잖아요.”

기린의 눈물을 닦아주던 포우의 두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포우가 눈을 접으며 웃자 눈물 한 방울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든 게 잘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포우…….”

기린은 포우를 와락 끌어안았다. 포우가 기린의 등허리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도련님, 너무 괴로우시면 제 눈물을 마시세요.”

“포우의 눈물?”

“유니콘이 흘리는 모든 액체에는 괴로움을 잠시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답니다. ‘망각의 힘’이죠.”

“그런 건 처음 듣는데?”

“그래서 저희 유니콘을 사냥해 납치하고는 매일 같이 고문을 해 눈물을 얻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자신의 괴로운 일을 잊기 위해서 저희 유니콘을 괴롭히는 거죠.”

“세상에…… 말도 안 돼.”

기린이 경악하자 포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세상에는 정말 나쁜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러니 도련님은 자책하실 필요 없으세요. 자신의 잘못 때문에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포우의 눈에서 눈물이 퐁퐁 솟아났다. 기린은 포우의 눈물을 엄지로 쓸어서는 혀를 내밀어 할짝거렸다.

겨우 눈물 한 방울일 뿐이었는데, 그 눈물이 혀끝에 닿자 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며 잠시 머릿속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기린이 감탄하자 포우가 자신의 얼굴을 그에게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조금 더 드세요.”

“그래도 될까?”

“물론이죠…….”

기린은 포우의 얼굴을 붙들고는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혀로 길게 핥았다. 포우의 눈물이 혀에 닿는 순간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 같은 것이 풍기는 것 같더니 이내 무거운 것이 얹어져 있던 것 같은 가슴이 한결 가벼워졌다.

“편안해…….”

“그렇죠?”

“고마워, 포우…….”

기린이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포우에 대한 고마운 마음만이 기린의 가슴 가득히 피어올랐다.

어쩌면 포우의 마음을 받아주는 게, 이 게임 속 기린에게 가장 행복한 결과였을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기린과 유니콘이지 않은가. 둘은 잘 맞는 한 쌍이었다. 기린은 아시아의 유니콘이나 다름없으니까.

기린은 연속해서 포우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마셨다. 포우가 키득거리며 기린의 허리를 한 팔로 감았다.

“간지러워요, 도련님.”

“에이, 웃지 마. 그러면 눈물이 마르잖아.”

“엇, 지금 저를 더 울리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 더 울어, 더 울어!”

포우의 눈물 덕분에 괴로운 기분을 많이 잊은 기린이 장난꾸러기처럼 포우의 등짝을 가볍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포우가 소리 내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린도 그를 따라 웃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포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포우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기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도련님…….”

“포우……?”

“눈물이 말랐다면…… 다른 방법으로 괴로운 기분을 잊을 수도 있어요…….”

“응……?”

기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포우가 기린의 목덜미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더니 덮치듯이 키스를 해왔다. 기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기린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하아, 도련님…….”

포우가 뜨거운 숨을 내쉬며 기린의 입술 사이를 혀로 가르듯이 핥았다. 깜짝 놀란 기린이 “앗.”하고 소리를 내자 포우의 혀는 기다렸다는 듯,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읏…… 포, 포우…….”

포우가 기린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어찌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기린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포우의 셔츠를 꼭 움켜쥔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포우의 말이 맞았다. 포우의 키스에는 더 강력한 망각의 힘이 서려 있었다. 포우의 타액이 기린의 입 안으로 넘어오자 기린은 코끝에 향긋한 꽃향기 같은 것이 맴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머릿속이 차분하게 깨끗해지며,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파해 왔는지를 잠시 잊게 되었다.

가슴을 내리누르고 있던 돌덩이는 먼지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두 눈에서 흐르던 눈물도 깨끗이 말랐다. 포우가 입술을 떼자 기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우?”

“죄송해요, 죄송해요, 도련님.”

포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키스를 한 사실까지 도련님이 잊게 만들려면 도련님은 아마 제 정액을 마시셔야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너와 키스한 사실을 잊어야 해?”

기린이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괴로움에 인상을 쓰고 있던 포우가 고개를 돌려 기린을 바라다보았다.

“네?”

“나는 별로 잊고 싶지 않은데. 난 기분 좋았어, 지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 고마워, 포우.”

기린이 해사하게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하자 포우의 얼굴이 기묘한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이 일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유니콘의 마법은 저주죠.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해요. 길고 달콤한 키스는 그 사람이 날 사랑했다는 사실도 잊게 만들지 모르니까. 언제나 전전긍긍이죠.”

포우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이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아마 저와 섹스를 하고, 도련님이 제 정액을 마셔도 도련님은 저와 섹스를 했단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실 거예요.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포우가 기린에게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포우?”

기린이 포우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우는 그대로 기린을 기린의 방으로 데려가더니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고 일어나시면 모든 게 꿈같아지실 거예요.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도,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게 되시겠죠. 괜찮아요. 도련님. 너무 혼란스러워하지 마세요.”

