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근진 79회
(외전) 엘로아 x 루나 백합 하드 플레이
다섯 뿌리 마을의 풍경은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
영역선포 작업을 통해 형성된 끈적거리는 보라색의 점액대지와 그 위로 자라있는 촉수로 이루어진 거대한 촉수 나무들. 전에는 그나마 흙이 보이는 바닥이 있었다면 지금은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보라색 점액으로 뒤덮여 있어 이 세상에는 없을 것 같은 이계의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건물이나 각종 시설물에 붙어서 꿈틀 거리는 점액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듯 하여 괴생물체들에게 공격을 받아 지배당한 마을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구르! 구르!
눈깔이 여럿 달린 소형 괴물이 뛰어다니거나(알파)
쿵.쿵. 그아아..!
거대한 보라색 거인(베타)이 쿵쿵 대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을에서 흔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에는 이런 괴물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괴물들 사이로 천사나 요정과 같은 외모인 에로프들 역시 함께하고 있다.
“사라씨 안녕하세요!”
“어머 아리엘!”
정답게 인사를 하는 두 에로프. 그녀들의 외형은 금발 자안으로 그 기본 베이스는 쌍둥이 자매처럼 닮았지만 그 분위기랄 것이 한 눈에 다른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달랐다. 한 쪽은 중년 미부와 같은 느낌이었다면 다른 한 쪽은 소녀와 같이 발랄한 느낌이다.
“사라씨 곧 출산이죠? 분명 알파 3223호씨와의 아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후훗, 맞아요. 임신 한 지 15일 째니까 이제 곧 나올 것 같아요. 근데 아리엘도.. 언제 임신한 거예요?”
사라의 말에 아리엘이라 불린 에로프는 얼굴을 붉히며 배를 쓰다듬었다. 출산을 코앞에 둔 사라의 만삭 배와 맞먹을 정도로 둥근 형태의 배다. 놀라운 사실은 어제까지 만해도 아리엘의 배는 마른 형태였다는 것이다.
“오늘로 임신 1일차에요. 어제 격렬하게 하다보니까 생겨버린 거 있죠?”
“하루 만에 그 정도 크기라면.. 설마 베타 분들의 아이?”
“맞아요! 베타 2170호씨랑 해서 생긴 아이예요. 읏..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 큰일이라구요?”
“후훗, 역시 베타씨의 아이라 금방 크나보네. 그런 큰 아이를 낳을 때는 어떤 기분일지.. 저도 다음에는 나도 베타씨의 아이를 가져봐야겠어!”
두 에로프의 대화는 언뜻 듣기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적인 대화처럼 들렸지만 그 드러난 만삭의 배와 치부만 간신히 가린 혹은 아예 가리지도 않은 복장을 보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뒤틀린 광경이었다.
단순히 사라와 엘리아라는 에로프뿐 만 아니라 그녀들의 뒤로 펼쳐진 배경에는.
“하아앙!!”
“좀 더 세게 박아주세요!”
-구르구르!
-그어어!!
-파앙. 파앙. 파앙.
-찔꺽..! 찔꺽..! 찔꺽..!
난교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보라색의 괴물들과 하얀 피부의 에로프들이 뒤엉켜서 혹은 남성기를 단 에로프와 에로프끼리 부끄러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온갖 상상을 뛰어넘는 성행위를 선보인다.
마치 발정 난 짐승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짐승의 교미행위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런 난교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기괴하게 보인다.
구르! 구르!
“하앙 알파씨 진짜아~”
심지어는 일을 하다가도 서로 붙어서 교미를 시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과거에는 무분별한 난교였다면 확장된 다섯 뿌리 마을. 아니 이제는 점액 도시라고 해야 될 만큼 변화된 마을에는 일종의 규칙을 가지고 난교를 즐겼다.
성행위는 당연하되 그만큼 마을을 개발시키고 각자의 일을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하으으응! 낳아버려엇!”
“히게엑..! 꺄으윽!”
임신을 하지 않은 에로프들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에로프들의 배는 모두 만삭으로 부풀어 있었다. 지금 하는 난교는 성적인 쾌감을 얻기 위한 것이었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목적은 ‘임신’ 그 자체에 있었다.
임신을 하여 변이체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 바로 에로프들의 목표인 것이다!
