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98화
땡땡땡!
비상종이 울리자 연운항에 있던 모든 무인이 모두 약속된 장소에 집합했다.
“갑자기 비상종은 왜 울린 거야?”
백서휘가 참모진들이 있는 천막에 들어가며 물으니 제갈진천이 설명을 해주었다.
“운태산에 보내 놓았던 척후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왔는데?”
“혼천회의 무인들이 산 밑으로 내려와서는 저희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지금?”
“예, 지금 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거리를 생각하면 지금쯤 준비를 모두 끝내고 이리로 올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
운태산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연운항이 있었다.
그래서 혼천회 쪽에서 마음만 먹으면 관무연합을 공격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예, 그래서 비상종을 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준비를 끝낸 그들이 싸움을 걸어올 수 있으니까요.”
“병력 지휘는 누가 맡기로 했지?”
“금의위와 동창, 황군은 북경에서 온 장군이 맡기로 했고, 무림인들은 아버님께서 맡기로 했습니다.”
“작전은?”
“손발을 맞추는 훈련을 한 적이 없어서 세세한 작전을 짤 수는 없었습니다.”
제갈진천은 말을 하면서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냥 막무가내로 돌격하겠다는 거야?”
“다들 알고 있는 팔괘진을 최대한 이용해 공격적으로 전투를 치르면서, 몇몇 고수들을 별동대로 운용해 혼천회의 고수를 잡으려고 합니다.”
“팔괘진이라…….”
백서휘는 혼천회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예측해 봤다.
‘저쪽도 팔괘진을 펼칠 것 같은데…….’
혼천회는 하나의 문파가 아니라 수호문을 멸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소속이 다 제각각이고 손발을 맞춘 적이 없으니 그들 역시도 팔괘진 같은 걸 펼칠 가능성이 컸다.
“맘 같아서는 여기서 본가의 자랑인 팔문금쇄진을 펼치고 싶지만, 아군 다수가 알고 있는 진이 삼재진, 오행진, 팔괘진 정도뿐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팔괘진으로 나왔을 때 적들이 어떻게 나올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야. 탓하려는 건 아니니 안심해.”
백서휘가 그답지 않게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전투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지금쯤이면 팔괘진을 펼치고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나가야겠네.”
백서휘와 제갈진천이 참모진들을 뒤로하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선두에 있는 이들은 자신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
선연으로 엮인 이는 검후, 소검후, 화산파 문주 등이 있었고 악연으로 엮인 이는 소림의 방장이 있었다.
백서휘는 그들을 보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황천익이나 오룡단, 학무관의 사범들은 어디 있지? 아! 저기 다 모여 있네. 음…… 저치들이 잘 싸울 수 있을까?’
다들 살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백서휘는 최선두로 걸어 나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제갈중헌과 장군이 동시에 소리쳤다.
“모두 운태산을 향해 진격한다!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모두 신법을 펼치지 마라!”
백서휘와 관무연합은 운태산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다들 무리하지 말고 체력 안배 잘해.』
운태산이 가까워져 오자 백서휘는 자기 밑에 있는 모든 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두가 알았다고 말하며 서로의 무운을 빌었다.
‘저기 보이는군.’
백서휘는 눈동자를 굴려 적들의 면면을 빠르게 훑어봤다.
‘역시 예상한 것처럼 회주는 없군. 혼천회의 무인들과 싸우는 도중에 승천 의식이 진행될 수 있단 걸 염두에 두고 싸워야겠어.’
멀찍이 떨어져 있는 혼천회 측 무인들이 살기를 백서휘에게 투사했다.
개개인의 실력이 떨어져 한 명의 살기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모두의 살기는 달랐다.
‘제법 세군.’
팔다리에 닭살이 올라오면서 살짝 소름 돋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살기라 혼천회 인간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기세가 끌어 올려졌다.
‘재밌네.’
백서휘는 살기에 대한 보답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허공에 띄워놨다.
어검술을 펼칠 만큼 대단한 고수란 걸 보여줘서 혼천회 무인들의 사기를 꺾을 속셈이었다.
다행히도 생각이 그대로 먹혀든 덕에 혼천회 측의 살기와 투기(鬪氣) 모두 가라앉았다.
“모두 안녕하지? 아! 패배자들이라 안녕 못 했으려나?”
“패배자들?”
선두에 있는 혼천회 측 무인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맞잖아. 수호문에 패배한 쓰레기들이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기 위해 모인 게 혼천회 아니야?”
“이놈! 입에 걸레를 물었구나!”
