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너에게 그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섹스를 선사해줄 것을 약속할게.’
기린은 마왕의 말을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여전히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맑게 빛나던 토파즈 색 눈……. 그것을 상기시키자 기린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까는 라이오넬을 보고 두근거려놓고, 이번엔 다시 마왕한테 가슴이 뛰는 건 이상한 걸까?’
기린은 자신이 왠지 바람둥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야겜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엔딩이 나기 전까지는 이 공략캐, 저 공략캐한테 다 비비면서 문란하게 놀아주겠어.’
기린은 공략캐들과 순조롭게 하트가 쌓여가는 지금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폴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붉은 털…….’
이 ‘육성(性)시물레이션’ 게임이 든 USB를 준 사람이 정말로 폴이라면. 그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터였다.
‘폴 그 인간은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정말로 게임에 ‘빙의’가 된 건지 아닌지. 게다가 게임 속 인물이 어떻게 게임 밖 실제 세상으로 나와서 나한테 접촉을 한 거지? 물어볼 게 많아.’
집에 도착한 기린은 문을 열어젖혔다. 집에는 항상 있던 양아버지 폴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포우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허리를 숙이고 청소를 하고 있던 포우가 고개를 들었다.
“아, 도련님! 오셨군요.”
“포우, 아버지는 어디…… 어?”
기린은 깜짝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포우가…… 작고 앙증맞기만 하던 ‘나의’ 포우가 어느새 키가 쑥 자란데다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다.
‘아니, 이 상태를 어른이라고 봐도 되나? 그전에도 키만 작았을 뿐 어른인 것 같기는 했는데.’
기린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았던 포우의 키가 이제는 기린과 비등비등하게 자라나 있었다. 얼굴도 어쩐지 앳된 얼굴에서 젖살이 쏙 빠진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포우의 이마에 작게 자라 있던 유니콘 뿔이 아주 늠름하게 뻗어 나와 있었다. 이제는 누가 어디서 무얼 하다 보아도 유니콘인 게 티가 났다.
포우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쑥 솟아난 뿔을 보며 기린은 말을 더듬었다.
“포, 포우, 어떻게 된 일이야? 너 키가…… 게다가 그 뿔은…….”
“아. 생일이 지났더니 성장을 했어요.”
포우가 수줍게 대답했다.
“생일?”
기린이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어제가 네 생일이었단 말이야? 왜 말을 안 했어?”
“쑥스럽잖아요. 게다가 사용인의 생일을…… 굳이 주인님께 말씀드릴 필요는 없죠. 따로 챙겨줘야겠다는 부담을 느끼실 수도 있잖아요.”
“그게 왜 부담이야. 당연히 챙겨줘야지.”
기린은 성급하게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몇 푼의 골드를 남겨둔 터였다.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아이, 아니에요!”
포우가 다급하게 양손을 내저으며 거절의 표시를 했다.
“마음만으로도 감사해요.”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걸. 포우는 언제나 내가 해야 할 집안일을 대신 해주잖아. 맛있는 크림 스튜……도 매일 끓여주고.”
‘맛있는 크림 스튜’에서 망설였다는 걸 굳이 또 한 번 상기시키지 않아도 되겠지. 기린은 주변을 둘러보며 손에 골드를 꼭 쥐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침에 일이 있으시다고 나가시더니 아직 귀가하지 않으셨어요.”
“흠.”
설마 무언가를 눈치챈 건 아니겠지.
기린은 고개를 흔들고서는 포우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나가자.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맛있는 걸 사줄게. 오늘 저녁은 만들지 않아도 돼!”
“하, 하지만…….”
포우가 망설이며 집 안을 돌아다보았다.
“청소도 더 해야 하고, 폴 주인님께서 드실 테니 크림 스튜도 끓여놓아야 하는데…….”
“광장에서 저녁거리를 사 오면 되지! 가자, 응?”
오늘 같은 날도 크림 스튜를 또 먹을 순 없어! 기린은 포우의 손을 마구 끌어당겼다. 포우는 못 이기는 척 기린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
“그건 그렇고. 생일이 지났다고 갑자기 이렇게 비쥬얼이 바뀌어? 정말 이 게임도 제멋대로군…….”
