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른 김에 왕까지-26화 (26/42)

26화

기린의 폭탄 발언에 일순 홀 안이 술렁거렸다. 천하의 유클리드도 옥좌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렸으니 말 다했다.

왕좌에 삐딱하게 앉아 있던 칼레드가 인상을 쓰며 기린을 노려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지?”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라고 했다.”

기린이 턱을 치켜들어 오만한 표정으로 칼레드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이 나라의 왕자면 다야? 저주에 걸리면 걸린 거지, 뭘 그렇게 세상 다 망한 것처럼 혼자 죽상을 하고 있어? 해봐야 고작 고추 좀 커지는 저주에 걸린 거잖아? 세상에는 한순간에 괴물로 변한다거나, 평생 앞을 못 보게 된다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거나, 말을 못 하게 된다거나…… 네 저주보다 좀 더 끔찍한 저주들도 많다고!”

헙.

홀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아무도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던 말. 사람들은 기린의 말에 은근히 통쾌함을 느꼈다.

칼레드의 인상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그래서, 나보다 더 불행한 저주에 걸린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 보면서 위안이라도 삼으라는 거야 뭐야?”

“위안? 하!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콧방귀를 뀐 기린이 팔짱을 끼고서는 고개를 불량하게 기울였다. 짝다리도 좀 짚어주고.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왜 그렇게 괴롭히는데? 나 다 봤어. 네가 검술 수업 시간에 성기사님에게 여기 주물러라, 저기 주물러라 온갖 명령을 해대는 거. 그렇게 학생들 다 보는 앞에서 성기사님을 망신 주는 이유가 뭐야? 저주에 걸렸으면 차라리 조용히 방에서 쉬던가. 신에게 기도라도 하면서 가라앉혀 보려고 노력이라도 하던가. 왜 검술 수업에 꾸역꾸역 기어 나와서 지랄을 하느냔 말이야, 지랄을. 제대로 수업도 받지 않을 거면서.”

“뭐? 지, 지랄?”

기린의 단어 선택에 칼레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 시작했다. 칼레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린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너, 너……! 감히 칼레나 왕국의 제1 왕자인 내게 이런 말을 하고서도 무사할 성싶으냐?!”

“내가 무사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네가 뭐가 잘났는데? 그 발기한 고추로 날 공격하기라도 할 건가? 응?”

기린은 하찮다는 듯이 칼레드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훗.”하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벌겋게 달아올랐던 칼레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보는 건 평생 처음 있는 일이겠지.

기린도 칼레드에게 막말을 하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그의 싸가지 없는 행태를 떠올려보면 생각보다 말이 술술 나왔다.

“너 말이야. 저주 걸린 걸 너무 무기로 삼고 있는 거 아니야?”

“무, 무기?”

“저주에 걸린 뒤로 아버지나 동생을 수시로 괴롭혀왔지? 레오나르, 아니 내 친구인 제2 왕자님이 나에게 너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지었던 표정을 기억해. 널 진심으로 걱정하기도 했지만 매우 수심이 깊어 보였다고. 네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그러겠냐?”

“뭐, 뭐?!”

칼레드는 의자 팔걸이를 꽉 붙든 채 레오나르도를 대차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레오나르도! 이 백성한테 무슨 말을 지껄인 거야?!”

“아, 아냐, 형!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거봐. 지금도 아주 쥐 잡듯이 잡잖아.”

기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칼레드 너. 혹시 저주가 걸리기 전에는 주어진 책임이 너무 무거웠던 것 아니야? 저주에 걸리고 나서 오히려 그 짐을 내려놓게 되어 편안해진 것 아니냐고.”

“그, 그것은……!”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듯싶었다. 칼레드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갔다. 의자 팔걸이를 붙든 칼레드의 팔이 부들거리며 휘청거리는 것이 기린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기린은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

“동생에게 왕위 계승 자리를 넘겨주고 나서, 사실은 안도했지? 사람들한테 막 대하는 것도 ‘나는 저주에 걸렸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하고 자기합리화하면서 여태까지 체면 차리느라 못했던 어리광을 부리는 거지?”

“……!”

“이 겁쟁이!”

“뭐, 가, 감히 나를……!”

기린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칼레드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어리광쟁이! 사실은 사랑받고 싶어서 발악하는 철부지!”

“으윽……!”

“24시간 발기하는 고추를 가지고서도 제대로 사용할 줄도 모르는 바보!”

