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촉수가 되었다-187화 (187/266)

주인공은 바트레이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187회

Chater 5 : 감춘 자들

신성교국 이노센티아의 수도는 센트리얼이다.

센트리얼은 이노센티아의 수도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과거 여신이 머문 곳이라 하여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센트리얼의 중앙에는 거대한 대신전이 세워졌고 신성교국이라는 체계가 잡히고 성황 성녀 사도 성기사와 사제들등 거주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그 내부로 여러 건물들과 함께 그들이 지내는 궁전이 세워졌다.

궁전은 그 내부로 여러 ‘궁’으로 나뉘었고 이 궁을 사용하는 것은 주로 성녀와 사도들이었다.

각 사도에 맞춰 하나의 궁전이 주어진다.

사도들의 성격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기에 수련을 위한 연무장으로 가득 찬 궁전이 있는가 하면 조각상이나 나무와 꽃으로 가득 찬 궁전도 있었다.

성황 역시 제 1사도이자 성황을 함께하고 있기에 궁전이 존재했다.

성황의 궁전은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장미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흐음..”

녹색의 넝쿨과 장미로 가득 찬 정원, 그 한 가운데 놓여 있는 흔들의자에 한 노인이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잠을 자는 중인지 아니면 주변의 풍경을 즐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노인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티 없이 하얀 수염이 가득한 얼굴과 옆집 할아버지처럼 인자 해 보이는 인상. 이것까지만 봐서는 특별할 것도 없었으나 노인이 걸치고 있는 백색의 로브와 의자 옆에 기대어진 태양의 홀(지팡이)를 보면 노인의 지위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노인은 신성제국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명령하는 ‘성황’이다.

철그럭. 철그럭..

그때 정원을 가로 지으며 두 명의 성기사가 성황에게 다가왔다.

백색의 판금 플레이트를 전신에 걸친 성기사들의 가슴과 어깨에는 황금태양이 새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성기사의 경우 은색의 태양이 새겨진다.

황금의 태양은 성기사들을 이끄는 ‘장’급의 성기사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기사보다 높은 급으로 쳐주는 성기사의 격을 생각하면 성기사들을 이끄는 성기사장들은 국가에서 매우 높은 위치로 취급되었다.

허나 아무리 높은 직위라 해봐야 정점인 성황에 비한다면 태양 앞에 반딧불인 것이다.

두 성기사장은 한껏 긴장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성황을 보며 고뇌했다.

평소 성황의 휴식시간에는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성황을 깨우지 말 것이라는 엄명이 있었다.

그것은 성녀인 클레어 이노센트가 찾아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장미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성황을 깨우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다.

허나 이렇게 성황을 깨우러 온 것은 제 2사도의 방문 때문이었다.

항상 교국의 큰 행사나 의식이 아니면 얼굴조차 비추지 않는 2사도 바트레이가 직접 찾아와서는 성황을 뵙겠다는 주문을 넣었다.

휴식시간이기에 안 된다고 말해봤지만 2 사도 바트레이는 무감각하면서도 살벌한 기세를 피우며 당장 성황에게 알려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고 언급하며 두 성기사장에게 압박을 가했다.

나름 신성력과 검술 면에서 자신 있으며 성기사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무력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바트레이의 앞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장미정원까지 내몰린 것이다.

“성하.. 성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작은 목소리로 성황을 불렀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의견을 교환한 성기사장들은 2사도가 왔다는 이야기까지만 하고 성황이 깨어나지 않는다면 돌아가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성하.. 2사도께서 오셨습니다!”

스륵.

“..!”

2사도를 언급한 순간 거짓말처럼 눈을 뜨는 성황의 모습에 성기사장들은 헛숨을 들이켰다.

천천히 눈을 뜨며 홀을 지지대 삼아 일어나는 성황을 보며 두 성기사장들은 전설 속의 드래곤을 깨운 것처럼 긴장했다.

“하아암..”

크게 기지개를 피며 하품을 하는 성황. 갑옷까지 입은 성기사들의 체구가 작은 것이 아님에도 성황은 그들보다도 머리가 한 개는 더 커보였다. 성황이 푸른 눈동자로 자신들을 내려다보자 휴식을 방해했다고 호통을 먹는 것은 아닌가?! 란 생각을 떠올린 성기사들은..