“네? 도련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
광장을 향해 걸으며 기린이 중얼거린 혼잣말을 포우는 놓치지 않았다. 기린이 말을 돌리며 웃었지만, 포우는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응?”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뭔데?”
기린이 대수롭지 않게 포우의 말을 받으며 물었다. 포우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운을 뗐다.
“벌써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에요.”
“아아~”
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유니콘’이지.’
“응. 알고 있어.”
“역시. 알고 계셨군요. 도련님은 총명하신 분이니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포우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결심을 한 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유니콘’이에요.”
“알아.”
“그냥 ‘유니콘’이 아니에요! 저는 ‘유니콘’ 왕국의 왕자예요.”
“그렇구나…… 뭐?”
유니콘 왕국의 왕자? 포우도 왕자란 말이야?
기린은 걸음을 멈춘 채 눈을 커다랗게 뜨고 포우를 바라다보았다. 포우는 기린의 시선을 피하며 자신의 양손을 주물럭거렸다.
“놀라셨죠?”
“노, 놀랍긴 하네.”
“죄송해요. 이제껏 말씀드리지 않아서…….”
“아니, 너도 무언가 사정이 있었겠지. 그런데 왜 ‘왕자’씩이나 되면서 우리 집에서 집사 일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건…….”
포우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끝을 흐렸다. 역시 무언가 크나큰 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기린은 포우의 손을 붙잡았다. 식은땀에 젖은 포우의 손은 끈적끈적하고 차가웠다.
“포우. 뭐든 괜찮아. 말해봐.”
“그게…….”
포우가 망설이며 입을 뗐다.
“폴 주인님이 도련님의 양아버지이신 건 아시죠?”
“어, 알고 있지.”
“도련님은 폴 주인님이 어린 도련님을 고아원에서 데려오신 줄 알고 계시겠지만…….”
“아.”
그런 설정이었어? 이 게임은 플레이어인 내게 그런 중요한 정보는 왜 쏙 빼놓고 알려줬던 거야?
못내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기린은 고개를 내젓고는 다시 포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도련님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아이세요.”
“……으응?”
“천상의 신이 폴 주인님에게 맡긴 ‘천상의 아이’라고요.”
“내가?”
당황한 기린이 되묻자 이번엔 포우가 기린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도련님은 특별한 운명을 타고나신 분이세요.”
“내, 내가 그런 설정이라고?”
“폴 주인님은 도련님을 잘 성장시켜서 이 나라의 보탬이 되게 할 의무를 갖고 계세요.”
“의무…….”
“저는 그 의무를 돕기 위해 ‘유니콘 왕국’에서 파견된 도우미이고요.”
“그, 그런데 ‘유니콘 왕국’에서 왜 그 일을 도와야만 해?”
“원래 저희 유니콘들은 ‘평생의 주인’을 찾아 헤매는 운명을 타고 태어나요. 항간에는 처녀만을 좋아하고, 남자들은 뿔로 찔러 다 죽인다는 몹쓸 소문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그, 그렇구나…….”
“저는 ‘유니콘 왕국’의 왕자로서 가장 고귀한 운명을 타고난 이를 ‘평생의 주인’으로 맞이해야 하는 목표가 있어요.”
포우가 마주 잡은 기린의 손을 더욱 세게 부여잡더니 까만 눈을 반짝거렸다.
“그게 바로 도련님이세요!”
“나?!”
“‘천상의 아이’보다 더 고귀한 운명을 타고난 아이는 없으니까요!”
포우는 기린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포우의 이마에 난 뿔이 기린의 눈을 찌를 것만 같았다.
“저는 폴 주인님을 도와 제 ‘평생의 주인’인 도련님을 잘 키워내 이 나라의 큰 일꾼이 되게 하는 운명을 타고났어요!”
“아하.”
“그래서 이 허름한 집에서 집사 일을 하며 주인님을 돕고 있는 거랍니다.”
