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른 김에 왕까지-3화 (3/42)

3화

성당은 아주 고요한 곳이었다. 작은 마을에 어울리는 작은 성당. 맨 앞줄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늙은 주민이 한 명 보였다. 뭔가 부적절한 일이 일어날 곳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저기……”

성당이라면 이쯤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나와야 하지 않나? 기린은 조심스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도를 하던 주민이 고개를 들어 기린을 한번 쳐다보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아, 설마 이분이 이곳의 담당 NPC? 하지만 주민은 이내 기린을 향해 묵례를 하곤 느린 걸음으로 성당을 빠져나갔다.

“에이. 뭐야, 아니잖아.”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기린의 볼멘소리에 누군가의 답이 들려왔다. 기린은 휙 뒤를 돌아 보았다.

적당한 덩치에 큰 키, 금발 머리에 갈색 눈동자,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신부 한 명이 기린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기린은 그 신부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공략캐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스테이터스 창에 호감도 창이 떠올랐다.

「하트 10개 중 0개.」

“오늘부터 아르바이트로 온다던 사람입니까?”

신부가 기린에게 물었다.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

신부는 말수가 적었다. 기린이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걸 알자 그의 신경질적인 표정이 다소 유해졌다.

“죄송합니다. 이곳은 뒷골목 가까이에 위치한 성당이라 난봉꾼들이 자주 침입하는 터라…… 조금 날카롭게 대했던 걸 사과드리죠.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 성당의 신부, 라이오넬이라고 합니다. 워낙 작은 성당이라 신부는 저 하나뿐입니다.”

라이오넬이 살짝 웃었다. 수줍은 미소였다. 기린의 가슴이 두근! 하고 뛰었다.

기린의 취향은 덩치가 있는 검은 머리의 장발 남캐. 성격은 츤데레가 좋았다. 기사 같은 직업이면 더욱더 좋았다. 라이오넬은 기린의 취향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처음 만난 공략캐이니 일단 호감도는 좀 쌓아볼까?’

기린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정면에 대사 선택지 창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무얼 할까요?」

「그럼 라이오넬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음. 뭐가 좋을까.’

성실하게 일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호감도가 오르려나? 아냐. 오히려 이런 수줍수줍한 성격의 캐릭터에겐 조금 당돌한 모습을 보여야 호감도가 오를지도 몰라.

기린은 고민에 빠졌다. 라이오넬은 그동안 눈만 깜빡거리며 기린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처음이니까 성격 파악도 할 겸 당돌하게 나가 보자!’

기린은 반짝이는 레터 오프너 커서를 두 번째 대사로 옮겼다.

「그럼 라이오넬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선택.

기린의 입에서 자동으로 대사가 튀어나왔다.

“그럼 라이오넬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러자 라이오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저는 라이오넬 신부님이란 호칭이 더 편합니다. 하지만 그쪽이 워, 원하신다면…….”

뭐야. 생각보다 귀여운 성격이잖아?

기린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떻게 보면 약간 츤데레 타입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기린은 라이오넬이 마음에 들었다.

기린은 스테이터스창을 힐끔 쳐다보았다.

하트 반 개.

아무래도 대사를 제대로 선택한 듯싶었다.

역시 BL 게임의 달인 민기린다워!

기린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다.

“이, 일은 별것 없습니다. 성당 청소를 해주시고 가끔 방문하는 주민들을 안내해주시면 됩니다. 고해 성사를 하고 싶어 하는 주민들이 있을 때는 제게 따로 데려와 주세요.”

“네!”

기린은 힘차게 대답했다. 라이오넬의 뺨이 한 번 더 붉어졌다.

‘청소라. 평범하네.’

성당에서는 농장에서처럼 말도 안 되는 행위가 벌어지지는 않는 듯싶었다.

라이오넬은 기린에게 청소 도구함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기린은 그곳에서 빗자루와 물을 담을 양동이(윽. 양동이에 얽힌 안 좋은 기억), 그리고 걸레를 꺼내왔다.

청소는 말 그대로 청소였다.

기린은 오래간만에 머리를 비우고 청소에만 몰입했다. 2주 만에 느껴보는, 아르바이트다운 아르바이트였다. 기린은 바닥을 쓸고, 의자를 닦고, 단상과 마리아상에 쌓인 먼지를 털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였다.

