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른 김에 왕까지-37화 (37/42)

37화

“저건…….”

기린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거실 벽에 붙어 있는 벽난로였다. 벽난로 윗부분 장식장이 애매하게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는…… 기사라면 저런데 칼이나 방패 같은 걸 걸어두지 않나? 너무 텅 비어 있는 게 이상하네?”

기린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순간,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벽난로 위를 비췄다. 순간 아무것도 없는 벽난로 위가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

마치 투명한 케이스에 부딪쳐 반사된 빛 같았다. 기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난로 근처로 다가가 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벽난로 위를 슬며시 만져보았다. 기린의 손이 닿자 갑자기 결계가 무너지더니 서서히 무언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기사의 정액으로 성스러움을 얻은 기린을 결계가 성기사라고 착각을 한 것이었다.

기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건 검이었다. 검고 이글거리는 불꽃을토해내며, 검 한가운데 마왕의 눈 색과 같은 푸르디푸른 토파즈 장식이 박힌 마검.

기린은 마검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찾았다.”

그 순간, 오래간만에 기린의 눈앞에 선택 창이 떠올랐다.

「훔친다.」

「바라보기만 한다.」

이 게임에 들어온 이래로 가장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기린은 고민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언제 성기사가 집으로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기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왕님과 약속한 게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G를 배신하게 되는 거잖아.”

기린은 고뇌하며 머리를 감쌌다. 성기사에게 별 감정이 없을 때라면 오히려 고민 없이 훔쳤을 텐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새 기린은 성기사에게 정이 들고 말았다.

“으아! 어떻게 해야 해?!”

거실을 서성거리던 기린이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서서 휙, 하고 마검을 돌아보았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훔친다.」

선택.

기린은 의자를 끌어와 벽난로 앞에 두고는 손을 뻗어 마검을 끌어 내렸다. 이글거리는 검은 불꽃이 뜨겁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손으로 만져보니 오히려 얼음처럼 차가웠다.

“마왕님은 마력을 되찾고 마왕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니까! 그래, 별문제 없을 거야!”

기린은 자기합리화를 위해 큰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성기사의 로브 하나를 빌려 쓰고 마검을 숨겨 성기사의 집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성기사에게는 먼저 돌아가서 미안하다는 쪽지만 남긴 채.

***

기린은 곧장 뒷골목으로 향했다. 마왕을 만나러 가는 일이 아주 오랜만인 것 같았다. 기린이 뒷골목에 도착했을 때, 마왕은 여느 때처럼 쓰레기통 위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왕님!”

“누구냐?”

기린이 로브를 뒤집어쓴 탓에 마왕은 한눈에 기린을 알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 로브가 왕궁 기사단의 로브였으니, 마왕이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기린은 얼른 로브를 벗어 얼굴을 보여주었다.

“저예요, 민기린.”

“오, 기린이구나.”

기린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마왕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마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린이 쓰고 온 로브를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그 불온한 로브는 뭐냐? 그따위 것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오해한다.”

“사람들이 뭘 어떻게 오해하는데요?”

“네가 마왕의 백성이 아니라고 오해한단 말이야!”

마왕이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왕궁 기사단으로 들어간 것까지 허락해 주었는데, 이제는 아예 왕궁 기사단 옷이 아니면 입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원.”

“에이, 그건 오해세요. 늘 퇴근하고 들러서 그렇죠, 뭐.”

“그래도 말이야.”

기린은 퉁명스럽게 구는 마왕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그 순간, 마왕이 눈을 번뜩이며 기린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잠깐만. 이 냄새는? 킁, 킁킁…….”

“어, 왜 그러세요? 식사하실래요? 저 마침 음기 모아온 거 있는데…….”

“읏?!”

마왕이 갑자기 코를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마왕은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기린을 원망하듯이 노려보았다.

“설마 또 성기사가 주었다는 그 단검을 가져온 거냐?!”

“아뇨! 그거 안 가지고 왔어요!”

기린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마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어째서 네 온몸에서 성스러운 냄새가 나는 건데! 이건, 이건 마치……!”

말을 더듬거리던 마왕이 분에 못 이겨 큰소리 쳤다.

“성기사 그 자체 같잖아!”

“헉…….”

기린은 입을 조개처럼 닫고 마왕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마왕에게 모아온 음기를 나눠주려고 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가 기린이 성기사와 잤다는 걸 눈치채겠거니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성기사의 음기를 싫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왕이 저렇게 펄펄 뛰는 걸 보니 실수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린의 반응을 살핀 마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설마…… 성기사랑 잔 건 아니겠지?”

“아, 그게…….”

“그건 배신이다, 기린!”

마왕이 화를 버럭 내자 기린은 마왕의 화를 가라앉힐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바로 마검이었다.

“다 계획이 있어서 그랬어요! 이거 보세요, 짜잔!”

