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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78화 (178/202)

귀환무관 178화

“정보를 말해 주기 전에 착수금 삼 할을 주고, 정보를 말해 준 이후에 중도금 사 할을 줄 거야.”

“잔금은?”

“잔금은 내가 실제로 그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고 돌아와서 주는 거로 하지.”

백서휘는 냉혹한 표정으로 통보하듯 이야기했다.

“그러지 말고 정보를 말해 주기 전에 사 할을, 말한 이후에 나머지 육 할을 주면 안 되겠나?”

흑노와 백노가 간절한 눈빛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 큰돈을 다 줄 수는 없어.”

“우리 이름을 걸고 거짓 없이 말하겠네.”

흑백쌍노는 천하를 호령하던 고수였다.

원래라면 이름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야 하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버렸다.

지금 흑백쌍노의 이름이 가지는 적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다.

흑노와 백노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입술을 깨물고 초조한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는 고민 끝에 그들이 내건 조건을 받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름이 가지는 가치보다는 흑백쌍노의 제자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좋아, 그쪽이 내건 조건대로 해주지.”

“정말인가?”

“그래.”

백서휘는 오룡단을 시켜 금와전장에서 돈을 찾았다.

“자, 이거 받아.”

“이건…….”

“대금의 사 할에 해당하는 돈이야.”

“고맙네. 고마워.”

흑노는 감격했는지 눈시울을 붉혔고, 백노는 돈의 액수가 맞는지 계산했다.

“액수 확인이 끝나는 대로 혼천회에 대해 말해줘.”

액수가 모자라지 않다는 걸 확인한 백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가?”

“본단의 위치랑 회주에 대한 정보,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즉시전력감이라고 할 만한 무인은 얼마나 되는지…….”

“그렇게 많은 걸 알지는 못하네. 우리가 아는 건 본단인지, 지부인지 모르는 곳의 위치랑 우리를 설득하러 온 자들의 특징 정도뿐이네. 다만, 단언할 수 있는 건 지부일지라도 혼천회에서 비중이 꽤 큰 곳이라는 걸세.”

“비중이 꽤 크다고?”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곳의 비밀 지부치고는 규모가 아주 컸네.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그런 걸 공개적으로 보여줬다고?”

백서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기감으로 읽어냈네.”

“좋아, 그러면 그 안다는 정보들 다 쏟아내봐.”

“먼저 우리를 설득하러 온 자들은 벌레를 다루는 힘을…….”

“아니, 그런 건 됐고, 지부에 관한 것만 일단 얘기해 봐.”

“지부는 악양(岳陽) 근처에 있는 군산(君山)이란 곳에 있고…….”

백서휘는 흑백쌍노가 알려주는 작은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지부에 대해 아는 건 이게 전부라네.”

“음…… 좋아,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워.”

“그럼 이제 우리는 가봐도 되겠나?”

“영약 사러 가려고 그러는 거면 한 사람은 여기에 놔두고 가도록 해.”

“꼭 그래야겠나?”

“거짓을 말했다면 그 벌을 받을 사람은 있어야지.”

“음…….”

“내가 봐준 편의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끄응, 알겠네.”

백서휘와 오룡단은 장사를 빠져나와 악양으로 향했다.

* * *

이틀이란 시간이 걸려 악양에 도착했다.

지난 이틀 동안 전력으로 신법을 펼친 탓에 오룡단 모두는 지쳐 있었다.

“객잔에 들어가서 세 시진 정도 쉬고 밤이 되면 흑백쌍노가 알려준 곳에 잠입한다.”

“예.”

여섯 사람은 객실에서 자거나 운기조식하면서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관주님, 하늘에 달이 떴습니다.”

제갈선우의 말에 운기조식하고 있던 백서후의 눈이 떠졌다.

“좋아, 움직인다.”

무장을 갖추고 객잔을 나온 여섯 사람은 군산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군산에 도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눈을 가린 탓에 기감으로만 사물을 인지해서 지부의 위치가 어디인지 흑백쌍노도 명확히 알지 못했다.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을 찾으면 되겠지.’

정상을 향해 조용히 올라가면서 기감을 극한까지 발휘했다.

‘모두의 은잠술 수준이 너무 떨어져. 이러다가는 정상에 가기 전에 다 들키겠네.’

아니나 다를까.

산의 중간쯤 올라왔을 때 기감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잡혔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기를 들고 흉험한 기세를 여기저기에 뿌리고 있었다.

