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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82화 (182/202)

귀환무관 182화

“왜?”

백서휘가 뒤에 있는 목인걸을 바라보며 물었다.

“즉사시키는 주술이 발동될 뻔했다. 질문 선택에 유의하도록 해.”

“그러지.”

백서휘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조서에게서 정보를 캐냈다.

“누가 봐도 특급 기밀에 해당하는 핵심적인 정보에만 주술이 걸려 있네. 나로서는 많은 걸 캘 수 있어서 좋지만, 이렇게 보안 유지를 할 거면 그냥 혼천회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못 떠올리게 하는 게 낫지 않나?”

백서휘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조서를 바라봤다.

“걸려 있는 주술 자체가 열쇠가 되는 말에만 걸 수 있어서 그렇다.”

“열쇠가 되는 말?”

“‘혼천회 회주의 위치’에 관해서 물어본다고 가정해 보자. 네가 질문을 던지면 저놈의 머리는 자연스럽게 혼천회 회주의 위치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게 될 거다. 근데 그 열쇠가 되는 말에만 걸지 않고 ‘위치’라는 단어 하나에 걸면 어떻게 될까?”

“설마 ‘위치’와 관련된 모든 것에 작용하는 거야?”

“그래.”

“그럼 그 주술을 걸어야 할 말을 잘 정해야겠네?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말이야.”

“백치가 되거나 즉사시키는 일을 피하려면 그래야겠지.”

“그러니까 주술을 걸어놓은 말이 아니면 저놈이 즉사는 안 한다는 거잖아? 맞지?”

“피할 수 있는 말을 찾아볼 생각인 거냐?”

“한번 시도해 볼 만하잖아. 발동되기 직전에 멈추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세 번까지는 바로 멈추면 술법이 발동하지 않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목인걸은 뒷말을 흐렸다.

“술법이 발동되는 걸 세 번만 피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할 만한데?”

“그 세 번도 확실하지 않아. 확정적으로 세 번 모두를 피하려면 내 상태가 안 좋아질 걸 각오해야 돼.”

“얼마나 안 좋아지는데?”

“정신력을 한계까지 끌어쓰는 일이라 최소 보름은 술법을 쓰지 못하게 돼. 혼에 상처가 크게 날 수도 있고.”

겉모습만 보면 생자(生者) 같지만 목인걸은 망자(亡者)였다

혼에 상처가 나면 어떤 방향으로 일이 터질지 몰랐다.

최악의 경우, 책 속의 세계나 목인걸 본인에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컸다.

“음…….”

한때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괜찮은 거래 상대였다.

관계가 관계인지라 목인걸에게 목숨을 걸라고 하긴 애매했다.

‘그래도 지금만큼 좋은 기회가 없는데…….’

지금까지 질문을 던져서 알아낸 정보가 꽤 됐다.

술법을 잘 피하면 최고급 정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여기서 포기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설득해 볼까?’

신뢰가 쌓인 관계가 아니라 잘 먹히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설득 시도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얼마나 부담이 될지는 알겠는데, 이놈이 다른 놈들보다 특별히 더 아는 게 많은 것 같으니까 이번만 좀 힘을 써줘. 너도 알잖아. 이런 기회를 잡는 게 흔치 않다는 걸.”

“그건 네 사정이겠지.”

“그래, 맞아. 내 사정이야. 근데 그거 알아? 만약에 일이 잘못돼서 내가 죽으면…….”

“또 아들로 협박하려는 건가?”

“협박이 아니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하려는 거야. 나와 혼천회의 관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잖아?”

“확실한 보상이 있다면 하겠어.”

“좋아, 원하는 걸 말해봐.”

“……날 여기서 나가게 도와줘.”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론적으로는.”

“설명해 봐.”

목인걸이 열심히 설명했지만, 종이처럼 얇은 백서휘의 주술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간단히.”

“괴력난신의 서에 걸린 봉인을 뚫고 날 되살릴 만큼 강력한 힘과 내 혼이 정착할 몸, 날 도와줄 주술사만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

“좋아, 거래하지.”

