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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51화 (151/202)

귀환무관 151화

“소유는 여기 잠깐 있고, 나머지는 날 따라와.”

백서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식당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방소유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허락을 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강호와 금태평은 그녀의 속내를 모르기에 그냥 지나쳐갔지만, 진운은 달랐다.

진운은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방소유가 품은 감정을 읽어냈다.

“스승님!”

백서휘가 진운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같이?”

“다들 나갔는데 혼자 여기에 있으면 쓸쓸하잖아요.”

“음…….”

제자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진운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자신 역시도 진운에 대해 잘 몰랐다.

서로의 관계 진전을 위해서라도 부탁을 들어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까.’

무공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시연하러 가는 길이니만큼 같이 있어도 문제가 될 일이 없을 듯싶었다.

“……좋아, 같이 가자.”

백서휘는 문을 열고 나가 연무장으로 향했다.

금태평과 서강호가 그의 뒤를 바로 따라붙었다.

진운 역시 바삐 발을 놀려 그들을 따라가려 했다.

그때 뒤쪽에서 개미가 기어가는 것보다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두 눈이 향한 곳에는 방소유가 달아오른 볼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뭐라고 그런 거야?”

“고마…….”

말의 끝처리를 흐릿하게 했지만 앞서 말한 것이 있어 진운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응.”

뒤처진 진운과 방소유는 연무장을 향해 바삐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연무장은 학무관에 비하면 작긴 했지만 다섯 사람이 쓰기엔 충분했다.

검을 뽑은 백서휘는 몸을 풀 생각으로 허공에 베기와 찌르기를 펼쳤다.

네 사람은 아직 어려도 무인은 무인이었다.

네 아이는 백서휘의 동작에서 아득한 경지 차이를 느꼈다.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아이들이 존경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자 백서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무공 시연을 하기 전에 말해 줄 게 있다. 너희 셋에게 가르칠 무공 중 일부는 내가 배우긴 했지만 주로 쓰는 무공은 아니야.”

“왜 다른 걸 배워야 해요? 설마, 저희가 재능이……”

금태평이 말하다 말고 뒷말을 삼키고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너희 재능이 나만큼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무공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야.”

“그럼 뭐 때문에 다른 무공을 가르쳐주시는 건데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궁합이 있는 것처럼 무공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 있어. 나는 너희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 무공을 골라서 가르치려고 해.”

“그럼 저희는 다 다른 무공을 배우는 거예요?”

“아니, 내공심법이랑 신법은 내가 익히고 있는 것과 같은 걸 가르쳐줄 거야. 익힌 사람과의 궁합을 안 타는 데다가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뛰어난 무공이거든.”

“질문 있어요.”

진운이 손을 번쩍 들었다.

“중요한 거야?”

“네.”

“뭔데?”

“내공심법을 다른 걸로 바꿔 익히면 원래 가지고 있던 내공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반장이…….”

“내공을 포기하게 되면 반장이 될 수 없을까 봐 걱정인 거지? 반장이 되지 못하면 내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니까.”

“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천의일기공은 원래 가지고 있던 내공을 기반 삼아서 커질 테니까.”

세 아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질문 더 없지? 있으면 지금 말해.”

조금 더 기다려봤지만 질문하는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백서휘는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아이들에게 지시했다.

다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기에 별 의문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지금 펼칠 무공은 강호에게 가르쳐줄 무공이야. 대검을 써야 하는 무공인데, 내가 깜빡하고 준비를 못 했으니까 그거를 감안하면서 봐.”

백서휘는 심호흡을 하면서 서강호에게 가르칠 무공을 떠올렸다.

붕천대력검(崩天大力劍).

천왕중보(天王重步).

두 가지 모두 묵직하면서 단단한 서강호를 닮은 무공이었다.

‘시작해 볼까.’

백서휘는 머리 위로 검을 치켜올린 채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은 그가 취한 자세에서 태산(泰山)을 느꼈다.

“흐아앗!”

백서휘가 기합 소리와 함께 하늘을 부술 듯한 기세로 내려쳤다.

쿠구구궁!

검에 담긴 거대한 힘은 보는 이들에게 공간이 짓뭉개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연무장 바닥에 거대한 검흔이 남았다.

백서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검을 위로 올려 쳤다.

그의 검은 주위에 있는 공간을 왜곡하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백서휘는 타격점에 도달한 순간 검을 빠르게 회수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그의 검이 있던 곳에 공기가 모였다가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붕천대력검이다.”

