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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50화 (150/202)

귀환무관 150화

서강호가 출발점을 통과하면서 땀에 젖은 상의를 벗어 던졌다.

뒤따라가던 진운도 탈의하기 위해 옷고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다 근처에서 백서휘에게 다른 훈련을 받는 방소유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엇!”

소심한 방소유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을 마주치고 피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방소유에게서 읽어낸 감정은 당황과 부끄러움, 불안이었다.

여러 감정이 나타난 원인이 탈의 때문이란 걸 알게 된 진운은 옷고름을 다시 고쳤다.

그때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금태평이 진운을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금태평은 진운에게 ‘강력한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감정이 있다는 걸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니 진운 역시 자연스럽게 금태평에게 경쟁심을 품게 됐다.

진운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금태평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백서휘는 둘의 경쟁을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서강호하고 다르게 두 사람은 근골이 가지는 잠재력이 완전히 개화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신체 능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한번 뒤처지면 그 격차를 줄이기 어려웠다.

‘더 경쟁했으면 좋겠군.’

어느 순간부터 세 사람이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쉬게 둘 수는 없지.’

백서휘는 방소유에게 초식을 최대한 느리게 펼치라는 주문을 한 후 세 사람 쪽으로 뛰어갔다.

“달리는 속도를 높인다! 실시!”

“실시!”

서강호만 좀 빨라지고 나머지 두 사람의 속도는 그대로였다.

“속도 안 높일 거야? 어?”

백서휘가 금태평에게 악귀 같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헉헉! 좀만 쉬게 해주……. 헉헉! 시면 속도를…….”

금태평이 지친 나머지 해서는 안 되는 소리를 하였다.

“내가 뭐라고 했지? 조금이라도 못 따라올 기미를 보이면 그때는 그만두게 한다고 했지!”

“죄, 죄송……. 헉헉! 합니다! 뛰겠……. 헉헉! 습니다!”

“사람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존재다. 조금이라도 쉬게 되면 계속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쉬지 말고 뛰어! 알았어?”

“예!”

백서휘는 다시 방소유에게 돌아가 동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점점 느려지는군.’

시간이 지날수록 세 사람의 속도는 느려졌다.

이제는 노인이 걷는 것보다 느린 수준이 됐음에도 백서휘는 그들에게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육체를 만들고 의지를 다지는 데는 이만한 훈련이 없었다.

백서휘의 스승은 이 훈련을 ‘담금질’이라고 불렀었다.

‘고꾸라질 때가 됐는데…….’

세 사람은 쓰러질 듯 안 쓰러지며 간신히 훈련을 버텨냈지만 아직 경지에 이르지 않은 탓에 한계가 있었다.

금태평, 진운, 서강호 순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백서휘는 그들을 허공섭물로 들어서 방소유 옆으로 데려갔다.

방소유는 금태평과 서강호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괜찮은 거예요?”

“안 괜찮지.”

“그러면 어떡해요?”

“괜찮게 만들어야지.”

백서휘는 먼저 쓰러진 금태평과 진운을 억지로 앉힌 다음 기운을 담은 손으로 둘을 동시에 때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밧!

갑작스러운 구타에 놀란 방소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서휘의 옷이 땀으로 젖는 걸 본 후에야 금태평과 진운을 위해 백서휘가 무언가 엄청난 걸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천종, 풍문, 심유, 격유……!’

금태평은 무아지경의 상태로 금태평과 진운에게 추궁과혈(推宮過穴)을 펼쳤다.

그의 모습은 대장장이가 휘어지고 일그러진 쇠를 망치로 두들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흡!”

금태평과 진운의 몸에서 검은 땀이 나오는데 그 냄새가 엄청나게 지독했다.

방소유는 코를 손으로 막으면서 두 사람과의 거리를 벌렸다.

“후우~”

백서휘는 금태평과 진운을 들어 올려 옆에 눕히고 서강호를 앞에 앉혔다.

이후로는 두 사람에게 했던 것처럼 서강호에게도 추궁과혈을 해줬다.

“후우~”

백서휘가 숨을 크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 세 사람은…….”

“데려가야지.”

백서휘는 세 사람을 허공섭물을 펼쳐 들어 올린 후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방소유는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처럼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집에 도착한 백서휘는 세 사람을 아무도 안 쓰는 방에 두고 방소유와 식사를 했다.

“그 세 사람 괜찮겠죠?”

“지금쯤이면 일어났을걸?”

“정말요?”

“한번 보러 가볼까?”

백서휘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화들짝 놀라 무기를 뽑아 들었다.

“너희들 뭐하냐?”

“여, 여긴 어디죠?”

금태평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집.”

“관주님, 아니, 스승님 집이라고요?”

“그래, 몇 번 왔었잖아.”

“여긴 온 적이 없는데요.”

“여길 온 적이 없다고? 무슨 소리야. 아! 여기가 아무도 안 쓰던 방이라 모르는 거구나. 우리 집 맞으니까 나와서 한번 봐봐.”

금태평과 서강호는 문을 열고 나가 밖을 확인했다.

“지, 진짜 관주님, 아니, 스승님 집이네요.”

“밖을 확인 안 한 거야?”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돼서…….”

백서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들만 그런 게 아니겠지?’

학무관에 다니는 사람 중에 세 사람처럼 경험 부족인 자들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강호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상황들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 방법 법을 가르치긴 해야겠어.’

백서휘는 학무관을 졸업한 자들이 허무하게 죽지 않길 바랐다.

