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47화
“호, 혹시 이전에 있었던 저와 저놈의 비무를 보셨습니까?”
서열 2위가 백서휘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월말 평가 때 진행된 현무반의 비무는 모두 보았다.”
“헉!”
모여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자기가 백서휘의 눈에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진짜로 저희의 비무를……?”
군중 속에 있는 관원 중 하나가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이십사수매화검법도 잘 봤다. 마지막에 펼친 낙매분분(落梅紛紛) 초식은 꽤 인상이 깊었어.”
“호, 혹시 저도 보셨습니까?”
보완할 점을 말하는 내내 백서휘의 눈치를 보던 관원이 손을 들며 말했다.
“물론 봤지. 아직 초식의 형(形)만 배웠을 텐데, 완성도를 전체적으로 끌어올린 건 정말 잘한 일이야.”
“헉!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의적절하지 않은 초식을 몇 번이고 선택한 걸 보면 경험이 부족하단 생각이 진하게 들더군.”
“……원래 검이 아니라 권각술을 수련했던 터라 아직도 헷갈리는 점이 많습니다.”
“권각술이라…….”
눈앞에 있는 놈이 말 안 했으면 꽤 오랫동안 모를 뻔했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른데 검술만 배워야 하는 건 옳지 않았다.
하루빨리 권각술이나 다른 무기를 쓰는 사범을 구하는 게 관원들만이 아니라 학무관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다른 관원과 대련하면서 판단 능력을 기르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다.”
“가, 감사합니다. 충고해 주신 부분을 보완해서 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른 관원들도 자기의 비무를 봤는지 물어봤다.
백서휘는 그들이 보완해야 할 점을 핵심만 얘기해 주었다.
“제, 제게도 보완할 점을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백서휘는 잠시간 고민하다 서열 2위에게도 보완할 점을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진운의 능력을 생각하면 서열 2위가 이기는 건 솔직히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그리고 지금 심정으로는 진운이 조금이라도 고전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진짜 저놈을 이기고 싶다면 이전처럼 선공해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거북이처럼 최대한 방어적으로 움직여.”
“방어적으로…….”
하수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서열 2위가 울상을 하였다가 이어진 백서휘의 말에 방긋 웃었다.
“네가 압도적으로 하수라 그런 게 아니야. 너와 저놈 간의 실력 차는 없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해.”
“가르침 감사합니다.”
서열 2위가 웃는 얼굴로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저도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넌 안 돼.”
백서휘는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왜 저는…….”
진운은 말하면서 백서휘의 감정을 읽어내려고 했다.
백서휘가 히죽 웃으며 정신 방벽을 더욱 강화했다.
“이 반에서 가장 강해서 반장이 된 거잖아. 그럼 ‘강자’로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자기의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백서휘와 친분이 생겼다고 생각했던 터라 진운은 작지만 서운함을 느꼈다.
그가 멍하니 서서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서열 2위가 소리쳤다.
“야! 자리로 안 가?”
“뭐?”
“빨리 왼쪽으로 가. 그래야 나랑 비무를 할 거 아니야.”
진운은 침울한 얼굴을 한 채 왼쪽으로 걸어갔다.
반대편에는 서열 2위가 그를 비웃으며 서 있었다.
“둘 다 목검 들어.”
진운과 서열 2위는 목검을 빼 들고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백서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크게 소리쳤다.
“시작!”
서열 2위는 이전과 다르게 진운에게 검을 겨눈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진운이 오른쪽으로 한 걸음을 이동하자 서열 2위는 왼쪽으로 한 걸음을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조금 전처럼 대치하게 되었다.
“계속 대치 상태를 끌고 가겠다는 건가.”
진운은 작게 중얼거리며 왼쪽으로 두 걸음 옮겼다.
그러자 서열 2위는 딱 그가 이동한 만큼 오른쪽으로 갔다.
진운은 침음성을 작게 흘리면서 비무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생각했다.
그의 강점은 상대가 어떤 움직임을 취할지 생각하면 그걸 읽어낼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정적인 적보다는 동적인 적을 쉽다고 느꼈고, 선공하여 주도권을 잡는 것보다는 방어한 이후에 반격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런데 지금 서열 2위는 진운이 좋아하고, 쉽다고 느끼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저딴 놈한테 왜 충고를 해주셔서는…….”
계속 머리를 굴려봤지만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진운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서열 2위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을 까딱거렸다.
백서휘에게 보완할 점을 듣지 못해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던 진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열 2위는 그를 도발했다.
격장지계(激將之計)란 걸 알고 있지만 진운으로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분노한 얼굴로 서열 2위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서열 2위는 이전의 비무에서 보여줬던 것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백서휘가 심각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무작정 돌격해도 서열 2위의 동작을 읽어낼 수 있는 진운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검술 실력까지 차이가 나서 그대로 두면 저번처럼 진운이 승리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보는 재미도 재미지만 진운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어떤 모습을 할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백서휘는 서열 2위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내가 말해주는 초식을 펼쳐.』
갑작스러운 전음에 서열 2위는 당황했지만 백서휘가 자기를 도와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감을 얻었다.
진운은 서열 2위가 당황해 어떤 초식을 펼칠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기회’라고 작게 중얼거린 진운은 자신 있게 매개이도(梅開利導) 초식을 펼쳤다.
