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94화
섬서성에 진입한 백서휘와 운학은 화산에 들르기 전에 서안부터 들렀다.
섬서성의 성도이니 다른 곳의 정보가 모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그 예측은 맞아 화산을 비롯한 근방의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정보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소뇌음사의 중들이 패악질을 부리는데도 화산파와 종남파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전력의 절반 이상이 광풍사와 싸우러 간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겁쟁이 같았다.
“……무사하다니 다행입니다.”
말을 하면서 운학은 소매를 묶어 매화 문양을 남들이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건 아직 몰라. 소뇌음사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위남(渭南)이니까.”
위남은 화산과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뇌음사 쪽에서 마음만 먹으면 화산까지 가는 건 금방이었다.
“공격당한다고 하더라도 본문이 그리 쉽게 당해 주지는 않을 겁니다.”
“위남에서 소뇌음사 놈들을 발견하지 못하면 상황 봐서 화산으로 바로 가도록 하자.”
“예.”
백서휘와 운학은 위남 방향으로 신법을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남에 도착한 그들은 소뇌음사가 만들어낸 참상을 볼 수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을 입고 넋이 나간 듯 웃는 여자.
가슴에 구멍이 뚫려 죽은 어미 곁에서 엉엉 우는 아이.
어깻죽지부터 손까지 새까맣게 타 버린 남자.
운학이 말을 잃고 멈춰 있는 동안, 백서휘는 기감을 넓혀 소뇌음사 놈들을 찾았다.
‘없군.’
소뇌음사 놈들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래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백서휘는 정신이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노인에게 질문했다.
“소뇌음사 놈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아나?”
“……화음 쪽으로 갔소.”
화음은 화산파와 같은 방향에 있는 곳이었다.
화음이 아니라 화산으로 바로 갔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백서휘는 멍하니 서서 눈만 끔뻑거리는 운학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정신 차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화산’이 위험해.”
“예? 화산이 위험하다니요?”
“소뇌음사 놈들이 화음 쪽으로 갔다고 한다.”
“화, 화음에서 화산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 빠, 빨리 가야…… 화, 화산으로 가는 방향이…….”
공황 상태에 빠졌는지 운학은 수없이 오갔을 길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라 백서휘에겐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다.
“지금 같은 상태로는 화산에 도착해도 큰 도움이 안 돼.”
운학은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손짓하고는 심호흡을 열심히 했다.
“……정신 차렸습니다.”
“그러면 출발하자.”
“예.”
백서휘와 운학은 다시 쉬지 않고 화산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눈앞에 화산이 나타났다.
화산은 오악 중 서악(西岳)으로 불리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고 높았다.
“조용하네. 별일이 없…….”
그때였다.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백서휘와 운학의 코를 자극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저러다 퍼지는 거 아닌가, 몰라.’
운학은 땀을 비 오듯이 쏟으면서 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숨도 거칠어진 걸 보면 딱 봐도 지친 상태.
‘이젠 조금씩 뒤처지기까지 하네.’
가만히 운학을 지켜만 보는 것보다는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화산파가 괜찮은지 확인부터 하고…….’
백서휘는 기감을 최대한으로 넓혀서 화산파 쪽을 살폈다.
화산파에서는 정문을 틀어막고 수성전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진 잘 막고 있으니 잠깐 휴식해서 몸 상태를 끌어올려도 문제없어 보였다.
‘잠깐 쉬는 정도는 괜찮겠지.’
앞서가던 백서휘가 멈추자 운학도 멈춰 서 주위를 경계했다.
“휴식한다.”
“예? 그게 무슨…….”
“네 상태를 봐.”
“헉헉! 아무런 이상 없습니다.”
“무인이란 놈이 기본 중의 기본인 호흡이 엉망이 돼서 어깨가 들썩이고 있잖아. 거기다가 하체로 보내는 진기도 점점 끊어져서 아까부터 계속 뒤처졌잖아.”
“그 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문이 위험한데 휴식을 취할 수는…….”
“지금 네 상태로는 소뇌음사의 땡중들 절대 못 죽여. 그러니까 휴식하기나 해.”