“그렇구나.”
역시. 허름한 집이라는 자각은 있구나.
기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도련님의 충실한 ‘종’이랍니다. 만일 고민이 생기시거나, 괴로운 일이 생기시면 언제든 저 포우에게 말씀을 해주세요. 저는 도련님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어요.”
“그래, 알겠어.”
기린이 포우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포우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네. 아주 든든해.”
“정말이요?”
“그럼.”
기린이 환하게 웃자 그제야 포우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다행이다……. 도련님이 포우를 괴물 취급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잉? 내가 왜?”
“황당하잖아요. ‘유니콘 왕국’이니, 그곳에 ‘왕자’니…….”
포우가 기린의 손을 놓으며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포우의 머리 위로 투명한 하트 창이 떠올랐다.
‘하트 스테이터스?’
기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포우도 엄연한 ‘왕자’니까. 공략캐에 들어가는구나……!’
순간 기린의 눈앞에 대사 선택지 창이 띠롱!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떠올랐다.
「괴물이라니. 그렇지 않아.」
「흠. 좀 이상하긴 하지.」
정말 언제 보아도 쉬운 선택지 창이야.
기린은 고민 없이 첫 번째 대사를 골랐다.
“괴물이라니. 그렇지 않아. 오히려 나는 너무 든든한걸. ‘유니콘 왕국’의 ‘왕자’가 나를 ‘평생의 주인’으로 모셔준다니. 너무 근사하지 않아?”
“저,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기린의 말에 포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이 눈물로 반짝거렸다. 기린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혀 이상하지 않아.”
“와아, 감사해요, 도련님.”
포우는 와락 뛰어들어 기린을 품에 껴안았다. 기린은 포우의 등짝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동안 나름 비밀을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네, 네! 맞아요! 언제 말씀드리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이제 다 털어놓았으니 좀 더 자신 있게 행동해도 돼. 나는 언제나 포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으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포우는 너무 기뻐요.”
비어 있던 포우의 하트 창이 반짝반짝 빛이 나더니 핑크색 하트 하나가 채워졌다. 기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 쉬워도 너무 쉽구만.’
기린은 포우의 손을 꼭 잡고 끌어당겼다.
“그럼 광장에 가볼까?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줄게!”
“포우, 정말 기대돼요!”
그날, 기린과 포우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프 스튜와 스테이크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여기까지 나와서 또 스튜를 먹는다는 게 영 찜찜했지만, 매일 된장찌개만 주야장천 먹다가 김치찌개로 선회했다는 생각을 하자 비프 스튜 꽤나 다른 음식처럼 느껴졌다. 일단 토마토 베이스라는 게 맛이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포우 또한 비프 스튜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워냈다.
***
집으로 돌아온 기린은 침대에 풀썩 드러누우며 양팔을 머리 뒤에 질러 넣었다.
“그건 그렇고 폴 이 인간…… 아직도 안 돌아왔네.”
정말로 기린이 ‘곤란한 걸’ 물을 걸 눈치챈 걸까?
항상 집에 붙박이장처럼 붙어 있던 폴이 집을 비운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기린은 생각에 잠겼다.
“물어볼 게 많은데.”
흐음. 기린은 몸을 굴리며 의미심장한 소리를 냈다. 아까 식사를 하며 포우에게 물어봤을 때, 포우도 폴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다.
“이대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곤란한데.
기린은 이리저리 몸을 돌리다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
“이번 달에는 수업을 들어보고 싶어.”
다음 날, 아침이 되었어도 폴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스케줄을 짜는 달이었기에 오늘은 포우가 기린 앞에 섰다.
스케줄을 짜기에 앞서 기린이 선언하듯이 말하자 포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아르바이트만 내리 두 달을 했으니 답답할 만도 하시겠죠. 이제 돈도 어느 정도 모였으니 수업을 들어봐요.”
포우가 스케줄 선택 창에서 수업 카테고리를 고르자 기린이 지금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좌르륵 떠올랐다.
「검술.
수학.
발레.
신학.
점성술.」
“으음…….”