이것은 모두 이들의 주인이 내린 ‘전쟁 준비’에 대해 에로프의 여왕 엘로아가 간부들과 힘을 합쳐 일을 추진시킨 결과였다.
‘전쟁 준비’
그 절대적인 명령아래.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수많은 병사를 생산하기 위해선 그들을 낳을 에로프들이 필요하고 에로프들이 생활하기 위해선 마을이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작업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델피아와 타이탄의 전두지휘아래 마을을 확장시켰고 돌아온 레나는 전투대원들과 함께 에아렌과 실피, 리한나의 빈자리를 맡아 전투 대원들을 훈련시켰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알파와 베타로 이루어진 대 병력이 형성되었다.
-또각. 또각.
굽이 들어간 검은 힐이 바닥과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사락. 검은 천자락이 작게 흔들리며 유려한 곡선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의 면은 그 골반과 둔부의 풍만함을 완전히 가려주지 못했으며 날씬한 복부를 따라 올라가면 거대하면서도 최대한으로 압축되고 완벽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가슴골이 드러난다.
-출렁.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얼굴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밑으로 보이는 몸매만으로 미인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실제로 모든 에로프들이 그렇지만 몸의 주인은 확연히 다른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 열심히 해주고 있군요.”
부드러운 목소리임에도 보라색의 선명한 눈동자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이제는 ‘여왕’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으며 너무나도 어울리는 그녀의 이름은 엘로아였다.
특수개체로의 개조가 이루어지면서 엘로아는 한 층 더 성숙해졌다. 가장 많은 발육을 받았기에 풍만함이 넘쳐흐르던 몸매는 재구성 과정에서 압축되고 황금의 비율을 갖춘 몸매로 변화했고 더욱 강한 힘을 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모판인 세실리아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촉수군단’이라는 기술과 하이엘프 왕족으로서의 순혈까지 이어 받았다.
과거에는 곱슬이 섞인 풀어헤친 머리와 활발한 성격이었다면 지금은 볏 모양으로 땋은 앞머리와 일정하게 내려오는 금실 같은 생머리로 차분하면서 기품이 흐르는 외모로 바뀌었다.
“모두 여왕님의 노력과 주인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옆에서 말하며 싱긋 웃는 암살자와 같은 느낌의 보라색 망사옷을 입은 엘프는 레나였다.
여왕인 엘로아가 순찰을 하는 시간대에는 전투대원들의 일부는 훈련을 멈추고 호위를 섰다. 지금은 임시 전투대장인 레나가 엘로아의 경호를 맡은 것이다.
-척. 척. 척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엘로아와 레나의 뒤편으로는 전신 촉수슈트를 입은 전투대원들이 일정한 행렬로 뒤 따른다. 그 움직임 때문에 자신들의 여왕이 왔다는 것을 깨달은 에로프들과 변이체들이 일순 열중하던 교미도 멈추며 엘로아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 괜찮습니다. ]
순간 엘로아에게서 퍼진 ‘촉수군단’의 주인으로서의 권한으로 인해 모두 엘로아와 그 주변을 인지하지 못한다. 촉수에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 있어선 절대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특수개체 엘로아의 능력 중 일부다.
“조금 만 더 살펴보고 돌아가도록 하죠.”
“네, 여왕님.”
그렇게 결코 작지 않은 넓이의 마을과 그 주변의 시설들을 점검하며 돌아다니던 엘로아는.
‘음? 저 아이는..’
나신에 가까운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에로프들 사이로 위 아애로 옷을 전부 걸친 에로프.. 아니 루나가 보였다. 에로프의 본판이나 다름없기에 눈으로 구분하기는 힘든 법이지만 자신의 딸인 루나이기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여왕님 무슨 문제라도..”
갑자기 멈춰 선 엘로아에게 의아함을 느낀 것인지 옆에 있던 레나가 물어왔다.
“레나 잠시 전투대원들을 물러주시겠어요?”
“무슨 연유로..”
이유를 물으려던 레나는 엘로아의 시선이 어딘가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도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의 끝을 보았다. 한 엘프의 모습. 현재 마을에서 보라색 메이드복을 입은 ‘엘프’는 여왕 엘로아와 주인의 딸인 루나밖에 없다.
주변에 있는 서로 짝지어서 즐거운 얼굴로 몰려다니는 에로프들과는 다르게 루나는 멍하니 서서 어딘가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레나는 엘로아의 생각을 깨닫고는 곧바로 뒤에서 대기 중이던 전투대원들을 해산시켰다.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여왕님.”