“……알겠습니다.”
자기 상태를 냉정히 돌아본 운학은 군말하지 않고 백서휘의 말을 따랐다.
그가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려 하자 백서휘가 뒤에 붙었다.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백서휘가 명문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운학은 눈을 감고 내공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그의 단전에 진기를 채우고 체력을 회복하는 걸 도왔다.
“후우!”
운학이 숨을 크게 내쉬면서 감겼던 두 눈을 뜨자 자색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서휘는 알았다고 손짓하면서 기감을 다시 넓혀봤다.
화산파의 정문이 소뇌음사의 중들에게 뚫리려고 하고 있었다.
“화산파가 지금 위험한 것 같으니 먼저 가 있겠다.”
“예!”
백서휘는 어검비행술을 펼쳐 화산파의 정문에 다다랐다.
“백서휘다! 백서휘가 나타났다!”
소뇌음사의 주지가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뒤를 돌아봤다.
정말 백서휘가 있자 그는 화산파의 정문을 뚫다 말고 소리쳤다.
“화산파의 말코도사들을 상대하지 말고 수호문주에 모든 공격을 집중하시오!”
“그래, 나한테 공격을 집중해라. 이 땡중들아!”
멀찍이 있던 소뇌음사의 주지가 전광과 함께 코앞에 나타나더니 벽력(霹靂)의 힘이 담긴 권법을 펼쳤다.
우르르 쾅쾅!
백서휘는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유려하게 그의 공격을 피했다.
“이이익!”
소뇌음사의 주지가 계속 주먹을 내뻗는 데도 정타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무력의 격차를 바로 체감한 그는 바로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렸다.
“다들 후퇴하시오!”
“내가 도망가게 놔둘 것 같아?”
백서휘는 강환을 수십 개 만들어낸 후 겨자씨 크기로 압축했다.
“저, 저건…… 다들 사방으로 흩어지시오! 그래야 살 수 있소이다!”
소뇌음사의 주지는 판단이 빠르고 좋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죽어 버려라.”
백서휘는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강환을 쐈다.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그의 강환에 소뇌음사의 중들이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파지지직!
소뇌음사의 주지는 백서휘의 공격을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왼팔을 잃고 말았다.
“어서 도망을…….”
“그렇겐 못 해.”
운학이 길을 가로막은 후 소뇌음사의 주지에게 검을 겨누었다.
“이 마구니 놈아! 썩! 길을 비키지 못할까!”
“절대 못 비킨다.”
“이 마구니 놈아! 이래 봬도 본인은 소뇌음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너 같은 마구니랑 드잡이질할 만한…… 헛!”
운학은 ‘소뇌음사의 주지’라는 말에도 겁먹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파지지직!
소뇌음사의 주지가 전광과 함께 사라져서 그의 공격을 피했다.
“본인이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강호에서 보면 절대 너를 살려 보내지 않겠다.”
“나도 널 살려 보낼 생각이 없다.”
“뭣이?”
스르륵!
운학은 신법이자 보법인 암향표를 사용해 따라붙었다.
암향표는 매화검수에게만 전해지는 무공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소뇌음사의 주지가 중얼거렸다.
“매화검수?”
“그렇다.”
“팔 하나를 잃긴 했지만, 본인은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다. 마구니 네놈이 매화검수든 뭐든 본인한테는…….”
파지지직!
소뇌음사의 주지는 말을 하다 말고 전광과 함께 사라졌다.
운학은 얼굴을 굳히고 그의 공격에 대비했다.
우르르 쾅쾅!
소뇌음사의 주지가 남은 한쪽 팔로 벽력의 힘이 담긴 권법을 펼쳤다.
운학은 영리하게도 그의 왼팔 쪽으로 보법을 밟아 공격을 피했다.
“이 마구니 놈이! 마구니답게 비겁하게 구는구나! 이것이 화산의 자랑인 매화검수의 전투법이냐!”
운학은 말없이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劒)의 초식 중 하나인 신산지화(辛酸之花)를 펼쳤다.
그래도 경지가 어딜 가지 않는지 소뇌음사의 주지는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피했다.