“죄..죄송합니다! 성하!”

“휴식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성기사들이 이렇게 성황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 직위의 차이보다도 성황의 평소 보이는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다. 여신을 모시는 나라의 성황이기에 온화한 성격일 것이라 생각하면 완전히 착각이다.

성황은 제멋대로였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욕할 수 없는 것은 과거 죽음의 군주,안드레아가 망자의 군단을 일으켜 대륙을 침범했을 때 성황이 앞에 나서 ‘신안(神眼)’의 힘으로 불사의 군단을 저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웅이며 신성 교국의 최고 존엄이다. 성기사장들로서는 어려워 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그래.. 일어나자마자 고개를 박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니 기분이 아주 새로워. 그나저나 2사도가 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성하께 긴급히 전해야 될 내용이 있다고 하셔서.. 지금 당장 2사도를 모셔 오겠나이다!”

성기사들이 벌떡 일어나며 다시 궁전의 바깥쪽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성황은 성기사들보다도 앞서 걸으며 중얼거렸다.

“됐다 됐어. 노인네가 멀리서 찾아왔는데 한참이나 어린 내가 가는 게 맞겠지..크흠.”

“...?”

순간 성기사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2사도 바트레이는 아무리 보아도 젊은 청년이고 성황은 백발의 노인이다. 그런데 노인네가 찾아왔다니..? 어리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들린 것이다.

따라오는 두 성기사장이 어떤 표정을 짓든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성황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장미 정원을 나섰다.

끼이익-

궁전의 문이 열리며 성황궁 특유의 소재인 대리석으로 지어진 백색의 건물 내부가 보인다.

긴 궁전홀에는 계단 두 개 정도로 높은 단상 위에 왕이 앉을 법한 왕좌가 놓여 있다.

그 단상의 앞에서 금속으로 이루어진 흑갑을 입은 청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저벅. 저벅.

성황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청년이 고개를 돌려 성황을 바라봤다.

“허허! 아주 대단해! 하루만에 이노센티아 전역을 돌며 일을 끝마치다니! 역시 엠프..아니 이노센티아 제일의 검사야!”

성황이 껄껄거리며 자리에 앉자.

척-

“제 2사도 바트레이 엔드리스, 성황을 뵙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바트레이가 말했다.

“아니 인사는 되었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완벽하게 처리했겠지?”

“...”

성황이 재차 ‘일’의 경과를 묻자 바트레이는 묵묵히 시선을 돌려 근처에 있는 성기사장들을 보았다.

“아아, 내가 급했군. 내가 긴히 2사도와 나눌 말이 있으니 알아서들 자리 좀 비켜주게 그리고 아무도 성황궁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고.”

“예, 성하!”

성기사장들이 황급히 물러나자 성황궁 내에는 바트레이와 성황만이 남게 되었다.

“자, 이제 말해봐! 잘 됐겠지?”

“전부 죽였다. 또한 방해가 될 요소 역시 전부 지웠다.”

자리에서 일어난 바트레이는 성황을 똑바로 보며 존댓말이 아닌 반말로 대답했다.

사도는 어디까지나 성황의 직위 아래, 거기에 더해 바트레이는 30대로 알려져 있다. 성황의 나이가 최소 80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행동은 매우 무례한 것이 틀림없었다.

“바트레이 자네! 성황인 내게 반말을 하다니! 게다가 내가 일어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똑바로 쳐다봐?! 이거 성국의 법도가 완전히 무너졌군 그래!”

평소 괴팍한 성격을 대변하듯이 성황은 자리에서 방방 뛰며 바트레이를 지적했다.

허나 철가면과도 같은 무표정인 바트레이는 작게 고개를 젓고는 성황을 보며 말했다.

“역할 놀이가 제법 재밌나 보군. 적당히 해라 로제.”

“흐응.. 레이 조금 어울려 주면 안 돼? 매일 뻣뻣하게 구는 레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단 말이야!”

“그 모습으로 그런 목소리 쓰지마라. 소름끼치니까.”