“진짜 거래하길 원한다면 계약을 했으면 하는데.”

“계약?”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계약.”

목인걸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큰 대가가 혹시 죽음이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좋아, 거래해, 거래하는데. 이건 확실히 하고 가자. 네가 말한 강력한 힘은 어쩌라는 거야? 다른 건 어떻게든 구할 수 있겠는데 강력한 힘은 어디서 구할지도 모르겠어. 너무 추상적이잖아.”

“방법은 많다. 신적 존재에게 원하는 제물을 바쳐서 얻든가, 용맥에서 힘을 끌어오든가, 영물의 내단이나 영초를 이용하든가, 긍정력 혹은 부정력을 어떻게든 모으…….”

조서가 갑자기 발작하더니 피거품을 문 채로 쓰러졌다.

“주술이 발동하려고 한다.”

목인걸이 빠르게 달려가 조서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진언을 읊기 시작했다.

“옴 바루 레 다리핫…….”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목인걸은 조서의 머리에서 힘없이 손을 떼고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아?”

“전혀 안 괜찮다.”

“갑자기 주술은 왜 발동한 거야?”

“입으로 말을 내뱉는 것만이 아니라 열쇠가 될 말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발동하는 주술이 있었어.”

“우리가 이야기하는 걸 듣다가 무언가 머릿속으로 연상하게 돼서 발동한 거란 뜻이야?”

“그래.”

“그런 주술도 있을 수 있구나.”

“처음 보는 주술이라 발동을 막는 게 힘들었어. 어쩔 수 없이 혼에 남겨진 힘을 끌어왔는데…….”

“그러면 혼에 상처가 나잖아?”

“크게 났지.”

“열쇠가 될 말을 피해서 정보를 캐내는 건 힘들겠군.”

백서휘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힘들지.”

“기회가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다니…….”

“누가 그래? 기회가 날아갔다고?”

“혼에 상처가 났다고 그랬잖아.”

“그래, 상처 났지. 근데 난 여기서 더 나아갈 거다.”

목인걸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더 나아가겠다고? 왜?”

“중원 제일의 주술사라고 자부했던 내가 혼의 힘을 끌어올 만큼 강력한 주술이었어. 그런 강력한 주술은 걸기가 쉽지 않지. 근데 그걸 이놈한테 걸었어. 왜 그런 걸까?”

목인걸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저놈이 연상한 무언가가 혼천회의 최고 기밀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네?”

“간자 주제에 최고 기밀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는 기회다.”

“기회? 아!”

백서휘는 목인걸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이유를 떠올렸다.

“거대한 힘을 얻을 방법과 연관된 무언가를 떠올렸다가 그랬다는 건, 네가 언급했던 방법 중에서 하나를 혼천회에서 이미 실행했다면 그 힘을…….”

“그래, 그 힘을 가로채자는 제안을 네게 하고 싶다.”

“만약 아니면?”

“절대 그럴 일 없어.”

목인걸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다 늙어서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다면, 지금은 산을 지배하는 젊은 호랑이처럼 보였다.

“이놈이 일어나야 확인을 할 텐데.”

“혹시 신문을 내가 해도 되나?”

“왜?”

“발동되자마자 바로 무력화시키려면 그쪽이 더 편할 것 같아서.”

“어디 다른 데로 데려가서 혼자서 그러는 거라면…….”

“아니, 네가 보는 앞에서 할 거다.”

“좋아, 그러면 네가 신문을 해.”

한 시진이 조금 넘게 지났을 때 조서가 정신을 차렸다.

조서는 처음 잡혀 왔을 때와 비교하면 20년은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지?”

“알았어. 신적 존재! 제물! 괜찮군. 용맥! 이것도 괜찮고. 내단! 영초! 이게 아니면 마지막 남은 두 개 중에 하나란 건데…… 긍정력! 답은 나왔군. 이 이상은 굳이 확인 안 해도 되겠어. 그렇지?”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목인걸은 주술을 써서 조서를 기절시켰다.