‘이렇게 될 걸 모르고서 데려온 건 아니니까…….’

발목 잡힐 걸 알면서도 오룡단을 데려온 건 그들이 지금보다 더 성장하길 바라서였다.

지금 오룡단은 황천익을 보조하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는데, 이래서는 자신이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없었다.

최소한 황천익과 손발을 맞추는 수준까진 올라와 줘야 했다.

그래야 화경의 경지에 이른 적이 쳐들어오더라도 자신이 소환될 시간을 벌 수 있을 게 아닌가.

‘지금으로서는 내가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는 것도 힘드니 강제로라도 성장하게 해야지.’

강철은 단련할수록 단단해지고 질기게 변한다.

무인도 강철하고 다른 점이 없었다.

시련이 닥칠수록 무인 역시 강력해진다.

‘오룡단에게 고난의 길을 걷게 하면 지금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지.’

백서휘가 강해진 건 모두 고난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러했으니 오룡단도 가능하리라 믿었다.

‘잠깐 생각에 빠지는 동안 많이 가까워졌네.’

혼천회 소속 무인들은 누가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거침없이 여섯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근데 저것들은 어디서 소식을 듣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튀어나온 거지?’

첩자가 있거나 파수병이 있거나 둘 중 하나로 보였다.

“제갈선우, 적이 몇 명이나 되는지 확인해 봐.”

“예!”

제갈선우는 일월안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적들의 인원수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877명입니다.”

“그놈들 경지는 어떻게 돼?”

“절정 경지 이상이 77명, 일류 311명, 이류 489명입니다.”

“기세등등할 만한 전력이네. 다들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오룡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들이 877명을 모두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무리’라고 하지 않고 ‘괜찮다’라고 말한 걸 보면 확실히 이놈들도 예전과 달라지긴 했다.

‘확신해. 이놈들은 더 성장할 수 있어!’

백서휘는 흐뭇한 얼굴로 오룡단을 잠시 봤다가 적들을 향해 검을 쏘아 보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검이 수많은 적의 몸뚱이를 관통하며 지나갔다.

“백서휘다! 백서휘가 가까이에 있다!”

적들의 외침을 들은 백서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적들은 공격할 수 없는데 자신은 공격할 수 있는 이 ‘불합리함’이 너무나 좋았다.

“너희들 생각만큼 그렇게 가까이 있지는 않을걸.”

“예?”

“아니,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제갈선우 너는 다시 한번 적들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봐.”

“……493명입니다. 절정 경지 이상이 68명, 일류 234명, 이류 191명입니다.”

“아직도 493명이나 남았다고? 대단하네. 전투 준비!”

오룡단이 동시에 무기를 뽑아 들고 적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혼천회의 무인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백서휘다! 백서휘가 보인다!”

“동료들의 원수를 갚자!”

“우아아아!”

백서휘는 팔짱을 끼고 잠시 지켜보다가 적들을 죽이라는 의념을 검에 보냈다.

그사이 제갈선우는 다른 단원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렸다.

“당 동생은 돌격 명령을 내린 저놈의 멱을 따 버리고, 황보 동생은 계속 힘을 모았다가 내가 지시한 순간에 터뜨려.”

“나는?”

“남궁 동생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모용 동생은 나를 보호하면서 싸워.”

“오행진은 안 펼칠 건가?”

당기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관주님이 올 시간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잖아.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싸우려면 그냥 싸우는 게 더 좋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는 적진에서 계속 있으면서 지휘하는 놈들을 잡겠어.”

“내가 지시하면 바로 빼야 하는 거 잊지 마.”

당기준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잠광환허술을 써서 사라졌다.

“다들 돌격!”

제갈선우의 말에 오룡단이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흠, 나도 가볼까.”

자신만 공격할 수 있는 불합리한 점도 좋지만, 적들을 베는 손맛을 느끼는 것도 좋았다.

“가자.”

백서휘가 땅을 박차며 적들을 향해 뛰어가면서 검을 손으로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한손으로는 천강무극검법을, 다른 한손으로는 난화만천수를 펼쳐 적들을 학살했다.

‘내 이름을 알고 적의를 내뿜는 걸 보면 혼천회의 지부는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쉽지?’

쭉정이만 많지, 고수라고 할 만한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흑백쌍노의 말처럼 서열이 높은 지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를 가진 말벌 떼가 백서휘를 향해 날아들었다.