“푸핫! 레이가 소름도 끼치는 사람이었어? 난 표정 변화 없는 인형인 줄 알았는데! 알..알았어. 알았다구! 그렇게 노려 보지마.. 상처받아 나.”

스르륵-..

성황의 거구가 신기루처럼 일그러지며 작아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엠프레스 제국의 미소녀 장군 크림슨 로제 등장!”

..브이를 하는 분홍빛 컬러의 작은 소녀가 서있었다.

스스로 미소녀라 자칭하기는 했지만 소녀는 확실히 ‘미소녀’였다.

벚꽃색의 롱 웨이브 헤어와 백색의 유리그릇과도 같이 매끄럽고 티 없는 뽀얀 피부 그 위에 자리 잡은 앙칼진 느낌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황금색과 붉은색의 오드아이.

소녀의 외모에서 티라고 해봤자 입 밖으로 작게 난 송곳니 밖에는 없었지만 그것마저도 외모와 합쳐져 상당히 귀엽다는 매력이 느껴진다.

이런 소녀의 미적인 부분은 인간적인 수준을 넘어섰다. 요정 혹은 천사.. 허나 단순히 아름다움을 제외하더라도 소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머리위에 쓰여 있는 검은 수정 왕관은 사실 소녀의 뿔이었으며 등에 난 박쥐날개와 천사날개는 아인종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확실한 이종. 그것도 소녀는 마인족이 확실시 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신성교국의 사제나 성기사들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눈이 뒤집힐 일이었다.

성황이 소녀로 변했다는 것 자체도 기상천외한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마인족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더욱 경악할 일이다.

마인족은 뱀파이어, 서큐버스, 데몬, 언데드 등 인간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둠 속성의 마나를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국가가 세워지는 초기부터 멸망을 불러일으키는 저주받은 종족이라 칭해지며 천대 받았다.

- 우리를 억압하고 고통을 준 가증스러운 이들에게 복수하자!

- 죽음의 군주 안드레아님을 따르자! 우리들의 나라를 세우자!

그런 상황에서 죽음의 군주 안드레아가 나타나고 마인족의 영광을 부활시킨다는 명목으로 망자의 군대를 일으키자 이에 호응한 마인족들은 죽음의 군주에게 합류해 전쟁에 참여했고 수많은 인간과 아인종들을 학살했으며 또한 자신들 역시도 학살당했다.

지금에 와선 마인족들은 인류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전부 국가 단위로 척살 당했고 멸족 당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가장 앞에서 영광스러운 신성력을 흩뿌리며 마인족과 망자의 군대를 응징하던 성황이 마인족 소녀라니..!

보이는 그대로를 믿기 보다는 마인족이 성황을 감금한 상태에서 마인족을 내세워 성황인 척 했다고 하는 것이 더욱 그럴싸하다.

“후훗!”

허나 현실은 있는 그대로였다.

애초부터 지금까지 성황은 크림슨 로제 이 마인족 소녀였을 뿐이다!

또각-

소녀가 신고 있는 굽이 바닥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성황의 옥좌를 돌아본 로제는 자신의 자리라는 양 편하게 앉아서는 다리까지 꼬았다.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허벅지를 겹치고 있으니 치마가 올라가며 은밀한 부분이 보일 것만 같았다. 어린 소녀가 그런 자세를 취해봤자 이상 성욕이 아니고서야 욕정이 들 리 없을 테지만..

지금 로제의 모습을 그 어떤 수컷이든 보았다면 욕구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외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닌 상대를 홀리게 하는 마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서큐버스와 뱀파이어의 혼혈. 그것도 우성만을 받았기에 선천적으로 강력한 참(매혹) 마력이 상시 발동 된다.

그 마력을 드러낸 이상 단련된 무인이나 수양이 깊은 마법사라 할지라도 로제에게 홀려 그녀의 손가락질에 휘둘릴 것이다.

“...”

“뭐야~ 그 반응 재미없어!”

..하지만 바트레이는 여전히 같은 표정을 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쨌든.. 일은 잘 끝났다는 거지? 잘 됐네. 방해될 만 한 건 우리 쪽에서 전부 없애줬으니까 이 정도면 우리 꿈틀이가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성녀는 어떻게 되었지?”

