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촉수가 되었다-201화 (201/266)

여러분이 있는 한 이 부족한 글 끝까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초 계획했던 완결부분만큼은 연재해보고 싶으니까요! 201회

신성수녀단

신성수녀단 선발시험 날의 아침.

센트리얼 수도 중심부의 거리는 매우 고요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선발시험을 보기 위해 몰려든 각 가문의 마차 행렬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지만 당일이 되어서는 매우 조용해진 것이다.

그것은 모두 ‘아침 기도’ 때문이었다.

원래 신성교국의 교령 상 아침, 점심, 저녁 각 시간 때마다 기도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제발.. 제가 신성수녀단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라키엘님..”

“앞으로도 기도 열심히 더 자주자주 올릴게요. 제발 한 푼이라도 더 신성력을 내려 주세요..!”

여관과 사제단 숙소에 머물고 있는 여사제들의 경우 평생 했던 그 어떤 기도보다도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자신의 신성력을 늘려 달라 빌고 있었다.

타고날 때부터 여신의 가호를 받아 신성력이 넘쳐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평생에 걸쳐 기도를 절실하고 자주 행해야만 증가하는 것이 신성력이다.

갑자기 신성력을 내려달라고 빌어봤자 늘어나는 양은 한 줌도 되지 않겠지만 선발시험의 내용이 어떻게 되었든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한바 시험에 응시한 소녀들은 조금이라도 신성력이 늘어 시험을 통과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선발 당일 아침 시간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었을 때..

“라키엘님의 축복이 깃든 부적! 시험합격을 위한 필수품! 태양의 가호를 판매 합니다 지금 사면 1개가 덤!”

“이것 좀 드셔보세요~ 센트리얼 수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산품 태양 불 꼬치 팝니다~!”

그 누구보다 재빠르게 거리를 점거한 것은 상인들이었다. 각기 좌판을 열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열렬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그 모습은 신성교국 특유의 종교적 느낌보다는 시장 한복판에 나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저거 정말일까? 합격을 위한 부적이라니..”

“아가씨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런 부적 같은 게 없다고 해도 아가씨의 실력이라면 반드시 통과 하실 겁니다!”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면이었다.

라키엘 교단을 뜻하는 태양이 그려진 로브를 걸친 소녀들. 그들의 로브에는 태양의 문양 말고도 가문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로브에 수놓아져 있었다.

이번 선발시험에 지원하기 위해 먼 타 지역에서 온 소녀들이다.

소녀들의 주변에는 그들이 속한 가문의 가신들이 뒤따랐다.

이노센티아에 존재하는 가문들의 숫자는 수 백 개가 넘어가고 그 가문들의 상징물만 봐서는 가문의 수준을 알 수 없었지만 소녀들을 호위하는 기사나 하수인들의 수준을 보고는 어느 정도 가문의 ‘격’을 알 수 있었다.

기사들의 경우 가죽 갑옷을 걸친 이들과 조금이라도 판금이 섞인 이들 정도로 차이가 있었고 하수인들의 경우에도 가지각색의 일상복이 아닌 깔끔하며 단정한 맞춤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더 많은 이들을 그리고 더욱 차림새의 수준이 높은 기사들과 하인들을 데리고 있는 소녀가 고위가문의 자제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철그럭. 철그럭.

수많은 가문의 영애들이 이 자리에 있었지만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집단이 두 곳 존재했다.

“흥.”

“어머..”

바로 붉은 고리 문장이 새겨진 로브를 입은 소녀와 푸른색의 보석 형상이 그려진 로브를 입은 소녀. 이 두 소녀의 뒤를 따르고 있는 기사와 하수인들을 그 숫자도 숫자였지만 모두 풀 플레이트 아머와 통일된 집사복을 갖춰 입은 상태였다.

“하아? 어디서 흙냄새가 난다 했더니만 이게 누구야 귀족작위를 돈 주고 산 가짜 귀족이 있네?”

“후훗. 인사를 하시기도 전에 시비부터 거시다니 역시 그 쪽 가문 성격은 정말 못 말린다니까요~ 귀족으로서 품격을 갖추세요?”

마치 불과 물처럼 혹은 개와 고양이처럼 두 소녀는 서로를 보며 살벌한 말을 내뱉으며 그들만의 인사를 나누었다.

“또 시작이로구만.”

“미리미리 몸을 피해야지..”

