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촉수가 되었다-133화 (133/266)

신성제국에 10명 그란디아 제국에 5명 무협 수왕국 애니마스에 3명 엘프독재국가 윈터가든에 2명 입니다! 133회

Chapter 4 : 빛의 용사

- 나 왔다.

“오..오셨습니까. 주인님.”

말을 걸자마자 흠칫 몸을 떨며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나는 그녀의 몸 안, 자궁에 있기에 인사의 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는데도 양 무릎을 흙바닥에 꿇은 채 머리를 이마를 땅에 대고 극도의 예를 취한다.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따지고 보면 회사의 회장님이 말단 직원의 앞에 나타난 상황과 다름없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할 것이다.

나는 모든 촉수 생명체들의 주인이고 지금 내가 깃든 여인, 시온은 에로프인 동시에 제 2군단 소속인 실피와 레나의 직속부하이니 말이다.

어쨌든 귀를 축 늘어트리고 얼굴을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귀엽게 느껴진다. 근래 들어선 완전히 미친 변태(내가 그렇게 만든)들이나 혹은 건방진(차후 얌전하게 만든) 녀석들만 보다가 이렇게 순수한 엘프녀를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고 할까.

물론 시온 역시 에로프인 이상 속에 음습한 욕구가 존재하겠지만 그 정도는 기본적인 애교나 다름없다.

- 여기가 내가 보낸 장소란 말이지..?

“ 네, 확실합니다. 주변에 있는 인간들의 도시에서 정보를 수집한 바. 주인님이 의식으로 전해준 위치가 틀림없습니다!”

상관에게 보고를 하는 병사처럼 힘차게 외치는 시온의 목소리를 들으며 공간인지를 넓게 퍼트려 주변을 살핀다. 지금 시온과 내가 있는 위치는 어느 산 중에 그리 높지 않은 절벽이다. 이곳에 위치를 잡은 이유는 밑을 내려다보면 특별한 장소가 보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형태의 사각 건물이 세워져 있으며 그 주변으로 철제 장애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이곳. 병사들을 자세히 보면 입고 있는 장비에서 익숙한 태양의 무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이곳은 성군이 자리 잡은 군영이다.

왜 이런 도시가 있는 인근 산중에 임시로 세운 것도 아니고 도시의 안전을 살핀다고 하기엔 과할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군대가 자리 잡고 있냐는 의문이 들법한 풍경이지만 한 가지를 감안하면 해답이 나온다.

이곳에 오기 전 엘레노어에게 들었던 용사와 마경의 관계.

마경에서는 언제 웨이브가 발생할지 알 수 없기에 늘 인근 국가의 군대가 잔류한다.

즉 이런 병력이 필요 없는 장소에 군영이 세워져 있는 건 이곳에 마경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나 다름없다.

퀘스트에서는 이곳에 도착하면 반친구들의 정보를 준다고 나와 있는데.. 빛의 용사가 정말로 반 아이들이라면.. 난 이곳에서 반친구들과 재회하게 되는 걸까?

설레임과 유사한 흥분과 불안감이 교차한다.

너무나 변해버린 흉측한 지금의 내 모습. 게다가 그동안의 일들을 겪으며 일그러졌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속내. 그 전부를 보게 된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허나 여기까지 온 이상 뭐라도 확인은 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 도망쳐봤자 계속해서 후회만이 남을 테니 결판을 내려야 한다.

- 일단 주변의 정보를 모으자.

“알겠습니다. 주인님.”

시온을 움직여 군영 내로 잠입시킨다.

시온은 레나에게 은신술을 배우고 엘프의 특수기인 로아 역시 숙달했기에 일반 병사로서는 도저히 눈치 챌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몽크나 사제들이 눈치 챌 수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적어도 시온보다 강하지 않은 이상 그 은신술을 감지 할 수 없다.

이 군영을 공간인지와 집단의식이 섞인 범위로 탐색한 결과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시온의 은신술을 감지할 수 있는 이는 없으며 설사 눈치를 챈다고 해도 1대1의 상황에서 시온을 이길 인간은 없을 것이다.

정보수집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나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최근 이 마경에서 마물이 새어 나오는 일이 있음에 신성제국으로부터 5명의 용사가 파견되었으며 그 구성은 남 2 여 3 이다.

