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촉! 115회
용이 되고 싶은 소녀
과거 헤르바 밀림이라는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았을 시절. 중앙 숲에는 여러 가지 부족이 존재했다. 오크, 인간, 엘프 등 각 종족들은 각자 터를 잡고 고유의 문화를 일구어 갔다.
그런데 이들 부족들의 형태의 이질적인 부분이 존재했는데 바로 각 부족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움에도 그들은 주변에 있는 다른 부족과 종족들에 대해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힘으로 씨족을 일으켜 세워 번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부족의 육성과 각 터를 잡은 기준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 되어 있었다.
“24개의 부족 전부 원활하게 육성되어가고 있군.”
하늘에서 각 부족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숲과도 같은 진한 녹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미남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눈동자는 머리와 같은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었고 이목구비는 마치 인위 적인 조각을 가한 듯이 완벽한 균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외모만으로도 인세의 드문 신적인 존재의 일면 같았으나 남자를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 아름다운 얼굴도 아닌 남자의 머리에 달린 양 뿔과 하반신 뒤편에 위치한 파충류와 같은 꼬리였다.
그렇다 남자는 아인종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아인종이 아니다.
그 본신은 신의 첫 번째 자손이라 일컬어지는 드래곤. 그 중에서도 대지와 연관이 깊은 어스 드래곤이었다.
그 가진바 힘이 한 지역을 붕괴시키고 재창조 할 수 있는 수준이기에 보통 세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들의 거처에서 잠을 취하기 마련이지만 어째선지 어스드래곤인 그는 하등한 종족이라 일컫는 아인종들의 생활 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있어 저 밑에 있는 부족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대륙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원시적인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던 각 종족들을 데려다가 기본적인 환경을 갖춰주고 무리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렇게 해서 회색 고원 위에 점조직처럼 생긴 24개의 부족이 번성하게 된 것이다.
이런 어스 드래곤의 행동은 드래곤들에게 있어 별종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괴상한 것이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는 성과를 얻었으면 좋겠군.”
그렇다. 어스 드래곤에게 저 24개 부족들의 존재의의는 일종의 모르모트라 할 수 있다. 최초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각 속성 별 드래곤들의 혈액은 너무나도 강하여 모체와 태아를 파괴시켰다.
그래서인지 태초 드래곤들은 번식에 관해서는 관심을 끄고 자신들의 유희만을 즐기며 살아갔지만 용종의 미래에 관해서 관심이 많았던 어스드래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홀로 연구를 진행했다.
“아무리 드래곤들이 강한 종족이라고 해도.. 개체 수가 적은 이상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지. 피가 희석되더라도 용종이라 할 만한 것들을 늘려야 한다.”
그런 정해진 목적아래 어스드래곤 각 부족들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지원했다. 정확히 실험체들이 대를 거듭할수록 용혈을 감당할 수 있는 모체를 낳게 유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담은 분신들을 보내 각 부족의 적정 모체(부족장의 딸들)을 임신시켰다.
선별한 모체들이기에 1차적인 수정은 성공.
“제길. 오크, 엘프, 드워프도 실패인가.. 전부 폐기해야겠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혈을 이기지 못한 모체가 사망하거나 혹은 아직 산달이 아님에도 태아가 출산되는 등 실패작들이 속출했고 남자는 실망감과 짜증을 느끼며 실패한 부족을 하루 아침에 소멸시켰다.
당연히 각 부족들은 자신들의 이웃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는 부족들이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없었고 자신들의 운명이 드래곤의 태아를 임신한 모체에게 달려 있단 것 역시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부족이 실패로 인해 사라지고 단 하나의 부족만이 남게 되었다.
“성공한 것은 인간 종족뿐인가.. 뭐 만삭까지는 왔지만 낳는 과정에서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그나저나 웃기는 군 내 혈통을 임신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고 말이야.”
남자가 그렇게 중얼거린 이유는 인간 부족의 반응 때문이었다.
족장의 딸이 돌연 임신하고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간에 환호하던 그들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한 족장의 딸을 정확히는 그 태아를 경계했다. 그런 경계심은 만삭의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졌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경우 10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정상이다. 헌데 드래곤 종의 피가 섞인 아이는 성장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 개월 수가 달랐다. 12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산모의 배는 점점 더 불러갔다.
그 상태에서 배의 겉 표면으로 용마력이 형상화 되어 기묘한 문신까지 나타나니 부족민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산모의 배 속에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것이 신의 아이나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면 모를까.