기린은 로브 속에 숨겨두었던 마검을 마왕 앞에 꺼내 보였다. 순간 잔뜩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마왕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건……?!”

마왕이 마검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내…… 힘……! 나의 강력한 힘!”

마왕의 두 눈에 핑, 눈물이 맺혔다. 기린은 마왕에게 마검을 내밀었다.

“자요. 이거 찾고 계셨잖아요. 제가 가져왔어요.”

“세상에……!”

마왕은 너무나도 감격하여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는 기린이 내민 마검을 받아들더니 황홀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그것을 쓰다듬었다.

“마침내…… 드디어 내 힘이 돌아왔어!”

“축하드려요.”

“다 네 덕분이다, 기린. 네가 아니었으면 난…….”

마왕이 뒷골목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쓰레기장에서 영생을 살아야 했겠지.”

마왕은 마검을 높이 쳐들더니 햇빛에 비춰보았다. 검은 불꽃이 혀처럼 날름거리며 태양을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렸다.

“이제 모든 건 원점으로 돌아온다.”

마왕이 단호하게 말하더니 마검을 바닥에 비스듬히 대고는 오른발로 거칠게 밟았다. 그 모습에 기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왕님! 지금 무슨……?!”

그 순간, 마검이 유리창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검은 연기가 부글부글 일어나 마왕의 몸을 감싸더니, 검신에 박혀 있던 토파즈 보석이 빙글빙글 돌며 마왕의 이마 위로 날아갔다. 마왕이 눈을 감으며 양팔을 벌리자 토파즈 보석이 마왕의 이마에 가서 쿡 박혔다. 그러더니 마왕의 뿔이 산양의 뿔처럼 더 크고 우람하게 자라났다. 검은 연기는 마왕의 몸 안으로 모조리 다 흡수되더니 거대한 검은 망토가 되어 마왕의 몸을 휘감았다.

“힘이 느껴지는구나……!”

마왕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작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더니 이내 그 소용돌이는 뒷골목 쓰레기장을 다 헤집어 놓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기린은 로브를 펼쳐 얼굴을 가렸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린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모든 힘이……!! 돌아왔군!”

마왕이 두 눈을 번쩍 뜨자 이마에 박힌 토파즈 보석에서 번쩍, 하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하늘에서 갑자기 요란한 천둥이 쳤다.

“으악!”

깜짝 놀란 기린이 로브 속으로 몸을 숨기며 귀를 막았다. 마왕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며 잔혹한 웃음을 터트렸다.

마왕의 눈빛은 기린이 알고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마왕은 이제 잔인하고 음흉한 미소를 띤 채 기린을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검을 되찾기 위해 성기사와 잠을 잔 거지?”

마왕이 고압적으로 물었다. 기린은 더듬더듬 답했다.

“어, 말하자면 뭐, 그런…….”

“흥. 내 힘을 되찾아주기 위해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전, 저는…….”

한순간에 분위기가 변한 마왕에게, 기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알던 마왕이 아닌 것만 같았다. 가슴 속에 깊은 후회감과 진한 죄책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미쳤어……. 실수한 거야. 마검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었는데.’

“기린.”

마왕이 기린을 부르자 기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마왕은 여전히 고고한 표정으로 기린을 내려다보며 사나운 눈을 번뜩였다.

“나는 네가 성기사와 잤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

“네……?”

“질투가 나서 미쳐버리겠단 말이다.”

마왕이 뿌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더니 양팔을 다시 활짝 펼쳤다. 검은 망토가 펄럭이며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는 이제 거의 폭우가 되어 있었다. 기린은 젖은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 넘겼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해야 할 일을 준비하러 가겠다.”

“해야 할 일이요……?”

기린이 되물었다. 좋지 못한 예감은 언제나 왜 적중하는 걸까. 마왕이 눈을 부릅뜨며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성기사 G를 죽일 것이다.”

***

갑작스레 내리는 폭우에 사람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비를 피하거나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가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기린은 비를 쫄딱 맞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물에 빠진 쥐가 되어 돌아온 기린을 보고 깜짝 놀란 포우가 수건을 가져와 그를 말려주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오늘 비 올 것 같은 날씨가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건지.”

“……다 내 잘못이야.”

“네? 어떻게 비 내린 게 도련님 잘못이에요.”

“아니야. 다 내 잘못이야.”

잔뜩 주눅이 든 채 기린이 힘없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빗방울인지 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련님…….”

“어떡하지, 포우?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기린이 포우를 붙든 채 소리쳤다. 그 순간, 집 안에서 폴이 나타나 묵직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면 수습해야지.”

“아버지…….”

폴은 진지한 표정으로 기린에게 다가섰다. 그러더니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포우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마왕과의 엔딩을 보기 위해 너와 같은 선택을 한 이들이 있었어. 그들은 다 각자의 선택을 했지. 성기사가 죽게 놔둔 사람도 있고, 성기사를 살리려 애를 쓴 사람도 있어. 기린, 여기서부터는 너도 선택을 해야 해. 이 일을 정말 ‘실수’라고 생각한다면 너만의 방법으로 수습해봐.”

