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1화 (1/107)



〈 1화 〉1화

지하철 안이다.

흔하디흔한 장면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대단한 곳이다.

‘가상현실’

vr의 출현 이후로 사람들은 가상현실 기술에 매달렸고, 가장 큰 성과를 보인 곳이 게임이었다.

영화나 비쥬얼 노벨 등, 다른 문화, 예술 장르에서도 접목을 시도했으나, 게임만큼 빠르고 위대한 성과를 보인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vr 기기를 이용한 시각적인 자극에 불과했으나, 어떤 천재적인 변태 공학자가 동면 기술과 접목할 생각을 해, 예전에는 sf 영화에서나 상상해볼 수 있었던 가상현실로의 출입이 가능해졌다.

핸드폰 게임에 묶여 있던 모든 개발자들이, 가상현실 게임 개발의 노예로 소속을 바꾼  몇 년 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거의 완벽하고, 안전한 가상현실 게임을 출시하는 대 성공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지금 가상현실 게임의 지하철 안에 있다.

[이라유]

[종합 레벨 : 184/199]

[연령 : 20대]

[성별 : 여자]

[직업(생활) : 없음]

[직업(헌터) : 검사]

[완력 : 83/200]

[민첩성 : 200/200]

[지구력 : 78/200]

[마법력 : 10/200]

[정신력 : 141/200]

내 대략적인 정보다. 민첩에 몰빵해 상한까지 찍어 버린 민첩형 검사이다. 현실의 나는 남자지만, 캐릭터는 당연히 여자로 만들었다. 그건 가상현실 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너무나도 당연한 전통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여캐인  많은 이점이 있다.

 게임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현대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게임에 옮겨 놨다는 것이다. 그동안 판타지나, sf, 원시시대  여러 가지를 배경으로 한 가상현실 게임이 쏟아져 나왔으나, 대부분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졌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했던가, 현실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거부감을 덜 느꼈고, 현실과 비슷한 곳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중요한 인물이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게임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 준 걸로 끝나지 않고, 판타지 세계처럼 전투가 주력인 세계관을 구축해뒀다. 도시 구역에서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원한다면 몬스터들을 난도질하고 다니는 쾌감을 느낄 수 있게 해뒀다.

결국  게임은 가상현실 게임들의 정상이 됐고, 현실의 삶보다 이쪽의 삶을 진정한 삶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종합 레벨 184,  게임의 만렙은 199다. 그리고 현재 만렙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능력이 늘어나면 만렙 상한도 같이 늘어나겠지만, 지금 당장은 고인물이라고 부르는 축에 속해 있다는 말이다.

‘에휴, 요즘은 레이드도 별로 재미없는데, 접을 때가 됐나.’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 다음 주에 있을 레이드 준비를 하기 위해 노가다를 하러 왔다. 나는 소속된 레이드 팀이 따로 없다. 아무 팀에나 용병으로 들어가 버스 태워주고, 나한테 필요한 것만 가져오는 식이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공중에 붉은 색으로 점등하는 경고 메시지가 보였다.

<경고 : pvp 제한 해제 구역입니다.>

‘오늘은 사람 많았으면 좋겠는데.’

이 게임에는 사실상 pvp제한이라는 건 거의 없었다. 게임이 현실에 가까워지면서, 그리고 이곳이 가상현실에 불과하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도덕적인 잣대가 어느 정도 부서지길 기대했다. 더 큰 자유를 누리길 원했고, 게임사는  안에 들어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다소 폭력적인 요소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제한을 가지고 있었다. 특정 지역에서 서로 싸울 수 있는 정도의 자유였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의 상상력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커지고, 회사의 담력도 커지면서 아예 서버 전체에서 pvp 제한을 풀어버리는 상황까지 왔다. 물론 반드시 그 규칙을 따라야 하는  아니었다.

가볍게 산책하듯 가상현실을 즐기는 사람의 수요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서버는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다. 대부분이 기존처럼 pvp가 아예 없는 제한 서버였다.

