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BL 게임 좋아하시죠?”
낯선 목소리에 민기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21세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세 시대 풍 로브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린 한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서 있었다.
민기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BL 게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시죠?’하고 확신하듯 물어보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물론…… 좋아하기는 하지만.
민기린은 삶의 아무런 굴곡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이 시대의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 사람이었다. 그에게 한 가지 작고도 특별한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동인남에 클로짓 게이라는 것뿐.
민기린은 덩치 큰 남자에게 무어라 톡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 남자의 덩치에 주눅이 들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내 조심스럽게 고개만 끄덕였다.
“네, 뭐…… 좋아하기는 해요.”
“그럼 이걸 가지세요.”
남자는 주섬주섬 로브 안을 뒤지더니 USB 하나를 민기린에게 내밀었다. 민기린은 그것을 받아들지 않고 눈만 끔뻑거렸다.
“이게…… 뭐예요?”
“BL 게임입니다.”
“음…….”
수상한 남자. 수상한 게임. 민기린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남자는 마치 얼굴이 들키면 안 된다는 듯이 더욱 로브를 깊게 눌러쓰며 고개를 숙였다.
“받아주세요.”
“이걸 왜 저에게 주시죠?”
“어, 그러니까…….”
남자가 말을 더듬었다.
“BL 게임 잘하게 생기셔서요.”
“네?”
BL 게임을 잘하게 생긴 관상도 따로 있는 건가? 민기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남자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이거 VR 게임이에요! 완전 현실적이고, 몰입도도 높아요. 꼭 당신이 플레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VR 게임이요?”
민기린의 눈이 반짝거렸다. 남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19금입니다.”
“……!”
민기린의 눈이 순간 이글거리며 무섭도록 번뜩였다. 민기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가 내민 USB를 낚아챘다.
“그냥 플레이만 하면 되는 거죠?”
“네.”
“나중에 돈 달라고 하는…… 뭐 그런 사기는 아니죠?”
“아닙니다.”
남자는 붉은색 털(한국 사람이 붉은색 털?)이 무성하게 난 손을 마구 내젓더니 민기린을 향해 꾸뻑 허리를 숙였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마지막까지 플레이해주세요.”
“재미만 있다면야 엔딩은 몇 번이고 보겠죠.”
민기린이 USB를 들여다보며 답했다. 그 대답에 남자는 기쁜 듯이 보였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린다고? 뭘?
민기린이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
「NEW GAME」
모니터 화면 정중앙에 뜬 문구를 보자 또다시 심장이 떨려왔다. 새 게임을 시작할 때면 늘 이랬다. 민기린은 방문이 꽉 닫혀 있는지 다시 한번 체크했다. 오늘은 부모님 두 분이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여수로 2박 3일 여행을 가신 날. 그는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민기린은 떨리는 마음으로 컨트롤러를 조작해 뾰족한 레터 오프너 모양의 커서로 문구를 클릭했다.
「NEW GAME」
민기린(麒麟). 위대한 인물이 되라는 뜻으로 부모님께서 상서로운 상상 속 동물의 이름을 따 지어 주신 이름. 하지만 여태껏 기린은 위대한 인물은커녕 세상에 조그마한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학교에선 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름이 기린이 뭐냐고, 기린이. 그래서 기린은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놀림을 받으니 친구는커녕 별명만 늘어갔다. 조금 더 성격이 능글맞고 수더분했다면 ‘기린’이라는 해괴망측한 이름도 나름의 자랑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기린은 이 이상한 이름을 친구 사귀는데 이용할 만큼 수완이 좋지 못했다. 기린은 학교에 갈 때마다 주눅이 들었고, 그 탓에 친구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말하는 순간은 고역이었으며, 피하고 싶은 최악의 시간이었다. 기린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런 기린의 취미는 BL 게임 플레이. 은밀한 취미였다. 전연령부터 19금까지 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관심이 많은 건 역시나 19금 BL 게임이었다.
기린이 성인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12시 땡! 치자마자 술집 들어가기, 편의점에서 담배 사기가 아니라 존잘님들의 19금 BL 동인 게임을 구매한 일이었다.
기린은 게임을 사랑했다. 게임 속에 플레이어 이름란을 채울 때만이 유일하게 이름을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때였다.
그렇기에 그 남자에게서 이것이 VR BL 게임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기린은 이것이 오직 자신을 위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오 세상에,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님 감사합니다. 기린은 사방에다 대고 절을 하며 감격했다. VR BL이라니! 그것도 19금!! 이건 기적이야!