“으……!”

“나 같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후리고 다닐 텐데, 그 좋은 걸 가지고서도 그저 ‘저주’라고만 인식하고 있다니. 정말 바보구나, 칼레드.”

기린은 길게 뻗은 오른손 검지로 칼레드의 이마를 톡! 하고 밀어 쳤다. 칼레드의 고개가 힘없이 뒤로 밀렸다가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칼레드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말 그대로 고개 숙인 남자……! 기린은 승리에 도취되어 칼레드의 사타구니를 쳐다보았다.

항상 발기해 있는 성기를 가리기 위해 좀 넉넉한 품으로 제작된 바지 밑으로 풀이 죽어 작아진 성기의 모양이 또렷하게 보였다. 드디어, 마침내! 항상 화가 나 있던 칼레드의 성기가 주눅이 들게 된 것이었다.

“칼레드!”

기린이 소리치자 칼레드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기린을 쳐다보았다.

“뭐지?”

“네 가랑이를 봐!”

“응……?”

기린의 말에 너무 충격이 컸던지, 칼레드는 자신의 신체에 일어난 변화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기린이 사타구니를 가리키고 나서야 칼레드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 아니?!”

“뭐냐! 어떻게 되었어!”

유클리드가 황급히 달려와 칼레드 곁에 섰다. 레오나르도도 허겁지겁 그 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와 동생이 자신의 아랫도리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 칼레드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턱턱 짚어보았다.

“앉았다…….”

“앉다니? 뭐가?”

유클리드가 초조해하며 칼레드의 대답을 재촉했다. 칼레드는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발기가 가라앉았어! 이제 고통스럽지 않아! 죽었어요, 내 고추가 죽었어!”

와아아!

칼레드의 선언에 홀 안에 대신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를 했다. 유클리드는 칼레드의 머리를 꽉 끌어안은 채 칼레드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오오, 나의 아들아! 드디어, 드디어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구나!”

레오나르도가 기린에게 다가와 기린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레오나르도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린, 너무 고마워.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너는 세우는 것만 아니라 죽이는 데도 소질이 있구나!”

“하하, 하하……. 그 말은 좀 듣기가 그런데.”

“이렇게 형의 고추를 잘 죽여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그래도 한 번에는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여겼는데.”

“그러니까 그 죽인다는 말은 좀…….”

홀 안은 삽시간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대신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도 했고, 어깨동무를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칼레드와 기쁨을 나누던 유클리드가 양손을 높이 뻗으며 기린에게 다가왔다.

“주인……! 아니, 민기린이여! 너무나도 고맙다, 고마워!”

유클리드가 기린의 손을 어루만지며 코를 훌쩍거렸다.

“그대의 혀는 참으로 차갑고 냉정하구나! 그대의 입속에 들어가 혀 위의 재료가 된 이는 누구든지 고추가 죽게 되어 있어, 암! 그렇고말고!”

“뭐?! 아니, 그렇지 않은데.”

나 이래 봬도 펠라티오에 꽤 소질이 있단 말이야!

레오나르도와 유클리드의 발언에 기린은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지, 아니면 욕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클리드는 과장된 몸짓으로 연극을 하듯 허공을 칼 같은 것으로 휙 찌르는 흉내를 냈다.

“상대방의 약점을 노련하게 파고드는 그 솜씨! 짐은 정말로 감동했다. 누구든지 자네 앞에서는 시무룩해지고 말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되죠! 내 앞에서 더 우람해져야지 왜 시무룩해져?!”

“오오, 기린이여! 자네는 정말 위대한 혀를 가졌어! 상대를 얼려버리는 얼음 같은 혀!”

아 진짜 미치겠네. 이거 욕 맞네, 욕 맞아.

기린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기린의 말은 흥분한 유클리드에게 들리지 않았다.

기린은 순간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성기사가 서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성기사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기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냉랭한 눈빛을 마주하니 기린은 무언가 실수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크. 그래도 명색이 왕자님인데, 내가 너무 세게 말하는 바람에 성기사는 화가 났나?’

기린과 눈이 마주친 성기사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크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어, 어라?”

성기사의 의외의 행동에 기린은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성기사는 표정을 누그러트리고는 기린을 향해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성기사의 머리 위에 하트 스테이터스 창이 떠올랐다. 핑크색 하트가 뿅, 뿅 하고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하트 두 개가 채워졌다. 기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엇, 하트?!”

