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른 김에 왕까지-23화 (23/42)

23화

김소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기린의 허리를 와락 움켜잡았다. 기린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온몸을 비틀며 애를 썼지만, 김소의 힘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소는 기린의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 내려 훌렁 벗기더니 탱글탱글한 엉덩이를 커다란 손으로 짝! 하고 한 번 내리쳤다.

“흐앗?!”

“차지구나!”

김소는 콧김을 뿜어내며 기린을 끌어당겼다. 야구 배트만 한 김소의 성기가 꺼떡거리며 위협하듯이 기린의 엉덩이로 다가왔다.

‘아니, 잠깐만! 내가 아무리 섹스를 좋아한다지만 이런 더러운 축사에서 그것도 김소 아저씨한테 내 엉덩이를 내어주고 싶지는 않다고!’

기린은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안 돼요! 싫어, 놔줘요!”

“내 애를 낳아줘!”

“으아악! 누가 좀 살려줘!”

그때였다. 기린의 비명 소리를 들은 농장주 할아버지 NPC가 다급하게 축사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으아닛?!”

NPC는 김소가 기린의 아랫도리를 벗겨낸 채 그를 덮치려 하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눈에서 불꽃이 이는 것만 같았다.

“이, 이, 이, 이놈의 소가!”

NPC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서는 축사를 청소할 때 쓰는 가래를 가져다가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붕붕 휘두르며 김소와 기린 쪽으로 다가왔다.

“이놈! 안 떨어지냐! 응징을 가하리라!”

“음머, 음머어~!”

김소는 억울하다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기린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NPC가 가래 자루로 김소의 등허리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이놈! 이놈! 놓아라, 놓아!”

“음머어~ 히잉!”

NPC에게 두들겨 맞은 김소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기린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마침내 김소에게서 벗어나게 된 기린은 후다닥 도망치듯이 NPC 옆으로 다가가 그의 작은 덩치 뒤에 몸을 숨겼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린이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NPC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NPC는 김소의 목줄을 단단히 묶어 축사 안쪽에 고정시키고는 기린을 안전하게 김소의 축사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

“큰일 날 뻔했구나.”

“진짜요.”

기린이 식은땀을 닦으며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NPC는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 뒤에 잔뜩 주눅이 든 김소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놈이 발정기라서 말이다. 착유 중에 과하게 흥분을 했나 보구나.”

“바, 발정기요?”

기린은 NPC와 함께 김소를 돌아보았다. 축사 한구석에 쭈그려 앉은 김소가 불쌍한 눈으로 기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기린은 얼른 고개를 돌려 NPC를 쳐다보았다.

“사람한테도 발정기가 있나요?”

“무슨 소리야. 저 녀석은 소잖아.”

NPC가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기린을 바라다보며 축사에 걸린 김소의 이름 판을 툭툭 건드렸다.

“여기, ‘김소’라고 써 있는 거 안 보여?”

“아, 네.”

그래, 여기서는 김소가 진짜 소라는 설정이라는 거구나. 알겠음. 이해함.

기린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김소의 정액을 잔뜩 짜 넣은 양동이를 챙겨 들었다.

“오늘은 이만큼 짰어요.”

“어디 보자. 아니, 이건?!”

양동이 안을 들여다보던 NPC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NPC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양동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 이, 이것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전설의 ‘금 우유’!”

NPC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NPC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축사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우리 농장에 ‘금 우유’가 터지다니! 아이고,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게 그렇게 좋은 거예요?”

기린이 양동이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황금빛 우유가 출렁이며 기린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다.

NPC가 답했다.

“물론이지! ‘금 우유’라고 ‘금 우유’! 그냥 우유에 몇백 배는 되는 가격으로 팔린단 말이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NPC는 황급하게 축사 바깥으로 나갔다가 무언가를 들고 다시 후다닥 축사 안으로 들어왔다. NPC가 가지고 온 것은 작은 물병이었다. NPC는 양동이에 물병을 담가 조심스럽게 금 우유를 나눠 담았다. 그리고는 금 우유가 찰랑거리며 담긴 그 물병을 기린에게 내밀었다.

