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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90화 (190/202)

귀환무관 190화

겨자씨만큼 작은 강환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갔다.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강환을 인지하기도 전에 몸에 바람구멍이 난 채로 쓰러졌다.

아무런 방해 없이 날아간 강환은 대열의 중간에서 멈추었다.

백서휘의 의도를 알아차린 북해빙궁주가 전력으로 달려왔지만, 그때는 강환의 폭발이 시작된 후였다.

콰콰콰콰쾅───!

겨자씨만 한 강환에서 시작됐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커다란 폭발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땅에서부터 시작된 커다란 버섯구름이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충격파와 먼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중상을 입은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덮쳤다.

“끄아아악!”

“사, 살려……. 그르륵!”

“엄마! 엄마!”

뿌연 먼지 사이에서 북해빙궁주가 튀어나와서는 백서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죽이겠다. 죽이지 못하면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원혼이 되어서라도 널…….”

“뭔 놈의 혓바닥이 이렇게 길어.”

백서휘는 뒤로 이동하면서 독령에게 쓰러진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기시로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럴 시간에 좌장이든, 우장이든 더 휘둘렀으면 이렇게 부하들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널 막고 있는데 부하들이 어떻게 죽게 된다는…….”

쌕쌕쌕쌕쌕!

혈도를 통해 밖으로 나온 기시가 빠른 속도로 나와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퍼억! 퍼억! 퍼억!

수박 통 깨지는 소리가 연이어 나면서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머리가 터져 나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무공이냐!”

“신순.”

백서휘는 보랏빛 수강을 만들어낸 후 난화만천수의 묘리대로 휘둘렀다.

북해빙궁의 궁주가 화들짝 놀라며 시리듯 하얀빛이 나는 우장으로 응수했다.

맞부딪힌 두 사람의 손바닥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북해빙궁주의 우장과 맞닿은 백서휘의 좌장에 빙기가 파고들었다.

묵룡갑을 착용하고 독령이 실시간으로 빙기를 해소하는 데도 뼈가 시려오는 고통이 느껴졌다.

‘여태 맞아본 빙기 중에 가장 음습하고 지독해. 손을 섞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 좋겠어.’

백서휘는 뒤로 물러나며 검에 검강을 만들어냈다.

극양의 기운을 섞은 덕에 그의 검강은 화염처럼 넘실거렸다.

북해빙궁주는 얼굴을 굳히며 수강을 이루는 기운을 더욱 단단히 결집했다.

대치 상황이 발생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어떤 식으로 싸움을 풀어갈지 생각했다.

‘예전에 빙공을 썼던 놈을 죽였을 때처럼 싸우면 되겠지.’

한차례 손도 섞어봤고 행동 방향까지 결정했으니 이제 제대로 붙어볼 일만 남았다.

그때 북해빙궁주가 바닥에 빙판을 만들면서 그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현무의 좌였던 현명과 싸웠던 기억이 백서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현명과 북해빙궁주 중 어느 쪽이 원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의 수법은 비슷했다.

현명과의 일전을 교보재 삼아 싸운다면 쉽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북해빙궁주가 좌장을 빠른 속도로 내뻗었다.

고개를 젖혀 좌장을 피하는데 백서휘의 귀밑으로 지독한 냉기가 훅 지나갔다.

‘손바닥이 닿지 않았는데도 귓불이랑 볼이 얼어붙을 것 같아.’

신수의 힘을 빌려서 강해진 현명과 비교하면 확실히 북해빙궁주의 빙공이 더 강했다.

‘묵룡갑이 아니었으면 더 힘들게 상대했겠어. 착용하길 잘한 것……. 엇!’

북해빙궁주가 섬전 같은 빠르기로 우장을 내뻗으면서 좌장을 회수했다.

좌장으로 다음 공격을 준비할 거라는 의도를 그는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함정 같단 생각이 들어 백서휘는 슬쩍 북해빙궁주의 눈빛을 봤다.

익힌 무공과 다르게 북해빙궁주의 두 눈에는 활화산 같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분노해서 앞뒤를 안 가리는군.’

함정도 아니고 어떤 식으로 움직일 줄도 아니 반격을 준비해도 될 것 같았다.

백서휘는 공격을 피하면서 북해빙궁주가 좌장을 내뻗는 즉시 팔을 잘라 버릴 준비를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북해빙궁주는 좌수를 내뻗었다.

‘아직 아니야.’