산만 한 덩치의 불량배 같은 인간이 건들거리며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이런 인간들이 아까 라이오넬이 말한 ‘뒷골목의 불량배’들인가?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기린은 두려움에 떨며 양손에 빗자루를 꽉 쥐었다. 불량배는 매서운 눈매로 기린을 바짝 내려다보았다.

“뭐냐.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이냐?”

“어, 네에.”

‘무서워! 엄청나게 무서워!’

기린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입술이 자꾸만 바짝바짝 말랐다.

바로 그 순간, 불량배가 힘을 잔뜩 주었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기린을 향해 굽실굽실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새 아르바이트생님. 전 고해 성사를 하러 온 루크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어디 계신가요?”

“아.”

기린은 순식간에 긴장이 탁 풀렸다.

‘뭐야, 좋은 사람이었잖아.’

“저 안쪽에 계세요. 안내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제가 앞으로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기린이요.”

“아, 기린 님. 네네. 감사합니다.”

불량배는 벙글벙글 웃으며 조신한 태도로 사뿐사뿐 기린의 뒤를 따랐다.

기린은 라이오넬의 개인실 문을 똑똑 노크했다.

“라이오넬?”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라이오넬이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 루크라는 분이 고해 성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신부님. 저 왔습니다, 루크.”

루크가 기린 뒤에서 거대한 몸을 내밀며 말했다.

“아, 루크 님.”

라이오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린이 잘못 본 것일까? 예의 바른 미소를 짓는 라이오넬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는데.

“그럼 고해 성사 실로 가시죠. 아르바이트생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계속해주세요.”

“네.”

기린은 빗자루를 들고 다시 본당을 향해 나갔고 루크와 라이오넬은 본당 뒤편 구석진 곳에 있는, 다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격리된 고해 성사 실로 향했다.

“불량배가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별로 나쁜 사람 같은 분위기도 아니잖아?”

기린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당의 낙엽을 쓸기 위해 성당 바깥으로 나섰다.

기린이 문을 열어젖힌 그때였다.

성당 밖에는 마치 무투회라도 열린 듯이 무시무시하게 우락부락한 덩치를 한 사내들이(마치 김소 씨와 같은)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그들은 기린이 문을 열고 나오자 기린을 향해 일제히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새 알바생이다!”

“고해 성사 순서를 정하는 사람이다!”

사내들은 다들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다음 고해 성사는 접니다!”

“아뇨! 접니다!”

“아닙니다, 제가 제일 먼저 왔습니다!”

“우오!”

“우오우오오!”

기린은 빗자루를 꽉 쥔 채로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래?!

“빨리 순서를 정해주세요!”

“보나 마나 다음 순서는 나지!”

“무슨 소리야! 나라고!”

“아니야, 나야!”

“우오오!”

“오우오우오!”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사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말을 얹었다. 이미 몇 명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시비를 걸고 있었다. 기린은 그만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자, 자, 자, 잠깐만요!”

기린이 입을 열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린을 바라보았다.

이 불량배 NPC들은 말은 참 잘 듣는구나.

“여기 모인 모두가 고해 성사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네에!!”

불량배들이 한목소리로 합창을 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청소가 중요한 게 아니었잖아?

기린은 헐레벌떡 성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럼 자,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그러다 갑자기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불량배들을 향해 소리쳤다.

“싸우지들 마시고요! 싸우면 그 사람은 오늘 고해 성사 못 해요!”

“우우우우!!”

불량배들이 불만을 토해 내는 소리를 냈지만, 결국엔 모두가 얌전해졌다. 기린은 후다닥 고해 성사 실을 향해 뛰어갔다.

“라이오넬! 라이오넬!”

고해 성사 실에선 고해 성사가 한창이었다.

“아아…… 루크 님. 루크 님께서는…….”

“신부님…… 흑흑…… 흐윽…….”

바로 그때, 뜬금없이 정면에 행동 선택지 창이 떴다.

「고해 성사 실을 들여다본다.」

「고해 성사 실을 몰래 들여다본다.」

뭐야. 결국 둘 다 들여다본다는 선택지뿐이잖아.

어지간히 플레이어한테 고해 성사 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게 하고 싶었나 보군.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기린은 ‘고해 성사 실을 몰래 들여다본다.’를 선택했다.

기린의 몸이 저절로 움직여 고해 성사 실 창문에 난 구멍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고해 성사 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충격적이었다.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라이오넬은 고해 성사 실 한중간에 난 구멍으로 빳빳하게 발기한 성기를 밀어 넣고 있었다. 루크라는 사내는 라이오넬의 성기를 양손으로 꼭 붙들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 신부님. 저는 죄가 너무나도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양이여. 고해하세요.”