부족민들은 족장 딸의 뱃속에 있는 것이 악마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리 없다! 내 자식의 뱃속에 있는 건 분명 전사의 피를 이은 나의 혈족이지 악마 같은 게 아니다.
허나 족장의 으름장에 그 누구도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만약 부족민들이 산모와 아이에 대해 과격한 행동을 취했다면 굳이 족장이 나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스드래곤인 남자가 나설 것이었지만.
그렇게 족장의 비호 아래서 산모는 무사히 산달을 맞이했고 곧이어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꺄아아악!”
산모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그 다리 사이에서 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아이의 머리 부분이 보임과 동시에 환희의 얼굴을 하던 주변인들이 점차 아이의 전신이 완전히 빠져나오자 경악과 혐오의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으며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그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상태가 이미 5~6살에 해당하는 소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질적인 뱀과 같은 눈동자와 머리에 난 뾰족한 뿔 거기에 몸 부분 부분을 덮고 있는 비늘과 엉덩이 부분의 도마뱀 꼬리까지.. 그 모든 것이 인간과는 다르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털썩..
산모는 아이를 낳자마자 그 숨을 거뒀다. 아이가 너무 크기도 했으며 순수용종인 아이를 낳으며 그 몸의 기력이 다한 것이다. 족장은 자신의 딸이 죽은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고 아이.. 아니 소녀를 향해 겨눴다.
“이 녀석은 악마다! 악마가 틀림없어!”
그 누구보다 소녀를 자신의 혈족이라 외쳤던 족장이 오히려 소녀를 악마라고 칭하며 무기를 휘두르려한다. 그것은 주변의 있는 부족의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악마를 죽여야 해! 안 그럼 우리 부족의 저주가 내릴 거야!”“저..저 괴물 같은 모습 좀 봐! 빨리 죽이고 저주를 씻는 의식을 치러야 해!”
소녀의 생김새와 분위기는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막 태어난 아이가 울지도 않으며 오히려 자신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호오라..”
남자는 감탄했다. 자신이 어렵게 만들어낸 실험의 결과물이 위협을 받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본다. 만약 연약한 인간의 아이였다면 무기를 든 어른들에게 위협을 받는 저 상황은 분명 위기겠지만 소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느껴지는 군. 나의 피를.. 우리 드래곤의 피를 강하게 이어 받았다는 것이 말이야.”
드래곤의 피가 워낙 강하기에 인간족의 피보다 드래곤의 성향을 더욱 강하게 타고 난 듯 했다. 이미 그 몸에서 느껴지는 용마력은 어스 드래곤인 자신의 것과 비슷한 마력이라는 것이 감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남자는 보고 싶었다. 직접 소녀가 용마력을 다루는 모습을 말이다.
“죽어라! 악마!”
족장이 자신의 손녀라 할 수 있는 소녀에게 무기를 휘두른 그 순간.
-화르륵!!!
소녀의 몸에서 녹색의 불꽃이 일어나며.
“끄아아악!”
“히익..!”
콰아아아앙-!!!
주변을 집어 삼키는 거대한 폭풍이 터져 나왔다. 족장의 천막 안에 있던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바깥에 있는 부족민들이 사는 거처 그 전부를 집어삼킨 녹빛의 폭풍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고 소멸 시키고 나서야 그 분노를 멈췄다.
-타닥.. 타닥..
“아..”
재와 녹색의 불꽃만이 남은 폐허에 서서 소녀는 멍하니 주변의 모습만을 눈에 담았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깨우치는 드래곤의 영성을 타고난 그녀였기에 당황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분노에 따라 ‘동족’이라 여겨지던 모든 이들을 소멸시킨 것에 대해서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
-저벅. 저벅.
그 때 한 남자가 땅으로 내려와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다가오는 남자를 본 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뇌리에 박히며 순간 아주 무섭고 거대한 무언가가 걸어오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다.
-화르륵!
소녀의 감정에 맞춰 다시 한 번 녹색의 불꽃이 일어나며 남자를 막아섰다. 하지만 남자는 무성의하게 손을 흔들어 그 불꽃을 치워버리고는 곧바로 소녀의 앞에 서서 허리를 숙이며 그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챙겼다.
“아..!”
머리카락이 뽑혔기 때문에 탄성이 나온 것은 아니다. 가까이서 남자의 눈을 본 순간 소녀는 깨달았다. 남자와 자신이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직 손에 든 머리카락만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 남자의 바지 자락을 붙잡으며 물었다.
“당신이 내 아버지..?”
“아버지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어쨌든 네 몸에 흐르는 피의 반절 이상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 하지만 하등 종족들이 말하는 가족의 개념 따위 우리 드래곤 사이에는 통념되지 않는다.”