백서휘는 완전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좌장을 회수하기엔 북해빙궁주의 팔이 너무 많이 뻗어져 있었다.

‘지금이다!’

기회라고 생각한 백서휘는 검강이 깃든 검으로 그의 어깻죽지를 내려치려 했다.

“흐아아앗!”

그 순간, 북해빙궁주의 좌수가 순식간에 얼어붙더니 손에 길쭉한 얼음검이 만들어졌다.

팔 길이도 길어져 상대를 당황케 할 수 있는 데다 공격력도 같이 강해지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수법이었다.

‘제기랄!’

북해빙궁주는 그대로 얼음검을 내질러 백서휘의 심장을 노렸다.

“죽어라! 백서휘!”

“제기랄!”

백서휘는 전력으로 구천현현보를 밟았는데도 얼음검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얼음검의 끝부분이 묵룡갑의 흉갑을 강타했다.

쩌저저저적!

묵룡갑의 흉갑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지독한 빙기가 백서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빙기는 힘차게 박동하는 백서휘의 심장의 움직임을 멈추려고 했다.

‘크으으윽! 제기랄! 기시로 부하들 죽이는 거 그만두고 심장 지키면서 들어온 빙기를 제거해!’

『예!』

독령은 온 힘을 다해 심장을 방어하면서 빙기를 제거해나갔다.

쐐애애액!

북해빙궁주는 이번엔 반대편 팔에 만든 얼음검을 백서휘의 가슴에 다시 한번 꽂아 넣으려 했다.

“또 당할 것 같으냐!”

침투한 빙기로 인해 몸이 아주 조금 굼떠졌음에도 강쾌의 묘리가 담긴 경천신뢰는 여전히 빨랐다.

쐑!

뒤로 몸을 날렸지만 반 박자가 느린 탓에 북해빙궁주의 목엔 빨간색 빗금이 그어지고 말았다.

목에 난 상처에서 피가 몇 방울 새어 나오는 걸 확인한 그는 얼굴을 굳혔다.

“아쉽네. 아비보다 먼저 저승에 보내줄 수 있었는데…….”

“너! 이 개자식! 내 너를 기필코 죽여서 아버지의 단전을 부순 죄와 북해의 형제들을 죽인 죄를 묻겠다.”

“그냥 조용히 북해에 살지 그랬어. 그러면 네 아버지도 건강하게 살고, 북해의 무인들도 그대로 있을 거 아니야.”

“북해의 삶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는 놈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구나! 눈 속에서 벌벌 떨면서 굶어본 적도 없는 놈이…….”

“왜 없다고 생각해?”

스승 밑에서 수련을 할 때 질리도록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 경험이 없을 것 같았어? 네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그 입 닥쳐!”

북해빙궁주가 이전처럼 빙판을 만들며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그는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꽝꽝 얼어붙더니 ‘얼음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건 또 뭐야.’

북해빙궁주가 완전히 얼어붙은 팔로 주먹을 날렸다.

백서휘는 검을 휘둘러 맞대응하면서 부분 용인화를 펼쳐 왼쪽 눈을 용안으로 변화시켰다.

홍옥빛 눈동자로 북해빙궁주를 보니 오행 속성의 주술사가 펼치던 술법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몸’이란 물질적 요소와 ‘빙기’라는 비물질적인 요소가 결합한 탓에 베어 죽이는 건 어려울 듯싶었다.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백서휘는 북해빙궁주를 피해서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비겁한 놈! 거기서라!”

“비겁한 놈이라고? 진짜 비겁한 게 뭔지 보여줘? 어?”

“맘대로 하거라!”

“후회하지 마.”

백서휘는 독령에게 전력으로 기시를 쏘게 했다.

기시는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면서 북해빙궁의 일반 무인들을 공격했다.

거기다 간간이 강환을 만들어 대량 살상까지 하니 북해빙궁주로서는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약자는 그만 괴롭히고 나랑 싸우자!”

“싫은데.”

백서휘는 말하면서 슬쩍 뒤를 돌아봤다.

북해빙궁주의 몸을 이루던 얼음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유지할 때 필요한 기운이 많이 사라진 건가? 아니면 이전처럼 함정?’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얼음이 힘을 상실했다는 건 백서휘에겐 좋은 일이었다.

‘기시 목표물을 이제부터는 북해빙궁주로 바꾼다.’

『예!』

독령이 호쾌하게 외치며 기시를 북해비궁중를 향해 발사했다.

