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183화 (183/202)

귀환무관 183화

혼천회주 전용의 연무장.

그곳의 바닥에 새겨진 글자와 문양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졌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혼천회주는 빛이 나는 바닥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부정력을 모으는 일이 지체되면서 맨 처음에 계획한 것보다 승천이 늦어졌다.

원래라면 지금 승천을 해서 중원을 넘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백서휘가 주제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바람에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백서휘…….”

격노한 혼천회주의 몸에서 유형화된 살기가 피어올랐다.

작전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연무장에 들어오려던 군사는 황급히 물러났다.

진에 집적된 부정력과 혼천회주의 살기가 합쳐지자 땅과 동굴이 흔들렸다.

“회주님!”

군사의 목소리를 들은 혼천회주가 살기를 거두었다.

“무슨 일로 온 거지?”

“지금 본회에서 추진 중인 작전의 진행 상황을 보고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작전은 충왕문과 협력해서 진행하는 것 하나뿐 아니냐.”

“실행 직전까지 진행된 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회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게 실패하면 타격이 크다. 그 작전을 위해 들어간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으려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중원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작전이라 백서휘도 막지 못할 겁니다.”

“실패하면?”

군사를 바라보는 혼천회주의 눈빛에는 불신이 섞여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군사는 굴하지 않고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충술사들이 모두 죽어도 계속 작전이 진행되도록 벌레들을 만들었습니다. 회주님께서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실패하면 어떡할 테냐?”

혼천회주는 툭 던지는 듯 말했지만, 말속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평생을 헌신했던 군사는 그의 반응에서 서운함과 배신감을 느꼈다.

“……제 목을 걸겠습니다.”

“좋다.”

혼천회주는 한 번만 더 군사를 믿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부정력은 얼마나 더 모아야 하지?”

“승천 의식을 안전하게 진행하려면 3할이, 위험 감수를 하면서까지 빠르게 승천 의식을 진행하길 원하신다면 2할이 더 필요합니다.”

“더 빠르게 모을 방법은 없나?”

“마지막에 쓰려고 남겨두신 ‘비장의 패’를 쓴다면 목표량까지 훨씬 더 빠르게 부정력을 모을 수 있긴 할 겁니다.”

“그건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진행하기로 한 것 아니었나?”

“비장의 패인 만큼 강력한 작전이라서 부정력을 모으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질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

혼천회주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미간을 찌푸리고 군사를 바라봤다.

“마지막 한 단계만 남기고 답보 상태라 곧바로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유는?”

“뭐 때문에 이러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최우선 목표물이 극소수의 사람만 만나고 있습니다.”

“나머지 목표물들은?”

“그들은 명령만 내리시면 다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작전을 실행하고 나오는 결과를 보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되겠구나.”

“예,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준비가 끝나면 작전을 실행하도록 하고 더 보고할 것이 없다면 이만 물러가 보아라.”

군사가 정중히 예를 표한 후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안전하게 승천하려면 3할, 위험하지만 빠르게 승천하려면 2할이라…….”

혼천회주는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중얼거렸다.

* * *

광서성 빙상으로 가기 위해 장사를 떠난 백서휘는 흥안(興安) 근방에 들어섰다.

‘목인걸의 아들이 흡기의 술법이 걸린 물건을 찾을 수 있긴 할까?’

목인걸에게 아들을 데려간 횟수는 손을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 탓에 목인걸의 아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 아직 입문자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매일 책 속으로 출입하고, 재능도 있고, 최고 수준의 주술사가 가르치기까지 하니 별문제 없겠지만 괜히 걱정됐다.

부아아아아앙!

정체 모를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면서 온몸에 소름이 다 돋았다.

“무슨 소리지?”

잠시 생각하며 유추해 봤지만, 답은 떠오르질 않았다.

두 눈으로 흥안으로 가서 소리의 정체가 뭔지 확인하는 편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응룡비천신법을 펼쳐서 도착하니 흥안에는 인세의 것이 아닌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헉!”

메뚜기 떼가 미친 듯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논에 있는 벼를 싹 다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무, 무슨 메뚜기 크기가 저렇게 커?’

메뚜기 한 마리, 한 마리가 사람 팔뚝만 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메뚜기 떼를 보게 되니 떠오르는 자들이 있었다.

‘설마 이거 충왕문의 짓인가? 맞다면 최대한 빨리 잡아 죽여야 하는데…….’

충술사들이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메뚜기 떼에 계속 먹이를 준다면 곡물값이 말도 안 되게 많이 뛸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돈이 없는 자들은 하루에 한 끼 겨우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아니면 아예 먹지 못해 아사하게 되겠지. 고수들도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니 예외가 없을 테고…….’

가장 걱정되는 건 굶어 죽어가는 이들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부정력이었다.

‘일단 메뚜기 떼부터 죽이면서 근처에 충술사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백서휘는 열양진기가 담긴 손으로 난화만천수를 펼쳤다.

자줏빛 수영이 공간을 가득 메우면서 다수의 메뚜기를 죽였다.

공격을 당하자마자 메뚜기 떼들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너무 빠른 반응에 놀란 백서휘 호신강기를 황급히 몸에 둘렀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메뚜기 떼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지직!

호신강기 역시 강기의 일종이었다.

그래서 그냥 마구잡이로 때리면 오히려 강기 공격을 입은 것처럼 피해를 보게 된다.

이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메뚜기 떼는 계속해서 백서휘를 물어뜯으려다가 타 죽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공격당하자마자 바로 반격에 나선 것을 보면 충술사가 존재하는 건 확실했다.