둘째 마경 공략은 실패하였으며 마경에서 빠져 나온 여 용사 2명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고 곧바로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 주교 급의 사제가 대기 중인 도시로 이동되었다.

“주인님, 원하시는 용사의 확인은 도시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만..”

- 흐음..

시온의 물음에 나는 곧바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아직 퀘스트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목적이 퀘스트 완료 보상인 ‘용사들에 대한 정보’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굳이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더라도 도시에 가서 그 다친 용사들이란 존재를 확인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직 3명의 용사가 저 마경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나온 두 명도 중상. 마경이 안전한 장소가 아니란 것을 생각하면 그 나오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되었을 지는 뻔하다.

그런데 혹시라도 살아있다면. 나는 이대로 가버려도 되는 것인가?

여태껏 촉수로서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나와 상관없는 별개의 것으로 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원래세계에서부터 알던 내가 인간이었을 때의 인연들이다.

- 마지막으로.. 마경의 입구를 한 번만 확인하고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인이시여.”

군영의 경비병이 최소로 줄어드는 밤까지 기다렸다.

마경은 군영의 가장 깊숙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마경의 입구까지 도달하는데 수많은 눈들을 지나쳐야 했지만.. 환한 낮에도 시온의 은신을 감지 못했던 이들이 밤이 되었다고 갑자기 눈이 뜨일리 없다.

오히려 밤의 어둠 때문에 산보를 하듯이 편안하게 마경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마경.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산중에 존재하는 크게 뚫린 동굴과 차이가 없다. 다만 그 뚫려 있는 검은 부분을 보면 볼수록 깊은 심연을 보고 있는 것처럼 안쪽을 헤아릴 수 없으며 공간인지와 집단의식으로 살피니 그 내부에서부터 검푸른 기운 같은 것이 새어 나옴을 알 수 있었다.

저 기운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생물에게 꺼림칙함을 느끼게 하는 불길한 무언가라는 것은 알겠다.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경이라서 그런 것인지 굴의 입구에 철제 장애물로 막아 놓고 몇몇의 경비병들이 창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하아암..윽!”

-털썩.

찢어지게 하품을 하던 경비병의 뒤로 이동한 시온이 목 뒤를 치고 입을 막는다. 눈이 뒤집히며 기절한 경비병은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넘어진다. 기절한 경비병을 구석진 곳에 숨긴 시온은 철제 장애물을 뛰어 넘어 굴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 여기가 마경..

“안으로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불길한 기운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내색조차 하지 않고 시온이 내게 물었다.

지금 시온의 상태를 보면 이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독이 될 수밖에 없으며 마경의 입구만을 확인하고 돌아갈 것이라 다짐하고 있었지만.

그 입구를 보는 순간..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욕구가 머릿 속을 가득 채운다.

이 감각은 이상하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눈앞에 둔 것처럼 혹은 절세의 보물을 눈앞에 둔 것처럼 저 마경 안에 있을 무언가를 취해야 된다는 충동감이 억제되지 않는다.

- 들어가라. 빨리.

나는 홀린 듯이 명령했다.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시온은 마경을 보며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키더니 그 기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시온의 손이 가장먼저 기운에 닿는 그 순간.

-화르륵!!

“끄윽..!”

마경 주위에 서린 기운이 울렁거리며 푸른 불꽃이 인다.

마치 이 앞으로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시온의 손을 불태운다. 불꽃은 뒤로 물러난 순간 사라졌지만 확실한 흔적을 남겼다. 화상을 입은 고통이 가볍지 않은 듯 시온의 두 눈이 커졌지만 이를 악물며 비명을 참는다.

- 이런.. 마경은 아르카디아 대륙의 존재는 접근 불가라고 했었지.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부족하여.”

그렇게 말하는 시온은 진심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처럼 귀를 축 늘어트렸다.

- 아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내가 멍청했지. 이 세계의 존재는 들어가지 못 한다라..

잠깐. 나는 이 세계의 존재인가?

빛의 용사들은 아르카디아 대륙인이 아닌 이계인이기에 마경으로의 입장이 가능했다. 나도 엄밀히 따지면 이계인 아닌가? 물론 일반적인 빛의 용사로 치면 사람과 지렁이 만큼의 차이가 있지만.

- 나 혼자 들어 가봐야겠다.

“주..주인님! 위험합니다. 방금 전 보셨다시피..”

