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생촉수가 되었다-25화 (25/266)

아무튼.. 저는 이만 쉬러가보겠습니다. 진짜로 쉴거야 말리지마! 25회

보라색으로 물드는 마을

아렌과 실피는 현재 세실리아가 거주하는 중앙 나무의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나무 통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에 달린 발광 열매에서 뿜어지는 빛이 한 번에 닥쳐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실피만이 눈을 살짝 찡그릴 뿐 아렌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단의 앞으로 걸어가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세실리아의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세실리아님.”

“왔군요. 아렌 그리고 실피.. 두 사람 모두 바쁠 텐데 이렇게 불러서 미안하군요.”

“아닙니다. 다섯 뿌리 마을을 인도하시는 세실리아님의 부름입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선 시 되어야 합니다.”

“후훗. 아렌은 매사에 진지하다니까요.”

대장이 진지한 것은 세실리아님 앞에서 뿐입니다. 세실리아님은 평소에 능글맞은 대장의 모습을 결코 모를 거라고 실피는 속으로 생각했다. 항상 웃으면서 숲지기들의 군기를 확실하게 부여잡고 있는 아렌. 그 아렌이 세실리아 앞에만 서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태도의 충신으로 변한다.

‘전해 듣기로는 세실리아님과 함께 마을의 터를 잡았던 것이 아렌 대장이라고 했었지.’

하이엘프의 피가 절반 섞인 하프인 아렌과 순수 하이엘프 세실리아. 분명 둘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었으리라.

“저 그런데 세실리아님 어떠한 이유로 부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군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위잉.. 위잉..

세실리아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 주위로 반짝거리는 작은 빛망울들이 모여 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반딧불이처럼 보이지만 엘프의 눈으로 봤을 때 그것은 아주 작은 정령들이었다. 설령 자연과 친한 엘프라 할지라도 지금 세실리아가 하는 것처럼 계약하지 않은 정령들과 어울리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정령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숲에서 아주 무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혹시.. 전에 실피조장과 제가 잡았던 괴물에 대한 이야기 입니까?”

조심스러운 아렌의 물음에 세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령들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건 ‘보라색’ 그리고 ‘괴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숲에서 그 괴물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합니다. 솔직히 걱정이 듭니다. 혹시나 마을의 어린 엘프들이 괴물들에게 당할까봐..”

세실리아는 근심어린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럴까? 새로운 엘프의 탄생은 50~100년 주기로 한 번씩만 일어난다.

그 긴 시간 동안 마을의 엘프가 희생당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마을의 지도자로서도 그리고 어린 엘프들을 젖을 물려 키운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도 엘프들이 다칠까봐 세실리아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실피 조장과 저 그리고 모든 숲지기들이 나서서 세실리아님의 근심을 제거 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 아렌 대장.. 실피 조장. 부디 가이아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세실리아의 목소리에 작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한 실피와 아렌은 곧바로 중앙 나무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대장, 지난번에 그 눈알 달린 괴물들.. 강한 건 아닌데 상당히 성가시던데요?”

실피가 괴물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눈알이 여러 개 달린 보라색 몸체를 가진 괴물. 분명 고블린과 별 다를 것도 없는 체격 조건이었으나 모든 공격을 예측하는 것 같은 움직임과 기습적으로 늘어나 치명적인 공격을 해오는 신체부위 등.

여러 가지로 성가신 마물이었다. 수하 숲지기들이 쉽게 상대해내지 못해 실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 목을 베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설령 그것보다 더 강하다고 해도 세실리아님이 부탁하신 일인 이상 반드시 해낸다. 그 뿐이야 알겠니 실피?”

그렇게 말하는 아렌의 푸른 눈동자는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아렌의 주위로 불의 정령이 반응하며 화기를 내뿜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하아.. 대장 또 불타올랐어. 그 괴물들도 무사하지는 못 하겠는 걸?’

아렌의 실력은 일인군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아렌과 그 외 나머지 숲지기 전부를 붙이다고 해도 승부가 이뤄질 수준이다. 실피는 부디 괴물들이 빨리 잡혀 피곤한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 날 오후 아렌의 지시에 의해 숲지기들에게 녹색 숲에서 시작해 마물의 숲이 맞닿는 부분까지의 정찰과 사냥의 임무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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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스킬을 획득 하였습니다! ]

분열하여 기생하라! 퀘스트가 끝나고 [ 집단의식 ] 이란 스킬을 얻었다. 이름만 봐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 스킬이다. 반쯤 패시브나 다름없는 공간인지와 같이 on/off 형의 스킬이었는데 실험삼아 한 번 발동시켜 봤더니.