『뒤로 한 보 이동하면서 매화인동을 펼치되 일반적인 상황보다 내공을 더 많이 써.』
백서휘는 일부러 진운이 초식을 막 펼칠 때 서열 2위에게 전음을 날렸다.
서열 2위는 머리를 비우고 전음으로 말한 그대로 움직였다.
동작을 읽어낸 진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선택한 매개이도는 매화인동과의 상성에서 불리한 편이었다.
문제는 이미 초식을 펼친 터라 멈출 수가 없다는 거였다.
두 목검이 맞부딪힌 순간, 힘에서 밀린 진운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로 날렸다.
“운이 좋구나. 매개이도에 유리한 매화인동을 적시에 펼치다니…….”
“운이 아니라 내 실력인데?”
자기 실력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서열 2위를 보며 백서휘는 살짝 황당함을 느꼈다.
“그게 실력인지 운인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진운이 다시 서열 2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전과 다르게 그는 이성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다.
“흐아앗!”
진운은 기합을 외치며 서열 2위의 실력으로는 대응하기 힘든 낙매분분(落梅紛紛)을 펼쳤다.
떨어지는 매화가 어지러이 날리듯 그의 목검이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모두 막히고 말았다.
이번에 서열 2위가 반 박자 늦게 펼친 매향성류(梅香成流) 초식으로 물결을 만들어내 그의 검을 밀어냈다.
“또 막아냈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우연이 두 번 있을 수는 없는데…….”
서열 2위가 진운의 중얼거림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연이라니! 내 실력이야!”
진운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시 서열 2위에게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번번이 막혀서 그렇지 이후로도 계속 서열 2위를 공략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서열 2위는 진운의 능력을 아는 것처럼 대응했다.
어떻게 알게 됐을까 생각해 보니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거기다 이상한 점이 또 있었다.
검을 출수하는 것이 계속 반 박자 늦는데 서열 2위는 미리 기다린 것처럼 상성에 유리한 초식만 펼쳤다.
서열 2위의 실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다고 봐야 했다.
지금 이곳에서 서열 2위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 한 사람은 진운의 능력에 관해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진운은 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들켰군.’
한계에 다다랐을 때도 진운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서열 2위를 이기려고 노력했다.
그가 불굴의 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진실을 알려줘야 할 때 같았다.
『저놈에겐 네게 대응할 초식만 알려줬지. 능력에 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은 내 목을 걸고 하는 말이니 안심해도 좋아.』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에 진운은 배신감과 섭섭함 등을 느꼈지만, 뒤이은 백서휘의 전음에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저놈에게 대응할 초식을 알려준 건 네가 싫어서가 아니다. 승자의 권리와 별개로 네게 무공을 좀 더 가르쳐 줄 생각이라 시험한 것뿐이야.』
무림맹의 맹주와 사도련의 련주도 백서휘 앞에서는 기를 못 쓴다는 소문을 진운도 지나가다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가르쳐 주는 무공이라면 가문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그는 조금이나마 하게 됐다.
그때 서열 2위가 비무를 끝낼 생각으로 가장 위력적인 초식인 매화만리향을 펼쳤다.
“하하하!”
진운은 크게 웃으면서 여유롭게 서열 2위의 검격을 모두 피했다.
그다음 서열 2위가 그랬던 것처럼 매화만리향을 펼쳐 보였다.
“으아아악!”
서열 2위는 진운에게 두들겨 맞다 비명을 내지르고 기절하고 말았다.
진운은 숨을 몰아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비무의 승자는 진운!”
“와아아아!”
현무반 관원들은 자기가 이긴 것처럼 기뻐했다.
“비무의 참관인이자 공증인으로서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이놈을 최하위 서열로 대해야 한다!”
“예!”
현무반의 모든 관원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진운!”
“네.”
“너는 내일 첫 번째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내 집무실로 와라.”
“연무장이 아니라요?”
“집무실로 와. 한 수 가르쳐 주기 전에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네,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집무실로 찾아뵐게요.”
“그래.”
백서휘는 처음에 왔던 것처럼 은형잠종술을 써서 모습을 사라지게 했다.
현무관의 관원들은 신비한 그의 무공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오문으로 가야겠어.’
진운의 출신성분에 결격사유가 있다면 한두 수 가르쳐주는 것으로 끝내고, 결격사유가 없다면 수호문의 문주가 가지는 의무에 대해 알려준 이후에 제자가 되고 싶은지 물을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화루에 도착한 백서휘는 지나가던 하오문 문도를 잡고 물었다.
“지부장 있지?”
“예.”
“바로 만날 수 있나?”
“문주님과 함께 있어서 바로 만나는 건 힘드실 것 같습니다.”
하오문 문도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난색을 표했다.
“문주는 내가 올 때마다 지부장이랑 대화하고 있네. 북경은 도대체 언제 가려고 그런데?”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부장한테 이야기도 못 전하는 상황은 아니지?”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내 얘기 좀 전해. 급하게 필요한 정보가 있으니까 밀실로 오라고.”
“아, 알겠습니다.”
백서휘는 정보를 의뢰한 자가 머무는 밀실로 빠르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