- 난 괜찮을 수도 있어.

“그..그럼 주인님! 밖으로 나오시면 오랜 시간 활동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만..?”

- 확실히 제한시간이 있긴 하지. 그래도 최근엔 여러 소득이 있어서 말이야 양분만 있다면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내 의식이 깃든 시온 네 안의 있는 분열체에 모든 양분을 실어서 움직일 거야.

“그..그런..!”

시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모든 에로프들이 그러하지만 이상하게 그녀들은 자신의 자궁 안에 있는 분열체를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나와의 연결고리가 끊기는 느낌이라고 했던가? 그녀들 자체가 변이체이기에 통신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텐데 말이다. 어딘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꿈틀.. 꿈틀..!

“흐윽..”

자신의 그곳을 통해 분열체가 기어 나오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빠져나간다는 상실감 때문인지 시온 녀석이 울먹거린다.

- 혹시라도 이 분열체 닿자마자 타버리면 곧바로 도시로 이동해서 그 용사 2명을 추적해.

“네.. 주인님.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눈물을 닦으며 손을 흔드는 시온을 뒤로하고 나는 빠르게 분열체를 꿈틀거려 기운의 안쪽으로 움직였다.

-사아아아...

다행히 시온이 그랬던 것처럼 푸른 불꽃에 탄 지렁이가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기운에 몸이 잠기는 순간, 눈을 깜빡이고 보니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되어 있다.

검은 암석의 천장과 종유석이 솟아 있는 넓은 지형. 단순히 동굴의 내부가 아닌 땅 밑 지하세계로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곳이 마경이란 말이지.. 그나저나 본능이 이끄는 대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너무 넓어서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 지는..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 보상 : ‘용사에 대한 정보’를 습득 합니다! ]

[ 자동 위치 안내가 작동 합니다! ]

띠링! 거리며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머릿 속을 울리는 메시지.

분열체의 머리 위로 보라색의 화살표가 나타나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이거 어디서 겪어본 것 같은 상황인데.. 데자뷰?

과거 지렁이 시절과 그러했듯 보라색 화살표를 노려보던 나는 이내 화살표를 따라 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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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집에 돌아가고 싶어..’

원래 지니고 있던 평범한 일상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괴물을 사냥하고 또 사냥하며 끝없이 마경에 들어가야 하는 의무만이 남아있다.

마경과 마물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두려워 피하고 싶었지만 ‘용사’가 아니라면 그들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귀족이나 왕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고 용사로서 모두의 선망을 받는 것이 특권이 아닌 족쇄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 부디 용사가 되어 아르카디아를.. 이 세계를.. 구원해주세요. ]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천사나 여신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황금빛 휘광을 두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꿈이 아니었다.

같이 의식을 차린 두 사람 박현수, 김시연과 함께 마법진 위에 오르고 마경을 빠져 나온 순간 보인 것은 환한 순백의 배경과 함께 도열해 있는 사제와 성기사들의 모습이었다. 동화나 영화 속에서 나오는 중세시대 신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넓은 내부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오오! 라키엘님께서 내리신 빛의 용사님들이다!

- 빛의 용사에 걸 맞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시다..!

- 아아.. 빛의 모신이시여..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반응이란 다행히도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혼란스러워하며 주위를 살필 때 함께 동굴에 떨어졌던 두 사람이 있음에 안심하고는 그 외에도 비슷한 처지의 7명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모습이 달라져 한 눈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이내 그들 역시 함께 반에 있었던 반친구들이란 걸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셨겠지요. 힘드시겠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제 얘기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용사님들.”

그런 말을 건넨 것은 검은 단발머리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자신을 라키엘이라 말한 여신과는 다른 의미로 소년는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티 없이 맑은 푸른 눈동자와 검은 단발머리와 대조되는 백옥 같은 피부. 장식 없는 수수한 백색 로브를 입고 있음에도 그녀가 가진 고유의 안정적이고 상냥한 분위기가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어루만지듯 안정시킨다.

“저의 이름은 클레어. 이노센티아의 17대 성녀입니다.”