기린은 집에 오자마자 당장 VR 헤드셋을 구매했다. 헤드셋의 가격이 좀 비쌌지만 후회할 것 같진 않았다.
‘VR 게임이라면 조각 같은 근육질 몸매의 남자들이 떼로 몰려나와 눈앞을 휙휙 스쳐 다니겠지? 심의만 잘 통과했다면 어쩌면, 어쩌면! 거시기까지 보일지도 몰라! 그럼 또 나는 이게 게임이라는 것도 잊은 채 남자들의 잘 쪼개진 식스팩과 거시기를 향해 헤벌쭉 입을 벌리고서는 손을 쭉 내밀겠지? 진짜로 만져지면 얼마나 좋을까!’
기린은 USB에 적혀진 게임의 타이틀을 검색해 보았다. 리뷰에는 세계 최고 쓰레기 게임이라는 불만이 가득했다. 별점도 1점대. 그마저도 별점 0개 시스템이 없어 1개를 주었다는 리뷰가 줄을 잇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런 게임을 나에게 준 건가? 너무 구려서 공짜로?’
기린은 이 게임을 플레이할지 말지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래도 VR에 BL이잖아! 아무리 망겜이라도 일단은 플레이 해보고 욕하자. 기린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남들에겐 별로여도 나한테는 최고의 게임일 수 있잖아.
리뷰를 확인한 결과 게임 속의 플레이 기한은 1년이었다. 단 1년 만에 직업 엔딩과 공략캐 엔딩을 한꺼번에 보아야 엔딩이 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직업 엔딩은 그렇다 쳐도, 공략캐 엔딩은 상황에 따라 좋지 못한 결과가 날 수도 있었다.
기린은 망설임 없이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게임이 시작되자 먼저 캐릭터 설정 창이 떴다.
「생일을 정해주세요.」
육성 시뮬레이션과 연애 시뮬레이션이 합쳐진 시스템이라 그런지 제일 처음에 정하는 건 역시나 생일과 별자리였다.
기린은 익숙하게 자신의 생일을 집어넣었다. 10월 30일. 전갈자리.
「나이를 정해주세요.」
‘나이? 혈액형이 아니라?’
기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나이는 20살부터 선택 가능했다. 기린의 실제 나이 22살.
‘뭐 어때.’
기린은 20살로 나이를 책정했다. 제일 어린 나이부터 육성하는 게 국룰이지. 그런데 나이를 선택하기 위해 스크롤을 내렸을 때 스크롤이 끝없이 내려간 건 착각이었나? 첫 자리 숫자를 9까지 본 거 같은데……?
‘에이, 아니겠지. 설마 90세 할아버지를 육성하는 BL 게임이 있으려고. ……이, 있나? 그래. 있을지도 몰라. 세상엔 그런 취향도 있으니까. 취향은 언제나 존중받아 마땅한 것! 취향 만세! 검은 머리 장발 남캐 만세다!’
「이름을 정해주세요.」
‘이름.’
이름은 늘 정해져 있었다. 기린의 본명. 민기린. 그래야지 몰입도가 높아지니까. 후후.
「이대로 결정합니까?」
반짝이는 레터 오프너 커서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기린은 긴장된 숨을 몰아쉬었다.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VR은 처음이라 그런가. 기린은 헤드셋을 고쳐 썼다.
‘좋아. 이대로 결정이다.’
망설이지 말고 고!
기린은 YES 버튼을 클릭했다.
이제 게임이 시작될 터였다.
그래야만 했는데……
모니터에 한 번 더 기묘한 문구가 떴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후회?’
기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회할 게 뭐 있어. 그냥 게임인데. 하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리셋하면 되는 거고. 기린은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한 번 더 YES를 클릭했다.
그러자 마치 기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희한한 문구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리셋은 불가능합니다.」
“뭐?! 리셋이 안 된다고?!”
「인 게임 중 강제 종료 또한 불가능합니다. 엔딩을 보아야 게임이 종료됩니다.」
강제 종료도 안 된다고?
“잠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조금 더 고민해볼래!”
하지만 기린이 그렇게 외치는 순간 게임 기기는 선택지도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플레이를 시작했다.
「로딩 중……」
그리고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상상보다 더 상상 같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말도 안 되는 BL 게임 세상이.
그렇게 기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BL 게임 ‘육성(性) 시뮬레이션’의 주인공…… 아니 주인수로 빙의했다.
