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화 첫 번째 도시
<골드볼이 당신에 대한 통제권 획득을 시도합니다.>
음?
한밤중, 시스템음이 잠을 깨웠다. 깊이 잠들어 있다가 깬 탓에 잠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웬 남자 하나가 내 위에 올라타서 어둠 속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섬뜩한 느낌에 잠이 확 달아났고, 즉시 주먹을 날리려고 했으나 몸이 무거웠다. 손가락 하나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상태 추가 : 마비향 229레벨>
하아...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걸까. 옛날 유저 평균 레벨이 낮던 시절 레이드에서 메즈용으로 쓰던 아이템이었다.
고인물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번거롭게 메즈를 거는 것보다 화력투사로 죽이는 게 편하고 빨라졌기 때문에 지금은 잊혀 버린 고대 유물 같은 아이템이었다.
원래는 매우 싸고 흔했었지만 지금은 제작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어 비싸게 팔리는 기념품이나 다름없다.
<골드볼이 당신에 대한 3단계 통제권을 얻었습니다.>
당연히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어서 통제권은 손쉽게 넘어갔다.
도대체가 만나는 놈마다 날 따먹기 위해 돈을 이렇게 쓰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황송하다고 해야 할지.
그는 통제권 획득 메시지가 뜨자마자 거칠게 날 알몸으로 만들고 애무도 없이 자지부터 처박기 시작했다.
그의 성급하고 미숙한 행동 하나하나가 저렙의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섹스 테크닉도 최악이었다.
날 엎어놓고 박았다가 눕혀놓고 박았다가 옆으로 가위치기도 하고 기승위도 하고 아주 지랄 염병을 했다.
나도 현실에서 남자일 때 섹스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게임 레벨뿐만 아니라 섹스도 쪼렙이구나, 무제한 서버는 기본적으로 성인밖에 접속을 못 하기 때문에, 왠지 이게 첫 섹스인 것처럼 보이는 그가 측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더 측은한 게 있었다. 바로 애무할 필요도 없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던 내 보지와, 그가 박아대는 대로 느끼며 쾌감에 젖어 허리를 움찔거리는 나 자신이었다.
“흐윽....흐윽.....”
마비향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했지만 오히려 더 음란하게 들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경직된 보지로 그의 자지를 꽉 물고 즐겁게 해줬다.
그는 자신이 찌르는 대로 반응을 보이고, 조수를 뿜고 희열에 차 움찔거리는 날 보며 점점 자신감을 얻었는지 피스톤질이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박아대고 내 보지와 항문, 입을 정액투성이로 흠뻑 영역표시를 하고는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미숙했다
<골드볼로부터 통제권을 돌려받았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가슴팍을 내 장도가 관통했다. 내게 상태이상 저항 스킬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마비향 자체가 레이드 메즈용이라서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끄윽...끄윽....”
“개자식, 너도 맛 좀 봐라!”
나는 일부러 압도를 적용하지 않은 채 연거푸 찌르며 괴롭혔다. 그는 별다른 저항도 못했고 대여섯 번 정도 찔렀을 때에서야 겨우 죽었다. 나는 장도의 피를 털어 버리고, 그놈 시체를 루팅해봤지만 역시 쓸 만한 게 없었다. 아마 229렙짜리 마비향을 사기 위해 소지품을 다 털었을 것이다.
아직 새벽이었지만 기분이 잡쳐서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 더 잠들기 위해 뒤척이다가 의미 없을 거 같아서 토벌 길드로 나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라 토벌 길드에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퀘스트 수주 가능 시간까지도 한 시간정도 남아 있었다. 괜히 돌아다니다가 어제처럼 귀찮은 일에 휩싸이느니, 차라리 사람이 없을 때 빠르게 퀘스트를 받아서 길드를 벗어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시간이 되자 길드 건물에 불이 들어오며 퀘스트 수주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D등급 퀘스트들과 현상수배 리스트를 둘러봤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어제도 일반 전투직은 검사 하나뿐이었으니, 하룻밤 사이에 크게 달라질 게 없긴 했다.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수배범 중에 로그 한 명과, 레인저 한 명의 위치를 받았다. 이들은 잠행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찾는 것부터 매우 귀찮았고, 찾았더라도 도망치는 속도가 빨라 가급적이면 받고 싶지 않았다.