“부탁할게요. 레나.”
엘로아와 레나는 서로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루나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특수개체인 두 사람의 은신을 루나가 간파할 수는 없었다. 결국 눈치 채지 못한 루나는 자신이 향하는 장소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에로프들이 자주 찾는 마을의 거대한 촉수나무 아래.
한참 베타들과 알파들이 건축을 하고 있는 공사장.
그리고 전투 대원들이 수련하고 있는 수련장의 앞까지.
장소의 이동에는 맥락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허나 루나를 숨어서 지켜보는 엘로아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는 것은 루나가 그 많은 장소를 이동하는 동안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거나 친하게 지내는 것 같은 지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레나.. 그동안 몰랐어. 루나가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 지..”
“엘로아..”
엘로아는 여왕으로서의 말투도 생략하며 레나에게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자신의 옆에서 비서 일을 해주는 루나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외에 시간에 무엇을 하는 지는 몰랐다.
“대체 이유가 뭘까? 루나는 착한 아인데..”
엘로아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레나는.
“아마 주인님의 은총을 받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네.”
“무슨 얘기야? 설마..!”
“다른 에로프들이나 우리들은 안에 주인님의 촉수가 기생하고 있어서 동질감을 느끼는데.. 루나는 그게 아니니까. 그리고 루나 본인도 조금.. 다른 마을 사람들하고 교류하는 걸 꺼려하는 느낌이기도 해.”
“흐음..”
다시 한 번 루나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엘로아는 결심한 것처럼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레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루나의 엄마인 내가 어떻게든 해야 될 것 같아!”
“뭘 어..어떻게?”
레나는 긴장했다. 여왕으로서 그리고 특수개체가 된 엘로아는 냉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일처리를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였지만 옛날 엘로아는 어떤 일을 결심할 때면 꼭 사고를 치고는 했다.
지금 보이는 엘로아의 모습은 그 옛날 엘로아의 사고치기 전 모습이다.
“도와 줄 거지? 아니 도와 줄 거죠 임시 전투대장?”
‘이럴 때만 권위를 이용해서..!’
순간 눈을 굴리며 고민하던 레나였지만 애초에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휴우.. 알겠습니다. 여왕님.”
저벅. 저벅.
해가 져서 어두워진 다섯 뿌리 마을의 점액 대지 위를 루나는 조용히 걸었다. 루나의 발걸음이 향하는 장소는 마을의 외곽 부근 통나무집이었다. 원래는 여왕인 엘로아와 아버지의 본체가 있는 중앙 나무에서 생활하였지만.
루나 스스로의 요청으로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집 한 채를 얻었다.
다른 건물들이 보라색의 점액으로 뒤덮여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루나의 집은 특이했다. 바닥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집 자체는 그냥 흔히 보이는 나무로만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질척.. 질척..
“저리가.”
신발에 달라붙는 끈적거리는 감촉과 기어 다니는 분열체를 보며 루나는 혐오감 섞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분열체들을 피해서 자신의 보금자리로 다가갔다.
‘뭐야. 불이 켜져 있어..?’
통나무집의 창문으로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인다. 마을에서 개발된 야광 열매로 밤에도 불이 켜진 것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지만 문제는 야광열매가 on/off 식이라는 것이다.
항상 엘로아의 비서로서 마을의 대사를 꿰고 완벽하게 보조하는 루나는 완벽주의자적인 면이 있었다.
즉 집에 불을 키고 나오는 실수 같은 건 ‘결코’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로 하지 않는다.
‘마을의 전투대를 불러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루나였지만 이내 집 쪽으로 걸어갔다. 점액대지 밖에 건물이 지어져 있으면 모르겠지만 점액 대지 위에 건물이 있는 이상 ‘아버지’의 영역이기에 결코 누구도 해를 끼치지 못한다.
자신이 꺼려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는 싫지만 밤에 전투 대원들을 부르고 시선을 받는 것은 더 싫었다.
-끼이익..
문 앞으로 다가가 나무로 된 문을 열자 보인 것은.
“루나. 왔구나. 기다렸단다.”
“어..머니?”
둥근 테이블 앞에 두 개의 나무잔을 놓고 앉아 해맑게 웃고 있는 검은 드레스를 걸친 엘프. 마을의 여왕이자 루나 자신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엘로아가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