“관주님, 아니, 스승님 저희를 왜 집에 데려오신 거예요?”

“우리끼리 있을 때만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밖에서는 그냥 관주님이라고 불러. 왜 그런지는 다들 알고 있지?”

눈 가리고 아웅인 걸 수도 있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네.”

“그리고 조금 전의 질문에 답하자면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다.”

“저랑 스승님 사이가 그렇게 멀다고 생각되지 않는데요?”

“여기 세 사람은 그렇겠지만 운이는 아니잖아.”

“아…….”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으니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서 집으로 왔어. 아무래도 연무장보다는 집이 이야기 나누기 더 좋은 환경이니까.”

그때 진운의 배에서 천둥처럼 커다란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진운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일단은 밥부터 먹을래?”

“……네.”

“따라와.”

백서휘는 세 사람이 먹을 요리를 내어달라고 고용인에게 부탁했다.

고용인은 숙련된 솜씨로 요리를 만들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세 사람은 각을 잡은 채 앉아 침만 꼴딱꼴딱 삼켰다.

“뭐 해? 아! 먹어.”

“잘 먹겠습니다!”

백서휘는 방소유와 잡담을 나누면서 세 사람이 식사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세 사람은 외모만큼이나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서강호가 조용히 음식을 먹는 데만 집중했다면, 진운은 눈칫밥을 많이도 먹었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식사했다.

그에 반해 금태평은 부자라는 걸 티내는 건지 요리들을 관찰한 후에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저놈들 성격이 너무 제각각인 것 같은데…….’

중원 수호의 의무는 뒷전으로 두고 자기들끼리 싸우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때가 되면 내 일이 아니게 될 테니 신경 꺼야지.’

무책임하지만 자신은 할 만큼 했다.

역대 수호문의 문주 중에 이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잘 먹었습니다.”

금태평이 들고 있던 수저를 탁자에 내려두며 말했다.

“잘 먹지 않은 것 같은데? 밥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배, 배가 불러서요.”

“입에 안 맞는 음식이라도 있었어? 아니면 너무 강하게 훈련해서 입맛이 떨어졌나?”

“후, 훈련 때문인가 봐요. 하하.”

그때 지켜보고 있던 서강호가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는 금태평과 다르게 밥과 음식을 모두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흡족해하는 표정을 보면 서강호는 진짜로 잘 먹은 것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진운은 말하면서 좌에서 우로 훑어봤다.

그가 사람들의 감정을 읽으려고 한다는 걸 백서휘는 바로 알아차렸다.

‘어떻게 살았길래 저렇게 계속 눈치를 보는 건지 모르겠네.’

백서휘는 속으로 혀를 찬 후 손을 들어 올렸다.

고용인이 입가심할 차와 후식으로 먹기 좋은 과자를 내왔다.

“자, 이제 식사도 다 끝났으니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자기소개요? 왜요?”

금태평이 이해가 안 간다는 척하며 은근슬쩍 텃세를 부렸다.

“진운이 너희들을 모르고. 너희들도 진운을 모르잖아.”

“그. 그러네요.”

“이왕 말한 거 너부터 일어서서 진운한테 자기소개 해봐.”

“이름하고 나이 정도만 말하면 되죠?”

“이름은 금태평이고 나이는 10살.”

진운이 믿기지 않는 듯한 시선으로 금태평을 바라봤다.

동갑 아니면 1살 어릴 거라고 생각했던 터라 충격이 컸다.

“10살?”

“응.”

“그러면 나한테 반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몇 살인데?”

“13살.”

“열셋인데 왜 나랑 키가 비슷해?”

“……그, 그럴 수도 있지!”

“열셋인 거 확실하니까 일단은 자리에 앉아.”

백서휘의 말에 금태평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누구부터 할래?”

백서휘는 방소유와 서강호를 번갈아 봤다.

방소유가 그의 시선을 피해 바닥을 바라봤다.

“강호 너부터 해.”

“네.”

“이름은 서강호고 태어난 곳은 여기다. 나이는 14살, 좋아하는 건 무공 수련이랑 학문 공부, 싫어하는 건 도박과 술이다.”

서강호가 일어서서 느릿한 말투로 말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소유.”

“이름은……. 방소유……. 나이는……. 10살…….”

방소유는 진운이 아니라 바닥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말했다.

“진운.”

“이름은 진운이고 복건성에 있는 복주(福州)란 곳에서 왔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진운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그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백서휘는 그 말이 뭔지 물어보려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진짜 복건성 복주에서 왔어?”

무관심하게 과자를 먹고 있던 금태평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러면 유성권 진천 대협도 알겠네?”

진운의 대답이 궁금했던 백서휘는 금태평이 질문하는 걸 말리지 않았다.

“……아버, 아니, 모른다.”

“복건성 복주에서 왔는데 왜 몰라?”

“그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진천 대협이 무공을 펼치면 주먹이 진짜 유성처럼 꼬리를 만드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금태평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진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가족을 싫어하는군.’

가족에게 괴물 취급을 받았으니 싫어할 만하지만 진천을 유독 더 싫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나한테 진가에 대해서는 묻지 마.”

“왜 그래야 하는데?”

“묻지 마.”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백서휘는 분위기를 다시 살리기 위해 비장의 패를 하나 꺼냈다.

“지금부터 너희 셋이 익힐 무공에 대해 알고 가는 시간을 가지겠다.”

서강호, 금태평, 진운의 눈이 무공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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