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58화 여성 도시
일단은 하룻밤 호텔에서 자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어제 먹었던 성욕 억제제의 영향 때문인지 몸이 상쾌했다. 항상 가슴 한 구석에 있던 범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사라졌고, 메아가 갑자기 튀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사라졌다.
그리고 실제로 하루 종일 메아가 나오지 않았다.
기왕이면 도시 밖으로 나갈 때도 효과를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은데.
성욕 억제 효과가 어디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메아를 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게 확실했다.
마음같아서는 도시를 벗어나기 전 공개장터에서 도시 밖에서도 효과를 유지하는 성욕 억제제를 구하고 싶었지만 너무 위험했다. 최소한 암컷 칭호를 달고 있는 이 도시에서만큼은 안 됐다.
나는 개운한 마음으로 경쾌하게 토벌길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어제는 못 느꼈던 위험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암컷> 여자들을 목줄로 묶어서 데리고 다니는 <수컷>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개를 산책시키기라도 하는 느낌으로 암컷들을 끌고 다녔고, 그냥 도로변에서 자기 소유의 암컷을 범하고 있기도 했다.
끌려 다니는 암컷들은 한결 같이 알몸이었고, 개중에는 구속구에 묶여 있거나, 재갈이 물려 있거나, 정조대가 채워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런 광경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도시의 일상인 것이다.
미쳤구나....그 어느 도시보다 미쳤어.
그동안은 미친놈들을 만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여기는 도시 전체가 미쳐 있었다.
나는 내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지 잔뜩 경계하며 토벌 길드에 도착했다. 그런데 특이하게 수컷용과 암컷용 건물이 나뉘어 있었다.
이렇게나 차별적이라니.
내 발로 직접 암컷용 건물에 들어가려 하자, 자괴감이 장난 아니었다. 결국 내가 암컷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
그렇다고 수컷 건물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에서는 좆 될 일 밖에 없을 것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드 안으로 들어가자 매우 평범한 모습의 토벌 길드 내부가 펼쳐졌다. 그저 모든 모험자가 여자이고, 죄다 머리 위에 <암컷>이라고 쓰여 있다는 정도만 다를 뿐.
나는 일단 모험자로 등록하고 퀘스트 수주기를 살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D등급 화면을 볼 때마다 맥이 빠지고 지겨웠다.
그때였다.
파티에서 특수 구인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알림이 떴다.
나는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일단 선택해서 퀘스트를 수락했다.
보통은 비슷한 등급의 모험자와만 파티를 맺을 수 있지만, 특수 아이템을 사용하면 등급 제한 없이 파티원을 구할 수 있다.
그것이 특수 구인이라는 것인데, 낮은 퀘스트에 높은 등급을 데려가는 것도 가능하고, 높은 퀘스트에 낮은 등급을 데려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버스 용도로 사용되는 아이템이지만, 역시나 게임 분위기와 밸런스를 해친다는 이유로 특수 구인 파티 생성 아이템 자체가 매우 비싸다.
그러니 A등급이라면 일단은 들어가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라유님?”
파티가 맺어지자, 여자 세 명이 나를 찾아서 다가왔다.
“D등급 검사시네요? D등급인데 괜찮으려나....”
파티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른 파티원들을 보며 눈치를 봤다. 괜히 강퇴 당하기 전에 장도를 소환해서 보여줬다. 눈치가 있으면 무기에 달려 있는 파츠들이 SSS급이라는 걸 알 것이다.
“어어?”
한 명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고, 다른 두 명은 입을 못 다물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사정이 있어서 D등급으로 등록했어. 그리고 나는 아이템 안 먹을 거야. 걱정 마. 돈이나 챙기면 돼.”
그러자 파티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와아! 다행이네요, 그럼 퀘스트 내용이랑 역할 다시 한 번 확인할게요.”
그녀가 받은 퀘스트는 파티 필수 퀘스트로, A급 중 최고 난이도의 퀘스트였다. 분명 누군가 버스를 태워주길 바라고 특수 구인을 했을 것이다.
파티원은 나를 제외하고, 검사 한 명, 소서러 한 명, 사제 한 명이었다.
“탱커가 없는데....괜찮겠죠?”
파티장인 소서러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상관없어. 그냥 내가 빠르게 끝낼 거야.”
이제 뉴비들을 배려하고 자시고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서 한 번이라도 퀘스트를 더 하고, 일 초라도 이 위험한 마을을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수컷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것이다.
우리가 향한 곳은 엘리트 수중 던전이었다. 하수도처럼 돌길로 미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옆을 흐르는 물에서 사하긴이나 문어 따위가 몬스터로 튀어 나왔다.
으으....문어...
나는 유독 문어 몬스터들만 난폭하고 자잘하게 다져 버렸다.
좆 같은 촉수들에게 개발 당했던 게 떠올랐다.
“저....라유님? 괜찮으세요?”
파티원들이 걱정 반, 공포 반으로 내 눈치를 봤다.
“하아....괜찮아....내가 문어나 오징어 같은 걸 싫어해서 말이야.”
그래도 내가 너무 독식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파티원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주며 보스방까지 금세 도착할 수가 있었다.
