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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66화 (166/202)

귀환무관 166화

“안 올 건가?”

진백호와 진소은은 살기만 뿜어댈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진무룡이 어떻게 죽었더라?”

진가의 미래인 진무룡을 언급하며 도발했지만, 진백호와 진소은은 가만히 있었다.

‘확실하게 복수하기 위해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건가?’

자신이라면 핏줄을 죽인 상대를 앞에 두고 이렇게 냉정하게 행동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나한테 좋지 않은데…….’

아난타에게서 빌린 힘은 천년만년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힘은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먼저 공격하는 게 낫겠어.’

백서휘는 검집에서 검을 뽑으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힘은 이전과 비슷하게 들이는데 움직이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용인(龍人)으로 변한 이후에 바람을 부릴 수 있게 돼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이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서 구천현현보를 밟으면 얼마나 빨라질까?’

마침 시험해 볼 상대도 눈앞에 있었다.

백서휘가 구천현현보를 전력을 다해 밟았다.

속도가 눈에 익어가는 와중에 갑자기 백서휘가 빨라지니 진백호와 진소운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둘 중 누구를 공격하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둘 중 하나를 먼저 죽일 수 있다면 경험 많고 더 강한 진백호를 죽이는 게 이득이었다.

‘죽어라!’

백서휘는 전력을 다해 경천신뢰 초식을 펼쳤다.

이전 같았으면 그래도 공격에 반응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진백호는 눈만 껌뻑거리다가 목이 잘려 죽었다.

진가의 태상가주이자 한때 십대마가를 이끌던 자의 죽음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

진소운은 진백호의 목이 달아나는 걸 보고는 목이 터져라 절규했다.

아버지와 아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은 것이니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전장’이었다.

심지어 자신과 싸우는 중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진노할 게 아니라 차가운 이성을 발휘해 도망을 치든, 공격하든 하는 게 옳았다.

‘멍청한 놈.’

백서휘는 진백호에게 그랬던 것처럼 울부짖는 진소운의 목을 경천신뢰의 초식으로 베어버렸다.

목에서 분리된 진소운의 머리가 땅을 굴러다녔다.

쿵! 쿵!

백서휘는 진각을 밟아 진백호와 진소운의 머리를 다 부숴 버리고는 시선을 출구 쪽으로 옮겼다.

뒤따라 출구로 나온 진가의 무인들과 다른 마가의 무인들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마인들은 공포가 어린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그들 중 가장 강한 진가의 태상가주와 가주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백서휘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용안으로 마인들을 둘러봤다.

눈이 마주친 마인들은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끼며 천천히 뒷걸음질했다.

그러다 그들은 뒤에 있는 것이 이공간이란 걸 깨달았다.

백서휘가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앞으로 갈 수 없고, 뒤에는 곧 소멸될 이공간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마인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부닥친 걸 깨닫고는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난타의 힘이 떨어지기 전에 모든 마인을 죽인다.’

백서휘가 땅을 힘껏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도, 도망쳐!”

“사람 살려!”

공황 상태에 빠진 마인들이 사방팔방으로 도망갔다.

그들 사이에는 혼천회 소속의 첩자 ‘조서’도 있었다.

백서휘는 가까이 있는 마인의 머리를 부숴서 죽이고, 바로 옆으로 이동해 다른 마인의 가슴을 용조수로 꿰뚫은 후 심장을 터뜨려 죽였다.

잠시 뒤, 다양한 방법으로 적들을 학살하던 그가 동작을 멈추었다.

아난타가 힘을 가져갈 시간이 되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죽여야 할 적들이 남지 않아서였다.

“후~”

숨을 내뱉자 온몸을 뒤덮었던 비늘이 떨어지고, 뿔은 점점 줄어들다가 사라졌다.

손과 발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기다란 꼬리 역시 없어졌다.

“죽겠군.”

백서휘는 무척이나 지친 얼굴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괘, 괜찮소?”

모용중광이 어색한 몸놀림으로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조금 지쳤을 뿐이야.”

“조, 조금 전에 용처럼 변했던 건 도대체 뭐요? 혹시 용의 자손이라거나 용 본인…….”

