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네?”
기린은 그제야 선생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투, 투 밀키 웨이?!”
선생은 두 사람분의 정액이 튀어 오른 기린과 레오나르도의 아랫배를 유심히 바라다보았다.
“이런 건 점성술 교수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에요!”
선생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와 기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도 “와아!”소리를 내며 빠르게 박수를 쳐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교실 안을 가득 메웠다.
“정말 훌륭해용!”
선생이 레오나르도와 기린의 어깨를 잡으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처음 온 학생이 이렇게나 훌륭한 점성술을 하다니! 저는 너무 감동했어용! 학생은 천재예요! 브릴리언트!”
선생은 기린의 등허리를 퍽퍽 쳐대며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멋지고 고~저스한 점괘를 읽어 내다니! 더는 내가 가르칠 게 없을 정도에용! 세상에나, 이건 이 왕국에 길이 남을 업적이야!”
이,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기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배와 레오나르도의 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레오나르도의 몸에 나 있던 점에 정액이 튀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음……. 확실히 양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나도 참. 얼마 전에 그렇게 쏟아 내놓고 이렇게 쏟을 게 또 남아 있었다니.’
기린이 레오나르도를 쳐다보자 레오나르도는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기린을 마주 쳐다보았다.
“우리 둘이 해냈어. 기린 덕분에 나도 우등생이 되었네?”
레오나르도가 밝게 웃었다. 기린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남은 점성술 수업은 일사천리였다. 기린은 선생을 도와 학생들을 지도하기에 이르렀다. ‘투 밀키 웨이’는 이제 전설이 되어서, 학생들은 모두 기린과 레오나르도가 이루어낸 업적을 따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기린은 부교수가 된 기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남은 수업 일수를 마쳤다.
마지막 날,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기린을 붙잡고 말했다.
“민기린 학생. 나를 도와 학생들을 지도 편달했으니 오늘부터는 수업료를 깎아주도록 하겠어용. 파격적인 가격! 앞으로는 반값에 수업을 듣도록 하세용. 이런 말을 하는 건 내 20년 선생 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지만, 후회는 없을 것 같네용.”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소식을 들으면 폴과 포우가 얼마나 좋아할까.
기린은 벙글벙글 웃으며 교실을 나왔다. 교실 앞에서는 레오나르도가 기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레오나르도의 물음에 기린이 답했다.
“수업료가 반값이 되었어요.”
“와! 잘 되었네.”
레오나르도가 박수를 치며 기린 만큼이나 좋아했다.
레오나르도는 기린과 함께 마을 어귀까지 나왔다. 기린은 대낮에 홀로 왕궁 밖으로 나온 레오나르도에게 물었다.
“이제 바깥에 나오셔도 돼요?”
“응. 그때 그 일 이후로 아바마마께서 왕궁 밖으로 나가는 걸 허락해주셨어.”
“잘된 일이네요.”
“그건 그렇고…….”
레오나르도가 머뭇거리며 운을 뗐다.
“기린은 언제까지 내게 존댓말을 쓸 거야?”
“네? 하지만…… 왕자님께 반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뭐 어때! 우리는 친구잖아. 나는 반말을 하는데, 기린한테 계속 존댓말을 듣기가 부담스러워.”
“흠.”
기린은 잠시 고민을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선택지 창이 기린의 눈앞에 떠올랐다.
「계속 존댓말을 한다.」
「반말을 하기로 한다.」
왕자와 애정 루트를 타기 위해서는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엔딩을 보기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공략캐와 루트를 타고 싶으니까…… 좋았어. ‘반말을 하기로 한다.’ 선택.’
커서를 옮겨 선택지를 고르자 기린의 입에서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좋아. 앞으로 나도 편안하게 말하도록 할게.”
“와! 정말이지?”
레오나르도의 얼굴에 오뉴월 햇살처럼 밝은 미소가 번졌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미소였다.
“사실 나를 레오나르도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하는 건 아바마마와 형, 그리고 기린뿐이야.”
“형? 형이 있었어?”
레오나르도가 제1 왕자가 아니었다는 말이야?
기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레오나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형은 왕위 계승에는 영 관심이 없어서…… 원칙대로라면 왕위 계승 두 번째인 내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어.”
“그럼 형은 뭘 하는데?”
“형은…… 사실 형한테는 오랜 지병이 있어서…… 말하자면 ‘저주’ 같은 게 걸려 있어.”
“저주?”
“응.”
레오나르도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기린은 그 저주가 무엇인지 더 묻고 싶었지만,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보니 더는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나중에 형을 소개해 줄게. 형도 기린을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거야. 기린이 형의 말벗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형은 그 ‘병’ 때문에 왕궁 밖으로 정말 한 발자국도 나가질 못하거든.”
“그래, 알겠어.”
혹시 제1 왕자와도 애정을 쌓을 수 있는 걸까?
새 캐릭터를 만난다는 생각에 기린의 가슴이 흥분으로 뛰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의 형은 어떤 사람일까? 레오나르도와 많이 닮았을까? 벌써부터 궁금한걸.’