선발시험을 위해 사제단 건물 앞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또 다시 부딪치려고 하는 두 소녀와 가문의 가신들을 보고 몸을 피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두 소녀의 싸움은 수도 사람들에게 유명했다.

단순한 어린여자애들의 말싸움이 아닌 가문 대 가문의 싸움이다. 소녀들의 소속은 이 이노센티아에서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가문들이었다.

붉은 머리의 트윈테일을 하고 있는 소녀는 카린, 4대 가문 중 하나인 레드벨트 가문의 사람이며..

푸른 물결웨이브 머리를 하고 있는 소녀는 뮬느 블루스톤, 마찬가지로 4대 가문 중 하나인 블루스톤 가문의 사람이다.

두 가문은 애초부터 견원지간이었다.

4대 가문의 서열을 따지자면 1위는 화이트우드, 2위는 그린 녹스 그리고 3,4위가 레드벨트와 블루스톤이었는데 이들은 1,2 위의 가문들과는 상대가 안 되니 서로 3위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그것도 선의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서로를 비난하고 시비를 걸며 심할 때는 전력을 부딪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레드벨트는 블루스톤을 미스릴광산업으로 귀족 작위를 산 졸부 가문이라고 무시했고 블루스톤은 성정이 불 같아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레드벨트 가문 사람들을 보며 귀족으로서의 품격이 떨어진다고 무시했다.

“보아하니 꼴에 신성 수녀단 시험에 참가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신성력이나 갖춰졌을지 몰라? 블루스톤에는 전통이라고는 뭣도 없잖아? 고위가문들을 역사적으로 신성력을 쌓는 방법을 갖고 있는데 말이야.”

마치 동네 양아치가 시비를 거는 것처럼 카린 레드벨트는 비웃음을 가득 담으며 뮬느 블루스톤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것은 카린의 곁을 지키는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 투구에 얼굴이 가려져 있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블루스톤 기사들을 깔보고 있었다.

“꺄하핫..!”

“..!?”

당연히 뮬느가 화를 낼 줄 알았지만 오히려 경쾌한 웃음을 터트리자 카린은 당황했다.

“어머 실례했군요.”

카린의 시선에 입가를 가리며 말을 내 뱉은 뮬느는 자연스레 고소를 지으며 카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카린 레드벨트님의 그 언성이나 몸가짐을 두 귀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자니.. 이런 품격 없는 사람이 4대 가문 소속이라니..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네요.”

“뭐..뭣?! 격이 떨어져?! 격이 떨어지는 건 광산 몇 개 발견해서 번 돈으로 작위를 사고 귀족인 척하는 너희 블루스톤 가문이겠지!”

“그 광산 몇 개가 이노센티아 교국 전체 광물 공급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모르시나 보네요? 어쩌면 그 쪽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도 저희 광물로 만들어졌을지도?”

“하! 그깟 광물 좀 판다고 해서 뭐라도 되는 줄 아나본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문의 전통이나 역사가 생기는 건 아니거든?!”

“큿..!”

카린이 계속해서 전통성을 걸고넘어지자 결국 뮬느 블루스톤의 미소가 깨지고 말았다. 뮬느 블루스톤은 평소 귀족으로서의 자세나 품격에 대해 집착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가문에 전통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콤플렉스나 다름없었다.

“흠. 흠.”

다시 헛기침을 하며 이성을 유지하고는 눈은 카린을 노려보며 입만 웃고 있는 채로 말을 이었다.

“벼락부자.. 뭐 인정하도록 하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저희가 광물업을 해서 벌어들인 풍족한 돈은 전부 영지민들을 위해 사용 되었어요. 영지민들 사이에 가장 살기 좋은 영지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 저희 블루스톤의 영지라고요?”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에 반해 레드벨트 가문은 어땠었더라~ 레드 벨트 가문 사람들은 너무 다혈질이라 영지민들이 힘들다고 저희 영지까지 소문이 났다고요? 푸훗! 그렇게 신성제국의 영지민들을 괴롭히니 어디 라키엘님이 신성력을 부여해주시겠어요?”

“너..너엇! 말 다했어?!”

“선발 결과는 안 봐도 뻔~ 하네요. 제가 신성수녀단의 단장. 그 쪽은 뭐 평단원? 아니면 시험에도 붙지 못해서 울면서 집에 가려나요~”

“하! 잘도 지껄였겠다. 라키엘님이 신성력을 부여해주셨는지 아닌지 직접 그 몸으로 체험해볼래?!”