“정말 궁금하면 대가를 지불하고 듣던가.”

“대가라면 뭘 말하는 건지…….”

“당신이 익히 무공 구결이 좋을 것 같은데.”

백서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모용중광은 실례되는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무인이 가진 힘과 관련된 건 사형제처럼 친한 사이가 아닌 한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아, 미안하오. 내 궁금증이 과해 실수하고 말았소.”

“이해하는데 나중에라도 물어보지는 마. 왜 그런지는 알 테니 여기까지만 할게.”

백서휘 쪽에서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을 만한 실수였다.

이렇게 넘어가는 건 백서휘가 진짜 많이 봐준 것이었다.

“고, 고맙소.”

“모든 무인이 나온 건가?”

“일단은 그렇소.”

“일단은?”

“일찍이 무리에서 이탈하거나 낙오된 자들이 몇 명 있소.”

위험을 무릅쓰고 소멸 직전의 이공간에 들어가 찾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가족이나 부하들도 아니고…….’

그냥 이쯤에서 이동하는 게 서로를 위해서 더 좋을 것 같았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백서휘가 지친 몸에 억지로 힘을 주어 일어났다.

“지금 말이오?”

“이공간이 크면 클수록 천갱 현상도 크게 일어나. 쉬고 싶어도 바로 이동해야 돼.”

“천갱 현상이 뭔데 그렇소?”

“소멸하는 이공간의 주변이 같이 빨려 들어가면 지반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데 그걸 천갱이라고 해.”

“그 말은 아직도 위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소리요?”

“아직 존재하니까 빨리 사람들 통제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자.”

“아, 알겠소.”

“내가 한 말을 종리혁에게도 전해.”

“그러리다.”

그렇게 이공간과의 거리를 한 마장 정도 벌렸을 때 천갱 현상이 일어났다.

슈우우우욱!

무언가 빨려들어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전까지 있었던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 저게 천갱……?”

“그래.”

천갱 현상을 지켜본 무인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들이 언제 공간 자체가 먼지 하나 날리지 않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겠는가.

조금이라도 이공간에서 늦게 빠져나왔으면 자신들도 천갱과 함께 사라졌을 걸 생각하니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다.

“다들 휴식!”

백서휘의 외침을 다들 들었지만 쉽사리 바닥에 앉지 못했다.

“여, 여기 진짜 안전한 곳 맞느냐? 천갱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모두가 궁금했던 질문을 종리혁이 대신 해주었다.

무인들의 시선이 백서휘의 입을 향했다.

“여기에 이공간이 있다가 타의에 의해 소멸해 버린다면 모를까 천갱 현상은 안 일어나.”

“정말이지?”

“그래.”

확답을 듣고 나서야 무인들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모용중광과 종리혁은 부하들이 백서휘에게 감화되어 가는데도 신경 쓰지 못했다.

명령을 내리는 그들마저도 백서휘의 부하 비슷한 것이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독령!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최대한 내력 회복에만 집중해.’

『예!』

다른 이들이 쉬는 와중에도 백서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때 황천익이 지친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살아 있었네?”

“그대가 모두 죽인 덕분에 별 탈 없이 살 수 있었네. 그보다 몸은 괜찮은가?”

“그냥 조금 지친 정도야.”

“다행이군.”

“그보다 그쪽은 암상한테 먼저 갈 거지?”

“손자를 구하려면 그래야겠지.”

“내 밑에서 보내는 건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손자에게 영약을 먹이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때 그대에게 가겠네.”

“최대한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알겠네.”

백서휘와 무인들은 반 시진을 쉰 후 각자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 * *

백서휘가 장사가 보이는 곳까지 막 왔을 시각, 이름 모를 동굴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름이 조서라고 했더냐?”

커다란 연무장의 중앙에 가부좌로 앉은 혼천회주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

“네 상관에게 했던 보고를 나에게도 똑같이 해보아라.”

“보, 보고를 말입니까?”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 그냥 네가 본 그대로를 말하면 된다.”

“아, 알겠습니다.”