정석대로라면, 왕과 애정을 계속해서 쌓는다면 ‘왕후’ 엔딩. 레오나르도와 애정을 계속 쌓는다면 진 엔딩인 ‘프린세스’ 엔딩을 보게 될 터였다. 그럼…… 레오나르도의 형과 애정을 쌓게 되면? 그건 또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되는데.’
기린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셨어?”
기린의 물음에 포우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했다.
“네. 벌써 일주일 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계세요. 이제 슬슬 포우도 주인님이 걱정되어요.”
“대체 무슨 일이지…….”
처음엔 기린이 비밀을 알아챈 걸 눈치채고 집을 나갔다고만 생각했는데, 기린도 이제는 폴의 행방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런 말도 없이 나가셨어?”
“칼과 갑옷을 챙겨나가시기는 했지만…… 금방 돌아오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칼과 갑옷? 그건 왜 챙겨나가신 거지?”
“모르겠어요.”
퇴역 군인이 무기와 방어구를 챙겨나갔다면, 그건 무언가 다른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야지, 어쩌겠어.”
기린이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그럼 나는 이제부터 성당 아르바이트를 갈 테니까, 혹시라도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성당에 와서 바로 내게 알려줘.”
“네, 알겠어요. 도련님.”
기린은 포우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와 성당으로 향했다.
라이오넬과 그렇고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기린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라이오넬은 어떤 얼굴로 날 맞이할까? 라이오넬도 내 생각을 했을까?’
기린은 밤마다 라이오넬과 있었던 일을 꿈꾸었다. 꿈에 라이오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했고, 절륜했다. 라이오넬과 색사를 벌이는 일을 매일 밤 꿈꾸면서 기린은 라이오넬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조용한 성당 안에 기린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이오넬! 저 왔어요.”
“기린 씨?”
성당 안쪽에서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이오넬은 다급하게 성당 안쪽에서 나오며 반갑게 기린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시간이 훌쩍 지나갔네요.”
라이오넬과 기린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이오넬은 어딘지 한껏 고조 되어있는 표정이었다. 분명 기린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리라.
라이오넬의 뺨이 붉어져 있었다. 기린은 손을 뻗어 라이오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잘 있었어요?”
“네, 기린 씨는요?”
“저도요.”
기린이 얼굴을 쓰다듬자 라이오넬이 수줍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기린은 아랫도리가 불끈 치솟는 걸 느꼈다.
‘이거 엄청 흥분되는데?’
“그 일을…… 후회하지는 않으셨어요?”
“후회라니요!”
라이오넬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히려?”
“다시 그런 일이 있기를 고대하고만 있었는데요.”
“아.”
기린은 키득거리며 라이오넬의 얼굴을 만지던 손을 내렸다.
“저도 그랬어요. 저는 매일 밤 라이오넬의 꿈을 꾸었어요.”
“정말요? 저도 그랬습니다.”
“우리 마음이 서로 맞았나 보네요.”
기린과 라이오넬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적 분위기가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라이오넬은 수줍어하며 기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기린은 못 이기는 척 라이오넬을 따라 나섰다. 라이오넬이 어디로 가는지는 불 보듯이 뻔했다. 기린은 그날도 라이오넬의 침실에서 그와 뜨거운 한 때를 보냈다.
***
일주일 동안 아르바이트는커녕 애욕의 나날만 보낸 기린에게 달콤한 휴식 주간이 찾아왔다. 라이오넬과의 하트는 이제 여섯 개. 라이오넬은 기린과 가장 높은 애정도를 지닌 공략캐가 되었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집에서 나온 기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늘은 여태껏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싶었다. 마을 지도가 뜨며 선택지 창이 떠올랐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왕궁
광장
뒷골목
성당
시장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
기린이 이제껏 가보지 않은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기린은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으로 커서를 옮겼다. 그러자 사위가 어그러지며 기린은 순식간에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그곳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상쾌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다. 기린은 바람을 맞으며 조심스럽게 언덕을 올랐다. 언덕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는 누군가의 무덤이 많았다.
“공동묘지인가 보구나.”
기린은 낯선 이름이 새겨진 묘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베로니카, 아담, 샬롯, 로버트, 이안, 피오나 G, 필립……. 각자 본인에게 주어진 여생을 살다간 인물들의 이름이 묘비에 단정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지 묘비는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부시게 빛이 나는 건 피오나 G라는 인물의 묘비였다. 죽은 망자들 사이에 가장 크고 아름답게 새겨진 묘비에는 고작 30여 년밖에 살다 가지 못한 피오나 G의 이름과 생애가 적혀 있었다. 기린은 그 앞에 서서 묘비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피오나 G……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드는데.”
그 순간, 묘지 뒤쪽의 덤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린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다보았다.
“누구 있나?”
기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덤불 쪽을 응시했다. 그때, 덤불 속에서 토끼의 형태를 한 몬스터 한 마리가 튀어나와 무시무시한 붉은 눈을 빛내며 기린을 노려보았다.
“모, 몬스터?!”