“자, 받거라.”

“네? 이걸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기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NPC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금 우유가 터진 건 네 덕분이다. 이건 신이 내려주는 축복인 동시에 착유를 하는 사람의 기술과 재능도 필요하거든. 나는 걸음마를 뗀 직후부터 오늘까지 60년 동안 농장에서 일을 해왔지만 단 한 번도 소에게서 금 우유를 짜낸 적이 없어. 그런데 너는 고작 몇 달 만에 금 우유를 뽑아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고맙다. 그러니 받아가거라.”

NPC가 기린의 손에 물병을 쥐어 주었다. 기린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금 우유가 든 물병을 받아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NPC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양동이를 챙겨 들었다.

“그럼 나는 이 금 우유를 팔러 나가봐야겠다. 너도 그냥 두지 말고 금 우유를 가지고 시장에라도 가보는 건 어떠냐? 또 모르지. 좋은 물건을 찾게 될지도.”

NPC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축사를 떠났다. 기린도 금 우유가 든 물병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다가 그의 뒤를 따라 축사를 나섰다. 기린이 축사를 나서는 때, 등 뒤에서 김소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기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NPC의 말을 따라 기린은 농장 아르바이트를 끝내고서 집이 아닌 시장으로 곧장 향했다. 시장은 오늘도 북적북적하며 사람이 많았다. 아주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매일 고요하고 적막한 왕궁에서 생활하던 레오나르도가 왜 이곳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기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시장 구경을 시작했다. 기린의 품 안에는 금 우유가 담긴 물병이 들어 있었다. 총알은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으니, 기린은 무서울 게 하나도 없었다.

기린은 신선한 과일을 파는 상인을 지나 계란이나 우유 따위의 축산물을 파는 상인, 옷을 파는 상인과 장신구를 파는 상인도 지나쳤다. 이 귀한 금 우유로 시장 한복판에서 파는 물건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가게로 들어갈까? 음…….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옷이라도 한 벌 맞춰?”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게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몸에 잘 맞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비싼 옷이나 장신구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저절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기린은 깡충깡충 발랄한 걸음으로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어딘가에서 기묘한 발음을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비한 물건 있습니다…….”

기린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휙 돌아갔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왠지 사람을 끄는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시장 골목,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깔린 좌판이 기린의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수상한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어느 여자가 기다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자기 모습보다 더 수상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기린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상인이 기린을 향해 가느다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손님. 한번 둘러보고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주 신비한 물건들입니다…….”

“엇…….”

기린은 뭐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상인의 좌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좌판에 늘어진 물건들을 보니 이게 대체 어디에다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것들만 가득했다. 빛이 나는 커다란 조개껍질, 겉이 다 갈라진 작은 나무 상자, 신비로운 검은 빛을 띠고 있는 목걸이, 주먹만 한 돌멩이……. 물건들을 둘러보던 기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설마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그 사람’’?

기린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로 상인에게 물었다.

“혹시…… ‘수상한 판매 상’이세요?”

“헛, 제 정체를 어떻게 아신 거죠?”

상인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역시나.’

기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국에서 가져온 신비한 물건들을 파시는 거죠? 생긴 거에 비해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능력치만큼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오오, 정확하십니다!”

상인이 눈을 빛내며 온몸을 덮고 있던 회색 로브를 휙 벗어냈다. 상인의 피부는 어두운 갈색빛이었고, 그의 눈은 짙은 보라색이었다.

“이 왕국에서는 의외로 이국의 물건이 잘 팔리지 않더군요. 다른 나라에는 내려놓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동이 나기 일쑤인데……. 고국으로 돌아갈 여비가 없습니다. 하나 사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흐음.”

기린은 턱을 쓰다듬으며 상인의 좌판을 다시 한번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단박에 눈이 간, 빛이 나는 조개껍질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기린의 스테이터스 창에 변화가 생겼다.