기린은 고민에 빠졌다. 검술이라 하면 몬스터를 해치우고, 사냥에 필요한 덕목일 텐데. 이 검술은 분명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검술가로 알려진 성기사 G의 수업일 게 분명했다.
‘성기사와 계속해서 호감도를 쌓을까? 아냐…… 서두를 필요는 없지. 검술은 패스.’
다음은 수학이었다. 말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지루해 보이는 학문이었다.
‘수학을 배우면 지능이 오르겠지?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따분한 학자에게 수업을 들을 것 같군. 이것도 지금은 패스.’
다음은 발레.
‘발레를 들으면 기품과 매력이 오르겠지만…… 지금은 왠지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 아닌걸. 게다가 나 혼자 남자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것도 패스.’
그 다음은 신학이었다.
‘신학은 보나 마나 라이오넬에게 수업을 듣겠지? 이 나라의 하나뿐인 신부님이니까. 신학을 들으면 도덕심이 오르겠지만…….’
기린은 자신의 스테이터스 창을 힐끔 쳐다보았다. 두 달을 내리 성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에 가장 높은 스테이터스가 바로 도덕심이었다.
‘흠. 도덕심이 이렇게 높은데 굳이 또 신학을 들을 필요는 없겠지. 패스.’
남은 건 점성술이었다.
‘점성술? 왠지 재미있어 보여. 어찌 되었든 천문학 비슷한 거잖아? 별을 보며 별의 운명을 읽는다라…… ’천상의 아이‘인 내가 배우기 딱 좋은 학문 아니겠어?’
결심을 세운 기린이 고개를 한 번 끄덕거렸다.
“점성술을 배울래.”
“점성술이요? 나쁘지 않죠.”
포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점성술을 스케줄 표에 채워 넣었다. 아무래도 점성술이 비교적 저렴한 수업이라 더 만족한 듯싶었다.
‘속이 뻔히 다 보이네.’
“그럼 둘째 주는 계속 수업을 들으시겠어요?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하시겠어요?”
“아르바이트를 할게. 라이…… 아니, 신부님과 약속을 한 게 있으니 성당에 갈게.”
“좋아요, 그렇게 하시는 게 포우도 좋다고 생각해요.”
포우가 스케줄 표를 완성하고는 완료 버튼을 선택했다. 그러자 또다시 사위가 어그러지며 공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업 잘 듣고 오세요, 도련님~”
포우의 인사를 받으며 기린은 점성술 수업을 듣기 위해 왕궁으로 이동했다.
눈을 뜨자, 교실 안에는 이미 점성술 수업을 듣기 위해 온 학생들로 버글버글했다. 기린은 너무 뒷자리도, 그렇다고 너무 앞자리도 아닌 곳에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 기린?”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기린은 몸을 돌려보았다.
“안녕!”
레오나르도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기린에게 다가섰다. 아는 얼굴이다! 기린 또한 밝게 미소를 지으며 레오나르도를 반겼다.
“레오나르도도 이 수업 들어요?”
“응!”
레오나르도가 비어 있는 기린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번 주까지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기린이랑 같이 듣게 되어서 너무 좋다!”
“저도 다행이에요.”
레오나르도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기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기린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왜 그래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니, 그냥…….”
레오나르도가 책상에 기대 누우며 뺨을 붉혔다.
“기린 얼굴을 보니까 좋아서.”
“아.”
왕자는 솔직한 성격이구나. 왕자의 말에 기린의 뺨도 따끈하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며 점성술 선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반가워요, 학생 여러분~!”
느끼한 목소리를 가진 선생이 잔뜩 멋을 부린, 위로 꼬부라진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단상 앞에 섰다.
“새로운 얼굴도 보이고, 익숙한 얼굴도 보이네요!”
선생이 기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기린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수업을 들을 준비를 마쳤다.
“저번 시간에도 말했지만~ 점성술이란 아주 델리~케이트한 학문이에요. 별을 읽어서 우리의 운명을 점쳐보는, 아주 심오한 학문이죵~”
음음. 지당하신 말씀.