끼릭-! 철컥..!

카린이 입고 있는 로브의 소매로부터 붉은 색의 철조각이 일어나며 양 주먹을 덮는 권갑의 형태가 되었다.

성물이라 하여 신성력을 증폭시켜주는 장비였다.

당연히 그 가격은 부르는 것이 값인 만큼 고위 성기사라 할지라도 쉽게 얻지 못하는 물건이다. 어린 소녀인 카린이 이런 성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레드벨트 가문의 힘이었다.

“말로 안 되니까 무기를 드는 꼴이라니.. 하아 모두가 보고 있는데 이게 웬 망신일까요.. 허나 고삐풀린 귀족가의 망아지는 품격있는 블루스톤의 혈족인 제가 처리하는 것이 도리이겠죠!”

툭.. 철컥-!

뮬느가 로브의 다리를 걷으며 구두를 벗자 그 발 위로 하이힐과 같은 청색의 그리브가 장착된다. 카린이 장착한 권갑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성물이다. 비록 레드벨트보다 역사는 떨어지지만 블루스톤은 매우 부유한 가문이었다.

스릉-!

두 소녀가 장비를 장착한 것을 신호로 양쪽의 기사들 역시 주인의 의지를 따를 수밖에 없었는지 검을 뽑아 들었다.

“후우..”

“하아..”

당장에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살벌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사제단 앞에서 두 가문의 충돌을 보고 있던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막아야 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행동으로 나설 수 없었다.

저 소녀들의 가문이 어떤 곳인가? 4대 가문인 레드벨트와 블루스톤이다.

두 가문이 교단 내에서 가지는 입지를 생각했을 때 괜히 끼어들었다가 한 쪽의 원한이라도 사는 날엔 앞으로의 교단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었다.

성기사와 사제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두 소녀를 쳐다보고 있을 때..

“지금 신성한 대 신전 앞에서 뭣들 하는 짓입니까?!”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나타난 남자가 두 소녀의 사이로 끼어 들었다.

“앙?!”

“흐음?”

감히 누가 자신들에게 소리쳤냐는 얼굴로 동시에 고개를 돌린 카린과 뮬느. 그 시선 끝에 서있는 남자는 큰 키와 금발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몽크의 특징인 수행자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카린의 붉은 눈동자와 뮬느의 푸른 눈동자가 동시에 사내의 잘생긴 얼굴을 살피고는 하얀 로브의 어깨 부분에 달려 있는 은빛 태양이 새겨진 견장을 발견한다.

‘은빛 태양의..’

‘견장이라면..?’

골몰히 생각하던 두 사람은 동시에 답을 찾아냈다.

‘평가관!’

신성수녀단 선발에 앞서 사도궁을 지킬 신성사제단을 뽑는 시험이 있었다. 성기사, 몽크, 정식사제 가릴 것 없이 정예들만을 선출했다는 그 시험의 평가관들이 어깨에 은빛 태양 견장을 달고 있었다.

신성수녀단과 신성사제단 그 이름은 약간 다를 뿐이지만 두 집단은 분명 관련이 있다.

신성사제단의 평가관은 신성수녀단의 평가 내용 역시 관여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두 소녀는 즉시 행동을 취했다.

“얘..얘가 시비를 걸어서!”

“어머? 무슨 소린가요! 먼저 졸부라느니 돈으로 작위를 샀느니 하면서 저희 가문을 비방한 게 누구인데요?”

“비방이라니? 사실을 말했을 뿐인걸!”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말 다했어요!?”

평가관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최대한 얌전한 척을 하려한 두 소녀였지만 몇 마디 채 나누자마자 곧바로 전투모드로 돌입하며 또 다시 한 판 붙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에 작게 한숨을 내쉰 남자는 발을 살짝 들어올리며 그대로 땅을 내리찍었다.

콰앙-!

남자의 작은 발 굴림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굉음이 울린다. 깜짝 놀란 카린과 뮬느가 입을 다물고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영애들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거대한 소리와 달리 그 어떠한 충격도 퍼지지 않았으며 발이 닿은 바닥 역시 흠집하나 생기지 않았다.

남자의 완벽한 힘 조절에 감탄하며 눈앞에 있는 평가관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란 것을 모두가 느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레드벨트의 카린! 카린 레드벨트에요!”

