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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른 김에 왕까지-5화 (5/42)

5화

다음날, 기린은 성당으로 돌아가 2주 치 아르바이트를 마쳤다. 뒷골목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소문이 돌았는지 우락부락한 그 패거리들은 2주 동안 성당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라이오넬의 얼굴은 환하게 피어났다.

라이오넬은 하루하루 행복하게 신부 생활을 하며 지냈고, 기린을 마주칠 때마다 예의 그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린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기린을 향한 라이오넬의 호감도는 쑥쑥 올라갔다. 그래서 2주 차 성당 아르바이트가 끝나 있을 때에 라이오넬의 호감도는 무려 하트 3개였다.

“라이오넬을 공략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직은 초반이니까 괜찮겠지. 그건 그렇고 이 게임의 공략캐는 대체 몇 명이지?”

그러고 보니 패키지에도 공략캐가 몇 명인지 적혀 있지 않았었다. 아, 망할 똥겜. 이러다 공략캐도 다 못 만나보고 엔딩 보는 건 아니겠지?

기린은 초조함에 몸서리를 쳤다.

집으로 돌아가자 폴과 포우가 기린을 반겼다.

“아들아!”

“도련님!”

“저 왔어요.”

“그래, 성당 아르바이트는 좀 어땠니?”

“재미있었어요.”

첫날 빼고는요.

“다행이구나. 급여가 낮아서 걱정했는데 라이오넬 신부님께서 친절하게 급여까지 올려주시고, 이 아버지는 너무 기쁘단다.”

“포우도요!”

그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나?

기린은 뜨악한 표정으로 폴을 바라보았지만, 폴은 기린이 그러거나 말거나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자, 오늘은 얼마를 벌어왔니?”

기린은 주머니를 털어 벌어온 돈을 모두 꺼내주었다.

하루 4G씩 2주, 보너스까지 합쳐서 총 82G.

폴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100G가 훌쩍 넘었었는데…….”

“주인님. 너무 도련님 탓만 하지 마세요.”

포우가 서둘러 기린을 감싸고 나섰다.

‘그래, 그럴 거면 몸 건강한 본인이 직접 나가서 일을 하면 되잖아.’

참나. 아무리 퇴역 군인이라도 그렇지. 왜 이런 류의 게임은 어린 자식한테만 일을 시키고 아버지는 집에서 띵가띵가 놀기만 하는 거야? 집사 부릴 여유까지 내면서 말이지.

기린이 포우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포우가 눈을 반짝였다.

“왜 그러세요, 도련님?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 아냐. 그러고 보니 포우 너는 왜 우리 같은 가난한 집에서 집사 일을 하고 있어?”

“아앗……! 그, 그건……!!”

포우가 지나치게 과한 반응을 보이며 뒤로 물러섰다.

물어봐선 안 될 거였나.

기린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 대답하기 곤란한 거야?”

“으음……. 나, 나중에는 꼭 답해드릴게요. 죄송해요!”

포우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기린은 문득 폴을 바라보았다. 폴 또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어이쿠! 그, 그럼 나는 이제 씻고 자야겠다!”

“이제 겨우 다섯 시인데요?”

“오, 오늘따라 너무 피곤해서 말이다. 하하하! 그럼 아들아, 너도 잘 자거라! 하하하하하!”

뭐야. 둘 사이에 뭐가 있구먼.

기린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후다닥 거실에서 사라지는 폴과 포우의 뒷모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

3주 차.

휴식.

기린은 아침 일찍부터 눈을 떴다.

저번 달처럼 자다가 시간을 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린은 포우가 차려준 크림 스튜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는 8시도 되기 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포우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도련님! 벌써 나가세요?”

“빨리 나가지 않으면 시간이 모자라!”

처음으로 하는 마을 구경이었다. 마을의 모든 구간을 둘러보려면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했다. 어디서 어느 공략캐가 나타날지, 어떤 이벤트가 나올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집을 나서자 마을 지도가 뜨며 선택지 창이 떴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빙글빙글 도는 레터 오프너 커서가 정면에 떠올랐다.

「왕궁

광장

뒷골목

성당

시장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

음. 선택지는 적지도 많지도 않군.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기린은 팔짱을 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왕궁으로 가면 보나 마나 왕자가 있을 테고……. 뒷골목과 성당은 다녀왔고, 나머지는 광장, 시장,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이로군.’