“그 쪽도 꿈틀이가 사람을 보내서 간을 보는 것 같아. 뭐 솔직히 가장 큰 장애물은 성녀를 보호하는 가디언들이겠지만~ 난 믿어! 우리 꿈틀이가 성녀의 자궁마저도 함락시켜서 퍼엉-! 해줄 거란 걸.”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설명하는 로제의 모습은 상당히 귀여웠지만 그 내용만큼은 결코 귀엽지 않았다.

이노센티아의 성녀는 대대로 빛의 여신 라키엘과의 연결점이고 성녀가 해를 입는 경우.. 지상에 라키엘이 강림한다.

그것은 기적임과 동시에 재앙이었다. 라키엘이 모든 악을 멸해주지만 한 번의 강림으로 성녀의 몸에 모아놨던 신성력이 전부 소모되어 교국은 성녀를 잃게 되고 다음 성녀를 뽑기 위해서는 또 막대한 신성력을 모아야 한다.

그 신성력을 모을 때까지 사제들이 동원되고 시간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신성교국이 가진 힘의 약화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밤의 여신을.. 부활시킬 생각인 것이냐? 로제.”

“물론이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로제의 말투에 바트레이는 처음으로 표정을 구기며 다음 말을 이었다.

“여신을 부활시키면.. 이 땅 위의 모든 것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폐하께서는 자신이 죽더라도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증오하지 말고 지켜내라 하셨다.”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 바트레이를 보며 순간 로제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파각-!

손에 힘이 들어가 잡고 있던 의자대가 부셔지고 로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똑바로 선 채 바트레이를 쳐다보는 로제의 눈빛은 원수를 대하는 것처럼 증오와 분노만이 가득했다.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지켜..? 바트레이가 만약 네가 폐하의 죽음을 보았다면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었을 것 같아?! 폐하가 어떻게 죽으셨는데..! 난 아직도 생생해!”

우우웅--..!!

로제의 분노에 반응하여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고 검은 구체와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진정해라 로제.”

“용족들이 폐하의 심장을 짓이기고! 엘프들이 화살로 폐하의 두 눈을 꿰뚫고! 수인들은 폐하의 팔 다리를 잘라 내어 흙바닥에 내던지고! 인간들은 암흑제국의 마황제도 별 수 없다며 폐하의 목을 베어내고 조롱했어!”

“폐하께선 그들을 용서하라 하셨다.”

“용서?! 폐하가 뭘 잘못했는데! 그저 대륙의 고통 받고 차별받는 모든 마인족들을 모아 다 같이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자는 것뿐이었는데! 폐하가 아인종들을 차별하기라도 했어? 오히려 아인종들 역시 껴안으려고 하신 게 폐하였어..! 그들이 힘들 때 도움을 줬는데도.. 그들은 우리 제국의 힘이 커지는 게 두려워 아무 잘못도 없는 폐하를 잔인하게 죽인거야! 난 절대 용서 못 해!”

쿠구구궁..!!

진동은 이내 지진과도 같은 규모로 커졌다. 바트레이는 곧바로 검은 안개로 주변을 감싸 이변이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했다.

“마신이든..악마든.. 상관없어! 소니드가 모든 생명들을 지워? 바라던 바야! 여신에게 부활의 대가로 폐하와 모두를 살려달라고 할거야..! 그리고 백지가 된 땅 위에 다시 폐하와 함께 엠프레스 제국을 재건하는 거야! 만약 그것을 막으려고 든다면.. 설령 바트레이 너라고 해도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지이-잉-

로제의 주위에 떠있던 구체들이 동공이 되어 눈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마법진이 새겨진 눈동자. 도형이 새겨진 눈동자. 오로라와 같은 빛이 새겨진 눈동자. 수많은 종류의 마안들이 허공에 떠있다. 그리고 그런 마안들의 한 가운데 가장 거대한 크기를 가진 태초룡의 용안까지.. 그 모든 마안들이 로제의 의지로 조정된다.

드드득-!

수백의 마안에서 뿜어지는 마력과 권능이 바트레이를 압박한다.

바트레이가 입고 있는 갑옷이 덜덜 떨리며 가만히 있는데도 흠집이 생겨난다.