“혼천회에서 부정력을 모으고 있었을 줄이야…….”

목인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부정력이 뭔데?”

“절망이나 공포, 혼돈, 불안처럼 사람이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들로 이루어진 힘이다.”

“그게 강력한 힘이 된다고?”

“모으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모이면 강력한 힘이 된다. 투입 대비 술법의 효과도 괜찮아서 나도 종종 썼었다.”

“어떻게 모으는데?”

“술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어.”

“내가 알아서 이해할 테니까 어서 설명해 봐.”

“다 설명하려면 삼재(三才)랑 천지교태(天地交泰)부터 시작해야 돼.”

백서휘는 목인걸에게 어서 말을 해보라고 손짓했다.

“세상은 하늘, 땅, 인간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이 어떤 감정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기운이 흘러나와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되지. 술자는 그 흘러나오는 기운을 흡기의 술법이 담긴 특수한 물건으로 채집해서 술법에 동력으로 쓰는데…….”

“뭔가 이상한데? 세상에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사람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모으는 게 어려워. 평범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운의 양도 적은 데다, 쓸 수 있는 술법에도 한계가 있거든. 나도 쓰는 사람은 몇 명 보지 못했다.”

“근데 지금 혼천회에서는 그걸 모은다는 거잖아. 왜 모으는 건데?”

“그건 저놈이 알겠지.”

목인걸이 검지로 조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어보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주술이 발동해서 말하기도 전에 죽을 거다.”

“음…….”

백서휘가 침음성을 흘렸다.

“혼천회 쪽에서 얼마나 모았을 것 같아?”

“언제부터 모았는지 알 수 없으니 추측하기 힘들다.”

“대단위 술법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은 얼마나 되는데?”

“정확히 수치화할 수도 없고, 대단위라고 해도 그 규모가…….”

“아니, 그런 거 고려하지 말고 대충이나마 말해봐!”

답답한 마음에 백서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3만이면 대단위 술법 중에서도 작은 규모의 술법은 쓸 수 있겠지.”

“3만을 모으려면 얼마나 걸리는데?”

“장사의 인구를 고려한 후에 흡기의 술법이 담긴 물건을 최소한으로 둔다고 가정하면…… 석 달이면 모으겠군.”

“석 달이면 크게 걱정 안 해도 되겠네.”

“흡기의 술법이 담긴 물건을 최대치로 박아 넣었다면 다르겠지. 한 달도 가능하다고 본다.”

“아니, 아까는 모으는 게 어렵다며? 평범한 사람에는 한계가 있고?”

“장사의 인구수를 생각해야지. 거기다 고수까지 많잖아.”

“고수는 뭐가 다르긴 한가 보지?”

“평범한 사람이 품은 감정이 1에서 10 정도의 기운을 흘린다면, 고수는 1백에서 5천 이상의 기운을 흘리지. 그리고 장사에 흡기의 술법이 담긴 물건을 여러 개 박아놨으면 내가 말했던 것보다 빠르게 모을 수 있다.”

그때 백서휘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하고 내리치면서 여러 정보가 합쳐졌다.

‘부정력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진 힘…… 부정적인 감정을 사람이 들게 해야 힘을 모을 수 있고…… 혼천회가 한 만행들을 보면 중원 곳곳에 부정적인 감정을 들게 한 일이 되게 많아…… 왜 그런 거지? 세상엔 고수가 아닌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서?’

목인걸은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백서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인걸.”

“왜?”

“만약에 혼천회가 아주 옛날부터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부정력을 모았고, 그 부정력이 1억, 2억 이상으로 많다면…….”

“얼마나 옛날인지 모르겠지만 5년이 넘어간다면 불가능하다. 부정력이나 긍정력은 휘발성이 있어서 오래 모을 수가 없다.”

목인걸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하다고 가정해서 1억, 2억 이상을 모았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데?”

“만약 진짜 그렇게 모았다면…… 혼천회의 회주란 자는 신(神)도, 마(魔)도 될 수 있겠지.”

백서휘는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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