기린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언덕도 일전에 라이오넬과 대화를 하며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예 낯선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왕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 왕궁으로!’

기린은 레터 오프너 커서를 왕궁에 가져다 대고 클릭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눈앞에 하얀 벽돌로 지어진 아름다운 궁전이 나타났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 마을에 어울리는 소담한 매력이 있었다.

「왕궁/공략캐 있음.」

역시나!

기린은 쾌재를 불렀다.

빠, 빠바바바, 밤!

그 순간 어디선가 고적대의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괜히 긴장되는데.

기린은 꼴깍 마른침을 넘기고선 오른쪽 스테이터스 창을 힐끗 넘겨다보았다.

「기품 12」

낮은 기품 때문에 왕궁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 테였다. 하지만 공략캐가 있다니 그건 다행이었다. 적어도 문지기랑 이야기는 나누어 볼 수 있겠지. 운이 좋다면 왕궁이 싫어서 도망쳐 나온 왕자와 왕궁 앞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기린은 옷매무시를 바로 한 다음 왕궁을 향해 걸어 나갔다.

무장한 문지기 둘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냥 게임으로 플레이할 때는 몰랐는데, VR 게임으로 보니 굉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기린은 머뭇거리며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문지기 둘이 창으로 기린의 앞을 챙! 하고 막아섰다.

“누구냐!”

“허락 없이는 안으로 못 들어간다!”

“아, 저기 저는…….”

게임에서는 어떻게 했더라? 기품 있게 당당해야 하는데.

기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기린은 메고 있던 가방끈을 꽉 움켜쥐었다.

“그냥 여러분과 이야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

“우리들과?”

“우리는 그저 문지기일 뿐인데?”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어봤자 하등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래도 친구가 되고 싶어요.”

“흠.”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문지기들의 표정이 유해졌다.

‘됐다! 통했다!’

기린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문지기들은 생각보다 기품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음. 말하자면 루크와 비슷한 타입의 사람들이어서 말을 섞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기린은 문지기들과 한참 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나 대화를 나누었을까.

왕궁 안쪽에서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성문은 안 지키고 뭣들 하는 짓이냐!”

“히익! 죄, 죄송합니다!!”

문지기들이 일제히 허리를 곧추세우며 창을 받들었다.

놀란 기린도 성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성문 안 계단을 따라 우아하게 걸어 내려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 날카로운 눈매의 붉은 눈동자.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무자비하게 아름다운 외모. 호리호리하지만 자세가 완벽하게 잘 잡혀 있는 신체. 새하얀 제복에 왕가의 문장이 찍혀 있는 붉은 망토. 허리춤에 꽂혀 있는 두 자루의 레이피어.

왕궁의 공략캐는 왕자가 아니었다. 성기사였던 것이다.

기린은 입을 떡 벌렸다.

‘이 사람이 바로…… 마왕의 힘을 봉인한 성기사.’

성기사는 계단을 내려와 기린 앞에 섰다. 기린보다 키가 머리 두 개는 더 높았다. 그를 올려다보느라 목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넌 누구지?”

성기사가 붉은 눈을 빛내며 날카롭게 물었다.

“미, 민기린이라고 합니다.”

“흠. 기품이 형편없이 낮군.”

성기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 기린의 눈앞에 또 한 번 대사 선택지 창이 떠올랐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누구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존함을 여쭈어 봐도 될까요?」

음.

기품에 신경 쓰는 캐릭터 같으니 최대한 공손하게 가자.

기린은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존함을 여쭈어 봐도 될까요?”

성기사가 눈썹 하나를 높이 들어 올렸다. 기린의 예의 바른 말투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말투는 공손하구나. 좋다. 내 이름을 알려주지.”

성기사는 척! 하고 자세를 취하더니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나는 성기사. 이 나라의 최강자 ‘G’라고 한다.”

최강자…… G?

이름이 뭐 이따위야?!

기린은 멍한 얼굴로 G를 바라보았다. G가 인상을 썼다.

“뭐냐. 할 말이라도 있는 거냐?”

“아, 아뇨. 제가 그……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할지 몰라서…….”

“너처럼 천한 것은 그냥 ‘성기사’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아, 예. 그렇군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에 대뜸 자G 님이라고 부르기는 좀 이상하니까. 기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G는 고고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날 최강자 ‘G’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내가 인정한 사람들뿐이다.”

