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54화
모든 수업이 끝나자 진운과 금태평은 도화루로 향했다.
미리 말을 해놓았는지 점소이 하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 난 장삼이야. 누가 진운이고 누가 금태평이야?”
“제가 금태평이고 이쪽이…….”
“진운입니다.”
“반갑다, 반가워.”
감정을 읽어낸 진운은 진심으로 장삼이 반가워하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둘 다 나를 따라와.”
장삼은 창고 같은 곳으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안에 있는 옷 중에서 맞는 거로 갈아입고 나와.”
창고 안으로 들어간 금태평과 진운은 장삼이 입은 것과 똑같이 생긴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것보다 작은 건 없었어?”
“네.”
“음…….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장삼이 창고에서 끈을 여러 개 가져왔다.
진운과 금태평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바지통이 넓으면 뛰어다니다가 넘어질 수 있어.”
장삼은 진운과 금태평의 바지통 부분을 끈으로 묶어주었다.
“자, 이제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가르쳐 줄 테니까 따라오면서 들어.”
“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인사야. 손님이 주루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달려가서 인사하고 빈 탁자로 안내해 드려.”
장삼은 빠르게 걸어 도화루 안으로 향했다.
금태평과 진운은 그를 바쁘게 쫓아가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다음에는요?”
“그게……. 하아~ 지금 문제인 게 위에서 온 지시는 너희가 오면 바로 실전에 투입하라고 그랬거든. 근데 너희 지금 어떤 요리랑 술을 파는지 하나도 못 외웠잖아. 그렇지?”
장삼은 걱정 가득한 눈길로 금태평과 진운을 바라봤다.
“네.”
금태평과 진운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목판에 적힌 것들이 여기서 파는 요리랑 술이야.”
“저것만 외우면 점소이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진운이 벽에 걸린 목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한테 어떤 식으로 주문받는지 배우고 요리랑 술을 외우는 것까지 합격점을 받으면 그때 일하게 할 거야.”
“주문은 어떻게 받으면 되는데요?”
“손님이 착석하면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정중하게 물어봐. ‘손님, 찾으시는 요리나 술이 있으십니까?’라고.”
“이런 식으로요? 손님, 찾으시는 요리나 술이 있으십니까?”
진운은 꽤 잘 흉내 냈지만, 장삼은 합격점을 주지 않았다.
“더 부드럽고 친근하게 해봐.”
“손님, 찾으시는 요리나 술이 있으신가요?”
“괜찮네. 넌 그렇게 하고……. 태평? 태평이 맞지?”
“네.”
“너도 한번 해봐.”
“손님, 찾으시는 요리나 술이 있으신가요?”
상인의 피가 어딜 가지 않는다고 금태평은 몇 년 굴러먹은 점소이처럼 말했다.
“잘하네.”
“정말요?”
“이번이 처음으로 일하는 거 맞지?”
“네!”
“넌 주문받는 건 별문제 없겠다.”
“헤헤!”
금태평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웃었다.
“연습은 이쯤 하고 다음 단계를 알려줄게. 너희가 조금 전처럼 물으면 손님이 원하는 걸 말하게 될 텐데, 너희들은 그걸 외운 후에 손님한테 네가 외운 게 맞는지 확인하면…….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손님 좀 응대하고 올게.”
“네.”
장삼은 극도로 평범하게 생긴 중년 남자를 빈 탁자로 안내했다.
“손님, 찾으시는 요리나 술이 있으십니까?”
『아이들은 일을 잘하고 있나? 잘하고 있다면 눈을 깜빡이고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
“누구십…….”
『백서휘다. 지금은 역용한 상태이고.』
장삼은 진운과 금태평이 들을 수 있단 걸 감안해 눈치껏 얘기해 줬다.
“저 친구들이 지금 일을 배우는 중이라서 그러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손님께 실습을 좀 맡겨도 되겠습니까?”
“일을 배우는 중이라고? 음……. 그러면 아주 손님을 한 번도 응대해 보지 않았겠군.”
“예.”
“나는 너무 평범하니 실습으로 삼기엔 부적절한 것 같군. 좀 강한 손님한테 실습을 붙여주는 게 어떻겠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런데 요리는 만두로 충분하십니까?”
“추천할 만한 게 있나?”
“요즘 오리가 살이 통통하게 올랐습니다.”
“그러면 죽엽청이랑 오리구이를 가져다주게.”
“알겠습니다.”
장삼이 손님 응대를 마치고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혹시 조금 전에 내가 손님 응대한 걸 봤어?”