서강호는 ‘붕천대력검’이란 단어를 계속 중얼거렸다.

“이번에 보여줄 건 보법이다.”

백서휘는 천왕중보의 구결대로 내공을 운용하면서 앞으로 걸음을 내밀었다.

그의 신형이 쭉 늘었다가 줄어들더니 한참 멀리 가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축지법(縮地法)을 쓰는 신선 같았다.

“하늘의 왕은 절대 가벼이 움직이지 않아. 하지만, 한번 노하여 무거운 걸음을 떼면 모든 것을 무릎 꿇리지. 이것이 강호 네가 배울 보법 ‘천왕중보’다.”

서강호는 이번엔 ‘천왕중보’란 단어를 중얼거렸다.

‘이번엔 둘을 조합해 볼까.’

백서휘는 천왕중보로 이동하면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 횡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가 조금 전에 지나갔을 거라 추측되는 경로에 공기가 모였다가 한순간에 터져 나갔다.

쿠콰콰콰콰쾅!

“붕천대력검과 천왕중보가 합쳐지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백은하는 소리를 듣고 나왔다가 백서휘가 펼친 결과물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무공을 배우게 될 서강호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배울 무공이 보여줄 수 있는 결과라는 게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제 태평이가 배울 무공에 대해 보여주겠다. 호왕무는 태평이에게 이미 가르쳐준데다 시범도 많이 보여줬으니, 새로 배울 보법인 ‘맹호은림보(猛虎隱林步)’만 보여주겠다.”

백서휘가 맹호은림보를 펼칠 자세를 취하는데 금태평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왜?”

“강호형에게 한 것처럼 저한테도 맹호은림보와 호왕무의 조합을 보여주세요.”

“음…….”

차별은 할 수 없으니 공평하게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강호에게 한 것처럼 네게도 호왕무, 맹호은림보, 두 가지 조합 순으로 보여주마.”

백서휘는 두 눈을 감고 호왕무의 기초 동작들을 떠올렸다.

호왕무는 이름 그대로 춤 같은 것이기에 초식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이거다!’할 만한 정답도 없고, 동작과 동작의 조합을 어떻게 만들지는 무공을 익힌 본인에게 달려 있었다.

‘진짜 호랑이처럼 보이게 움직여야지.’

백서휘는 기초 동작을 하나하나 펼치기 시작했다.

동작 하나하나에 산천초목과 그곳에 사는 짐승들을 지배하는 호랑이 같은 위엄이 담겨 있었다.

금태평은 몇 번이나 봤을 텐데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워하고 좋아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춤을 춰볼까.’

백서휘는 호왕무와 맹호은림보를 조합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기 시작했다.

더 다양해지고 박력 있는 그의 춤사위에 다들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강약과 완급조절까지 하였다.

백은하는 그가 보여주는 춤에 담긴 고차원적 무리(武理)와 공능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고는 경악했다.

‘이쯤 끝내면 되겠지.’

주로 쓰는 무공이 아니라 펼치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더 완벽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백서휘는 다음에 펼칠 무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천뢰신창(天雷神槍)과 뇌룡보.

두 가지 모두 극쾌의 무리가 담긴 무공이었다.

진운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고르고 고른 무공이지만 아직까지도 이게 맞는 건지 고민이 됐다.

‘진짜 딱 나만큼만 재능이 있으면 어렵고 험한 길이라도 추천할 텐데…….’

고수가 되는 방법엔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약점을 없애는 거고, 두 번째 방법은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앞서 말한 두 가지 모두를 행하는 거였다.

당연한 거지만 세 번째 방법이 제일 어렵고 험했다.

그래서 세 번째 방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강호 역사를 다 뒤져도 몇 나오지 않았다.

근데 그 몇 안 되는 사람은 다들 무림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장삼봉과 달마대사부터 천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세 번째 방법을 극한까지 추구한 자들이었다.

‘에휴! 끝에 기다리는 보상이 크면 뭐하겠어. 거기까지 가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냥 세 번째 방법을 추천하는 건 포기하자.’

백서휘는 세 번째 방법은 포기하고 두 번째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운의 강점은 역시 상단전이 트이면서 생긴 신통력이지.’

진운은 상대가 펼칠 다음 동작을 알아내고, 약점까지 찾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그의 강점을 극대화하려면 빠르고 정확한 공격 능력을 키우는 편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도 호랑이가 날개를 단 정도는 되겠지.’

백서휘는 연무장 한쪽 구석에 있는 기다란 봉을 집어 들었다.