하지만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무제한 서버였다. 개발진의 기술력이 닿는 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서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 행동이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고 : pvp 제한 해제 구역입니다.>

방금 떴던 이 문구, 사실상 제한이라는 게 없다고는 했으나, 이곳에도 나름대로 사회가 구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다가는 평판이 깎이기도 하고, 도덕 평가가 떨어져서 성장이나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도 한다. 심할 경우 현상금 수배자가 돼서 컨텐츠 부족에 허덕이는 고인물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 하락 걱정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싸울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 줬다. 이 구역에서는 상대 캐릭터를 공격하거나, 죽여서 아이템을 뺏어도 아무 문제없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지.’

내가 말한 노가다란 캐릭터 사냥이었다. 몹을 잡아서 돈과 아이템을 구하는 것보다,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캐릭터를 죽이는 게 훨씬 빠르고 편했다. 물론 유저들 사이에서 양민 학살자라고 욕을 먹고 있긴 하지만,    아니다. 정직하게 자기들끼리 레이드 팀을 꾸려 공략하는 것보다,   감고 날 기용해서 레이드를 굴리는   배는 효율적이니까. 날 찾는 팀은 언제나 있다.

사냥감을 찾는 대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남자 캐릭터가 들개형 몬스터 몇 마리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곳이 몹 레벨이 높은 필드이긴 하지만, 저런 잡몹에게 고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는 내 전용 장도를 소환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

“어? 저기요? 저 좀 도와주세요!”

남자는 날 보고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쳇, 겨우 저 정도로 고전할 정도면 별 거 없겠는데.’

너무 실망스러워 남자와 몬스터들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살아남은 몬스터 하나가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도망쳤지만, 쫓을 가치가 없었다. 죽은 남자의 시체를 조사해봤지만 역시나 쓸 만한 건 없었다. 인벤토리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까운 잡동사니들이었다. 돈만 챙긴 뒤 없애버렸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찾아보지 뭐.’

진짜 현실인 것처럼 구현을 잘 해뒀기 때문에, 몬스터를 처음 상대하거나, 사람과 대결을 처음 해보는 뉴비들은 잔뜩 긴장하기도 하고, 상대를 죽인 뒤에 패닉에 빠지기도 하지만,  세계의 시스템을 알고 난 뒤에는 금세 적응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 세계의 캐릭터들이 전부 실제 유저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사도 바보는 아니라서,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사람들의 충격을 완화 시키고, 도덕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npc들을 풀어놨다. 그리고 딥러닝으로 실제 유저들의 행동을 학습시킨 결과, 실제 유저와 npc를 도무지 구별할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npc들도 목숨이 위태로우면 본인이 실제 유저라며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다른 캐릭터를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은 안심하고 다른 캐릭터를 공격할  있었다.

“하지만 기분 나쁠 때도 있단 말이지.”

물론 반대의 상황이 일어날 때도 있다. 내 목숨을 노리고 덤벼드는 캐릭터가 유저가 아닌 npc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 구조를 이해하게 된 유저들은, 내가 죽인 캐릭터는 npc로 치부해 버리고, 나를 죽인 캐릭터는 실제 유저라서 능숙한 거라고 생각해버리면서 적응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이 세계에서는 죽더라도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npc들이라도 말이다. 물론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이따금 제약이 걸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

얼마든지 죽어도 되고, 얼마든지 죽일  있는 공간, 뭔가 잘못 꼬여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성과를 빼앗아 내 걸로 만들 기회가 공존하는 공간, 이런 것들이 이 무제한 서버의 매력이었고, 나는  서버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너!  하는 놈이야!”

루팅을 마치고 고개를 들자 웬 여자 하나가 내게 소총을 조준하고 있었다. 약간 긴장한 표정을 보아하니 내 레벨이 자기 수준으로는 측정 불가인  확인했나보다.

“왜 걔를 죽였어?!”

대충 훑어보니 총기에 꽤 고급 튜닝 파츠가 붙어 있고, 복장에도 튜닝 파츠가 붙어 있었다. 보아하니 장소에 안 어울리던 이 뉴비를 쩔 해주던 고렙인 듯했다. 그녀가 잠시 한눈을  사이에 내가 와서 파티원을 순삭해 버린 것이었다.