<구른 김에 왕까지>
1화
“아들아.”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웬 붉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기린을 향해 양팔을 뻗으며 말했다.
기린은 휙 뒤를 돌아 남자를 바라다보았다.
아늑한 통나무 오두막집에선 향긋한 나무 향기가 나고, 벽난로에선 타닥타닥 따뜻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절로 입맛이 다셔지는 깊고 진한 크림 스튜 냄새 냄새가 풍겼다.
아니, VR이 이렇게까지 현실적이어도 되는 거야? 4D도 냄새까지는 구현하지 못하는데?
기린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붉은 머리칼에 붉은 수염을 가진, 온몸에 털이 덥수룩한 남자가 다시 한번 기린을 향해 말했다.
“아들아.”
“……저 말씀이세요?”
“그래. 내 아들, 기린아.”
“헉!”
이렇게 게임이 시작된 건가?
기린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만져져야 마땅할 VR 헤드셋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기린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 벽에 붙어 있는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린은 기린의 모습이었다.
검은 머리칼, 쌍꺼풀 없이 크고 동그란 눈, 늘 찹쌀떡 같다고 놀림만 받던 희멀건 피부, 170cm도 안 되는 작달막한 키와 덩치. 달라진 게 딱 하나 있다면 그건 눈동자 색이었다. 눈동자 색이 머리칼과 똑같은 검은색에서 밝은 노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지? 게임 속 아바타인가? 하지만 난 게임 아바타를 설정한 적이 없는데?’
기린은 혼란스러워졌다.
“누, 누구세요?”
“난 네 양아버지, 폴이다.”
“폴이라고요?”
아들 이름은 민기린인데 아버지 이름은 폴.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지만 이런 게 또 게임의 묘미 아니겠는가.
기린은 눈을 굴렸다.
‘여, 연기를 해야 하는 건가? 선택 창은 어디 있지?’
하지만 기린이 아무리 기다려도 선택 창은 뜨지 않았다. 기린은 어쩔 수 없이 연기를 선택했다. 쓸데없이 사실적인 게임일세.
“아, 아버지!”
기린은 즉시 연기에 돌입했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천만다행이지. 연기를 하며 19금 게임을 하는 지금 꼴을 보셨으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기린은 양팔을 벌리며 폴에게 안겼다. 폴이 거대한 품에 기린을 쏙 끌어안았다.
“오오, 그래. 내 아들!”
폴은 기린을 껴안고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는 기린을 어린아이처럼 들어 올렸다.
“앗!”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성인 남자를 번쩍 들어 올리다니?! 기린은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하하! 기린아!”
폴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기린의 겨드랑이에 양손을 끼운 채 또다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기린은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런 느낌까지 이렇게 현실적이어도 되는 거야?
“내, 내려주세요!”
“어이쿠, 미안하구나.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말이다.”
폴이 기린을 내려 주었다. 기린은 비척거리며 곁에 있는 의자를 짚었다. 나무로 만든 의자의 감촉도 진짜 같았다.
‘와. 게임이 아니라 무슨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것 같네.’
“저희가 오래간만에 만났나요?”
“무슨 소리냐. 10살 때부터 기숙 학교를 다니다 이제야 졸업해서 돌아와 놓고는.”
“아.”
그런 설정이구나.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을 배웠니?”
“네, 아버지. 아버지가 보내주신 돈으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기린은 게임의 정석대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폴의 갈색 눈에 눈물이 잔뜩 고였다.
“오오, 착하고 장한 내 아들. 아빠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폴은 다시 한번 기린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기린은 폴의 품에서 캑캑거리며 대답했다.
“저, 저도 보고 싶었어요.”
폴은 한참 뒤에야 품에서 기린을 놓아주었다.
기린은 폴 몰래 입에 들어간 그의 가슴 털을 빼냈다. 가슴 털조차 붉은색이었다.
폴은 부엌을 향해 손짓했다.
“집사 포우도 오랜만에 보지? 인사하거라.”
“안녕하세요, 도련님?”
“아, 안녕.”
포우는 누가 봐도 인간형 유니콘이었다. 이마 정 가운데 솟아난 오색빛깔의 뿔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유니…….”
기린이 중얼거리자 포우가 기겁을 했다.
“유, 유, 유니콘이라니요! 포우는 그런 건 몰라요, 도련님!”
아직 유니까지 밖에 안 말했는데.
기린이 어깨를 들썩였다. 뭐, 그래. 나중에야 밝혀지는 비밀 설정인가 보지?
