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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48화 (148/202)

귀환무관 148화

유소화가 밀실 안으로 들어왔다.

“찾으셨어요?”

백서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로 찾으신 거예요?”

“학무관에 반마다 반장이 있는 건 알고 있지?”

“알다마다요.”

“그 반 중에 현무반의 반장으로 있는 ‘진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백서휘는 혹여나 이름을 잘못 알아들을까 싶어 일부러 더 또박또박 발음했다.

“일반 관원이 아니라 다행이네요.”

“왜 다행이야?”

“일반 관원이면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조사를 새로 시작해야 하거나 다른 지부에서 정보를 공유받을 시간이 필요했을 거예요.”

바로 내일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 진운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판단을 내리는 시간이 더 길어졌을 거다.

그렇게 되지 않아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관원의 정보는 필요한 게 없으신 거죠?”

“딱히 필요하진 않…… 아! 혹시 사범이 될 만한 사람들의 정보를 구해다 줄 수 있어?”

“정 학사님이 공개적으로 구인하는 거 아니었어요?”

“매형이 그러고 있긴 한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다른 방법으로도 찾아보려고.”

“그럼 적당한 실력에 돈이 궁한 자를 알려 드리면 될까요?”

“그 돈이 궁한 이유도 허튼 데 써서 그런 게 아닌 쪽이었으면 좋겠어. 성격이 모나지 않고 경력까지 있으면 더 좋고.”

“가르치는 분야는 어떤 쪽이 좋을까요?”

“도나 창, 활, 권각술처럼 많은 사람이 익히고 있는 쪽으로.”

“요청하신 대로 정보를 찾아보겠지만 관주님이 알아두셔야 할 게 있어요.”

“뭔데?”

“사범과 관련된 정보는 모으고 분류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양해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늦지만 않으면 되니까 오늘은 진운에 관한 정보만 줘.”

“네!”

자신이 이곳을 찾을 줄 미리 알고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유소화는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루마리들을 들고 밀실 안으로 들어왔다.

“빠르네.”

“스승님이 관주님이 찾아올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어요.”

진짜 준비했단 사실에 백서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소화가 그에게 얇은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다.

“왜 이리 얇아? 진운에 관한 정보는 이게 전부야?”

“네.”

“더 자세하게 조사할 수는 없는 거고?”

“아직 강호에 발도 들이밀지 않은 아이라 알려진 게 별로 없어요. 더 조사하려면 할 수 있긴 한데 전 추천하지 않아요.”

“왜?”

“그 정보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아이가 가진 기이한 힘 때문에 다들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걸 꺼려서요. 다른 아이라면 몰라도 진운이란 아이는…….”

“그냥 이걸로 만족해야겠다. 가봐.”

유소화가 인사를 하고 사라지자 백서휘는 진운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읽었다.

“복건제일가(福建第一家)라…….”

사대세가만은 못하지만 진씨 집안은 복건성에서 제일 힘 있는 집안이었다.

진운은 그곳의 가주인 유성권(流星拳) 진천의 막내아들이었다.

“두 명의 형이 있지만, 어머니가 다름. 진천의 어머니가 후실이구나.”

기본적인 정보를 본 이후 가정환경이나 가문 내에서의 입지 등을 봤다.

“가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힘 때문에 어머니를 포함한 가문 내에 그 누구도 진운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와, 어머니까지 이럴 정도면 엄청 외로웠겠네. 아! 그래 그렇지. 같은 편이 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리가 없…… 재작년에 죽었구나.”

유소화가 가져다준 정보를 통해 알게 된 건 진운이 되게 불쌍한 놈이란 사실이었다.

“결격사유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제자로 받아들이면…… 음…….”