대상을 미치게 만들고 화상, 부폐, 출혈 등 온갖 상태이상에 빠지게 하는 저주가 마안들로부터 뿜어져 바트레이에게 집중된다.

그런 엄청난 마력의 공세와 저주를 받고 있음에도 바트레이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으며 말 없이 서있었다.

“으윽..”

오히려 먼저 지친 것은 힘을 쓰는 쪽이었다.

로제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자 그때서야 바트레이는 천천히 손을 들어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했다.

촤르륵-!!

쐐애액---..!

검은 안개 속에서 솟구친 사슬에 감긴 검들이 로제의 주변 마안들을 향해 날아가..

차앙-! 파차창-!!

.. 꿰뚫는다.

사슬검에 닿은 모든 마안들은 유리파편처럼 깨어져 사라졌다.

-털썩..!

“흐윽.. 후욱..”

마안을 운용하며 한 순간에 너무나 많은 마력을 사용했고 심지어 마안이 해제되며 그 역소환의 부담까지 얻어맞았다.

로제는 의자에 앞에 무릎을 꿇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지만 로제는 그 상태에서 엉금엉금 기어가 바트레이의 다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도와줘.. 흐윽.. 나 혼자서는 무리야.. 너는 힘이 있잖아 레이..응?”

방금 전까지의 살벌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어린아이가 사정을 하는 것처럼 젖은 목소리로 말한다.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 위에는 간절함과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그런 로제를 내려다보며 바트레이는 다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최후를 맞이하기 한 달 전 쯤 자신을 불러 태연한 얼굴로 곧 죽는다고 말하던 황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죽는 것이냐며 묻고 납득 한 후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겠냐고 다시 물었을 때 황제는 말했다.

- 이미 아인종 연합의 증오심은 너무나 커져버렸어. 여기서 내가 더 버틴다면 전쟁만 길어질 뿐이지 나는 이쯤에서 죽는 게 맞아. 그러니 바트레이.. 내가 가진 힘을 너에게 맡긴다. 내가 죽더라도 너는 나를 죽인 이들을 원망하지 말 것이며 앞으로 대륙에 위기가 닥친다면 남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그 힘을 써줘.

‘너의 왕으로서의 명령이자 친구로서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어쩌면 황제는 그 때 이미 자신이 죽은 뒤 대륙에 재앙이 닥칠 것이란 걸 예상했을 지도 모른다.

아인종 연합국은 암흑제국을 멸망시켰다며 승리에 도취되었지만 이내 엠프레스의 영토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분쟁을 일으키고 또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멸망을 예고하는 것처럼 태초룡 중 하나인 바하무트가 광마룡이 되어 날뛰었다. 광마룡이 뿜어내는 저주와 증오의 기운이 대지를 썩게 만들고 시체들을 망자로 만들었다. 이미 대륙.. 지금은 구대륙이라고 불러야 할 그 장소는 그 무엇도 살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황제의 마지막 명령에 따라 바트레이는 마인족과 아인종 가리지 않고 그 생존자들을 새로운 대륙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암중에서 도왔다.

‘그런데 마인족들은 전부 죽어버렸다.. 나는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완전히 실패한 거야..’

“..바트레이 힘을 빌려줘.”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으며 말하는 로제의 모습에 바트레이는 황제의 명을 수행하는 기사라 여겼던 자신 역시도 멸망한 제국의 망령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작품후기]

후 갑자기 설정 풀어서 복잡하고 이해 안가실 것 같긴한데!

떡 소설에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어쨌든 저 녀석들은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녀석들!

촉수를 이용하면 ㅈㄱ에 촉수 박히는 거야!

다음 편 부터 엘리제와 천사주인 줄여서 천주의 '신성한촉수'들이 이어집니다. 성녀까지 달립니다.

- 구대륙을 멸망시킨 광마룡 바하무트는 밤의 여신 소니드가 처음 낳은 도마뱀 녀석입니다. 다른 태초룡보다 너무쌔서 날뛰는데 같은 동지인 태초룡들은 '우린 세상 일에 관여 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몸을 피합니다.

- 광마룡 바하무트는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던 화염의 태초룡 드라그닐하고 바트레이가 때려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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