그때, 폴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기린아 널 양육하라고 왕궁에서 2,500G가 나왔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퇴역 군인이지 않니.”
“그렇죠.”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2,500G면 뭐부터 먼저 할까. 일단 마을부터 둘러보면서 공략캐들을 대충 살펴볼까?
그때, 폴이 눈썹을 축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네 여름옷과 겨울옷을 사느라 빈털터리가 되었다.”
“네?!”
이번엔 포우가 끼어들었다.
“여름엔 반팔, 겨울엔 코트를 입어야 계절을 버티시죠. 그렇지 않으면 병에 걸리세요, 도련님.”
“하지만……! 아직 3월인데!”
기린이 시야 구석에 떠 있는 스테이터스 창을 힐끔 쳐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온단다. 5월부터 더워지니까. 그래서 갑작스럽지만, 아르바이트를 나가주길 바란다.”
“네에?!”
기린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폴은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 이게 NPC의 기개인가.’
기린은 기가 막혔다.
뭐 이런 황당한 게임이 다 있어?! 튜토리얼은? 기본 조작 설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그때, 처음으로 이 게임의 선택 창이 떴다.
「<아르바이트 목록>
농장 8G
집안일 1G
성당 2G
여관 4G
레스토랑 5G」
“한 달 동안의 스케줄을 고르렴. 아르바이트는 일주일씩 할 수 있단다. 돈이 없어서 이번 달엔 수업을 받을 수 없구나.”
“…….”
“아버지는 농장을 추천해.”
헐.
기린이 폴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이 인간 은근슬쩍 제일 보수 비싼 아르바이트를 미는 거 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돈이 없을 땐 보수가 제일 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기본 아닌가. 체력과 근력이 오르는 농장 아르바이트! 기품은 떨어지지만, 기품이야 나중에 수업으로든 복장으로든 올리면 되니까.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농장 아르바이트를 2주하고 마지막 주에 휴식을 넣어 주마.”
“뭐야? 제가 선택하는 거 아니었어요?”
“응? 뭘 선택한다는 말이냐?”
“아, 아니에요.”
뭐지……?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난데, 내가 선택을 할 수가 없다니.
기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뷰어들 말대로 시작부터 정말 이상한 게임이었다. 유명 모 게임을 본뜬 게 분명한데도 내용과 진행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냥 얌전히 베끼기만 했어도 중간은 갔잖아?! 제작자는 대체 뭔 생각인 거야.
폴은 허공에 뜬 한 달 스케줄에 농장 2주와 휴식 1주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선택. 그러자 갑자기 사면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어, 어?!”
기린은 비틀거리며 무언가 잡을 것을 찾았다. 하지만 폴은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기린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잘 부탁한다, 아들아. 돈 많이 벌어오렴.”
***
기린이 다시 눈을 뜨자 그곳은 농장이었다. 순식간에 농장으로 워프를 한 것이었다. 온 사방에서 축축한 흙냄새와 풀 냄새, 그리고 가축의 똥 냄새가 진동했다.
기린은 질척질척한 땅을 피해 농장주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저기요……? 누구 계세요?”
“하하. 네가 오늘부터 농장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기린이냐?”
갑자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기린은 깜짝 놀라 자빠질 뻔했다.
기린이 뒤를 돌아보자 흰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른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농장주이신가요?”
“너는 오늘부터 동물들을 돌보면 된다.”
“저기, 그런데 진짜로 일을 하는 건가요? 이건 게임인데……. 스킵이나 뭐…… 그런 건…….”
“기린. 저쪽에 있는 소를 돌봐주렴. 착유를 해야 하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 NPC는 자기 할 말만 하잖아. 말이 안 통해.
기린은 휴,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VR 게임은 실제로 일까지 해야 하나 보다. 이러니 욕을 죽어라 먹었지. 아니 플레이어한테 막노동을 시키는 게임이 어디 있어?
기린은 투덜거리며 할아버지 NPC가 가리킨 축사 쪽을 향해 걸어갔다.
“음메. 음메에.”
축사로 가까이 다가가자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착유라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이것도 튜토리얼 같은 건 없는 건가?
기린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까 그 할아버지 NPC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 어떡하지?”
기린은 망설이며 축사 안으로 들어섰다.
“착하지 소야…….”
“음메.”
어두운 구석. 짚 냄새와 함께 소 울음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기린은 그곳을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착유를 해야 한다는 건 젖소라는 뜻이겠지? 아씨, 이게 뭐야. 19금 VR BL 게임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더니 뜬금없이 농장 일이나 하게 되고 말이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라고!