[ ‘집단의식 Lv. 1’ 스킬이 발동합니다! ]

와우..! 순간 내 앞으로 cctv 화면 수 십 개가 생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분명 나는 엘로아의 자궁 안에 있는데 마물의 숲을 뛰어 다니는 알파의 모습이 보인다거나 어딘가 방 한 구석에서 내 분열체에 의해 열심히 조교 받는 레나의 모습이 보인다거나 하는 효과가 있다.

처음에는 3개 정도의 화면이었지만 하나 둘 분열체를 늘려 촉수를 기생시킨 엘프들의 숫자를 늘려가자 더욱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나중에 가서 알파 시리즈가 20번대에 이를 정도로 많아지고 마을에 있는 엘프의 수 3분의 1 정도를 감염시키자 녹색 숲과 마물의 숲 일부분에 한 하는 맵 핵을 킨 것 같은 효과를 가져다줬다.

거기에 더해 집단의식은 단순히 관찰하는 것만이 아닌 즉각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도 가능했다. 인간이었을 때 했던 전략전술 우주 전쟁 같은 게임처럼 멀리서도 기생한 대상들을 조종해 유기적으로 협력시킬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여태까지의 생쇼가 허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상을 기생시키고 조교시키는 것이 쉬웠다.

내가 조종할 수 있는 숲지기의 수가 거의 절반에 가깝다. 아렌이나 실피, 세실리아 같은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얼마든지 조교시키고 기생시킬 수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main - 엘프마을을 정복하라! 퀘스트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이대로 진행만 된다면 문제없이 모든 엘프를 감염시킬 수 있으리라.

허나 이렇게 쉬우면 이 빌어먹을 세상이 아니겠지.

“모든 녹색 숲에 있는 모든 보라색 마물을 사냥하는 거다! 마을의 안전을 위해서!”

어쩐지 의욕 없는 평소와는 다르게 불타오르는 아렌 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어쩌죠.. 우리 아이들..”

“여왕님.. 아직 숲에 아이들이 있을 텐데..”

숲지기 중에 기생되어 있는 엘프들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엘로아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주인인 나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다. 흐음.. 이미 집단의식을 발동시켜 녹색 숲에 잔류하고 있던 알파 시리즈는 전부 치운 상태다.

문제는 마물의 숲 그 인근에 있는 알파0~10 친구들. 집단의식의 스킬 레벨이 아직은 낮기 때문인지 그 끝 부분에서 애매하게 범위가 닿지 않는다.

“우리는 마물의 숲 외곽 동쪽을 돌기로 했고 아렌 대장의 조는 서쪽을 맡기로 했어. 내 성격 알겠지만 최대한 빨리 돌고 철수 할 테니 잘 따라오도록.”

“넷!”

대답이 나오자마자 실피가 이동기인 ‘에어 스텝’을 발동시키며 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숲지기들과 엘로아 역시 로아를 시전 한다.

휘잉- 마을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마른 잿빛의 땅. 마물의 숲 초입이 등장했다. 과연 바람의 실피라는 별명은 헛된 것이 아닌가. 달리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 몇 몇 엘프들은 기직맥진 할 정도.

엘로아는? 생생하다. 음 양분 상점의 발육 포인트를 몰빵한 엘로아다 이 정도로 지칠 리는 없지.

“어떡하죠.. 주인님 실피 언니가 앞서고 있어요. 이러다가 먼저 알파들을 발견이라도 하게 된다면.”

-흐음 공간인지와 사념파(사념유도Lv.50 특화스킬)를 쏴서 피하라고 알리고 있다. 크게 걱정마라.

“주인님이 그러시다면..”

엘로아는 한 시름 놓았다는 듯 작게 숨을 내쉰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일단 괜찮다고 말해두기는 했지만 사실 알파 녀석들이 완벽하게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공간인지는 일정 범위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데 실피의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움직임이 일어나서는 마치 레이더처럼 주변에 퍼져나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바람의 기파를 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저것이 아마도 ‘감지’와 관련된 능력인 것 같다. 만약 저 감지 기술의 범위가 내 공간인지보다 넓다면.

“대상을 발견했다. 먼저 간다.”

젠장..! 이 사기 엘프가!

- 엘로아, 실피를 빨리 쫓아가!

“네..넷!”

내 명령에 뒤늦게 엘로아가 ‘에어스텝’을 발동하여 실피의 뒤를 쫓는다. 하지만 실피는 혼자만 부스터라도 단 것처럼 엘로아가 움직이는 두 세 배의 속도로 달린다. 쭉쭉 뻗어나가는 실피의 신형은 도무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간인지를 통해 확인하고 집단의식을 사용하여 점검해본 결과 지금 실피가 가고 있는 방향에 한 기의 알파와 고블린 무리가 있는 것을 감지했다.