조서는 연무장의 끄트머리에서 머리를 조아린 채 자기가 보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혼천회주에게 설명했다.

“지, 진무룡은 이공간에서 죽은 건지 진백호와 진소운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그, 그런데 그 둘도 백서휘에겐 상대가 안 됐습니다. 단칼에 목이 베일…….”

“잠깐! 멈춰봐라!”

영문을 모르는 조서는 말을 멈추고 조용히 있었다.

혼천회주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중얼거렸다.

“진백호와 진소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저…….”

조서는 머리를 조아린 채 손을 살짝 들어 올려 보였다.

“뭐냐?”

“지, 진백호는 십대마가 중 하나인 진가의 태상가주였고, 진소운은 진백호의 아들이자 진가의 가주였던 자입니다.”

“아! 그래서 익숙했던 거군.”

혼천회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가 갑자기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잠깐! 그들이 단칼에 목이 베였다고 했느냐?”

“그, 그렇습니다.”

“두 놈 모두 화경의 경지일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지?”

쉽지 않아서 그렇지 혼천회주도 홀로 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그런데 자신보다 아래로 생각했던 백서휘가 단칼에 진 씨 부자를 죽였다고 하니 궁금증이 생겼다.

“백서휘 그놈이 어떤 식으로 초식을 펼쳤는지 봤나?”

“그, 그게…….”

“왜 말을 못 하는 것이지? 못 본 건가?”

“제, 제 능력이 일천하여 어떤 초식을 펼쳤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쓸모없는 놈이었구나.”

혼천회주가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근원을 알 수 없는 용기가 조서의 마음속에서 솟아올랐다.

“다, 다만 다른 건 봤습니다!”

“말해봐라.”

“배, 백서휘가 하늘에 큰 소리로 ‘아난타’라고 외치니 그의 몸이 변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요, 용과 인간이 섞인 형태의…….”

“용과 인간이 섞였다?”

혼천회주는 처음으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있습니다.”

“가서 군사를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젊은 학사가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군사에게 설명해 봐라.”

혼천회주가 히죽 웃는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처, 처음부터 말입니까?”

“아니, 다른 걸 봤다는 것부터.”

“아, 알겠습니다.”

조서는 백서휘가 변한 모습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래, 됐다. 너는 나가서 다시 장사에 잠입할 준비를 하여라.”

“자, 잠입이라면 다시 첩자가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조서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래.”

“백서휘 놈이 무인들을 학살할 때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금방 도망치긴 했지만 혹 싸우다가 제 얼굴을 봤다면…….”

“전장에서 도망친 죄로 즉결 처형당하겠느냐? 아니면 공으로 과를 상쇄하여 계속 생을 이어가겠느냐?”

“자, 잠입해서 공으로 과를 상쇄하겠습니다.”

“가봐라.”

“예.”

조서가 황제에게 하듯 예를 표하고는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왜 저놈을 살려주신 겁니까?”

“재밌는 이야기를 들고 왔기 때문이니라.”

“음…….”

“너도 흥미가 생기지 않느냐? 그놈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얻었는지?”

“아난타는 용신입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다른 형태로 변한 걸 보면 차력술을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차력술? 그 하찮은 술법으로 용신의 힘을 끌어낸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냐?”

“술자의 재질이 뛰어나고 제물까지 훌륭하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내가 차력술을 쓰면 그놈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을까?”

“계약에 제물로 바칠 물건이 뭔지 알아야만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정력이라면?”

“……전부 말입니까?”

군사가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최종 계획을 현실화한다면 부정력에 여유가 생기지 않느냐.”

“그 정도의 여유라면 외차원에 사는 신이 가진 힘을 일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대신…….”

“대신?”

“승천은 하실 수 없게 될 겁니다.”

“신의 권속이 되어서 그런 거겠지?”

“그것도 그렇고, 외차원의 신이 회주님이 신성(神聖)을 획득할 수 없게 막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가…….”

“만약 부정력에 여유가 생겨서 꼭 차력술을 펼쳐야겠다면 다른 이에게 기회를 주는 게 좋을 겁니다.”

“너는 어떠냐?”

“저는…….”

군사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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