“하하하! 내 입이 험하긴 하지. 여기 있는 내 송곳니 보여? 아! 너희 같은 쥐새끼들은 없지?”
“쥐새끼? 흑도의 잡배들이랑 하는 말이 똑같구나. 수호문에서는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안 가르치나?”
“쥐새끼들한테는 머리 숙이지 말라고 배웠지.”
“길고 짧은 건 대어 봐야 아는 것 아닌가?”
“상식이란 게 있잖아. 쥐새끼가 아무리 모여도 용이나 호랑이를 이기진 못해.”
“하하하! 네가 용이라도 된다는 소리냐?”
“그래.”
선두에 있는 혼천회 측 무인이 배를 잡고 껄껄 웃었다.
“진짜 용을 보여주마. 아지다하카!”
“차력술?”
자신이 용인으로 변할 정도로 센 것 같지는 않지만 다른 이들에겐 엄청나게 강하리라.
“저놈이 완전히 변하게 되면 손해를 크게 보게 돼!”
백서휘의 말을 들은 제갈중헌과 장군이 관무연합 모두에게 돌격하라는 명령은 내렸다.
‘이리와!’
검이 저절로 날아와 백서휘의 손에 안착했다.
백서휘는 그 검을 이용해 어검비행술을 펼쳐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동안 선두에 있던 자의 피부에는 비늘이 반쯤 덮이고, 관자놀이에는 작은 사슴뿔이 솟아올랐다.
손톱은 조금 길어졌으며 엉덩이엔 인간에게는 없는 꼬리가 짧게나마 생겼다.
‘왜 완전히 변하지 못한 거지? 나보다 경지가 낮아서 그런가? 아니면 아지다하카인지 뭔지가 힘을 허락하지 않아서?’
왜 그런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백서휘에겐 좋은 일이었다.
“죽어라!”
반용인(半龍人)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더니 빠르게 양손을 휘둘렀다.
백서휘는 어검비행의 방향을 바꿔 피한 후 강환을 계속 만들어냈다.
“나와의 일전을 피할 셈이냐!”
“그건 아닌데 지금은 할 일이 있어서 너랑 못 싸워.”
“할 일?”
“아군을 도와주는 일.”
백서휘가 씨익 웃더니 혼천회 측 무인들이 모인 곳에 강환을 쏟아부었다.
쾅! 쾅! 쾅! 쾅! 쾅!
곳곳에서 굉음이 들리고 섬광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머, 멈춰라!”
“그런 말을 한다고 내가 듣겠어?”
“젠장! 어쩔 수 없군, 작전대로 간다! 모두 이놈을 공격해!”
백서휘는 작전이란 말을 듣자마자 바로 어검비행술로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그가 있던 자리에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 여섯과 주술사 넷이 공격한 탓이었다.
‘날 붙잡아두려는 것 같은데 그렇겐 안 되지.’
백서휘는 어검비행술을 펼쳐 전장 위를 날아다니면서 신순을 쓰고 강환을 쏟아부었다.
뿔난 화경의 무인들과 주술사들이 그를 뒤쫓다 멈춰 서서 관무연합을 노렸다.
백서휘는 그들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이 맞지? 하수들을 죽이면 내려올 수밖에 없다니까.”
“그래, 네가 옳다. 옳아.”
“이런 멍청한! 그러고 있지 말고 빨리 공격이나 해!”
반용인이 화경의 무인들에게 일갈하고는 백서휘를 공격했다.
뒤에 있던 주술사들이 딱딱한 얼굴로 진언을 읊었다.
쐐액! 쐐액! 휘익!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밟아 적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격전지 쪽을 바라봤다.
검후와 소검후가 현란한 검술 솜씨로 적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우리 쪽이 유리한 건가?’
전장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승기를 잡고 있는지, 패색이 짙은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이놈들부터 일단 처치하고 보자.’
백서휘는 적들 몰래 손에 겨자씨만 한 강환을 만들었다.
화경의 무인들은 근접해 있던 탓에 뭔가가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주술사들은 그러질 못했다.
백서휘는 주술사 중에서도 눈을 감고 수인을 맺고 있는 자에게 겨자씨 크기의 강환을 쏘아 보냈다.
‘이건 안 봐도 맞췄네.’
예상과 다르게 투명한 무언가에 겨자씨 크기의 강환이 막혔다.
‘뭐야.’
그때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며 투명한 무언가가 부서졌다.
주술사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눈을 떴다.
그 순간, 겨자씨 크기의 강환이 그의 머리에 박혀 들어갔다.