나는 굳이 그녀의 말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장도를 펼치고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도 나를 향해 소총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총은 맞으면 아프다. 그래 아프고 끝이다. 지구력 스탯이 높은 사람이라면 비비탄은커녕 빗방울에 맞은 정도의 감각밖에 못 느낄 것이다.

아무래도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인 만인 평등 무기가 존재하는 건 게임의 재미를 저해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적절하게 낮은 수치의 대미지를 주고 마는 걸로 설계 했었다. 그마저도 거듭되는 너프를 받았고, 지금은 총기류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레인저 계통이 아니라면 장난감 정도의 효과밖에 못 보도록 만들어 놨다.

그렇기 때문에 소총을 들고 있는 저 여자는 당연히 레인저 계통일 것이고, 나는 지구력 스탯이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패시브 스킬 : 투사체 자동회피 발동>

총알들은 허망하게 나를 지나쳐서 땅에 박혔다. 안타깝게도 내가 주시하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발사되는 모든 투사체는 나에게 닿지 못한다. 그녀는 스킬에 대한 지식이  있었는지, 자동회피가 발동하는 걸 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내 장도가 그녀의 등을 꿰뚫었다.

<패시브 스킬 : 압도>

일정 이상 레벨 차이가 나면 추가 대미지가 들어가는 스킬이다. 동렙 던전이나 레이드에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인물들은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는 게 아깝다고 여기는 스킬이지만, 난 이 스킬 덕분에 두 번 때려야  놈들을 한 방에 죽일 수 있어서 파밍을 수월하게 할  있다.

다른 고인물과의 pvp에서 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필요가 없다.  구역에 나와 비슷한 수준의 고인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고인물들은 다른 고인물과 상대하는  꺼린다. 죽으면 장비 아이템을 빼고 모두 잃어버리는 특성상,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승부를 시작했다가 죽기라도 하면 그날 하루를 공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은 내가 이겼더라도, 다음부터 상대가 작정하고 나를 죽이려 들면 한 번 정도는 죽을 수도 있다. 그럼 서로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는 소모적인 개싸움으로 발전하게 되고, 양쪽 다 시간과 돈과 아이템만 허투루 낭비하게 되는 셈이다. 정 비슷한 사람과 싸우고 싶으면 아이템 유실 위험이 없는 투기장으로 가면 된다.

그렇다고 저렙은 보이는 족족 죽이던 내가, 다른 고인물을 알아보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저렙만 괴롭히는 찐따라며 구역 평판이 낮아질 것이다. 그건 상대 고인물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대충 알아서 서로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다. 이미 내 모습이 가상현실 속의 인터넷 상에 널리 퍼져 있고, 양민학살자로 박제가 돼 있는 상태라서 이미 평판은 평균 이하이긴 하지만, 평판이 아예 박살나면 다시 회복할 때까지 자중해야하기 때문에 그건 사양하고 싶다.

하루 종일 대충 삼사십  정도를 썰어 제꼈다. 중간 중간에 고렙도 섞여 있어서 수입이 쏠쏠 했다. 죽으면 대부분의 소모품과 재료템, 돈을 그 자리에 떨어뜨리고, 장비에 추가로 달아둔 튜닝 부품 정도가 드랍 된다. 다행히 이미 장착하고 있든, 인벤토리에 있든 장비품 등의 중요한 아이템들은 드랍하지 않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저렙들은 항상 돈을 창고에 넣어두고 다녔기 때문에 별로 돈이 되지 않았다. 수입의 주를 이루는  바로  튜닝 부품이었다. 아까 만났던 레인저의 소총에 달려 있던 강화 개머리판, 고급 스코프 따위는 팔면 꽤 돈이 된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뜬금없이 비명횡사할 줄은 모르고 그런 비싼 장비를 끼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벌어야지 뭐 어쩔 수 있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타며 씨익 웃어 버렸다.

억울해 하거나,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접속할 때마다 정신없게 뜨는 경고를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제한 서버에서 플레이하는 걸 수락했다. 결국 이런  싫으면 비폭력 서버로 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번 무제한 서버에 맛을 들이면 내려갈 수 없다.

그때 누군가 내 엉덩이를 더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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