기시로 이루어진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자 북해빙궁주는 당황한 얼굴로 양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거기서 잘 보고 있어.”

백서휘는 이기어검술을 써서 이제는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죽였다.

“백! 서! 휘! 이 자! 라! 같! 은! 놈! 아! 가만두지 않겠다! 가만두지 않겠어! 그아아아아악!”

북해빙궁주의 극적인 감정에 반응하여 기의 폭풍이 일어났다.

북해의 눈 폭풍을 보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여유 있을 때 끝내버리자.’

기시가 쏟아지는 가운데, 백서휘까지 가세하자 북해빙궁주는 반격은커녕 방어랑 회피도 힘겹게 했다.

‘무공의 완성도에 차이가 있다 해도 똑같은 현경의 경지라 쉽게 이기긴 힘들군.’

어떡하면 북해빙궁주를 단번에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사각지대에서 날아든 기시가 공격을 성공시키는 게 보였다.

‘저거다!’

백서휘는 아주 은밀하게 겨자씨만큼 작은 강환을 만들고 사각지대로 조심히 이동시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금이다!’

기시가 사각지대에서 날아들자 북해빙궁주는 그냥 몸으로 견뎌낼 생각을 했다.

그때 은밀히 뒤따라 날아온 강환이 북해빙궁주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심지어 그 부위가 빙기의 흐름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압축이 풀리면서 발생한 강환의 기운이 제대로 폭발해 버렸다.

콰아앙!

북해빙궁주의 몸을 감싸던 얼음이 한순간에 모두 깨져나갔다.

그는 내장 조각이 큼지막하게 섞인 검은 피를 토해냈다.

“우웨웩!”

“잘 가라.”

백서휘는 기다렸다는 듯 검강이 깃든 검을 휘둘렀다.

“사, 살려…….”

서걱!

북해빙궁주의 목에서 분리된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단련하길 잘했군.”

조금 전처럼 정신없는 상태에서 강환을 압축해서 쏘면 웬만한 무인들은 다 죽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현경의 경지에 나만큼 기감이 뛰어나면 다 피해냈겠지만…….”

자신만 한 사람이 드물다 못해 없으니 웬만한 무인은 다 죽는다고 봐야 했다.

“혼천회의 회주한테도 통할까?”

만나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강한지 감이 안 잡혔다.

“그놈이 있는 곳이라도 알면 가늠해 볼 텐데…….”

백서휘는 아쉽단 표정을 짓고는 그 자리에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다음 강환을 수십 개 만들어 북해빙궁의 무인이 있는 곳에 발사했다.

콰콰콰쾅!

시체 틈에 숨어 생존을 도모하는 자와 눈치를 보며 포복으로 도망가던 놈 등이 강환에 의해 죽어 버렸다.

“이제 돌아가볼까.”

백서휘는 장사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 * *

백서휘는 다시 장사로 돌아왔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사의 분위기가 예전 같은 걸 보면 두 쪽 다 힘든 건 아닌 것 같았다.

‘……라고 바로 조금 전까지 생각했었지.’

남만야수궁의 궁주와의 일전에서 사도련주 종리혁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인 건 남만야수궁의 궁주도 중상을 입어서 사도련이 완전히 밀리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흑흑흑! 관주님, 제가 뭐든 할 테니까 아버지를 도와주세요!”

종리연이 여독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백서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부탁했다.

‘이걸 진짜 안 도와줄 수도 없고…….’

남만야수궁이 준동한 건 혼천회 때문인 데다 사도련은 앞으로도 계속 써먹어야 할 패였다.

“얼마나 위중한지는 모르지?”

“사경을 헤맨다고 들었어요.”

“제기랄.”

백서휘는 내려놓은 짐을 다시 짊어지고는 남만야수궁과 일전을 벌이는 곳으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에 도착한 그는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뭐 하냐?”

종리혁과 얼굴만 백지장처럼 하얗고 전체적으로 까무잡잡한 남만야수궁주가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바둑 두는 거 안 보이나?”

아픈 건 사실이었는지 종리혁의 얼굴엔 핏기가 하나 없었다.

“아니, 바둑을 왜 저놈이랑 두냐고.”

백서휘가 가리킨 곳엔 남만야수궁의 궁주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 아군이 됐으니까 이놈 저놈 하지 말고.”

“상황 설명해 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설명해야 하나. 아! 이게 좋겠군.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된 건…….”

종리혁은 남만야수궁주와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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