어제 자신이 수배범이 된지도 모르고 있던 검사와는 달리, 작정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무리 레벨 차이가 크더라도 얼굴도 못 보고 시간만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D등급의 일반 퀘스트는 보상도 짜고, 이미 이전 도시에서도 했었기 때문에 귀찮아서 더욱 하기 싫었다.
다행히 내가 수배 퀘스트를 받아 나올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녹색 빛 기둥 두 개가 수배범들의 위치를 알려줬다. 로그는 비교적 가까이 있었고, 레인저는 어제 검사처럼 거리가 좀 있었다. 대충 가늠을 해보니 이 둘을 잡으면 C등급이 되면서 악명 칭호를 제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에휴...
칭호를 사면 돈이 다시 제로가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시작인 것이다. 열차에서 그 자식만 안 만났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본인이 무능한 걸 내 탓으로 돌리는 등신이었지.
하지만 낙심할 시간도 아깝다. 어쩌면 수배범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빨리 움직일수록 일처리가 수월해질 것이다.
우선 로그의 빛 기둥이 있는 곳으로 가자 역시 주택가가 나왔다. 그 중 3층짜리 빌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안에 로그가 있을 것이다. 방을 하나하나 뒤지는 방법도 있지만 차라리 문 앞에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게 나았다. 괜히 엉뚱한 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가 건물을 빠져 나가서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문 옆에서 잠시 기다리자 수배범을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고개를 들어보자 계단에서 절반쯤 내려오던 여자 로그가 날 발견했다.
“아 씨!”
로그는 잽싸게 계단 위로 튀기 시작했다. 나는 소태도를 소환해 그녀를 뒤쫓았고, 옥상에서 난간을 등진 채 단검 두 자루를 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오지마.”
그녀는 덜덜 떨고 있었다. 겨우 사냥꾼을 마주한 정도로 저렇게 겁먹을 거라면 범죄는 왜 저질렀던 걸까.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가 난간으로 뛰어 내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택도 없다. 나도 그녀를 뒤따라 옥상에서 뛰어 내리며 광역 스킬을 사용했다.
<낙화!>
내 발이 땅에 닿자, 내 주변으로 넓은 범위의 충격파가 퍼지며 지면을 박살냈다. 그녀도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가 내동댕이쳐졌지만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허튼짓을 하기 전에 잽싸게 달려가 머리를 썰어 버렸다.
<퀘스트 완료!>
안도할 틈도 없다. 나는 곧장 레인저 수배범을 향해 뛰었다. 괜히 멈춰 있으면 칭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접촉할 틈만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또 빌어먹을 놈을 만났다.
레인저도 날 보자마자 덜덜 떨면서 총을 쏴댔지만 날 맞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일상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면 범죄 수치가 더 늘어서 본인만 손해인데, 그런 것까지 계산할 수 있었다면 저렙 때 수배범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놈이 아니었다. 내가 아직 그놈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때,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레인저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어제 만났던 스나이퍼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 발만 쏘고 말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나에게도 총알이 날아왔다.
<태세 전환 : 패리>
방어 태세로 바꿔 쉽게 총알을 튕겨낼 수 있었다. 멍청하게 나한테도 공격을 해준 덕분에 스나이퍼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대략 2킬로미터 밖 종탑 위에 있었다. 하지만 왜 레인저를 죽이지 않고 허벅지를 쐈으며, 위치를 들켜가며 나를 공격한 걸까.