뮬느보다는 비교적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카린이 분위기를 깨며 남자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 물었다.

저벅.

그에 한 걸음 물러난 사내는 두 손으로 포권을 하는 몽크의 예를 표하며 카린에게 답했다.

“저는 사제단 소속 수행사제 이반입니다.”

“이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반.. 이반.. 천재 이반?!”

말은 카린 먼저 걸었지만 남자, 이반의 정체를 떠올린 것은 뮬느가 더욱 빨랐다.

“그 이반 사제님이라니..”

뮬느는 새삼 이반의 얼굴과 견장을 번갈아보며 탄성을 흘렸다.

수행사제 이반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주 유명한 존재였다.

보통 중년의 나이나 경험이 많은 사제들이 들어가게 되는 수행사제의 직위를 젊은 나이에 얻어냈다는 것 자체부터 놀라운 일이었으며.

평소 크루세이더나 성기사 가리지 않고 때려눕히며 형편없다는 말을 하는 5사도가 유일하게 ‘키우면 쓸만하겠네!’라는 평가를 내린 주인공이 바로 사제 이반이었다.

이반이 비록 고아출신이며 아무런 배경이 없다는 흠이 있지만 사실 그건 별로 큰 문제도 아니었다.

신성교국의 사도 중에도 고아원 출신이 있으며 그것은 주교나 크루세이더 역시 마찬가지다.

소속 배경이나 신분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신성교국은 라키엘을 모시는 교단인 만큼 충분한 신성력과 재능만 타고난다면 얼마든지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

천재 중의 천재인 5사도가 인정한 이반이라면 크루세이더 단장을 넘어 사도 바로 밑에 위치하는 추기경의 자리까지 오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 소녀의 머리에 스쳤다.

‘평가관인 이반 사제를 꼬신다면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반님 정도라면 높은 자리에 오르시겠지.. 게다가 저 얼굴과 재능.. 성격까지 나빠 보이지 않아.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음?”

“허?”

서로의 생각을 눈치 챈 것인지 암표범과 같은 눈빛으로 라이벌(?)을 째려본 카린과 뮬느는 이반을 먼저 얻겠다는 의욕으로 태도를 바꾸며 이반을 향해 달라붙었다.

“이반사제님의 위명은 전부터 들었어요! 이노센티아 전역을 돌며 수많은 마물을 해치우고 사람들을 구해주시는 이반 사제님.. 아아 얼마나 멋지신지! 전부터 이반 사제님을 흠모하고 있었어요! 그 경험담을 듣고 싶은데 제가 아는 좋은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이 어떠신가요?”

“어쩜 이반 사제님이셨구나! 저도 권법을 연마하고 있는데 최근 막히는 부분이 있는데.. 우.연.찮.게도 5사도 성권님의 인정을 받으신 이반님을 만나게 되었네요! 혹시 저에게 한 수 지도를 해주실 수 있나요? 이제 선발 시험을 봐야 하는데 너무 불안해서..네? 안 될까요?”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 있는 몸의 부위를 강조하며 이반에게 들이대는 두 소녀. 그것을 상대하는 이반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소녀들에게서 떨어지며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두 분의 호의 감사합니다만.. 저는 아직 평가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참가자와는 사사로운 만남을 가져서는 안 되지요. 부디 거절을 노여워 하지 마십시오.”

“아..”

“그..렇군요.”

이반이 말한 평가관이 지켜야 할 규칙이란 아무리 4대 가문의 두 영애라고 해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었다.

두 소녀는 잘생기면서도 모든 면이 완벽한 이반을 두고 탐욕이 솟구쳤지만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이반에게 다음을 기약하려고 했다.

“그럼 원활한 선발 시험을 위해 두 분께서 다투시지 않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일이 있어서 이만.”

허나 이미 소녀들의 속내를 눈치 채고 있는 이반은 빠르게 물러나며 다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후우.. 접수나 해야겠다.”

“이반 사제님 시험장에 오시려나..?”

싸울 의욕이 사라진 듯 카린과 뮬느는 그대로 사제단의 건물 쪽으로 가문의 사람들을 이끌고 이동했다. 몰려 있던 인파들 역시 빠르게 흩어지며 용무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성수녀단 선발 시험에 응시할 분들은 이쪽으로 모여 주십시요!”

잠시 후 사제단 건물 앞에서 응시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 앞으로 선발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끝없이 긴 줄이 늘어졌다.