이러다가 피하라고 의사소통을 쏘기도 전에 알파 녀석의 목이 실피의 단검에 싹둑 될지도 모른다.

-챙! 채앵-!

멀리서 보라색의 작은 소인과 단검을 든 실피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싸움이 벌어졌다면 저 알파를 지켜내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차라리 포기하고 돌아가거나 혹은 실피를 도와 싸우는 척을 해야 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 엘로아..

엘로아에게 다음 지시를 내리려고 하자 엘로아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실지 알아요..! 하지만 저 아이를 구해야 돼요!”

- 무슨 소리냐 여기서 저 변이체를 도우면 당연히 의심을 받게 돼!

사념유도라도 써야 되는 것인지 고민할 때. 엘로아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저 아이는 제가 주인님과 낳은 아이란 말이에요!”

응?

잠깐만.. 다른 엘프들은 몰라도 엘로아는 단 한 번의 출산밖에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어난 녀석은 알파시리즈의 첫째인 알파 01이다.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이 그 녀석이라고?

구로오오!!

“치잇, 괴물 주제에. 실라페!”

휘이잉-!

정령의 이름을 외치자 실피가 들고 있는 두 단검의 날에 회오리바람이 뭉친다. 양손 단검술의 달인인 실피에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바람의 칼날이 주어졌다는 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나 다름 없다.

-쐐애액!

단검을 휘두르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공기의 칼날이 알파에게로 쇄도한다. 이대로 있다간 속수무책으로 당할 상황. 알파는 두 손으로 들고 있던 대거의 손잡이를 쥐고는

구루으!!

사선으로 휘둘렀다. 그 순간 알파의 대거에 은은한 보랏빛의 뭉치더니 대거의 날에 닿은 바람의 칼날들을 튕겨낸다.

고르륵! 고륵! 고륵!

알파의 선전에 뒤에 있던 고블린 녀석들이 환호한다. 근데 어째 키에엑! 거리기만 하던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특이하게 바뀌어있다. 마치 알파를 따라하는 것 같은 울음소리인데..

“겨우 한 번 막아내고는 이번에는 내가 직접.”

샤악-!

“목숨 줄을 끊어주마!”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실피의 모습이 알파의 바로 등 뒤에서 나타난다. 저것은 실피가 시범으로 보였던 엘프의 비전기술인 ‘그림자밟기’ 사실상 극쾌의 움직임이 필요하기에 실피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궁극기다.

구..구루으!

실피가 움직인 것과 동시에 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알파01은 빠르게 반응하며 뒤돌았지만 아무래도 등 뒤를 잡힌 상태다 몸을 돌리며 막는 것보다도 실피의 칼날이 몸을 가르는 것이 더욱 빨랐다.

“죽어라 괴물.”

푸슈욱!

털썩..-

보라색의 상반신에서 핏물을 뿜으며 알파는 단발마의 비명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고륵! 고르륵! 그것을 지켜보던 고블린들이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알파01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알파01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앞에서 칼을 뽑고 살기를 흘리는 실피가 있지 않은가?

고블린들이 접근하는 순간 실피의 칼날이 고블린들의 숨통을 끊을 것은 당연한 일.

구르으!!!

-스윽.

고륵..?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막은 것은 실피도 다른 숲지기도 아닌 알파01이었다. 녀석은 상체에서 피를 흘리는 채로 일어서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대거를 던져버리고는 빈손으로 당당히 서 실피를 마주본다.

“뭐야.. 괴물주제에..”

구르..

입으로 소리를 낸 것이 아님에도 실피는 알파의 수많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 뜻을 이해했다. 순순히 죽을 테니 뒤에 있는 고블린들은 도망치게 해달라는 그 강한 의지가 전해진다.

알파를 보며 연신 혐오스러운 것을 본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있던 실피의 얼굴이 처음으로 풀렸다. 살기를 품고 있던 푸른 눈동자가 조금은 부드럽게 누그러진다.

“후우.. 알겠다. 어디까지나 보라색의 마물을 잡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깔끔하게 끝내주지.”

구르!

실피의 손이 하늘을 향하고 들어 올린 검이 알파의 목을 향해 벼락처럼 내려쳐지는 그 순간.

채앵-!!

“안 돼요, 언니!”

“엘..엘로아?!”

실피는 반동으로 두어 걸음 물러나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내려친 검을 막은 엘로아. 항상 밝은 표정으로 다니는 동생이 어째선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품후기]

일단 예약연재로 걸어놓고 한편

떡 1 스토리진행 1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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