그 이유는 잠시 뒤 알 수 있었다. 커다란 대검을 뽑아들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내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가 노리는 대상은 내가 아닌 레인저였다. 그러면 말이 된다. 수배범 퀘스트를 대검 전사에게 몰아주기 위해 고렙이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는 내가 먼저 죽여 버렸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고.
내 방어태세를 유지시키기 위해 총알이 몇 발 더 날아왔다. 하지만 굳이 패리가 없더라도 상관없다. 기습 보너스가 없는 공격은 여유롭게 피할 수 있다.
나는 방어 태세를 풀고 대검 전사를 가로막았다.
“넌 뭐야! 비켜!”
쩔이나 받고 있는 주제에 큰소리를 치다니.
“너야말로 꺼지시지!”
나는 그의 가슴팍을 크게 베었다. 그는 막지도 못하고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윽....너 몇렙이야....”
호오, 한 방에 안 죽네. 무기와 방어구에 비싼 고급 튜닝 파츠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저 정도면 작정하고 밀어주는 클랜이나 고인물이 뒤에 있다는 말이다.
탕!
또 다시 총알이 날아온다. 몇 발은 레인저를 향해 날아갔다. 이미 포기하고 내가 보상을 얻는 거라도 방해하려고 작정한 듯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나는 쓰러져 있는 레인저마저 보호하며 총알을 다 튕겨내 버렸다.
대검 전사는 그런 모습을 보고 덤빌 생각도 안 드는 듯했다.
“아...저기...”
뒤에 있던 레인저가 또 뭐라고 하려는 거 같아서 목을 베어 버렸다. 먹이는 말할 권리가 없다.
“[불꽃]클랜? 그건 또 어디 쳐박혀 있는 듣보잡 클랜이야?”
나는 대검 전사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클랜의 이름을 확인했다.
“칫, 씨발!”
전사는 크게 소리 지르곤 냅다 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기 위한 엄호 사격이 내게 쏟아졌지만, 그 정도로는 그를 지킬 수 없었다.
“안 싸워? 2:1인데 한 번 붙어 보지?”
나는 여유롭게 그와 나란히 달리며 말했다.
“저리 꺼져! 이 괴물아!”
나는 비웃으며 그를 가볍게 찔러줬다. 이 녀석한테 발려 있는 튜닝 파츠들을 빼앗아서 팔면 악명 칭호를 지울 돈이 충분히 나올 것이기 때문에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북어 패듯이 장도로 녀석을 패기 시작했다. 장비도 좋은데 전사라서 지구력도 높다보니 쉽게 죽질 않았다.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지만, 내게는 갓난아기가 팔을 휘젓는 수준으로밖에 안 보였다.
한참을 두들겨 팬 뒤에 마침내 사내가 죽었고, 그의 시체에서는 고급 튜닝 파츠 네댓 개와, 상당히 많은 양의 돈이 나왔다. 루팅을 끝내고 나니 주변에서 술렁이는 게 보였다. 정액받이 칭호를 달고 있는 여자가 도심 한 복판에서 난도질을 하고 있었으니, 내 평판이 어디까지 떨어졌을지 누가 안 가르쳐줘도 알 거 같았다.
수배범의 경우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사망자가 수배범이라는 안내가 가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이 전사의 경우는 다르다. 그냥 살인인 것이다.
뭐, 될 대로 되라지.
이쯤 되니 그냥 자포자기하게 됐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도시에 흘러 들어온 사이코 고인물 여자로 소문이 퍼져서 내게 접근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게 나을 거 같기도 했다.
스나이퍼도 철수 했는지 더 이상 총알이 날아오지 않았다. 정말 구미가 당기는 건 그놈이었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는 추격할 수가 없다.
나는 근처 상점에서 튜닝 파츠들을 대충 팔아버리고 현상수배 보상금을 받았다. 돈이 꽤 모였고 모험자 등급도 C등급으로 올랐다. 이제 가야 할 곳은 한 곳 뿐이다. 도시 중앙에 있는 공개 장터.
나는 백화점처럼 생긴 공개 장터 빌딩 출입문 앞에 서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