“응? 뭐야! 너 왜 새치기해?”

“새치기라니요? 엄연히 제가 먼저 왔는데요!”

접수처의 가장 앞 쪽에서 또다시 마주친 레드벨트 가문과 블루스톤 가문. 그 대표인 카린과 뮬느는 개와 고양이의 사이처럼 또다시 서로를 보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줄의 가장 앞줄이기에 누구든 먼저 접수를 끝낸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허나 둘 다 승부욕이 강하고 신성수녀단의 단장, 즉 1등을 노리는 만큼 접수조차도 1등을 놓치기 싫어하는 두 사람이었다.

“저기..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두 분 중 아무나 접수를 하시면.. 안 되시는 것인지.”

보다 못 한 접수처의 사제가 다가오면 말하자.

“내가 먼저 왔어요!”

“제가 먼저 왔어요!”

버럭 하며 외치는 두 소녀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점심에 있었던 대치상황이 재현될 판국이었다.

“응? 저 분은..?”

“흥! 뭐가 있는 척하고 먼저 접수할 생각이지 내가 속을 것 같아?!”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멍하니 서있는 뮬느를 보며 카린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지만 그런 카린을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것처럼 뮬느는 시선을 고정한 채 뭐라 말할 수 없는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어이없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체 뭔데..?’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 한 카린 역시 뮬느가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반 사제님이잖아!”

뒷줄에 서있는 이반을 보고 환한 웃음을 띠운 카린이었지만 이내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있는 줄은 신성수녀단의 응시자들이 대기하는 줄이다.

평가관인 이반이라면 굳이 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곧바로 사제단 건물 내로 입장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응시자들이 기다리는 줄에 서 있다는 것은..

‘이반 사제님 옆에 여자애..?’

이반 사제의 옆에는 한 소녀가 서있었다.

검은 수녀복을 입은 사제. 보통 검은 수녀복은 견습 사제들이 입는 복장이다.

이곳에서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제들의 경우 순백의 정식 사제로브를 입고 있었기에 그 검은 수녀복은 상당히 눈에 띠었다.

이반에게 관심이 있고 그 정체를 알고 있는 카린과 뮬느는 검은 수녀복의 소녀와 이반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엘리제 이곳이 접수하는 곳이다. 아마 접수를 하고나면 혼자서 들어가야 할 거야.”

“오라버니 저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그런 말마라. 그래도 친한 동생이 중요한 시험을 본다는데 그 앞까지는 데려다주는 것이 오빠로서의 도리 아니겠니?”

“그런가요?”

‘아까 전에는 참가자와는 사사로운 대화는 할 수 없다면서!!’

카린과 뮬느의 눈을 뒤집히게 하는 것은 이반이 소녀를 대하는 태도였다.

아무리 봐도 소녀는 응시자처럼 보이는데.. 자신들에게는 응시자와는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라며 철벽을 쳤던 이반이 검은 수녀복의 소녀에게는 너무나도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나누고 있었다.

오히려 소녀는 심드렁한데 이반이 더욱 호감을 표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쟤가 누구 길래! 혹시 여동생?’

‘정식 사제 로브도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자연스레 이반사제의 호감을 끌어내는 소녀의 정체가 궁금했고 소녀를 관찰한 결과.

‘뭐야.. 몸매가..’

‘어떻게 저런 몸이..!?’

소녀는 분명 자신과 또래였으며 키도 비슷했다.

허나 검은 수녀복 위로 드러난 골반의 라인이나 풍만한 가슴은 몸 전체를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을 너무나도 육감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소녀의 분위기가 차분하여 그 몸매의 발달된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또래의 소녀에게는 있을 수 없는 발육이 아닌가?!

순간 카린은 자신의 가슴을 뮬느는 자신의 엉덩이를 내려다보고는 소녀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쟤.. 짜증나!“

“뭔가 기분이 나쁘네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4대가문의 후계자 두 명을 적으로 만든 엘리제였다.

[작품후기]

으아아 우선 알바출반 1분전이라 빠르게 예약 걸고 갑니다!

200화 축하 감사합니다!

댓글 하나하나 읽어봤고 엄청 힘이 났습니다 ㅠㅠ

앞으로도 신사님들의 필독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엘로아가 루토랑 만난 시점은 이미 엘리제가 신성수녀단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지금은 과거 시점이지요!

추천 댓글 선작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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