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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49화 (149/202)

귀환무관 149화

반장이 가지는 특권에 대해 공표한지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금태평은 청룡반의 반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원하던 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지금처럼 특별 수업용 연무장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그 덕분이었다.

‘다들 언제 오려고 이러는 거야!’

약속했던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도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잘못 알았나 싶었던 금태평은 시간과 장소가 맞는지 떠올려봤다.

조금 일찍 나오긴 했지만, 장소가 틀리지는 않았다.

‘다들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바람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건지 하나둘씩 연무장으로 왔다.

금태평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온 자는 방소유였다.

방소유가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데다, 두 사람 다 최근에 사춘기가 진행되고 있어 사이가 좀 어색해졌다.

“안녕.”

“어, 그래. 안녕…….”

인사하기 무섭게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구든 어서 왔으면……. 아! 현무반 반장 말고 강호 형이 와야 돼!’

서강호도 말이 많은 사내는 아니지만 그래도 친해지면 대화의 양이 늘어나긴 했다.

그래서 금태평과 백서휘, 운학을 비롯한 다른 사범들에 한해서는 방소유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현무반 반장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도 소유나 강호형처럼 내성적일까?’

반장에게 전달 사항을 말하는 경우가 많아 진운과 교무실에서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덕에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이지, 교무실에서 반장들을 부르지 않았다면 입관 행사가 있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 진운을 모르고 지냈을 거다.

‘계속 모르고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방소유와 서강호는 자하무관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지만 진운은 아니었다.

박힌 돌에 가까운 입장에서 굳이 굴러온 돌과 친해질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어?’

서강호와 진운이 오고 있는데 백서휘와 함께였다.

‘현무반 반장이랑 두 사람이 왜 같이 오는 거지? 오다가 중간에 만나기라도 했나? 아니면 처음부터……?’

몸속에 흐르는 거상(巨商)의 피로 인해 금태평의 직감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 직감이 지금 백서휘, 서강호, 진운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무언가가 뭔지를 모르니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거였다.

까닭 모를 불길한 느낌이 금태평의 얼굴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둘 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입관식 이후로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처음이니까요.”

방소유의 말에 백서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우리가 교류가 없었어?”

“네.”

“내가 너무 소홀했네. 너희들한테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자하무관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전우인데 말이야. 음……. 남은 한 달 동안 최대한 많이 봐줄 테니까 열심히 해보자.”

“네.”

백서휘의 시선이 금태평이 있는 쪽으로 옮겨갔다.

“금태평.”

“예?”

“나랑 저기 가서 잠깐 얘기 좀 하자.”

“얘기요? 상단이나 형과 관련된 거면 저한테 말씀하셔도 몰라요.”

“그런 쪽 이야기가 아니야.”

“그럼요?”

“일단 와봐.”

백서휘와 금태평은 연무장 끄트머리에 갔다.

상단이나 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면 이렇게 말할 만한 주제가 둘 사이엔 없었다.

“일단은 네게 미안하단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금태평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불안감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저, 저만 특권이 없어지는 거예요?”

금태평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럼 왜 이러시는 건지…….”

“계속 돌려 말하면 더 불안해할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강호랑 운이를 ‘제자’로 들이기로 했다.”

백서휘가 안타까운 눈으로 금태평을 바라봤다.

“제자…….”

금태평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더니 초점 없는 눈동자로 땅바닥을 응시했다.

백서휘의 제자가 되는 일은 그에게 싸우는 법을 배운 이후로 언제나 꿈꿔왔던 일이었다.

실제로 밤에 그런 꿈을 많이 꿨었고, 낮엔 백서휘의 제자가 되면 어떨지 망상도 했었다.

‘그 누구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셔놓고…….’

백서휘의 눈에 찰 만한 기재는 절대 나타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서강호마저 제자로 들이지 않는 걸 보고 그 생각은 더 커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뒤늦게 제자를 받으신다고?’

많이 봐줘서 서강호까지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처음엔 안 그렇더라도 나중엔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팡이를 제자로 받는다니!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이 금태평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면 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이 있었다.

금태평은 그 희망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다니며 백서휘가 가르쳐준 화엄법륜공과 호왕무를 열심히 수련했다.

학무관의 기초 무공으로 정해진 이십사수매화검법이나 오행매화보 같은 것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도록 연마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몇 번 보지도 않은 놈팡이까지 제자로 받아들인 걸 보면 뭘 어떻게 하든 간에 자신은 제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았다.

슬픔? 우울? 분노? 부정?

뭐라고 이름 붙일지도 모를 감정들로 인해 눈가가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금태평의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왜 저는 안 되는 거예요?”

“솔직하게 말할게. 너는 뛰어난 무인은 될 수 있어도 최고는 될 수 없어.”

“그럼 강호형이랑 그 현무반 반장은…….”

“그놈들은 아주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긴 해. 그래서 그놈들을 선택했어. 그리고 내가 제자로 너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널 위해서이기도 해.”

“절 위해서라고요?”