거참 받고 싶지 않은 인정이네.

기린은 어깨를 들썩거리곤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알겠습니다, 성기사님.”

“기품은 낮은 녀석이 예의 하나는 바르구나.”

「기품 +3」

성기사와의 훌륭한 대화로 기품이 올랐다.

기린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스테이터스가 탄탄대로를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성기사가 기린을 향해 돌연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

“네?”

“이 부근에서 금발 곱슬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키는…… 그래 너보다 조금 작고, 미소가 밝으며 금색과 푸른색이 섞인 정복을 입은 스무 살 정도의 청년을 보지 못했느냐? 겉으로는 10대처럼 보인다만.”

“어…….”

기린은 눈을 굴렸다. 왕궁으로 오면서 그런 사람을 보거나 만난 기억은 없었다.

그때, 눈치 없는 문지기 하나가 허둥대며 입을 열었다.

“예에?! 성기사님! 또 왕자님이 왕궁에서 도망치신 겁니까?!”

“쉿!”

성기사가 문지기를 대차게 노려보자 문지기가 고양이 앞에 쥐처럼 몸을 웅크렸다.

‘왕자!’

기린의 눈이 반짝였다.

때마침, 대사 선택지 창이 정면에 떠올랐다.

「못 봤습니다.」

「아까 저쪽으로 가는 걸 본 것 같은데…….」

거짓말을 하느냐, 진실을 말하느냐 인가.

기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성기사 같은 고지식한 인간에겐 진실을 말하는 게 호감도를 올리는 데엔 옳을 테지만, 다음 공략캐인 왕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 건 거짓말을 해서 성기사를 따돌린 뒤 마을을 따로 탐색해보는 일일 것이다.

기린이 턱을 문지르며 고민하자 G가 호통을 쳤다.

“본 것이냐, 못 본 것이냐!”

“그게…….”

에라, 모르겠다!

「못 봤습니다.」

선택.

그래도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처음부터 호감도를 낮춰서 좋을 건 없지.

기린은 첫 번째 대사를 선택했다.

“못 봤습니다.”

기린의 입에서 대사가 흘러나왔다.

성기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 말이 사실이렷다?”

“네.”

“좋아. 믿도록 하겠다. 거짓말을 할 녀석으로는 안 보이니.”

하트 반 개.

이렇게 쉽게 호감도가 오르다니. 생긴 건 도도하지만 성기사는 생각보다 공략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닐까?

기린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성기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왕자님은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하시니 이번에도 분명 ‘그곳’으로 가셨을 테야. 거기 문지기 너! 나를 따라와라. 지금부터 왕자님을 찾으러 간다.”

“예옛!”

문지기 하나가 서둘러 성기사를 따라나섰다.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고……?

훌륭한 힌트였다.

아마도 아까의 대사 창은 이 힌트를 받기 위한 대사 창이었던 듯싶었다.

좋아.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득이 되었군! 기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람 구경이라.

기린은 마을 지도 창을 띄웠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광장과 시장이 있었다.

‘왕자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광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지만 왕자 본인의 정체도 들키기 쉬웠다. 그렇다면 본인을 숨기기 쉬운, 인파가 붐비는 시장? 거기라면 구경할 것도 많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만나기가 쉬웠다. 그래. 시장으로 찍어보자!

기린은 레터 오프너 커서를 시장 탭으로 옮겼다.

시장을 클릭하자 순식간에 북적북적한 공간으로 옮겨졌다.

“비켜요, 비켜! 부딪힙니다!”

“쌉니다! 맛있고 달콤한 복숭아가 단돈 3G!”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아름다운 옷감으로 지은 옷을 선물해주세요!”

과연 시장은 온갖 물품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린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장을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나서 기린은 휙 고개를 돌려보았다. 하지만 왕자로 인한 소동은 아니었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 사람과 상인 사이에서 일어난 잠시간의 큰소리였다.

“잘못 골랐나? 역시 광장으로 갔어야 했나?”

기린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휙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엇!”

“미안합니다!”

기린은 누군가와 툭 부딪히고 말았다.

‘이 전개는!’

기린은 흥분하며 자신과 부딪힌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방금 전 G가 묘사한 왕자의 외모가 귓가에 다시 울리는 듯했다.