포우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나른하게 들렸다.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와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끔뻑거리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포우는 괜찮아요…….”

잠이 들기 직전, 포우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기린은 전날 밤,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기린은 폴과 포우의 응원을 받으며 왕궁으로 향했다. 포우는 벌써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절대로 다치시면 안 돼요!”

“알겠어, 걱정 마.”

“약속하셨어요!”

포우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폴의 품에 기댔다. 폴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린을 향해 두툼하고 커다란 손을 흔들어 댔다.

“잘 다녀와라, 아들아. 난 네가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마왕에게서 칼레나 왕국을 잘 지키고 올게요.”

기린은 왕궁 기사단 로브를 쓰고는 성기사가 준 빛의 드래곤 단검을 허리춤에 질러 넣었다. 그러고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왕궁을 향했다.

왕궁에 도착하니 그곳은 이미 마왕의 침략을 대비하는 준비로 분주했다. 여태까지 게으름이나 피우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왕궁 방어에 힘을 쓰고 있었다.

기린도 그들 틈 사이에 끼어 바쁘게 전투 준비를 했다. 더러 성기사가 나타나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얼굴이 마주치면 웃음기 하나 없는 성기사의 얼굴에 시름이 깊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도 걱정이 크게 되는 것 같았다.

마왕은 왕궁이 방어 대책을 다 쌓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이 정도 준비로 나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선언하는 듯이.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렇기에 기린은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첫 번째 결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왕이 얼마나 강한지 또 이번에는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시간이 지났다. 기린은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왕궁에서 잠을 잤다. 모두가 같은 입장이었다. 마왕이 나타나지 않을수록 사람들 사이에 불안은 더 커졌다. 아무래도 마왕은 이것을 노리는 것 같았다.

***

사흘째 아침.

기린은 그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왕궁 방어에 힘을 쓰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기린은 창과 화살을 정비하던 것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 끝에서 누군가 후다닥 몸을 숨기는 모습이 보였다.

“……?”

기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누군가가 숨은 곳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구석으로 더 몸을 숨길 뿐이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기린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였다.

“레오나르도?”

“기린…….”

기린이 이름을 부르자 레오나르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구석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냥…….”

레오나르도가 쭈뼛대며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는 차마 기린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기린은 고개를 숙여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안색이 안 좋아 보여.”

“…….”

레오나르도가 슬픈 얼굴로 두 손을 주물럭거렸다.

기린은 아르고가 자신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날 이후로 레오나르도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날조차 기린은 레오나르도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와 말을 섞었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아마도 기린이 성기사를 선택했던 날 이후가 아닐까? 기린은 레오나르도가 이렇게 의기소침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레오나르도는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기린이 성기사를 선택해서, 또 아르고가 기린을 선택해서.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으니 얼마나 자신이 비참하게만 느껴졌을까.

기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레오나르도의 손을 붙잡았다. 레오나르도의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레오나르도. 날 찾아와줘서 고마워.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그때 이후로…… 계속 이야기하지 못했잖아?”

“기린…….”

레오나르도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뭘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너를 온전히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거야?”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가 기린의 두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간절한 눈빛으로 기린을 바라다보았다.

“기린. 너는 날 좋아해?”

“그게 무슨 말이야, 레오나르도.”

“말해 줘. 너는 나를 좋아해?”

기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분명, 기린은 레오나르도를 좋아했다. 인간적으로도, 친구로서도. 하지만 그것은 레오나르도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 터였다. 레오나르도는 기린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게 맞는 걸까? 하지만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레오나르도가 기쁠까? 기린은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좋아해, 레오나르도. 하지만…… 네가 원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

“…….”

레오나르도의 눈썹이 아래로 축 내려갔다. 레오나르도의 강아지 같은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기린, 나는…… 너를 사랑해.”

“알고 있어.”

그렇게 대답하는 기린의 가슴이 미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은 레오나르도에게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탄스러웠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괴롭게 만들다니. 기린은 자신이 천하의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레오나르도…… 그렇지 않아.”

“기린. 너를 너무 사랑하지만…… 가끔은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레오나르도가 눈을 감자 눈물이 매달린 빽빽하고 촘촘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레오나르도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대로 널 포기할 수는 없어. 난 널 원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해.”

말을 마친 레오나르도가 기린을 와락 끌어안았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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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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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la****

유니콘이 정말 멋진 설정인 걸?

2021.05.16신고9

Mobbi

포우ㅠㅠㅠ아련아련...

2021.05.17신고6

그렇게됐다

기린 마성의 남자...!

2021.05.16신고6

ㅍㅅㅍ

선생님 뒤로갈수록 건전한 내용이라니요.. 음습한 마음이 살짝 실망스럽게 고개를 듭니다요.. 하지만 재밌습니다요ㅠㅠ

2021.11.16신고좋아요

맛잇다

가슴이 찢어진다...

2021.08.14신고좋아요

얘들아 사랑을 해라

2021.05.17신고좋아요

BOMTOON

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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