“그럼.. 나와 당신의 관계는 뭐야?”
“반푼이 실험체와 연구자 정도일까?”
“반푼이..”
남자의 말에 소녀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시무룩해진다. 그런 소녀의 모습은 나이를 불문하고 동정심을 느낄 정도의 측은한 모습이었지만 남자는 자기 할 일만을 신경 쓰며 소녀에게 무신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핏줄의 정 같은 것을 기대하지마라. 넌 그저 내 피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순수한 나의 혈족이라 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귀찮으니 달라붙지 말라는 거다.”
“내가 귀찮아..?”
“그래 귀찮다.”
말을 끝낸 남자는 소녀를 뒤로 한 채 등을 돌렸다.
-드드득!!!
뼈를 꺾는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갈라지며 전신이 부풀기 시작한다.
끝없이 뻗어나가던 그의 몸은 생물체였으나 마치 자연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몸과 그의 몸을 피부처럼 덮고 있는 녹색의 식물들. 가만히 있는 다면 그저 높은 거산처럼 보였지만 그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움직이는 순간 숨겨져 있던 흉폭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신을 올려다보며 완전히 굳어있는 소녀를 한 번 내려다본 어스 드래곤은 소녀에게 한 마디의 말을 전하고는 날아올랐다.
[ 만약 네가 용종의 피를 완전히 각성한다면 ‘포레스트’를 찾아와라. 그 때라면 지금과의 처지가 조금은 달라질 지도 모르지. ]
부우우웅-!
“포레스트.. 포레스트..”
홀로 남겨진 소녀는 계속해서 단어를 중얼거렸고 소녀의 이름은 포레스트가 되었다.
포레스트는 결심했다. 용종의 피를 각성시키기로.. 그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지만 드래곤 종중에서도 박식하다 할 수 있는 어스의 피를 이어 받았기에 포레스트는 본능적으로 그 방법을 깨달았다.
방법은 ‘수면’. 정확히는 같은 파장인 자연에 파묻혀 자연의 마나를 흡수하는 행위다.
어스 드래곤의 경우 그것이 대지였고 회색고원은 어스의 피를 이어받은 포레스트에게 있어 제적인 장소였다.
“끙차.”
포레스트는 돌멩이로 자신의 몸을 덮고 계속해서 시간을 보냈다. 1년 10년 100년 원래부터 강한 용마력을 타고난 포레스트는 자연의 마나를 흡수하며 점점 더 강해졌다. 그녀의 몸 안에 흐르는 어스 드래곤의 피가 점차 강력해지며 그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르릉..!(됐..됐다!)
천년이 지났을 때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과거의 보았던 어스 드래곤처럼 거대하지 않았고 그 외형 역시도 자연을 담고 있던 어스드래곤의 모습과는 달리 비늘을 가진 날개 없는 도마뱀에 가까웠다.
-크아우우!(해냈어! 해냈다!)
허나 천 년간에 허무함이 사라질 정도로 그녀에게 있어 유의미한 일이었다.
이제 드래곤의 모습으로까지 변할 수 있게 된 이상 지금의 두 세 배 정도만 시간이 지난다면 어스 드래곤과 같은 모습이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다시 수면을 취하려고 하는데...
“오오! 잿빛도끼 부족의 도끼를 받아라!”
“전사의 혈투다! 나 갈색수리부족의 오트록! 결투를 신청한다!”
‘시끄러워..!’
언제 부터인가 바깥의 이상한 종족들이 번식하더니 포레스트,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웬만해서는 봐주려고 했지만 계속 감각 범위 내로 들어와서 서로 뒤엉키고 투닥 거리는 것이 거슬렸다.
‘또 늘어났어!’
거기에 더해 늘어나는 속도 역시도 심상치 않다. 원래는 한 방향에서만 들려오던 함성소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 방향에서 들려왔다.
‘귀찮게..’
쿠구궁..!
결국 참지 못한 포레스트는 수면 중이던 상태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 상태로 날아가 전력으로 그레이 오크들을 끝장 내 버렸다.
“크윽.. 드래..드래곤이시여 어째서 우리 종족을..!”
“하아.. 귀찮게 굴었잖아? 너희가!”
쓰러져가며 울부짖는 오크 족장의 외침에 포레스트는 벌레를 보는 듯 시선으로 말했다.
“쿨럭.. 그런 이유로..”
털썩-!
오크 족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죽었지만.
“귀찮아..정말.”
그녀에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 중요한 말이었다.
[작품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