“네, 봤어요!”
“그럼 대충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알겠지?”
“네.”
“그러면 마저 설명하고 실습을 들어갈 수 있으면 바로 실습을 해보자. 내가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외운 게 맞는지 손님에게 확인해야 한다고.”
“손님에게 확인한 이후에는 주방에 주문을 전달하면 주문 단계는 끝난다고 선배들한테 가르침을 받았는데, 난 그게 끝이 아니라고 봐.”
“그럼 끝은 어떤 건데요?”
“손님이 음식을 한 젓가락이나 두 젓가락 정도 드셨을 때 찾아가서 묻는 거야. 요리가 괜찮은지,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하는 말 들어보면 형만 그렇게 하는 것 같은데.”
진운과 금태평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친절하고 싹싹하게 잘한다고 손님들이 나한테 한 푼, 두 푼씩 줄 때가 있어. 그래서 하는 거야. 그렇게 모인 돈이 쌓이면 꽤 되거든. 어? 잠깐만 좀 다녀올게.”
장삼은 입구를 향해 다시 한번 달려갔다.
이번에 온 손님은 등에 검집을 차고 있는 늙은 무림인이었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깝다는 걸 아는 장삼은 극도로 평범하게 생긴 중년의 손님에게 한 것보다 조금 더 친절하게 굴었다.
잠시 후, 손님 응대를 끝낸 장삼이 진이 다 빠진 얼굴로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아니, 안 괜찮아.”
장삼은 점소이를 위해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았다.
“무림인들 상대하는 게 제일 골치가 아파. 언제 칼을 휘두를지 모르거든. 여기야 하오문의 구역이란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서 난장을 치는 사람이 별로 없…….”
쾅!
도화루의 문짝이 날아가며 세 사람을 덮쳤다.
진운이 다급한 얼굴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집히지 않았다.
그제야 옷을 갈아입을 때 창고에 두고 왔단 게 떠올랐다.
크게 다치겠다고 생각하며 진운은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금태평이 진각을 밟으며 날아오는 문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문이 다섯 조각으로 부서지면서 파편들이 이리저리로 날아갔다.
잠시 후, 험상궂게 생긴 남자 셋이 도화루로 들어왔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가 외쳤다.
“탐전검(貪錢劍)! 나와라!”
조금 전에 장삼이 안내했던 늙은 무림인이 혀를 차며 일어났다.
“잠시도 쉬게 두지 않는구나.”
“지남침이랑 장보도 내놔.”
“그것들을 주면 살려줄 텐가?”
“그건 지남침과 장보도를 받은 이후에 생각을 좀 해보겠다.”
“바로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해보겠다? 하하! 사천사흉(四川四凶)의 의리는 그 누구도 능가하지 못할 거라고 떠들고 다니더니 다 거짓부렁이었구나!”
탐전검이 배를 잡고 웃었다.
“의제도 우리를 이해해줄 거다. 천마가 남긴 보물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천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내가 가진 지남침과 장보도는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물건이다.”
탐전검은 미친놈 보듯 사천사흉이었다가 이제는 사천삼흉이 되어버린 자들을 바라봤다.
“대형, 노인네가 매병에 걸려서 오락가락하나 봅니다.”
사천삼흉의 둘째가 다 들리는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그게 사실이냐?”
사천삼흉의 대형이 차가운 얼굴 탐전검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서 거짓을 말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그럼 의제는…….”
“끌끌끌! 그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에 욕심냈다가 죽은 거지. 멍청하게도 말이야.”
탐전검은 한껏 죽은 이를 비웃었다.
“대형, 말려들지 마십시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지남침과 장보도는 천마의 보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게 확실합니다.”
“네 말이 맞을 거다. 의제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았어.”
“맞습니다.”
“멍청했대도.”
아무리 보물에 눈이 멀었다지만 죽은 의형제의 욕을 듣는 건 사천삼흉으로서도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사천삼흉의 대형이 검을 뽑자 나머지도 그를 따라 무기를 빼 들었다.
“피도 안 섞인 놈들이 욕심 많은 건 친형제 사이보다 더 닮았구나.”
“하아앗!”
사천삼흉의 둘째가 기합 소리를 외치며 달려갔다.
탐전검은 등에 찬 도갑에서 도를 뽑아 들었다.
채채채챙!
네 사람의 무기가 서로 부딪칠 때마다 장삼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움찔거렸다.
“히이이!”