“흑……. 저는 어제 또 다른 사람과 싸움을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어요.”

“이런. 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라이오넬이 유감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를 내자 루크는 라이오넬의 성기를 손바닥 가운데에 끼운 채 마구 비벼 싹싹 빌기 시작했다.

“용서해주십시오, 신이시여! 용서를!”

“아아, 아아아!”

절정에 치달은 듯 라이오넬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신께서 곧 용서를 하실 겁니다, 용서를, 용서를, 용서를……!! 이제 곧……!!”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기린은 자기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조용히 물러나는 게 좋겠다.’

기린은 발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빗자루가 그만 딱! 소리를 내며 고해 성사 실의 문을 쳤다.

“누구십니까!”

깜짝 놀란 라이오넬이 고해 성사 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곤 기린을 발견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그, 그게! 바, 밖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서…….”

하트 0개.

몰래 훔쳐보고 있단 걸 들킨 바람에 기껏 쌓아둔 호감도가 깎였다. 라이오넬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미, 미안해요!”

기린은 성당 뒷문을 통해 도망치듯이 바깥으로 나갔다.

순간, 왼쪽 구석에 떠 있던 위치 문구가 바뀌었다.

「뒷골목」

그에 이어 또 다른 문구가 하나 더 떴다.

「뒷골목/공략캐 있음.」

너무 당황한 탓에 기린은 빗자루를 들고서 뒷골목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연속으로 공략캐가 나온다고?!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뒷골목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었고, 낮인데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어둡고 으스스했다.

이런 곳에 공략캐가 있다고? 그렇다면 그 캐릭터는 기린의 취향캐일 게 분명했다. 검은 머리와 눈동자. 어쩌면 피부색도 어두울 수 있고. 밤, 그리고 이 뒷골목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캐릭터일 게 확실했다. 이런 BL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웬만하면 정석을 따르기 마련이니.

“이야옹!”

“으악!”

기린이 조심스레 한 발짝 떼자 골목에 숨어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통을 짚고 담벼락을 재빠르게 타고 넘었다.

뒷골목은 늘 게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어둡고 무서운 곳이지만 기린은 왠지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낮고 묵직한 저음.

목소리부터 마음에 들어!

기린은 기대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

모든 건 기린의 상상대로였다.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묶어 올린 긴 검은 머리. 푸른 불꽃을 내뿜는 것 같은 날카롭고 매서운 토파즈 색 눈동자. 뒷골목의 지배자다운, 마른 근육을 가진 날렵한 몸매의 소유자. 게다가 양쪽 관자놀이에 솟은 뿔.

뿔……?!

기린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뿔이 달린 사내는 쓰레기통 위에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앉아 기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냐고 묻지 않았느냐.”

“저, 저는…….”

누가 봐도 마왕이다. 마왕이야. 뒷골목에 웬 마왕. 근데 벌써부터 마왕이 나와도 되는 거야?! 보통은 처음엔 마왕인 걸 숨기지 않느냐고!

기린은 당혹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마왕이 쓰레기통에서 내려오며 히죽 웃었다.

“아아. 나의 이 어둠의 왕국의 백성이 되고 싶어 온 인간인가 보군. 그렇지?”

어둠의 왕국?! 이 쓰레기 천지인 곳이요? 여기가 진짜 왕국이에요? 따로 어디 다른 곳이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망겜 같으니라고! 새로 공간 만들기가 귀찮았구나!

“아, 저기, 저는, 그게…….”

기린이 말을 더듬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아뿔싸.

이런 때에 그만 대사 선택지 창이 떠올랐다.

「맞아요.」

「맞아요.」

뭐야. 둘 다 똑같은 선택지잖아!

어떻게 된 거야, 이 게임! 버그야?!

기린은 이마를 철썩 내려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침착해야 했다.

‘좋아, 민기린. 심호흡. 심호흡 하는 거야.’

기린은 가슴에 손을 대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후하, 후하.

이럴 때 보통 1번이 긍정적인 대답이고, 2번이 부정적인 대답이니까…… 일단은 2번째 ‘아니요’를 선택하자.

기린은 반짝이는 레터 오프너 커서를 두 번째 대사에 가져다 댔다.

두 번째 「맞아요.」

선택.

그러자 마왕이 양팔을 벌리며 더욱 활짝 미소를 지었다.