이 게임에 들어와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깜짝 놀란 기린이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몬스터는 으르렁대며 기린을 향해 다가왔다.
“오늘 저녁 식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군.”
몬스터가 입을 열자 흉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린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나는 지금 무, 무기도 없는데?!’
달아나 봐야 토끼형 몬스터에게 금방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어, 어떡하지?!’
기린은 머리맡에 뜬 자신의 스테이터스 창을 바라다보았다.
「검술 3
방어력 5」
형편없는 능력치였다.
‘젠장……. 이러다가 여기서 토끼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겠어!’
설마 게임 오버가 되기야 하겠냐마는. 그래도 몬스터에게 맞아 죽는 건 사양이었다. 아니, 잠깐만. 정말로 내가 게임에 빙의가 된 거면 여기서 저 몬스터에게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죽는 거 아니야?!
기린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이런 데서 주, 죽고 싶지 않아!’
기린은 양손을 내보이며 토끼 몬스터와 거래를 시도했다.
“저, 저기…… 내가 음식을 가져다줄 테니까 나는 살려주면 안 될까?”
“지조 높은 몬스터가 사람 음식 따위를 먹겠냐? 내게 최고의 식사는 살아 있는 인간의 생살이라고. 흐흐흐.”
으악!
기린은 내적 비명을 내지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내 그 걸음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기린의 등 뒤로 금세 낭떠러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죽기는 싫어!’
“흐흐. 각오해라! 인간!”
토끼 몬스터가 기린을 향해 점프하며 달려들었다. 기린은 두 눈을 꽉 감으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바로 그때.
“으허억?!”
토끼 몬스터의 단말마 비명이 들려왔다. 기린은 얼굴을 가렸던 팔뚝 사이로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펴보았다.
기린의 눈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은발. 바람에 펄럭이는 푸른색 망토에 새겨진 왕가의 문장.
“괜찮나?”
서늘하고 차가운 목소리. 기린은 두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쳐다보았다.
“서, 성기사님?!”
“흥. 무기 하나 없이 위험한 왕국 외곽에 나오다니. 간도 크구나.”
성기사 G가 번쩍이는 레이피어를 칼집에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성기사의 앞에는 가슴이 베어 죽은 토끼 몬스터가 널부러져 있었다.
“이런 잡몹도 처리하지 못하다니. 네 검술이 형편없는 건 알겠다.”
“하하, 그, 그렇죠, 뭐…….”
“다음에 검술 수업을 받으러 오도록. 내가 검을 잡는 법부터 검술의 기본을 철저히 알려주지.”
역시 검술 수업은 성기사에게 받는 거였어.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오늘은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인사는 됐다. 이런 하등 몬스터를 죽이고 인사를 받기엔 내 레이피어에게 미안하군.”
성기사가 턱을 들어 올리며 기린을 고압적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지?”
“아. 마을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보니 어느새…….”
“마을을 구경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성기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기에 구경할 게 뭐 있다고 여기까지 오나.”
성기사는 몸을 돌려 묘비들이 세워진 묘지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는 품에서 활짝 피어난 꽃 한 다발을 꺼내 한 묘비 앞에 내려놓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성기사님이야말로 여기는 왜 오셨어요?”
“…….”
성기사는 말없이 꽃다발을 내려놓은 묘비를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기린은 성기사의 뒤편으로 다가와 그 묘비를 지켜보았다. 묘비 중에 가장 크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묘비. 피오나 G의 묘비였다.
“여기는……”
“내 어머니가 잠드신 곳이다.”
성기사는 푸른 망토를 끌어와 망토 자락으로 묘비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마치 먼지 한 톨 내려앉는 것조차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역시. 저 G는 성기사 G와 같은 성씨였어. 그래서 익숙하게 느껴졌던 거야’
기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셨군요.”
“그래. 홀로 나를 키우시던 우리 어머니는 마계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셨다. 그렇기에 나는 왕궁 기사단에 들어가 마왕을 해치우는 걸 내 일생의 목표로 삼았지.”
성기사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생각보다 일찍 목표를 이루었어. 마왕이 마기를 잃고 사라진 뒤로 주인을 잃은 몬스터들이 왕궁을 습격하는 일이 늘기는 했지만, 마왕이 사라진 덕에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몬스터도 없어서 아까처럼 손쉽게 처치할 수 있지.”
“그렇군요.”
“아까. 내 어머니의 묘비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군.”
성기사의 말에 기린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보고 계셨어요?”
“잠시 동안. 왜 그랬던 거지?”
“이름이 익숙해서…… 그리고 이중 가장 깨끗하고 잘 정돈된 묘비라서요.”
“음.”
성기사가 애정을 듬뿍 담은 손길로 어머니의 묘비를 쓰다듬었다.
“매일 이 시간에 어머니의 묘비를 닦으러 오곤 하지. 내게 이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은 유일한 안식처이다.”
“…….”
기린은 왠지 성기사의 비밀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성기사는 허리춤을 뒤지더니 레이피어 옆에 차고 있던 작은 무언가를 기린에게 내밀었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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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군요... 당연 이상하지않죠.....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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