아싸, 드디어 성기사와의 관계에도 진전이 보이는구나!

기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은 왠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만 같았다.

“기린이여.”

유클리드가 기린을 불렀다. 기린은 고개를 돌려 다시 유클리드를 쳐다보았다.

“네?”

“그대에게 상을 내리고 싶구나.”

유클리드가 손짓을 하자 그 손짓을 본 대신들이 일제히 자리를 정돈하고는 제자리에 가서 섰다. 레오나르도도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칼레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더듬거리고 있었다.

유클리드가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짐은 칼레드 왕자의 저주를 풀어준 백성, 민기린에게 큰 상을 내리고자 한다. 금화로 가득 찬 상자 여덟 짝과 각종 보석, 담비로 만든 최고급 옷감을 주도록 하겠다.”

유례없이 많은 선물에 대신들이 술렁거렸지만, 이내 그 술렁거림은 축하의 환호 소리로 뒤바뀌었다. 기린은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유클리드 앞에 무릎을 꿇어 감사의 인사를 표시했다.

“가, 감사합니다. 폐하.”

“또한, 민기린에게 지금 이 시간부터 왕궁 기사단에 입단할 것을 명한다. 그대의 능력이라면, 매우 강한 몬스터라 할지라도 그대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 터.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한껏 고개 숙이게 만드는 그대의 능력으로 나와 왕자들을, 이 왕궁을 지켜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대신들의 환호 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유클리드가 오른손을 허공에 높이 들어 올리며 큰 목소리로 선포했다.

“민기린, 그대의 칭호는 앞으로 ‘얼음송곳’이 될 것이다!”

“와아아!”

“어, 얼음송곳?!”

절륜하다 못해 능수능란, 전지전능해야 할 야겜의 플레이어가 그런 닉네임을 얻어도 되는 거야, 정말?! 이 게임은 진짜 어디로 가는 거지?

그 순간 기린의 눈앞에 창이 하나 뜨며 레터 오프너 커서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칭호를 얻었다!>

칭호 얼음송곳」

정말 곱씹을수록 불명예스러운 칭호로군.

기린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왕궁 기사단에요? 괘, 괜찮을까…….”

기린은 황급히 성기사를 돌아다보았다.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고 여겼던 성기사는 의외로 인자한 미소를 띠고는 이 결정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이고 있었다.

‘성기사도 이 결정을 인정한다면야 어쩔 수 없나.’

기린은 졸지에 아르바이트를 일삼던 평범한 백성에서 화려한 왕궁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신분 상승이었다.

유클리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민기린. 이 왕궁 내에서 그대가 원하는 것 하나를 선물로 내리도록 하겠다. 무엇이든 좋다. 그대가 평소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 있다면 말해보도록 하라.”

“마음에 들었던 것…….”

유클리드의 말에 기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유클리드는 양손을 좌우로 활짝 펼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갖고 싶은가?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나의 검? 혹은 이 홀에 걸린 저 거대한 태피스트리? 왕자의 고급스러운 옷?”

“음…….”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 너머를 힐끗 쳐다보았다. 성기사가 서 있는 쪽이었다. 기린의 시선이 닿자 성기사는 왜 자기를 쳐다보냐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기린의 시선을 눈치챈 유클리드가 말을 했다.

“오오, 성기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탐이 나는가? 혹시 성기사의 분신과도 같은 저 레이피어를 원하는가?”

그러자 식겁을 한 성기사가 유클리드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폐, 폐하! 이것은 제가 마왕을 쓰러트린 뒤 폐하께 받은 보검이온데……!”

“하지만 나는 민기린과 약속을 했는걸. 기린이 원한다면 보검도 내어줘야지.”

“…….”

성기사는 께름칙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영 내키지 않는 듯한 손길로 허리에 묶어두었던 칼집을 풀고 레이피어를 기린 앞에 내밀었다.

“자. 폐하의 명이시라면 어쩔 수 없지.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라.”

“전…….”

기린은 레이피어를 내민 성기사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기사님의 레이피어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요.”

“뭐?”

“뭐라고?”

유클리드와 성기사 모두가 놀라 기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기린은 태연했다.

“그럼 뭘 원하는 거지?”

“그래. 그럼 내 쪽은 왜 쳐다본 거지?”

“성기사님한테 원하는 게 있기는 해요.”