문득 자신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질이 뛰어나고 신통력이 있으니 제자로 받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하오문에서 정보를 받고 결격사유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니, 지금 자신이 한 선택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제자를 이렇게 가볍게 받아도 되나? 더 확실하게 검증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냐. 여기서 더 뭘 검증해. 성격이 어떤지도 봤고, 집안에 결격사유가 있는지도 봤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속으로 자문자답하다 보니 자신이 너무 친절하게 구는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당장 자신의 스승만 해도 이렇게 신중하게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

괜찮은 놈을 만날 때까지 납치하고 무공을 회수하는 걸 반복했다.

고금제일기재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같은 짓을 계속 반복했을 것이다.

‘제자 후보로 두고 지켜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스승님처럼 단전을 폐하고 무공을 회수하면 돼.’

백서휘는 괜한 고민을 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백서휘는 아침 일찍부터 집무실로 가 진운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 진운이 조심스럽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앉아.”

“네!”

진운은 의자에 앉으러 가면서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집무실의 이모저모를 훑어봤다.

“구경이 다 끝나고 앉아도 좋아.”

“아, 아니요. 그냥 지금 바로 앉을게요. 정말이에요.”

“농담이야. 농담.”

백서휘가 재밌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진운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재빠르게 훔쳤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어른인 백서휘가 아니라 훨씬 어린 진운이었다.

“저기…… 그…… 관주님께서 하신다던 이야기가 뭐예요……?”

“이야기라기보단 질문에 가까운데, 질문해도 되지?”

“네.”

“너 진짜로 강해지고 싶어?”

“네, 그 어떤 사람보다 강해지고 싶어요. 관주님처럼요.”

“좋아, 다시 한번 물을게. 대신, 이번엔 조건이 있어. 네가 가지고 있던 것과 앞으로 가질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지독하게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강해지고 싶어?”

“네.”

“좋아, 한 번만 더 물을게. 이번엔 이야기가 좀 기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야 돼. 알았지?”

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과 중원에 사는 사람들의 목숨을 노렸던 암중단체들이 있는데…….”

백서휘는 중원을 노렸던 대표적인 암중단체들과 있었던 일을 진운에게 설명해 주었다.

“네가 무공을 배우면 내가 조금 전에 말한 놈들을 한평생 막으면서 살아야 돼. 그래도 내게 무공을 배우고 싶어? 참고로 적들은 현경의 경지인 나도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강한 놈들이야.”

“……그냥 한 수 배우는 건데도 그래야 돼요?”

“이건 한두 수 가르쳐주는 수준이 아니라 내 제자가 되면 그래야 한다는 거야.”

“제, 제자요?!”

진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래, 제자. 네가 암중단체 놈들을 막으며 평생을 보내겠다고 맹세하면 내가 가진 무공을 다 가르쳐 줄 수 있어.”

“매, 맹세할게요! 평생을 암중단체 놈들을 막으면서 살겠어요!”

“좋아, 제자로 받아주지. 근데 말이야. 우리가 만난 지 오래된 사이가 아니잖아? 그렇지?”

“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처음엔 너를 ‘제자 후보’로 두고 내 무공의 ‘삼 할’만 가르쳐 줄 거야. 그래도 괜찮지? 널 의심해서가 아니라 혹시 모르는 거잖아.”

“괜찮아요! 의심하는 거라고 생각 안 해요! 저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요!”

흥분한 진운은 빠른 속도로 말을 내뱉었다.

“그럼 이제 해야 할 걸 해볼까?”

“수업까지 아직 시간 많은데 여기 더 있다가 가면…….”

“아니, 네가 제자 후보긴 하지만 제자가 되면 해야 할 게 있잖아.”

백서휘는 입으로 꺼내는 게 쑥스러워서 직접적으로 ‘구배지례(九拜之禮)’라고 말하지 못하였다.

“아!”

진운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 백서휘에게 구배지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다 늙어서 제자를 기르게 될 줄 알았는데…….’

인생이란 게 원하는 대로,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일이 전개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뭐, 좀 이르게 기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열심히 가르치고 저놈이 됐든 누가 됐든 그 제자가 일찍 경지에 오르면 내 인생이 여유로워지는 거 아니겠어?’