“오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어서 오거라, 환영한다. 나의 백성이여.”

이런 망할 망겜 같으니라고! 진짜로 둘 다 ‘맞아요.’였잖아!

제작사 나와!

‘아, 머리야.’

기린은 지끈지끈 쑤셔오는 이마를 짚었다.

‘이 게임은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기린의 마음도 모른 채 신이 난 마왕은 훌쩍 쓰레기통에서 뛰어내렸다.

“좋아. 그럼 내 왕국의 첫 번째 백성이 된 걸 축하하는 의식을 치르도록 하자.”

“첫 번째요?!”

내가 첫 번째이기까지 해?! 아…… 머리가…….

기린이 비틀거리자 마왕이 기린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어이쿠, 괜찮으냐? 안색이 안 좋다.”

마왕은 걱정하는 표정으로 기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왕의 짙은 새파란 눈동자에 기린의 얼굴이 비쳤다. 와…… 환상적으로 잘생긴 얼굴. 기린의 걱정 따윈 그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괜찮아요…….”

성격만 츤데레였다면 좋았겠지만,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생긴 게 취향인데. 기린은 좀 더 마왕을 두고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술을 좀 챙겨오지! 축배를 들자꾸나.”

“조, 좋아요!”

기린이 빗자루를 들어 올리며 마왕의 말에 찬성하자 마왕이 흠칫 놀랐다.

“그 흉물은 좀 멀리 치워 놓거라.”

흉물? 이게?

기린은 빗자루를 쳐다보았다.

그냥 평범한 빗자루인데?

“네, 뭐……. 알겠어요.”

기린은 최대한 마왕에게서 멀리 떨어진 벽에 빗자루를 세워 놓았다. 그제야 마왕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럼 저 근처 술집에 가서 술을 얻어 오마.”

“아니…… 술을 얻어 오세요? 사 오지 않으시고요?”

그러자 마왕이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돈이 없어…….”

“아.”

뭐야, 이거. 마왕 맞아? 하지만 불쌍한 마왕을 보고 있자니 기린은 그에게 돈을 쥐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기린도 폴에게 용돈을 아직 받지 못한 상황. 돈이 한 푼도 없기는 피차 마찬가지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걱정 마라! 저 술집 주인은 착해서 설거지 한 번 정도만 해주면 술 두 잔 정도는 나누어 준다!”

마왕이 설거지도 해? 불쌍해…….

기린은 안타까움에 입을 틀어막았다. 이 정도면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마왕에게 후원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마왕은 밝게 웃으며 술집을 향해 뛰어갔다.

“설거지 금방 끝내고 돌아오마! 하루 이틀 한 일이 아니라서 내가 설거지 하나는 자신 있다!”

“네에.”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불쌍해져!

기린은 안쓰러운 마왕의 모습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저게 무슨 마왕이야. 동네 가난하고 불쌍한 청년이지.

기린은 마왕에게 어디 아르바이트라도 소개해줘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왕 설거지가 익숙한 거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좋을 텐데.

“이따 돌아오면 한번 말이나 꺼내 봐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기린은 아까 마왕이 앉아 있던 쓰레기통에 얌전히 걸터앉았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기린은 높은 쓰레기통에 앉은 채 두 다리를 앞뒤로 휘휘 흔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벽에 기대 깜빡 잠이 들었던 기린이 얼른 눈을 떴다.

“마왕님……?”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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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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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쟁이

이런 고해성사 처음이야.....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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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이쿠손이비엘눌렀네

아 진짜 웃음 터져요ㅋㅋㅋㅠ 이런 병맛 19소설은 처음이에요..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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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벱벱

아 진짜 육성으로 웃었습니다ㅠㅠㅠ 아 거기서 그걸 왜 내밀고 있어ㅋㅋㅋ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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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맛나면 돼 라고짖음

오우 지쟈스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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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치겠다ㅋㅋ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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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볼건많고시간은없도다

기린인 안해요?ㅋㅋㅋㅋㅋㅋ 귀여운마왕봤으니 됐어요ㅋㅋㅋㅋ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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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d******

ㅋㅋㅋ아진짜재밌는데욬ㅋㅋㅋㅋㅋㅋ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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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j******

ㅋㅋㅋㅋㅋ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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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대멈머최고야잇

아아니 누가 고해성사를 그렇게 해요, 네? 믿을 수 없으니 나도 같이 봐.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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