‘금발 곱슬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키는…… 그래 너보다 조금 작고, 미소가 밝으며 금색과 푸른색이 섞인 정복을 입은 스무 살 정도의 청년…….’

왕자다!

기린은 흥분했다.

지금 자신과 부딪힌 사람은 틀림없는 왕자였다. 이 고급 복식에 왕가의 문장(왕가의 문장은 왜 숨기지 않은 거지?) 금발 곱슬머리에 보석 같은 녹색 눈동자. 누가 보아도 왕가의 사람이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왕자……!”

“네?”

“아,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기린은 쓰러진 왕자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왕자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시장 구경을 하느라 정작 앞을 못 봐서.”

“괜찮아요. 나도 다른 데 한눈팔고 있었는데요, 뭐.”

“당신도 시장 구경하고 있었어요?”

왕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 아니. 나는 당신을 찾느라 바빴지만.’

기린은 창 위로 눈동자를 밀어 올렸다.

왕자의 호감도 창이 반짝거렸다.

마침 대사 선택지 창도 떠올랐다.

「네! 시장 정말 재미있죠?」

「아뇨. 시장은 따분해요.」

뭐야. 이 뻔한 대답은. 하나도 재미없어.

이 게임은 밸런스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정답이 뻔한 선택지 뿐이었으니. 모름지기 잘 만든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면 미묘하고 오묘한 대사 선택지로 사람 마음을 들었다 내려놓기를 잘해야 하는 법 아닌가.

기린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첫 번째 대사를 선택했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눈이 반짝거리며 양손이 입가로 모아졌다.

“네! 시장 정말 재미있죠?”

하트 5개.

에엥? 이 호감도 상승은 뭐야!

왕자는 기린의 양손을 와락 움켜쥐었다.

“당신도 시장을 좋아하는군요!”

“헉……!”

기린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처음 만나, 처음 선택한 대사 선택지로 왕자가 제일 호감도가 높은 공략캐가 되고 말았다. 이 망겜! 대체 밸런스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냐고?! 혹시 무조건 왕자 엔딩이냐! 아니면 다른 공략캐들이 극악 난이도인 거야?!

“조, 좋아하죠. 아하하하!”

“시장을 좋아한다니. 당신도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군요. 전 사람 사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제가 사는 곳은 너무 따분하거든요.”

“그렇군요.”

“당신이 사는 곳은 어떤가요? 당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이야기랄 것도 없는데요.

기린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음. 성당이나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아르바이트!”

왕자의 눈동자가 한 번 더 반짝였다.

“저도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아바마마…… 아, 아니 아버지께서 절대로 못 하게 하시죠.”

“그러시군요. 왜요?”

기린은 약간 짓궂은 질문을 했다. 왕자가 곤란해하는 걸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왕자는 곤란한 듯 미간을 구기며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그, 글쎄요. 제가 사실 너무너무 귀한 집안의 자손이거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는 절대로 안 된대요. 아르바이트 중에 다치면 안 된다나 뭐라나.”

“으음~”

기린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가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너무하시죠? 아르바이트가 뭐가 위험하다고! 하나도 안 위험하죠?”

“하나도 는…….”

기린은 농장에서 김소 씨와 있었던 일과 성당 아르바이트로 인해 얼마 전에 뒷골목에서 루크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왕자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위험한 일도 있나요?”

“아, 뭐……. 제 경우가 특이한 거죠! 보통은 없어요. 하하!”

“그렇죠?”

다시 왕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왕자는 햇살처럼 밝은 사람이었다. 그의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주변이 모두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밝고 따스한 사람. 모든 이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 이런 사람이 다음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니 이 나라의 미래가 환해 보였다.

왕자가 기린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린은 왕자를 보고 마주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너. 저기를 찾아봐라.”

“옛!”

시장 저 끝에서 성기사와 문지기가 나타났다.

“헉!”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고는 왕자를 골목으로 끌어당겨 몸을 숨기고야 말았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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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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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최강자쥐,,,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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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msd******

ㅋㅋㅋㅋㅋㅋㅋ아너무웃겨요 신박한데재밌어서 더그래요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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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t******

아니ㅋㅋㅋㅋ이거 너무ㅜ병맛이자나욬큐ㅠㅠ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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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sg******

최강 자ㅋㅋㅋ짘ㅋㅋ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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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dw*****

진짜 신박하고 재밌닼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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