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57화
백서휘와 황천익은 호북성 함녕(咸寧)에서 23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구궁산(九宮山)에 들어섰다.
“음…….”
산길을 잘 올라가고 있던 황천익이 갑자기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왜 그래?”
“지남침이랑 장보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네.”
“뭐? 왜?”
백서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산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는데, 지남침이 가리키는 방향이 한 번씩 확확 바뀌네.”
“장보도도 그래?”
“장보도도 비슷하다네. 다른 소유자들의 위치 역시 확인할 때마다 달라져서 계속 추적하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네.”
백서휘가 입술을 비죽거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돌연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탄성을 작게 내뱉었다.
“고장 난 게 아니야.”
“그럼 뭐 때문에 이러는 건가?”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아! 주인이 바뀔 때마다 도망치는 방향이 바뀌어서 지남침과 장보도가 가리키는 곳이 달라지는 거였군.”
“쟁탈전할 때 겪어본 일 아니야?”
“그때는 탈취하려는 자들이 계속 따라붙어서 지남침과 장보도를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네.”
“지남침과 장보도도 제대로 못 봤는데 장사엔 어떻게 오게 온 거야?”
“지남침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 무작정 이동하는데, 장사와 가까워지니 아무것도 없던 장보도에 바둑알 모양이 나타나더군.”
“그걸 따라온 거였구나.”
“그렇다네.”
잠깐의 대화가 끝나자 황천익이 다시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백서휘는 기감을 최대한으로 넓힌 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일단은 내가 먼저 지남침과 장보도를 가져야겠어.’
지금 이 산에 있는 지남침과 장보도의 숫자는 각각 네 개씩이었다.
자신이 그중 둘을 갖고, 황천익이 나머지 둘을 가지면 될 것 같았다.
‘아니면 아예 내가 다 독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겹칠 수 있는 한계까지 모아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지남침과 장보도가 최종적으로 안내하는 곳은 여러 곳이 아니고 한 곳일 확률이 높았다.
‘이 추측이 맞으면 한 사람에게 지남침과 장보도를 몰아줘서 최대한 빨리 최종 장소로 가는 게 이득이야.’
그때 기감에 사람들이 싸우는 게 잡혔다.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곳과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여긴 진짜 수라도나 다름없네.’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는 수라도처럼 이곳에서는 무인들이 마주치기만 하면 지남침과 장보도가 있건 없건 간에 무기부터 뽑고 봤다.
놀라운 건 이러한 일이 정파와 사파 사이에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정파와 정파끼리도 싸웠고 사파와 사파끼리도 싸웠다.
이념과 사상 같은 건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탐욕만 남아 서로를 죽고 죽이고 있었다.
백서휘는 슬쩍 앞에서 걷고 있는 황천익의 뒷모습을 봤다.
‘이런 수라장을 뚫고 왔단 건가?’
소문이 더 크게 나서 더 힘들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황천익이 쟁탈전을 벌였던 때나 지금이나 수라장인 건 똑같았다.
백서휘의 시선을 느낀 황천익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노부에게 할 말이 있는 건가?”
“……조금 있으면 쟁탈전이 벌어지는 곳에 접어들게 될 테니까 싸울 준비나 해.”
괜히 민망했던 백서휘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러지.”
황천익은 왼손에는 장보도를, 오른손에는 검을 들었다.
“그대는 준비 안 하나?”
“준비는 예전에 했지.”
“마음의 준비를 묻는 게 아니라…….”
“그럼 뭘 묻는 건데?”
“무기 안 들 건가?”
“그렇게까지 할 만한 상대는 이 산에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손발만 쓰려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재수 없어 하겠지만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산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앞에서 걷고 있는 황천익이었고, 이 황천익조차도 자신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알겠네.”
황천익은 다시 장보도를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음?”
“왜 그래?”
“소유자 둘이 마주쳐서 싸우기 시작했네.”
“방향은?”
“앞으로 계속 직진하면…….”
“먼저 갈 테니까 천천히 따라와.”
백서휘는 응룡비천신법을 펼쳐 싸움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수십 명이 모여 있는 공터였다.