“운이에게 가르쳐줄 무공은 천뢰신창이랑 뇌룡보다. 천뢰신창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치는 벼락처럼 빠르고 강한 공격이 특징인 창술이고, 뇌룡보는 극한의 빠르기를 자랑하는 보법으로 유사시에 몸을 쉽게 빼낼 수 있다.”

진운은 눈을 크게 뜨고 백서휘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그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자, 그럼 마지막 무공 시연을 시작하겠다.”

백서휘는 진운이 무공에 대해 더 잘 알게 하려고 정신 방벽을 일부러 풀었다.

진운은 그가 뭐 때문에 그런 건지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감격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백서휘가 번개같이 빠르게 봉을 내질렀다.

파지지직! 쾅!

봉 끝에서 벼락이 쏘아져 나가며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파지직!

뇌기가 감도는 봉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려치고, 아래로 내려간 창을 위로 올려 쳤다.

파지지지지직!

“이 다음에 보여줄 동작은 방어 동작인데……. 어? 누나! 마침 잘됐다! 나 좀 도와줘!”

백서휘는 뒤늦게 백은하를 발견하고는 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백은하는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에게 가까이 갔다.

“누나가 공격하면 방어 동작을 펼칠 거야.”

“괜찮은 거지?”

“나?”

“아니, 나. 조금 전에 보니까 뇌기가 봉에 감돌던데…….”

백은하가 자기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시연이니까 소리랑 보여지는 것만 요란하고 위력은 약하게 할 거야.』

백서휘가 허튼 소리를 한 적은 없기에 백은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내가 시작이라고 말하면 그때 그냥 막 공격하면 돼.”

“약하게?”

“강하게 해도 상관없어. 시작!”

백은하가 검기가 감긴 검을 있는 힘껏 내질렀다.

백서휘는 뇌기가 감도는 봉을 밖에서 안쪽으로 돌려 막아냈다.

백은하는 찌릿함을 느끼자마자 깜짝 놀라서는 바로 검을 회수했다.

“왜?”

“아, 아냐.”

백은하가 조금 전과 비슷하게 검을 찔렀다.

백서휘는 안쪽에서 밖으로 봉을 돌려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찌릿찌릿함 정도만 느껴진다는 걸 깨달은 백은하는 적극적으로 공격하기 싲가했다.

“이제 뇌룡보를 보여줄게.”

“어? 뭐?”

백은하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을 때였다.

백서휘의 신형이 전광과 함께 한 순간 사라지더니 그녀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파지지직!

백은하도 지금의 경지를 야바위로 딴 게 아니기에 바로 눈치채고 방어를 했지만, 이미 백서휘는 한 번 더 이동한 후였다.

파지지직!

백서휘가 봉을 힘껏 내질렀다.

빠르지만 처음 천뢰신창을 시연할 때처럼 빠르지는 않았다.

백은하는 그의 공격을 방어하고 바로 반격에 들었다.

가장 자신 있는 초식인 매화낙섬(梅花落暹)이 그녀의 검 끝에서 펼쳐졌다.

아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매화낙섬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천변만화하는 초식을 백서휘는 주무기도 아닌 봉으로 아무렇지 않게 막아냈다.

‘어떤 식으로 나오려나.’

백은하는 백서휘의 철벽 방어를 뚫기 위해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 중 가장 강한 초식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을 펼쳤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백서휘도 천뢰신창의 마지막 초식을 봉으로 펼치려 했다.

‘뇌신현신(雷神現身)!’

매화와 벼락이 맞닿으려는 순간, 백서휘의 목봉이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백은하가 검을 회수하기엔 너무 늦은 데다 그럴 만한 깜냥도 되지 않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백서휘가 그녀를 진정시켜주려는 건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괜찮다’라고 입으로 말했다.

파지지직!

전광이 일고 백서휘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백은하의 뒤에서 나타났다.

“서휘야!”

백은하가 무척이나 다급한 얼굴로 백서휘에게 향했다.

“난 괜찮아. 누나는 어때? 초식을 갑자기 멈춰서 내상을 입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러지는 않았어.”

“다행이다.”

백서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다친 데 없는 거 맞지?”

“진짜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보다 이래서는 시연 계속 못 하겠다.”

백서휘가 해산하라고 지시하자 네 아이가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많이 늘었더라.”

“뭐가?”

백은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였다.

“무공 말이야.”

“누가 가르쳐 준 무공인데, 금방 늘어야지.”

“하하하. 그러네.”

백서휘는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백은하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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