‘혈침대봉(血針大蜂)? 운남에 살고 있어야 할 놈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휘익!

휘파람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혈침대봉이 백서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고민하지 않고 광풍번천의 초식을 펼쳤다.

공간을 제압하는 특성이 있는 만큼 혈침대봉에 잘 통할 거라 생각했다.

다시 한번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서 혈침대봉이 사방팔방으로 산개했다.

‘휘파람이 들릴 때마다 혈침독봉의 움직임이 바뀌고 있어.’

백서휘는 누군가가 혈침독봉에 명령을 내리고 있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거 곤란한데…….’

혈침독봉은 현철(玄鐵)을 우습게 찢어 버리는 턱과 살을 깊숙이 파고드는 갈고리처럼 생긴 발, 백련정강과 비견되는 강도의 몸을 지녔다.

다행히 야생에서는 이런 능력에 비해 멍청하기 짝이 없어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혈침독봉은 사람이 조종 중이었다.

‘생각’이란 걸 하는 존재가 혈침독봉에게 명령을 내리는 만큼 꽤나 위협적으로 움직이리라 예상됐다.

‘물론 이것도 신순을 쓰지 않을 때는 그렇지. 내가 본격적으로 신순을 쓰기 시작하면 혈침독봉도…… 뭐야, 이 냄새는?’

달큼한 냄새가 나는 것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백서휘의 발목을 물고 지나갔다.

“윽! 뭐야?”

황급히 발을 빼며 밑을 내려다보니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개미가 모여 있었다.

‘설칩의(雪蟄蟻)잖아? 이건 또 왜 여기에 있어?’

설칩의는 북해에서도 가장 추운 곳에 사는 개미들이었다.

이놈들은 혈침독봉만큼 턱이 강력한 데다 인화성 물질을 내뿜어 상대하기 귀찮았다.

‘제기랄!’

흑백쌍노가 했던 말이 백서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데리러 왔던 자들이 벌레를 다룰 수 있다고 했었지?’

혈침독봉에 설칩의까지 나왔으니 다른 벌레들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다.

“금사지주(金絲蜘蛛)처럼 귀찮은 것만 안 나타나면 좋겠…….”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기척 없이 은밀히 다가온 금사지주가 백서휘를 향해 도약했다.

“젠장! 왜 세상은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는 거야!”

얼굴 높이까지 올라온 금사지주가 금빛을 띤 거미줄을 내뿜었다.

백서휘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깜빡했다! 거미줄에는 검을 휘두르면 안 되는데!’

금사지주가 내뿜는 거미줄의 강도는 천잠사에 비견될 정도로 강했다.

거기다 접착력까지 뛰어나서 검에 붙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적수공권으로 싸워야만 한다.

백서휘는 황급히 팔에 힘을 줘서 휘두르던 검을 회수하고, 대신 몸을 움직여 피했다.

‘휴~ 됐다!’

검을 적에게 뺏기는 건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사지주의 거미줄은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백서휘는 그 자리에서 도약한 후, 어검비행으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우우우우웅!

혈침독봉이 기다렸다는 듯 백서휘를 향해 날아왔다.

‘너희들 뜻대로는 안 될 거야! 독령! 신순을 발동해!’

백서휘가 신순을 발동한 채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며 검환을 주위에 흩뿌렸다.

휘익! 휘익! 휘익!

혈침독봉을 조종하는 중년 남자가 여러 차례 휘파람을 불어 재꼈다.

그러자 혈침독봉 떼가 허공에 뭉쳐서 벽을 만들어냈다.

노파 하나와 중년 남자 둘이 그 벽 뒤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멍청한 것들!’

백서휘가 만들어낸 강환과 신순의 기시가 날아가 혈침독봉이 만들어낸 벽을 없애 버렸다.

휘이이익──!

중년 남자가 다급한 얼굴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저 멀리서 혈침독붕이 소름 돋는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조종하는 놈부터 죽여야겠어.’

혈침독봉이 사라져 중년 남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뿐이야.’

백서휘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중년 남자를 향해 검을 날렸다.

쐐애애애애액!

금사지주가 또 튀어나와서는 백서휘의 검을 향해 금빛 거미줄을 내뱉었다.

‘상당히 짜증 나는 조합이네.’

백서휘가 다시 검을 회수하자 중년 남자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

서걱!

갑자기 중년 남자의 목이 베이면서 땅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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