백서휘는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나 모양으로 그들의 무리를 나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아홉 집단 정도가 이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장보도엔 분명……. 아! 물건을 가진 자만 표시되고 나머지는 표시가 안 돼서 이런 거구나.’
장보도의 맹점이라면 맹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물건을 가진 자를 찾기 시작했다.
“죽어라!”
적색 옷을 입은 자가 대도를 위로 치켜 올린 채 달려왔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공격부터 하는 그를 보니 이곳이 얼마나 미쳐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소속 집단을 제외하면 모두 적이라고 판단하나 본데.’
백서휘는 딱딱한 얼굴로 지풍을 날렸다.
지풍은 회전하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 적색 옷을 입은 자의 머리를 터뜨렸다.
“대사형이 죽었다!”
“이이익! 감히 내 제자를 죽이다니! 적도문(赤刀門)의 문도들이여 저놈을 죽여라!”
적도문의 문도들이 원래 상대하던 적도 놔두고 백서휘를 향해 달려갔다.
‘지풍 한 번에 머리가 터진 걸 보고도 이렇게 덤비다니…….’
문주라고 있는 것이 고수를 알아보는 눈도 없고, 진퇴를 내리는 판단도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자들은 어떤 이유로 죽건 ‘자연사’라고 봐야 했다.
고수를 알아보는 눈이 있으면 문도들을 흥분하지 않게 말렸을 거고, 진퇴를 내리는 판단이 제대로 됐으면 지금처럼 머저리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백서휘는 냉혹한 얼굴로 난화만천수를 펼쳤다.
설렁설렁 펼쳤는데도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은 이가 적도문 내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허공을 가득 메운 보랏빛 수영이 적도문의 문도들을 덮쳤다.
퍼버버버벅!
적도문에 소속된 이들은 모두 일 수에 죽었ㄷ.
싸우다 우연히 그 장면을 본 자들은 백서휘의 무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덤벼드는 놈들이 사라졌으니 물건을 가진 놈 중 하나를 찾아보자.’
때마침 황천익이 공터에 도착했다.
“장보도 내놔봐.”
“자네 것을 보면 되지 않나?”
“이유가 있어서 못 쓰니까 잠깐 빌려줘 봐.”
장보도에는 공터의 중심에 있는 두 무리가 물건을 보유 중이라고 나와 있었다.
두 무리에 갈 때까지 덤벼오는 무인들을 싹 다 죽일 생각을 하니 벌써 피곤했다.
‘그냥 여기서 빠르게 죽이는 게 낫겠어. 강환은 지남침이랑 장보도까지 다 소멸시킬 수 있으니 이기어검술을 쓰는 게 낫겠지.’
백서휘는 허공섭물로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다.
두둥실 떠다니는 검을 보고는 모여 있는 모두가 입을 찢어지도록 벌렸다.
“지남침과 장보도가 있는 놈들은 바닥에 그것들을 내려놓고 꺼져라.”
그때 파란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삿대질하며 다가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천잠사로 장난치면 우리가 속을 것 같으냐!”
“좋은 말로 할 때 좀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이놈아 나한테 명령을 내릴 사람은 문주님……. 컥!”
파란 옷을 사내는 커다랗게 구멍 뚫린 목을 어떻게든 메워서 치료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 지남침과 장보도가 있는 놈들은 바닥에 그것들을 내려놓고 꺼져.”
두 무리는 눈치만 볼뿐 물건을 내놓지 않았다.
“너희들이 죽는 건 모두 물건을 내놓지 않은 놈들 때문이다.”
백서휘는 허공섭물로 검집에 잠들어 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이기어검술을 전력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검강이 깃든 검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공터에 있는 자들을 죽였다.
“사, 살려……!”
“끄아아악!”
“모두 도망쳐! 크어어억!”
공터에 모여 있는 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었다.
그걸 본 황천익은 절대 백서휘의 원한을 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놈만 죽이면……. 됐다!’
마지막 한 명이 죽자 백서휘는 검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검은 빠른 속도로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해치웠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몰려 있어서 가능했던 일 같았다.
백서휘는 검을 납검한 후 황천익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천익은 그의 손에 조심스럽게 장보도를 올려놓았다.