성녀? 성당에서 보는 수녀와 비슷한 것일까. 잘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자신을 성녀 클레어라 소개한 소녀와 대화를 나누며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이 나와 소환된 반친구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보낸 환희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든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해야 할 일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들지언정 쓸데없는 일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용사로서 마물들이 마경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마경의 마물들을 사냥하고 최종적으로는 마경의 봉인석을 재봉인하여 마경을 안정화시키는 것. 그것은 분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으니까.

처음에는 반친구들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마경의 마물들을 처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순수하게 이 세계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인 ‘용사’가 된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거나 이 세계로 넘어오며 바뀐 미소년, 미소녀 같은 외모와 주변에서 보내오는 선망의 시선에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허나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었다.

마경의 몬스터를 처리하고 봉인을 강화시키는 것이 말만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마경은 너무나도 많았고 마경 안의 몬스터는 각 층이 존재해 밑으로 내려갈수록 강한 마물이 나타났다.

초반만 하더라도 마물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상처가 생긴다하더라도 작은 생채기 정도였지만 점점 더 강한 마물을 상대하며 부상이 점차 커져가고 결국에는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중상을 입기도 했다.

특수능력과 신성술이 있기에 어떻게든 치료를 해내기는 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있다가 언젠가는 누군가 죽는 것이 아닐까 하고.

어쩌면 직접 전투에 나서는 것이 아닌 뒤에서 동료들을 치료하는 일을 도맡고 있기에 괜한 걱정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불안하다.

지금 마물들과 싸워 나가는 것 역시 두렵고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마물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꼴로 죽는 걸까란 생각이 들어 괴롭다.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커져가다가..

나를 삼킬 때 쯤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런 외딴 세계에서 마물의 밥이 되거나 썩은 시체가 되는 것은 아닐지..

너무나도 무섭다.

-쿠구구궁...!

“수아야! 안 돼애--!!”

손을 뻗는 친한 동료들의 모습과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린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땅이 꺼졌기에 원래의 층보다도 더욱 밑인 층계일 것이다. 마경은 아래로 내려 갈수록 더욱 강한 마물이 나타난다.

치유사로서의 힘을 지니고 있는 나는 홀로 지하마경에 떨어진 것이다.

“거짓말.. 모두 주변에 있는 거지?! 나 놀리는 거지..?”

이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닐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허나 다급하게 손을 뻗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 동료들 역시도 쉽게 이곳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스윽.

뒤 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크르릉...

컹! 컹!

“히..히익..!”

나타난 것은 위에서부터 떨어진 싱싱한 고기를 주워 먹으러온 하이에나 떼였다.

정확히는 하이에나의 모습을 한 마물들이다. 검푸른 가죽과 줄무늬 털이 나 있는 개과 형의 마물들. 블랙 스토커라 불리는 이 마물들은 각각의 개체가 용사 레벨로 따져 Lv. 100이기에 결코 적은 수로 상대해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 말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나는 이제 레벨이 겨우 100을 넘겼을 뿐이다.. 상대는 그런 100을 넘긴 수 십 마리.. 절대로 상대할 수 없어..

커엉-!!

-타다닥!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한 번 짖자 주변에 있던 블랙스토커들이 일제히 산개하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 썩은 침이 번들거리는 송곳니에 몸 이곳저곳이 꿰뚫리고 말 것이다.

신성술이 취소되지 않도록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주문을 외웠다.

“성법 32장 17절! ‘빛의 보호!’”

-슈우웅..!

반투명한 빛의 보호막이 주변을 감싼다.

-컹컹! 컹!

티잉-! 티딕!

“으윽..!”

블랙 스토커들은 보호막을 미친 듯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보호막 스킬의 레벨이 낮지 않기에 꽤나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겠지만 마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기에 결국에는 깨질 터였다.

“어떻게..어떻게.. 흐윽..”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머리속이 새하얘져 쭈그려 앉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티잉! 티딕!

그러는 와중에도 블랙스토커들의 이빨과 발톱에 조금씩 흠집이 생기기 시작하던 보호막은 결국에...

-챙그랑!

“아..!”

커엉-! 커엉-!

산산조각이 나며 깨져 나갔다.

[작품후기]

으으으 도저히 잠을 자지 않고 견딜수가 없어 어떻게든 써내고 예약을 올리고 잡니다!

32명 중 주인공을 제외한 한 명은 지금쯤 엄청나게 구르고 있을 겁니다. 주인공과 다른 점이라면 그 친구는 인도해줄 선생님이 있다는 정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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