금태평과 진운은 장삼과 함께 슬금슬금 뒷문으로 도화루를 빠져나갈 준비를 하였다.
채채채채채챙!
사천삼흉은 삼재진까지 이룬 채로 싸웠지만 탐전검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막내 꼴이 나겠다고 생각한 사천삼흉의 대형은 수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노인의 원래 별호는 활인검(活人劍)으로 대단히 유명한 협객이었다.
그런 그의 별호가 탐전검으로 바뀐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구양절맥을 타고난 손자를 치료하기 위해 돈 되는 일을 뭐든 다 하다 보니 별호가 탐전검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그 손자의 나이가 점소이 중 하나와 비슷했다.
그를 이용해 협박이라도 하면 일이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 사천삼흉의 대형은 속으로 숫자 셋을 센 후 금태평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진운은 전력으로 달려오는 그에게서 악의를 읽어냈다.
“다들 피해!”
진운과 금태평, 장삼은 기겁하며 뒷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겐 안 되지.”
사천삼흉의 대형의 팔이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이며 금태평을 향해 뻗어나갔다.
금태평은 맹호은림보를 전력으로 밟아 공격을 피하려 했다.
사천삼흉의 대형이 괜히 대형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경지는 다른 형제들보다 높은 절정의 경지.
끽 해봐야 이류 초입인 금태평에겐 너무 벅찬 상대였다.
거기다 사천삼흉의 대형은 기초적인 형태의 금나수를 펼쳤다.
신공절학이 아니지만 경험하지 못하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는 수법이었다.
사천삼흉의 대형은 뱀처럼 움직이는 팔로 금태평의 몸을 오르내리며 혈도를 제압했다.
비록 지금은 금태평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어찌 됐건 간에 한 스승을 모시는 형과 동생 사이였다.
동생이 끌려가는 걸 진운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사제를 놔줘!”
뒤에 있던 사천삼흉의 둘째가 달려와 진우의 배에 무영각을 날렸다.
사천삼흉의 대형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동작을 읽어내지 못한 게 진운의 패착이었다.
진운은 기절한 채로 저 멀리 날아갔다.
백서휘는 자신에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이용해 진운에게 은밀히 다가갔다.
‘이상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진기를 불어넣어 확인해보니 큰 이상은 없었다.
‘사흘 정도 요양하면 금방 괜찮아지겠군.’
백서휘는 진운에게 향했던 시선을 탐전검과 사천삼흉 쪽으로 옮겼다.
“영감, 지남침이랑 장보도를 내놔.”
사천사흉의 대형이 금태평의 목에 검을 겨눈 채 말했다.
“노부가 왜 그래야 하지?”
“안 그러면 이 애를 죽일 거거든. 영감이 보는 앞에서.”
“미안하지만 그 아이를 죽이더라도 난 지남침과 장보도를 내주지 않을 거다. 노부의 손자가 더 중요해.”
“활인검 대협께서 많이 변하신 모양이네. 죄 없는 아이의 죽음을 외면하고 말이야.”
“나는 활인검이 아니라 탐전검이다.”
“이 아이의 목에 구멍이 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봅시다.”
탐전검은 축 늘어진 금태평의 얼굴에서 집에 누워 있는 손자의 얼굴을 봤다.
눈을 밑으로 깔아 외면했지만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백서휘는 갈등하는 그와 금태평을 번갈아 보면서 손가락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여기서 멈추면 단전을 깨뜨리는 선에서 끝내주마.’
백서휘가 냉막한 얼굴로 언제 나설지 그 시기를 재고 있을 때, 탐전검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장보도와 그 아이를 교환하자!”
“안 돼. 두 가지 모두 있어야 돼.”
사천사흉의 대형은 금태평의 목과 더 가깝게 검을 가져다 댔다.
탐전검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남침과 장보도가 하나라도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도 어렵게 두 개를 구한 것이기에 그 차이를 너무나 잘 알았다.
“진짜 탐전검이 됐나 봐. 안 되겠어.”
사천사흉의 대형이 금태평의 목에 구멍을 내려고 했다.
“안 돼!”
퍽퍽퍽!
수박 깨지는 소리가 세 번 들리더니 사천삼흉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요즘 사파 새끼들은 ‘적당히’를 모른단 말이야. 진짜 언제 날 한번 잡아서 종리혁을 후두려 까든가 해야지.”
“그, 그대는 누구요.”
“중원제일 교육기관의 관주 백서휘.”
백서휘는 역용한 얼굴을 원래대로 바꾸며 무심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