내가 몬스터를 처리하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모두들 지치지도 않았고, 야영을 할 필요도 없었다.
보스는 거대 크라켄이었고, 중앙에 돌로 된 지지대 위에서, 사방으로 덮쳐오는 크라켄의 다리들을 상대하는 전투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흐음...보스전까지 빼앗아 버리는 건 너무 양심이 없는 짓인 거 같았다.
“내가 다리 아홉 개를 잘라둘 테니, 너희가 마무리 해.”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다리를 하나씩 슥슥 잘라 버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크라켄의 긴 다리가 하나만 남았고, 남은 파티원이 그 하나의 다리와 사투를 벌여 몬스터를 처치했다.
“와아! S급 장도다!”
검사가 신이 나서 소리친 뒤, 뒤늦게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니가 가지라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그렇게 강하신데 왜 D등급이예요?”
소서러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 그게 이상해봤자 머리 위에 <암컷>이라고 달고 다니는 것보다 이상할 게 있나.
“원래는 SSS급인데 사정이 있어서.”
“.....”
소서러가 더 말해보라는 듯 날 계속 쳐다봤다.
“꺼져, 말 안 해줄 거야.”
“칫.”
소서러가 토라지듯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네 명이 뭉쳐 다니면 수컷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됐다. 무사히 토벌 길드로 돌아와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순식간에 C등급 끝자락까지 올라갔다.
아마 한 번 더 비슷한 난이도의 퀘스트 보상을 받으면 A등급이 될 거 같았다.
“그럼 한 번 더 가볼까요.”
우리는 보상을 쏠쏠하게 받았기 때문에, 잠시 휴식한 뒤 네 명이서 다시 한 번 더 고난이도 퀘스트를 하기로 했다.
소서러는 누가 돈을 대주기라도 하는 건지 다시 한 번 더 특수 구인 파티를 열었다.
“현상금 퀘스트?”
“네, 남은 것 중에는 이게 가장 보상이 높더라구요.”
A등급 레인저 수배자를 잡는 퀘스트였다. 사람이랑 마주치는 건 피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미 파티를 열어서 퀘스트를 받아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최소한 상대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라도 알고 싶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뭐, 별 일 있겠어?
“그럼 내가 찾아줄게.”
수배범 찾는 건 내 특기다. 내가 앞장서서 빛기둥이 있는 곳으로 가자, 도시 구석에 있는 한 빌딩이 나왔다.
“여기예요? 어떻게 이렇게 금방 찾았어요?”
소서러가 빌딩을 올려다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레벨이 높아서.”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빌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제 이 빌딩을 전부 샅샅이 뒤져야 한다.
“후우....어느세월에...”
내가 한숨을 쉬자, 다른 파티원들이 힘을 내자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래도 이 건물에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오늘 득템을 한 검사가 신이 났나보다.
나는 콘솔이 없었기 때문에 검사와 같이 위에서부터 뒤지기로 하고, 소서러가 중간부터, 사제가 맨 아래부터 뒤지기로 했다.
“제가 라유씨만큼 강해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검사는 나와 단 둘이 되자 말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같은 직업 고렙을 만나서 신이 난 거겠지. 사실 검사는 인기가 별로 없다. pvp에서는 최강이라고 하지만, 주류 컨텐츠는 퀘스트와 레이드 같은 pve컨텐츠니까.
게다가 검사보다 약간 약하긴 하지만 스킬이 화려하고 시원시원한 ‘처형자’직업이 있다 보니, pvp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처형자쪽으로 몰렸다.
“하다 보면 금방 해.”
물론 밥만 먹고 이 게임만 하거나, 밥도 안 먹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삐~>
그때 검사의 콘솔로 연락이 왔다. 소서러가 대상을 찾았다는 연락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계단을 타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가 주시하고 있는 닫혀 있는 문 근처로 가자, 수배범을 찾았다는 안내가 떴다. 이 안에 있는 게 확실했다.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끝장을 내야한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
내가 속삭이자, 나머지 파티원들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쾅!
나는 검기로 문을 박살내고 들어갔다.
“씨발! 목 따러 왔다!”
나는 자신감 넘치게 소리치며 들어갔다. 상대는 A급이다. 그냥 툭 치면 죽는 수준이다.
“으응?”
방 안에 있던 여자들이 내쪽을 바라봤다.
여자들? 수배범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상대도 네 명이나 있었다.
내가 잠시 당황해 움찔해 있는 동안 뒤쪽에서 뭔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소서러가 소화기 같이 생긴 통을 들고, 우리를 향해 뭔가를 뿌리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입과 코를 막았지만, 불안한 향기가 이미 코를 파고들었다. 달콤한 향기, 본능적으로 미약의 일종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
“죄송해요....”
순식간에 얼굴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고, 보지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 나가며 검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휘유~ 정말 데려왔네. 잘했어.”
나를 포함한 세 명이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동안, 수배범들 중 하나가 소서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안으며 그녀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소서러가 그녀의 품에 안긴 채 기쁜 듯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어서, 하나씩 골라 잡아.”
방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수컷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등급 파티에서 특수 구인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