기린이 가져온 노트에 선생의 말을 받아적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이제 바로 별을 한 번 읽어볼까요?”
“뭐?”
이런 한낮에?
기린은 자기가 놓치는 게 있는가 싶어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태양이 쨍쨍한 밖은 아무리 보아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한낮이었다. 당황한 기린이 선생을 한 번, 창밖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하지만 교실 안 누구도 기린처럼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레오나르도까지도.
“자! 별을 읽으세요!”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선생이 입고 있던 옷을 쫙! 하고 찢어내더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된 것이다!
“으악!”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선생은 허리를 뒤틀어 멋들어진 포즈를 취하고는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인간의 몸은 우주! 그 우주를 탐색하는 멋진 학문 점성술! 제 몸에 있는 별을 읽어 여러분의 운명을 점쳐 보세용~!”
‘뭐, 뭐야. 그런 거였어?! 학문조차 야겜 스타일인 거야?!’
“뭐해, 기린. 어서 가서 선생님의 별을 읽어야지.”
레오나르도가 노트와 펜을 들어 올리고서는 기린을 재촉했다. 기린은 어리벙벙한 채로 레오나르도를 따라 단상 앞으로 나아갔다.
선생 앞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나와 그의 몸에 난 ‘점’을 별처럼 이어가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희멀건 피부에 물렁물렁한 살이 많은 선생의 몸에는 웬 점이 그렇게나 많은지. 선생은 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게 흥분되는지 점차 숨이 거칠어져 갔다.
“좋아요, 여러분~ 잘하고 있어용~!”
선생이 거친 숨을 쉬자 그의 작은 성기가 빨딱! 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으, 징그러워…….’
하지만 기린을 제외한 그 누구도 발딱 선 ‘작은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선생의 옆구리 쪽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선생의 몸에 난 점을 펜으로 조심스럽게 잇기 시작했다.
“오후, 오호홋! 간지러워용~!”
선생이 몸을 배배 꼬며 키득거렸다. 기린은 더더욱 속이 불편해졌다.
‘점성술이 뭐 이래.’
“기린.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 내가 가르쳐줄게.”
레오나르도가 기린의 오른손을 부여잡더니 손을 이끌어 선생의 몸에 가져다 붙였다.
“여기 이 커다란 점과…… 이 밑에 이 작은 점을 잇고…….”
레오나르도는 열심이었다. 기린의 손에 포개진 레오나르도의 손이 무척이나 따스했다. 기린은 선생의 몸과 레오나르도 중, 도대체 어느 곳에 집중을 해야 할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오홍, 호호홍~!”
기린의 펜 끝이 몸을 쓸자 선생은 간지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몸을 이리저리 틀어댔다.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기린은 레오나르도가 이렇게 열심히 점성술을 가르쳐주는데, 이 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하자, 집중.’
기린은 레오나르도가 가르쳐주는 대로 선생의 몸에 난 점을 잇고, 그것을 노트에 받아 적어 내려갔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선생이 단상에 놓아둔 로브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자, 이제 충분히 복습은 된 것 같으니 자리로 돌아가세요.”
기린과 레오나르도가 자리에 앉자 선생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이제부터는 짝의 몸에서 운명을 읽어 보세용~!”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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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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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작가님 진짜 짱이다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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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름
윽...이건 좀ㅜ교수가 저러니까 보기 힘드네ㅎ 그 점이 그 점이었어...?!
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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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ㅅㅍ
이게 뭐람.. 하고 있는데 여기서 끊으시면 어떡해요.....! 결제를 할수밖에....!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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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월화
에라이~!누가 야겜아니랄까봐 학문도 미쳐날뛰넼ㅋㅋㅋㅋㅋ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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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rn
점성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네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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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
새로운 캐릭터가 나올때 마다 빵터짐 [email protected]@ ㅋㅋ
202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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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아 개웃겨 점성술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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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hy****
점...점성술...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치겟어요 작가님ㅋㅋㅋㅋㅋㅋ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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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b1***
와... 야겜 수업의 상태가...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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