「매력 932 (빛이 나는 조개껍질의 효과 +200)」

음. 매력을 올려주는 조개껍질이라. 200이면 나름 큰 변화였지만, 왠지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기린은 조개껍질을 내려놓았다. 다음은 겉이 다 갈라진 작은 나무 상자였다. 나무 상자를 들어 올리자 기린의 스테이터스 창에 또 한 번 변화가 생겼다.

「지능 162 (낡은 나무 상자의 효과 +150)

감수성 186 (낡은 나무 상자의 효과 +100)」

“오!”

스테이터스 창을 들여다보던 기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능이 오르다니?! 나쁘지 않잖아! 안 그래도 지능이 너무 낮아서 걱정하던 차였는데.’

기린은 나무 상자를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다시 내려놓았다.

‘아냐. 일단 지금은 모든 물건을 다 확인해보고…… 그다음에 제일 마음에 드는 걸 고르자. 일단은 나무 상자가 1순위!’

기린은 다음으로 신비로운 검은 빛을 띠고 있는 목걸이를 들었다. 또다시 기린의 스테이터스 창에 변화가 일어났다.

「매혹 833 (저주받은 흑요석 목걸이의 효과 +300)

매력 1032 (저주받은 흑요석 목걸이의 효과 +300)

기품 -68 (저주받은 흑요석 목걸이의 효과 -150)」

“히익!”

기린은 식겁을 하며 저주받은 흑요석 목걸이를 다시 좌판에 내려놓았다. 기품을 150이나 잃어가면서 매혹과 매력을 높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자, 그럼 마지막은?”

기린은 양손을 싹싹 비비며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 돌멩이였다. 기린은 두근대는 마음으로 스테이터스 창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스테이터스 창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응?”

“앗, 그것은…… 저도 아직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네에?!”

상인은 기린의 손에서 돌멩이를 가져가더니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최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기 아니에요? 팔아놓고 에헷! 아무 효과도 없었네?! 하려고요?”

“아닙니다! 저를 뭐로 보시고!”

기린의 말에 상인이 발끈하며 화를 냈다.

“이래 뵈어도 신용 하나로 장사를 해온 세월이 13년입니다! 저는 절대 고객님들을 속이지 않습니다!”

“흐음…….”

하지만 기린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상인을 뚫어져라 바라다보았다. 빈정이 상한 상인이 기린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손님. 이걸 구매하실 돈은 있으십니까?”

“아, 물론 있죠!”

기린은 뻐기듯이 턱을 치켜들고는 품 안에서 보란 듯이 금 우유가 들어 있는 물병을 꺼내 상인의 눈앞에 내밀었다. 상인은 금 우유가 든 물병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금 우유로군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 ‘금 우유’죠!”

기린은 아주 자랑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그 금 우유를 짜낸 게 바로 이 나라고!

하지만 상인은 별 감흥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상인은 물병에 든 금 우유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금 우유는 아주 귀한 것이긴 하지만, 결국 녹인 금 물에 불과하죠.”

“에, 에엥?”

“해봐야 이 정도밖에 구매하지 못하십니다.”

상인은 기린의 눈앞에 방금 전 내려놓은 주먹만 한 돌멩이를 내밀어 보였다. 기린이 되물었다.

“이 많은 것 중에 돌멩이 밖에 못 산다고요?! 저, 저 나무 상자는요? 얼마인데요?!”

“57,000G. 이 금 우유 물병이 세 개는 있어야 할 겁니다.”

“으윽, 비쌋!”

기린은 인상을 찌푸리며 상인이 내민 돌멩이를 꺼림칙하게 받아들었다.

“그럼 이 돌은 얼마인데요?”

“12,000G입니다.”

“휴우…….”

“이 돌을 구매해주신다고 하면 제가 거스름돈으로 8,000G를 드리지요.”

“어쩌지?”

상인의 제안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제안이었다. 기린은 손안에 쥔 돌멩이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래도 ‘수상한 판매 상’에게 샀으니 뭔가 효과가 있기는 하겠죠.”

“감사합니다. 손님!”

상인은 밝게 웃으며 기린에게 거스름돈 8,000G를 내밀었다. 기린은 영 찜찜한 기분으로 돌멩이와 거스름돈을 챙겨 들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고, 어지러워.”