그때였다.

금태평과 서강호의 얼굴이 백서휘의 머릿속을 쓱 하고 스쳐 지나갔다.

‘음…… 태평이는 몰라도 강호는 내가 무공을 가르칠 만한 재능을 가진 놈인데…….’

진운이 가진 신통력 같은 것이 없어서 그렇지 서강호도 재능이 그리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수호문의 문규(門規)를 확 바꿔 버릴까?’

일인전승이 아니라 다인전승으로 바뀌게 되면, 중원은 더 안전해지고 자신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지?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구배지례를 받았는데도 백서휘가 아무런 말이 없자 진운은 불안감을 느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백서휘는 수호문을 다인전승으로 바꾸는 게 어떤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좋아! 결정했어! 강호도 제자로 받아들이자.’

어찌할 바를 몰랐던 진운은 가만히 서서 백서휘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어? 뭐야, 아직도 안 갔어?”

“스, 스승님 아니, 관주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스승이라고 말해도 되고, 너 제자로 받아들인 거 맞아.”

“정말이죠!”

“그래.”

“다른 애들한테 말해도 돼요?”

“다른 애들? 아! 그 생각을 왜 못했지? 그 많고 많은 관원 중에 둘만 제자로 받아들이면 학부모들 사이에서 무조건 이야기가 나올 텐데…… 어떡한다…….”

“둘을 제자로 받아들인다고요? 저 말고 제자가 또 있어요?”

“강호라고 있는데 걔도 제자로 받아들일 거야. 걔가 더 내 밑으로 일찍 들어오기도 했고, 나이도 너보다 많으니까 사형이라고 불러야 돼. 알았어?”

“네.”

“어쩐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순간, 백서후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치더니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강호도 반장이고 이놈도 반장이니 내가 특별히 반장들만 한 수 가르쳐주는 특권을 하나 만들었다고 하면 되는 거잖아?’

금태평과 방소유는 학무관에서 배운 무공들만 봐주고, 서강호와 진운은 수호문의 무공을 가르치면 별문제 없이 학부모들도 받아들이리라.

‘이러면 다른 관원들도 내 가르침을 받으려고 더 치열하게 경쟁하겠지?’

완전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뎅뎅뎅!

“수업 들으러 가봐.”

“가기 전에 중요한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중요한 질문? 좋아, 해봐.”

“무공은 언제 배울 수 있어요?”

“특권이 새로 만들어졌다는 걸 공표한 이후에나 가능할 거야.”

“특권이요?”

“그냥 너랑 강호를 가르치면 반발이 생길 가능성이 커서 어쩔 수 없이 고육지책으로 만든 특권이야.”

“그 특권이 적용되는 데 오래 걸릴까요?”

“당장 내일이라도 가르치게 될 수도 있지. 그러니까 항상 긴장하고 있어. 가봐.”

진운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백서휘는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 후 정하진을 찾아갔다.

“매형!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말인가?”

“예.”

“급한 건가?”

“급한 쪽에 가깝긴 합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게. 이것만 마무리한 후에 대화하도록 하지.”

“네.”

일각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용건이 뭔가?”

“제가 반장을 위한 특권을 하나 만들까 하는데요.”

“특권?”

“반장에 한해서 제가 무공을 봐주고 가르쳐주는 건데요. 이 특권이 있어야 제가 제자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이 특권을 무리 없이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자를 받는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백서휘는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하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자네가 말한 것처럼 관원들의 경쟁심도 자극하고, 자네가 원하는 바도 이루려면 오늘 사범들을 통해 그 특권이 만들어졌단 사실을 공표하고 다음 달부터 적용하는 쪽으로 가는 게 좋을 듯하네.”

“그럼 그렇게 해주십시오.”

“알겠네.”

“항상 일을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학관의 훈장으로 일할 때보다 보람차게 일하고 있으니 미안해하지 말게나.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백서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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