기린은 울고 싶은 심정으로 소에게 다가갔다.
“음메, 음메.”
하지만 소를 향해 다가갈수록 무언가 이상했다. 울음소리가 뭔가…… 어색했다.
마침내 소 앞에 선 기린의 입이 떡 벌어졌다.
190cm는 훌쩍 넘어 보이는 큰 키. 터질 듯한 근육의 우락부락한 몸매. 햇볕에 한껏 태운 듯이 윤기 나는 갈색 피부.
할아버지 NPC가 말한 ‘소’는 사람이었다.
“사람?!”
기린이 소를 쳐다보며 소리를 지르자 ‘소’가 자신의 목에 걸린 워낭을 가리켰다.
“이 워낭 안 보이나? 난 소다.”
“아니, 생김새는 그렇다 치고 말도 하잖아요!”
“그래도 난 소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러자 ‘소’는 이번엔 축사에 걸린 이름표를 가리켰다.
「이름: 김 소
나이: 34살
성별: 수컷.」
“성별 수컷?! 착유를 해야 한다면서요!”
“착유는.”
김소 씨는 기린 앞에 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건장하게 발기한 검붉고 뻣뻣한 성기가 기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걸 짜면 된다.”
……대체 이게 뭔 게임이야!!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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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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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sd******
와우. 놀라운 전개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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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잡식대마왕
와 게임 인터페이스 보고 추억이 새록새록하고있는데 상상도 못한 놀라운전개..... ㄱOㄴ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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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ㅇㅇ
프메같은 게임인 줄 알았는데 착유ㅋㅋㅋㅋ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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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름 없는 라떼
알바비 너무 절망적이다... 아부지 2500 골드가 사라져서 8골드부터 시작해야하나요...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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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맛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모얔ㅋ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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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작가님들사랑해요
어이쿠왕자님같다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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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코코루
많이 익숙한 작가님이라 다른 작품 목록 펼쳐봤더니
바리왕자 작가님이라 한 번 놀라고...
소설 내용보고 두 번 놀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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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METLOODYB
아 완전 골때리는 전개닼ㅋㅋㅋㅋㅋ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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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쑤
이게뭐야ㅋ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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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bsd*****
앜ㅋㅋㅋㅋㅋㅋㅋㅋ와우 신박하고 재밋다 달려봅니다!!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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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꼬오롱
신기한 소설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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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wan******
아니 대체 이게 뭔 소설이야!! ㅋㅋㅋ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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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볼건많고시간은없도다
아니,감자독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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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dmsd******
어머세상에 일단더좀봐볼게요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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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hldo****
ㅋㅋㅋㅋㅋ내용 너무 신박한대 ㅋㅋㅋㅋ일단 달려봅니다 ㅋㅋㅋㅋ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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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ㅋㅋㅋㅋㅋㅋㅋ병맛이얔ㅋㅋㅋ 앞으로도 잘 볼게욬ㅋㅋ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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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아 개웃겨 ㅋ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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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
뭐야 2500골드 돌려줘요
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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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new_****
ㅋㅋㅋㅋㅋ벌써 재밌네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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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blue*****
골때리게 재밌네 ㅋㅋㅋㅋ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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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타이어보다맛있다
프린세스 메이커인 줄 알았는데 뽕빨물 전개 무엇ㅋㅋㅋㅋㅋ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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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아니이게대체뭐람ㅋㅋㅋㅋㅋㅋㅋ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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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만수무강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 아 골 때리네 진짴ㅋㅋㅋㅋㅋㅋ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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핱니나
역시 꿈은 크게 가져야해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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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떡왕
ㅗㅜㅑ 초반부터 예상이 안되게하네ㅎ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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퐝퐁
표지부터 강렬하네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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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대멈머최고야잇
예???? 그걸 짜서 뭐에 쓰려구요???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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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손이비엘눌렀네
오우 지져스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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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k0***
이게 뭐여....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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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찌
1화부터 병맛에 끌리네ㅋㅋㅋㅋ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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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뇽
기린이 19금에 눈돌아가네ㅎ 바람직하다^^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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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Renew)
신박하네요 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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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56789
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택받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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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아 대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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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
아닠ㅋㅋㅋ 작가님 저랑 동년배에 같은게임 많이하신?ㅋㅋㅋㅋ 그리고 전개가 정말ㅋㅋㅋㅋ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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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아니 갑자기 이렇게..? 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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