너무 오래 쭈그려 앉아 있었던 탓에 핑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쥔 돌멩이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순간 돌멩이가 덜그럭거린 것 같은 느낌은, 아무래도 기분 탓이겠지?

***

그날 밤, 기린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와서 피곤했던 탓에 눈만 감고 베개에 머리만 대면 바로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기린은 깊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흐릿하고 아련한 소리가 들려왔다.

-……있소? 누구…… 있는가……?

띄엄띄엄 들리는 그것은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기린은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바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풀벌레가 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뭐지?”

기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문도 열어보았다. 거실은 고요했다. 폴과 포우 모두 잠자리에 들러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기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소?

이번엔 더욱 또렷하게 들린 목소리. 기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구세요?”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허공에다 대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 의문의 목소리가 대답을 해왔다.

-아! 누군가 있군.

“히익?! 뭐야, 뭐야!”

기린은 겁에 질려 양팔로 몸을 감싸고서는 방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방 안에는 기린 혼자뿐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어디 숨은 거야! 다, 다, 당장 나와!”

기린은 우당탕탕 옷을 걸어놓은 곳으로 달려가 성기사에게 받은 용의 단검을 잡아 쥐었다. 칼을 쥔 손이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려왔다. 기린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자 의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다.

-이런, 미안. 너무 겁먹지 말게나. 나는 그곳에 없으니.

“여, 여기 없다고?”

-혹 자네 길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를 줍지 않았나?

“돌멩…… 아!”

기린은 침대로 기어 올라가 침대 맡에 놓아둔, 오늘 수상한 판매 상에게 산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돌멩이가 희미하지만 흐릿한 빛을 내고 있었다.

“혹시…… 여기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건가?”

-오, 맞다네! 돌멩이 가까이에 오니 목소리가 더 뚜렷하게 들리는구려. 하하!

의문의 목소리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린은 하마터면 말하는 돌멩이를 떨어트릴 뻔했다.

“서, 설마 돌 속에 봉인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제발 아니라고 해줘요.”

-아닐세! 나는 이 돌을 통해 자네와 이야기를 할 뿐이야. 내 실체는 따로 있다네. 이 돌은 일종의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기기라고나 할까?

“아, 그렇구나.”

무전기 같은 거라는 거네.

기린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돌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건 그렇고, 여태껏 이 돌의 주인이 여럿 바뀐 것 같지만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볼 수는 없었는데……. 자네는 누구인가?

“전 민기린이라고 해요. 왕국에 살고 있죠.”

-왕국? 어느 왕국?

“어어…….”

그러고 보니 여기는 무슨 왕국이지?

왕국의 이름조차 모른 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글쎄요? 왕 이름이 유클리드고, 왕위 계승을 받을 왕자의 이름이 레오나르도인 건 아는데…….”

-아, 그럼 ‘칼레나’ 왕국에 살고 있나 보군.

“칼레나?”

-그래.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옆 나라일세.

“아니, 잠깐만요. 이 세계관에 옆 나라도 존재를 해요?”

-응? 세계관?

“아니, 아니. 죄송합니다. 혼잣말이었어요.”

-재미있는 사람이로군.

의문의 목소리가 목청 좋게 껄껄대며 웃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이름은 아르고. ‘칼레나’ 왕국 옆 나라인 ‘페르진’ 왕국에 살고 있지.

- 다음 화에 계속

최신순 인기순

댓글(4)

0/500자

등록

그렇게됐다

새로운 공의 등장인가!!!

2021.05.01

신고

2

ㅍㅅㅍ

오오오 뉴페이스

2021.09.07

신고

좋아요

jahy****

김소에게서 탈출한 기린이를 축하하며...

2021.05.08

신고

좋아요

두찌

아씨 '차지구나!'부터 웃음ㅋㅋㅋㅋ큐ㅠㅠㅠ 자존심상햌ㅋㅋㅋㅋ

2021.05.02

신고

좋아요

BOMTOON

23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