기린은 슬쩍 레오나르도의 눈치를 보았다. 레오나르도는 기린이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했기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강아지 같은 두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미안해, 레오나르도. 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또 몰랐네.’

기린은 속으로 레오나르도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나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지.

하지만 기린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힘을 되찾게 도와주겠다는, 마왕과의 약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기린은 성기사를 좀 더 깊숙이 파헤쳐야만 했다.

기린은 유클리드를 한 번, 성기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성기사님을 주세요.”

***

“내 아들이 왕궁 기사단에 들어가다니! 이런 경사가!”

“도련님, 포우는 정말 너무 감동했어요.”

집으로 돌아온 기린은 폴과 포우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기린이 왕궁 기사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이미 두 사람 귀에 들어가 있었다.

기린은 환하게 웃으며 폴과 포우에게서 번갈아 포옹을 받았다.

“어휴, 배고파요. 오늘 별의별 일이 다 있었거든요. 크림 스튜 어디 있어요?”

오늘같이 배가 고픈 날이라면, 질리도록 먹어온 크림 스튜도 세 그릇은 뚝딱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린의 말에 폴이 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렇게 기쁜 날에 크림 스튜라니. 매일 먹는 식단을 먹을 수는 없지. 오늘은 특별히 칠면조를 구웠단다.”

그러자 포우도 폴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소고기를 잔뜩 넣은 비프스튜를 끓였어요!”

“시장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인 ‘메리 브레드’에서 사온 빵도 잔뜩 있단다. 부드러운 빵, 하드 롤, 뭐든 다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 먹으렴.”

“우와, 웬일이에요?”

폴과 포우가 안내해 응접실로 향하자 그곳에는 정말 단어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린의 입에 군침이 잔뜩 고였다. 기린은 침을 꼴깍 삼키고서는 다급하게 자리에 앉았다.

“진짜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거라, 아들아.”

“많이 드세요, 도련님!”

폴과 포우도 기린의 맞은편에 앉아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

기린은 왕궁에서 자신이 어떻게 제1 왕자인 칼레드의 저주를 풀었는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했고 폴과 포우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야기에 사과주를 곁들인 식사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게임에 들어와 한 식사 중에 가장 즐겁고 편안한 식사 시간이었다.

***

“아! 피곤해.”

방으로 돌아온 기린은 침대에 지친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수상한 돌’을 집어 올렸다.

기린은 방문이 단단히 닫힌 것을 확인하고는 돌멩이에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 아, 아. 아르고. 거기 있어요?”

-…….

“음……. 자리에 없나? 아르고?”

-……기린?

“있었군요!”

돌멩이에서 아르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기린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아르고, 있잖아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주 좋은 일인가 본데?

“네, 맞아요! 좀 길지만 들어주세요.”

기린은 신이 나서 돌멩이에다 대고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털어놓았다. 폴과 포우에게도 했던 이야기였지만, 지치거나 피곤하지는 않았다. 아르고는 중간중간 맞장구를 쳐가며 기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르고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기린은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르고는 기린이 왕궁 기사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를 전했다. 아르고의 칭찬을 받자 기린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기린은 끝없이 아르고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기린의 방 밖에서는 폴과 포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방문에 귀를 바짝 가져다 붙이고 있었다.

“역시 혼자 떠들고 계시죠?”

“응.”

포우가 소곤거리자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부터 이 시간이 되면 방에 틀어박히셔서 혼자 중얼중얼 떠드시는데……! 역시, 도련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나 봐요! 흑!”

포우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삼켰다. 폴은 두 눈을 내리감은 채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나마 낮에는 제정신이어서 다행이야. 우리는 비밀로 해주자고.”

“흐윽, 흑……! 불쌍한 도련님! 왕궁 기사단에도 들어가셨는데……!”

폴은 포우의 어깨를 다독이며 기린의 방 앞에서 멀어져갔다. 방 안에서 기린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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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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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찌

ㅅㅂ 진짜 웃겨죽겟음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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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으악

ㅎ ㅏ...... 얼음송곳...ㅇㅈㄹ....ㅋㅋㅋㅋㅋㅋ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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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ㅍㅅㅍ

아니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상은 했지만 진짜 되냐고 ㅋㅋㅋㅋㅋㅋ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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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rn

웃겨서 죽는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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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hy****

죽었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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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_*******

몬산다...ㅋㅋㅋㅋㅋㅋ

20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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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MTOON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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