펑!
주술사의 머릿속에서 터져 버리는 바람에 회색 뇌수와 붉은 피, 육편이 주위로 비산했다.
주위에 있던 다른 주술사들이 인상을 쓰며 거리를 벌렸다.
“백정들아! 견제 좀 제대로 해!”
“견제는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 역할인 거 잊었나?”
“한 방, 한 방은 우리가 더 강해!”
안타깝게도 내분이 일어날 것 같으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서휘는 아쉬워하면서 다른 공격을 준비했다.
‘독령! 기독을 풀어!’
『그러면 신순을 펼칠 수가 없습니다. 주군의 진기도 꽤 많이 사용하게 될 거고요.』
‘공격은 내가 어떻게든 피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기독을 만들어서 풀어.’
『알겠습니다.』
의념이 강화되면서 천의일기공에 영향을 끼쳐 모든 무공이 진보했다.
구천현현보도 그 덕분에 더 좋아져서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눈앞에 있는 이들의 공격을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준비 끝났습니다.』
‘신호하면 은밀하게 살포해.’
『신호 기다리겠습니다.』
백서휘는 화경의 무인들에게 일부러 포위되는 걸 자처했다.
화경의 무인들이 비틀린 미소를 짓는 걸 보자마자 그는 속으로 외쳤다.
‘지금 살포해. 끝나면 말하고.’
무색, 무취, 무미, 무형의 기독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다 뿌렸습니다.』
그때 화경의 무인 중 검객이 휘두른 검이 백서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볼에서 나온 피가 턱 쪽으로 흘러내렸다.
그 와중에 양쪽에서 창 두 개가 옆구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백서휘는 등을 완전히 젖히는 철판교의 수법을 펼쳐 두 창수(槍手)의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오른쪽에 있는 창수에게 신순을 집중적으로 쏴!’
처음 세 번은 호신강기에 막혀 타격을 주지 못했지만 뒤이은 공격은 꽂아 넣듯 들어갔다.
쐑쐑쐑쐑쐑쐑!
창수는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나며 앞으로 쓰러졌다.
적들이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며 백서휘는 어검비행술을 뒤쪽으로 펼쳤다.
그러자 그의 몸이 빨랫줄처럼 일직선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때 진언을 외우던 주술사 중 셋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신순을 전력으로 펼쳐!’
화염과 뇌전, 빙결을 품은 강력한 술법들이 백서휘를 향해 날아갔다.
신순으로 그 술법들을 멀리서부터 깨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주군! 죄송합니다! 술법을 깨지 못했습니다!』
‘위력을 약화했으니 됐어.’
벡서휘는 부분 용인화로 눈을 용안으로 바꾼 후, 검강이 깃든 검으로 경천신뢰 초식을 여러 차례 펼쳤다.
술법의 근본을 이루는 결합 구조가 검강이 담긴 검에 의해 깨끗이 잘려 나갔다.
세 가지 술법은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소멸했다.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을 겪은 주술사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지금이다!’
백서휘는 전방을 향해 검을 있는 힘껏 던졌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주술사 중 하나의 왼쪽 가슴을 공격할 수 있었다.
검이 주술사 중 하나의 심장을 부수고 등을 꿰뚫고 와서는 옆에 있는 다른 주술사를 노렸다.
근처에 있던 반용인이 황급히 달려와서 백서휘의 공격을 막았다.
“아이고, 아까워라.”
백서휘는 적들을 비웃으면서 전장으로 시선을 잠깐 돌렸다.
전장에서는 오룡단이 멋지게 활약하고 있었다.
제갈선우는 일월안으로 전장을 보면서 오룡단으로 하여금 아군을 돕게 했다.
모용진은 거력금강신으로 그를 지켰고, 당기준은 잠광환허술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고수로 보이는 자를 암살했다.
황보정석은 천왕보를 활용해 전장 곳곳으로 이동하며 명왕폭류도법으로 막힌 곳을 뚫었다.
‘가장 활약이 특출난 건 남궁진인가.’
남궁진은 뇌룡보로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자신보다 하수들을 사냥하듯 죽였다.
‘좋아, 계속 그렇게 해라.’
백서휘는 의념을 보내 검을 손에 안착하게 하고 시선을 적들에게로 옮겼다.
“지, 진기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어.”
“너도 그래?”
“나도.”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남은 화경의 무인들의 시선이 백서휘에게로 향했다.
“설마…….”
“그래, 나야.”
백서휘가 화경의 고수들에게 살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