금태평의 반발심을 자극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백서휘에게 무공을 배우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

“내게 무공을 배우게 되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걸 네 형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너도 힘들어할 거고.”

“그 의무가 뭔데요?”

백서휘는 수호문주의 의무와 암중단체에 대해 말할까 말까를 망설였다.

“의무 같은 건 없죠? 거짓말이죠? 그냥 제가 싫어서 그런 거죠?”

“네가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라 하지 않는 거다.”

“정말로 의무 같은 게 존재한다면 저를 위해서 그냥 말씀해 주세요.”

“좋아.”

백서휘는 진운과 서강호가 감당 못할 것 같아 숨겼던 이야기들까지 금태평에게 이야기했다.

“지어낸 이야기죠?”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강호나 운이에게도 이 정도까지 말하지 않았어.”

“거짓말…….”

“내 이야기가 거짓말 같으면 운학이나 하오문 호남성 지부장에게 가서 물어봐. 그 둘은 동남동녀 납치 때 잡혀갔었던 애들이니까.”

“그러면, 지금 말한 게 전부 사실이란 거예요?”

금태평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이 관주님이 한 일을 몰라요?”

“금와전장의 주인이나 하오문의 문주 같이 나한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알고 있어.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운학이나 유소화, 우 노인도 알고 있고……. 아! 황제 폐하께서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시지.”

“그게 다 사실이라고 해도 제가 관주님의 제자가 못 될 이유는 없잖아요.”

백서휘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너는 의무를 짊어지기도 전에 훈련하다 죽게 될 거야.”

“그걸 관주님이 어떻게 알아요? 미래를 보실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미래를 보진 못해도 사람의 재능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 그러니 이만 포기해.”

“싫어요.”

“익히고 있는 백호무랑 화엄법륜공은 내가 계속 봐줄게.”

“그것들 수호문의 무공보단 떨어지는 무공이잖아요. 맞죠?”

“솔직하게 말하면 맞다. 근데 내가 수호문의 무공을 가르쳐줘도 넌…….”

“넌 뭐요?”

“익히지 못해.”

“왜 못 익히는데요? 훈련하면 다 되잖아요.”

백서휘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요즘 어른스러운 면을 많이 봐서 좀 괜찮을 것 같았는데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떼쓰지 마. 절대 안 들어줄 거야. 네 형을 통해 압박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고.”

“아까 절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셨죠?”

“……그래.”

“진짜로 절 위한다면 수호문의 무공을 가르쳐주세요.”

“돌겠군.”

백서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적나라하게 말할게. 네 근골은 튼튼하고 좋은 편이야. 백호무만 열심히 수련하면 호남성을 대표하는 무인이 될 만한 자질이 있어. 근데 그런 네 재능과 오성으로도 훈련은커녕 준비 운동도 못 버틸 거고, 내가 가르치는 무공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백서휘가 화난 표정으로 목소리에 약간의 살기를 담아 말했다.

놀라운 건 아무것도 못 해야 할 금태평이 살기에 저항한다는 것이었다.

‘이걸 견뎌낸다고?’

백서휘의 눈동자에 의문과 놀라움이 동시에 떠올랐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버틴다는 건 어른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가 해내고 있었다.

“저도…….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금태평이 내상을 입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절한 살기를 조금 더 뿜어봤다.

그래도 금태평은 버티면서 계속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놈에게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루아침에 고수가 되는 일은 영웅소설에나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천하제일의 기재인 백서휘조차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기 때문에 지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금태평에게서 그와 비견될 만큼 뛰어난 인내력과 끈기가 보였다.

‘상급에 가까운 근골, 중급의 오성, 최상급의 인내력과 끈기가 합쳐지면…….’

백서휘는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굴려본 후 결정을 내렸다.

이 정도면 최고가 되지는 못해도 그 근처까지는 갈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이라 칭할 만하다.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짐을 세 사람이 나눠 짊어지는 거니 금태평을 받아들여도 괜찮겠지.’

어차피 다인전승으로 수호문의 제자를 받기로 했으니 제자가 하나쯤 더 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도……. 무공……. 가……. 르……. 쳐주세……. 요…….”

“좋아! 가르쳐줄게! 대신, 조금이라도 못 따라올 기미를 보이면 그대로 그만두게 할 거야. 알았어?”

“네, 그르르르륵!”

목표를 이루자마자 금태평은 게거품을 물고 졸도했다.

기절할 만큼 힘들었을 텐데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백서휘는 못 말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그러곤 그의 명문혈에 진기를 불어넣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도왔다.

반 각쯤 지났을 때, 기절해 있던 금태평이 눈을 떴다.

“여긴……. 으윽! 도대체 제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갑자기 기절했어.”

“그래서 머리가 이렇게 아픈가 보네요. 으윽!”

지나친 고통으로 인해 기억에 혼선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지금 제정신 차린 거 맞지?”

“네.”

“그럼 뛰어.”

“예?”

“일어나서 연무장을 돌라고!”

백서휘는 금태평과 눈을 맞추고는 귀청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아, 네!”

금태평이 술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연무장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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