중심에서 좌측으로 조금 처진 곳에 두 명분의 물건이 있었다.
백서휘는 죽은 이들의 시체를 뒤져 지남침과 장보도를 찾아냈다.
‘시작이 순조롭군.’
들고 있던 장보도를 황천익에게 돌려주고 이번에 획득한 것들을 겹쳐서 포개놓았다.
잠시 후,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지남침은 지남침끼리, 장보도는 장보도끼리 합쳐졌다.
신기한 눈빛으로 물건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빛이 갑자기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으윽!”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다시 물건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백서휘는 지남침은 품에 넣고 장보도를 손에 들었다.
확실히 조금 전에 봤던 황천익의 것보다 탐지 능력이 닿는 범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남은 두 놈들을 잡으러 가면 되겠다.’
백서휘는 구궁산에 남은 두 명 중 한 명은 죽이고, 한 명은 항복하는 조건으로 물건들을 받아냈다.
구궁산에 있는 네 개를 모두 합쳤지만 한계에 이른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한계까지 합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황천익이 말을 걸었다.
“……다음부터는 나도 합쳐도 되겠는가?”
“아, 미안! 내가 너무 독식했지? 한계까지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어.”
“이해하네.”
“이해한다고 하니 하는 말인데, 이거 끝에 가서는 안내하는 곳이 똑같이 나올 것 같은데 그냥 내가 독점해서 한계까지 상승시키는 게 낫지 않나?”
황천익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정보만 공유해 주면 되는 거잖아.”
“……진짜 공유할 건가?”
“공유하지. 왜? 거짓말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내가 이런 걸 아꼈으면 하오문을 통해 얻은 정보도 공유 안 했어.”
“그렇긴 한데…….”
“천도나 음기 속성 영약이 나오면 그쪽을 주면 되는 거고, 그 외에 다른 게 나오면 내가 가지면 되는 거고.”
“……알겠네. 그렇게 하지.”
황천익은 가지고 있던 지남침과 장보도를 백서휘에게 건넸다.
네 개를 합친 것과 하나를 포개자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설마, 모두 모으는 데 성공한 건가?’
팟!
잠시 후, 빛이 물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백서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서 지남침과 장보도를 살폈다.
지남침과 장보도는 고급스러운 모양에 은한 황금빛이 감돌게 변해 있었다.
‘됐다!’
백서휘는 한계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직감했다.
그는 장보도를 활짝 펴서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살폈다.
‘이 지형은 운남인데?’
백서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황천익이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무슨 문제 있는가?”
“아니, 없어.”
“지남침과 장보도는 이상 없지?”
“없어.”
“최종 장소의 위치는 어찌 되는가?”
“보면 알겠지만 운남 같아.”
“운남이라…….”
백서휘가 뚫어져라 장보도를 보는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진짜 지남침과 장보도는 흑룡강성을 가리키던데 이건 운남성을 가리키고 있네.’
운남성은 흑룡강성과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이었다.
“일단 가보자.”
백서휘와 황천익은 산을 내려가고 운남성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 사람이 산에서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조서가 구궁산을 올라왔다.
그는 산 전체를 훑고 돌아다니면서 두 사람의 흔적을 찾고 분석해 약점이 있는지 살폈다.
‘늙은이 쪽에겐 약점이 많지만 백서휘의 것은 보이지를 않는군. 역시 현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무인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운남에서 기다리는 선물을 받게 되면 무조건 죽게 되겠지.’
혼천회에서도 무리를 해가며 만든 함정인 만큼 무조건 통하리라.
‘늦었으니 보고부터 해야겠군.’
산이라 밤이 찾아오는 게 빨랐다.
조서는 불을 켜놓고 세필로 백서휘가 황천익과 함께 작전이 진행되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정보를 종이에 적었다.
‘나와라!’
수백 마리의 쥐가 찍찍거리며 조서의 주위를 둘러쌌다.
조서는 쥐들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그중 제일 건강한 개체를 골라 보고 내용이 적힌 종이를 몸에 붙였다.
‘가라!’
쥐가 산에서 내려가더니, 혼천회의 본부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제발…….’
조서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기 차례까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