“본인의 발은 멀쩡하다! 이 마구니 놈아!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느냐? 마구니 네놈이! 내 다음 공격에 죽는단 뜻이다.”
파지지직!
소뇌음사의 주지가 사라지는 것을 보자마자 운학은 칠절매화검의 방어 초식인 만화성막(萬花成幕)을 펼쳤다.
운학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매화 모양의 검기가 공간을 가득 메우면서 장막을 만들었다.
소뇌음사의 주지는 그 장막을 번개 같은 속도로 뚫어 버렸다.
운학이 당황하지 않고 암향표를 펼쳤지만, 그의 공격이 더 빨랐다.
파지지지직!
뇌전이 감겨 있는 발이 운학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때 어느새 나타난 백서휘가 소뇌음사 주지의 복부에 난화만천수를 꽂아 넣었다.
콰아앙!
“내가 도망가게 놔뒀으면 그냥 무시하고 도망이나 갈 것이지. 왜 애꿎은 애를 잡고 있어.”
혼천회와 연관이 있는 곳으로 도망갈까 싶어서 일부러 살려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운학과 싸울 줄은 몰랐다.
“우웨엑! 도망가게 놔뒀다?”
소뇌음사의 주지가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해냈다.
“그래.”
“……본인이 그쪽 손바닥에 놀아났다 이 말이오?”
“그래,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재롱부리던 손오공처럼 내 손에 놀아났다.”
소뇌음사의 주지가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정보를 하나 내주면 살려 보내 줄 용의가 있으니까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
“저자를 살려 보낸다고요?”
운학이 깜짝 놀란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혼천회의 꼬리를 잡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저놈은 본문을…….”
“부정력 모이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소뇌음사의 주지가 입을 열었다.
“부정력이 무엇이오?”
“뭐야, 아무것도 모르고 혼천회를 돕는 거였어?”
백서휘는 소뇌음사의 주지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말씀해 주시오. 부정력이 무엇인지.”
“부정력이란 게 뭐냐면…….”
백서휘는 그래도 나름 친절하게 소뇌음사의 주지에게 부정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그게 사실이오?”
“그럼 혼천회가 뭐가 아쉬워서 네놈들에게 도와달라고 했을까? 어?”
“아무리 그대로 그렇지 인간이 어찌…….”
“지금 네놈 이해하게 할 생각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까 혼천회에 대해 알고 있는 거나 다 불어.”
“지부에 대한 정보를 말하면 살려 보내 줄 수 있소?”
진짜 죽을 수 있단 걸 알기에 소뇌음사의 주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말했잖아. 이래 봬도 소뇌음사의 주지라고. 그 정도 되는 인물을 살려 보내 주는 건데 겨우 지부에 관한 정보로는 힘들지.”
“겨우 지부에 관한 정보가 아니오.”
“그럼 뭔데?”
“본인이 알기로는 혼천회에서도 꽤 고위직인 자가 아직 지부에 남아 있소.”
“얼마나 고위직인데?”
“군사의 직속 수하면 충분히 고위직 아니오?”
“군사?”
“혼천회의 이인자요.”
백서휘는 소뇌음사의 주지 몰래 겨자씨만 한 강환을 만들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 고위직이 이렇게 나와 있는 건데? 그 정도 고위직이면 본단에서 명령만 내리지 않나?”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오. 아무튼 남아 있소.”
“좋아, 살려 보내 줄 테니까 지부가 어디 있는지 그 위치나 말해.”
“흥교사(興敎寺)가 그들의 지부요. 다 말했으니 이제 그만 가도 되오?”
“그래, 이제 그만 저승에 가도 돼.”
“저승? 그게 무슨?”
백서휘는 겨자씨만 한 강환을 쏘아 보냈다.
강환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소뇌음사 주지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운학 너는 하오문이랑 개방 놈들 흥교사로 오게 해.”
“흥교사에 가보시려고요?”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잖아.”
“음…… 사문 사람들이 괜찮은지만 보고 하오문이랑 개방 사람들을 흥교사 쪽으로 보낼게요.”
“그래.”
백서휘는 질풍 같은 속도로 화산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