“…….”

기린은 눈에 힘을 주고 눈물을 참았다. 지금은 바보처럼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폴의 말이 맞았다. 자기가 저지른 ‘실수’는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알겠어요. 조언 고마워요, 아버지.”

“고맙기는 뭘.”

폴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기린의 마음도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폴이 기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것만은 기억해. 난, 아니 우리들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한다는 것을.”

“알겠어요.”

폴의 말에 기린은 약간 기운이 났다. 이제 실수를 수습하러 갈 용기가 났다. 기린은 로브를 다시 챙겨 입고는 우산을 들었다.

“잠시 밖에 좀 다녀올게요!”

“이제 막 돌아오셨는데 또 어디를 가시려고요, 도련님?!”

포우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기린은 이미 저 멀리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성기사님의 집!”

***

똑, 똑.

기린이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기린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멈추지 않는 시커먼 하늘이 너무도 불길했다.

기린은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노크를 했다.

똑, 똑, 똑.

그제야 안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기린은 문이 열리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피로한 듯한 표정의 성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

“저예요.”

“……기린?”

성기사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벌써 마왕의 편에 붙어 멀리 떠나버린 줄 알았는데, 여긴 왜 돌아왔지?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건가?”

“아니요.”

기린은 단호히 고개를 젓고는 성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성기사는 너무도 지쳐 보였다. 성기사에게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를 저토록 지치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기린은 강렬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사과를…… 하고 싶어서 왔어요.”

“무슨 사과?”

성기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카락을 빗어 넘겼다. 기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검을 훔치고…… 그걸 마왕에게 가져다준 것에 대한 사과요.”

“이제 와서?”

성기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기린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성기사가 인상을 쓰며 으르렁거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널 베어 넘기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들어보려 했더니 뭐? 사과를 해? 하, 웃기지도 않는군.”

성기사가 고아한 자태로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하찮은 벌레를 쳐다보듯이 기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는 우리 칼레나 왕국을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고, 우리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마왕은 이제 곧 다시 우리 왕국을 공격하러 오겠지. 이번에도 내가 마왕을 막아내겠지만,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 잘못을 사과 한마디로 끝내겠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기린의 실수는 그토록 거대한 것이었다. 기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울 때가 아니었다. 아니, 잘못을 한 사람이 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린은 크응, 하고 코를 삼킨 뒤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G가…….”

“성기사님이라고 불러.”

성기사가 차갑게 기린의 말을 잘랐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냉랭한 그의 반응에 기린은 울컥, 무언가 목구멍으로 뜨겁게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성기사님이 저를 당장 죽이지 않는 것도 무언가 이유가 있겠죠. 제가 마왕의 수하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신 거예요. 그렇죠?”

“…….”

“제 잘못을 목숨으로 갚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저는 다른 방법을 찾고 싶어요.”

“기린…….”

“정말 실수였어요. 저는 마왕이 제 친구인 줄로만 알았고……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기린의 말에 성기사가 다시 한번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성기사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기린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왜 그랬지?”

“네……?”

“나와 섹스를 해 내 눈을 속이면서까지 마왕에게 마검을 가져다줄 정도면…… 둘이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마왕이 너에게 특별한 사람인가?”

그 질문을 하는 성기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기린은 질문을 하면서 성기사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냈다는 걸 깨달았다.

“G……!!”

기린의 두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그는 성기사의 품에 와락 안겼다. 성기사는 힘없이 흔들리더니, 이내 기린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기린은 성기사의 품에서 코를 훌쩍거리며 다짐했다.

“내가 잘못했어요. G.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다시 되돌려놓고 싶어요.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기린…….”

성기사가 기린의 정수리에 코를 박으며 웅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도 촉촉하게 물기가 어려 있었다.

기린은 성기사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다보았다. 그러고는 단단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왕과의 결전을 준비해요. 이번엔 내가 칼레나 왕국과 당신을 지킬 거예요.”

“그러려면…….”

성기사가 기린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그를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결투 훈련이 더 필요하겠군…….”

“G…….”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어. 그때까지는 너와 함께 있고 싶다.”

기린은 성기사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닫히고, 모든 소리를 잠재울 만큼 시끄러운 폭우 속에 두 사람의 사랑을 나누는 소리 또한 함께 묻혔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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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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뀨뀨?

깔꼼하게 3p 가자

2021.05.16신고6

뭐야 나도 들려줘요 나도 집안에 같이 좀 들어가봅시다

2021.09.17신고1

ㅍㅅㅍ

왜 폭우 속에 묻어두는거야.. 묻지마.. 나도 들려줘..

2021.11.15신고좋아요

으악

헉헉 드디어 마왕과의 결전

2021.05.16신고좋아요

2021.05.16신고좋아요

BOMTOON

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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