이상한 건 메뚜기를 소모하듯이 공격하는 거였다.

아무리 머릿수가 많아도 이런 일이 계속되면 메뚜기 떼는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는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백서휘는 매서운 눈으로 충술사가 있을 법한 곳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없고, 없고, 없고…… 건물 안에 들어가서 조종하는 중인 걸지도 모르겠군.’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전방을 봤다.

메뚜기 떼가 뭉쳐 있는 그 틈 사이로 다른 메뚜기 떼가 곡물들을 갉아 먹는 모습이 보였다.

‘내 시선을 끌어놓고 곡물들을 다 먹어 치워 버리고 있잖아?’

어차피 이길 수 없단 걸 알고 부정력을 모을 수 있는 판을 만드는 데 집중한 거로 보였다.

‘반드시 찾아내서 죽인다.’

백서휘는 주위에 있는 건물들을 유심히 살폈다.

다들 메뚜기 떼와 자신의 싸움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평범하게 생긴 두 남자가 음식을 시켜놓고 먹지도 않은 채 눈을 감고 있는 걸 보게 됐다.

‘이놈들이다.’

보자마자 충술사라는 느낌이 왔다.

‘눈을 감은 걸 보면 정신을 집중해야만 무리를 조종할 수 있나 보네.’

백서휘는 피식 웃고는 두 남자가 있는 건물을 향해 격공장을 연속해서 날렸다.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기에 둘 중 하나에게 날리는 격공장은 딱 정신을 잃게 할 정도의 힘만 가지고 있었다.

스르륵!

나무벽을 통과한 장풍이 두 남자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두 남자는 장풍이 코앞에 왔을 때 뒤늦게 소리를 듣고 눈치챘다.

퍼억!

잘 익은 수박이 터지듯 남자 중 하나의 머리가 박살이 났다.

나머지 하나는 도망치려다가 장풍에 맞아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어? 뭐야? 얘네들 왜 계속 모여 있는 거지?”

조종하는 자가 사라졌으니 메뚜기들은 흩어져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메뚜기들은 무리를 유지한 채 계속 곡물들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백서휘는 일단 기절한 남자 중 하나를 데려와 옆에 놔둔 후 메뚜기들을 죽였다.

약 일각 동안 모든 메뚜기를 잡은 백서휘는 기절한 남자를 어깨에 걸쳤다.

그때 건물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백서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괜히 민망해진 백서휘는 빠르게 흥안을 빠져나갔다.

그는 계림 쪽으로 달려가면서 기감의 범위를 확장했다.

커질 대로 커진 기감에 사람이 아예 없는 곳이 느껴졌다.

‘이놈 깨어났군.’

백서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바닥에 남자를 내려두었다.

“정신 차린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일어나.”

남자는 연기를 계속 이어가려는지 기절한 척을 계속했다.

메뚜기로 인한 걱정이 컸던 백서휘는 그 꼴을 봐줄 만한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스릉!

검을 뽑아 드는 소리가 들리자 남자가 화들짝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가치 있는 정보를 알려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야.”

“가, 가치 있는 정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조종하는 놈이 죽거나 기절했는데도 메뚜기들이 흩어지지 않고 계속 곡물을 먹던데, 이걸 중지시킬 방법이 있다면 말해봐.”

“제,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난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아.”

백서휘는 검을 남자의 목에 겨누었다.

“지, 진짜 중지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곤충입니다.”

“만들어졌다고?”

“크기가 큰 메뚜기, 곡물을 좋아하는 메뚜기, 식탐이 있는 메뚜기, 공격적인 메뚜기, 무리 생활을 선호하는 메뚜기를 서로 교배시키고 본문만의 특수한 방법을 사용해 명령을 듣도록 훈련합니다. 그러면 술자가 죽어도 본능적으로 움직여서 작전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됩니다.”

“작전 목표? 아사하는 자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부정력 수급을 많이 하는 건가?”

“……아사하는 자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건 맞는데, 부정력이 뭡니까?”

“모르면 됐고. 이거나 말해 봐. 메뚜기들 약점 없나?”

“특별히 약한 거나 싫어하는 게 없어서 그냥 고수들이 나서서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듣자마자 백서휘는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했다.

“문주에 대해 아는 거나 말해 봐.”

“마, 말씀드리면 살려주실 겁니까?”

“괜찮은 정보가 있다면.”

“그, 그건 기준이 너무 모호한…….”

“싫으면 그냥 죽든가.”

백서휘가 무감정한 얼굴로 말했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주님은 술법으로 전갈들을 조종합니다.”

“그게 다야?”

“제, 제가 아는 한 문주님이 조종하는 전갈들의 독은 해독제가 없습니다.”

“나한테 독은 안 통해.”

“해, 해독제가 없다니까요?”

“안 통한다고 몇 번을 말해. 그거 말고 다른 거나 말해 봐.”

“그,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뭔데?”

“무, 문주님께 약점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약점이면 약점이지 비슷한 건 또 뭐야.”

“다, 다른 걸 말할까요?”

“아니, 일단 다 말해 봐.”

“아, 알겠습니다. 자세한 시기는 기억이 안 나는데 문주님이 소문주 시절에 실험시설을 시찰 나갔다가 어떤 검사에게 죽을 뻔했습니다. 그때 얼굴에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흉터가 생겼는데 그걸 놀리거나 비웃으면 눈이 돌아갑니다.”

“겨우 그게 약점이라고?”

“……네.”

아무리 봐도 고급 정보가 이놈에게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목을 베어 버렸다.

“시간 낭비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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