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44화
‘여의주면 어떤 신적 존재든 만족하겠지.’
제물을 정한 백서휘는 목인걸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했다.
“차력술을 익히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가장 먼저 할 일은 신적 존재와 계약하는 일이다.”
“그다음은?”
“계약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어떻게 힘을 빌리는지, 빌린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계약은 어떻게 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주술을 배워 스스로 계약하는 법과 내 도움을 받아 계약하는 법.”
“스스로 계약하려면 얼마나 주술을 익혀야 하는데?”
“매일매일 수련한다는 가정하에 3년이 걸린다.”
“후자를 택하면 대가는 뭐로 지불하면 되는 거지?”
“서로 간에 신뢰를 쌓아야 하니 이번엔 아무것도 받지 않고 해주겠다. 제물만 가져와.”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에 백서휘는 살짝 불안감을 느꼈다.
‘이 자식이 날 속이려는 거 아닐까?’
목인걸의 표정에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경험과 능력이 모두를 갖춘 터라 그의 속내가 어떤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백서휘는 시선을 돌려 목인걸의 아들을 바라봤다.
목인걸과 다르게 경험도 없고 아직 능력을 키워가는 중이라 속내를 파악하기 쉬웠다.
‘속이려는 것 같지는 않아. 아들에게 말을 안 하고 일을 진행한다면 내 쪽에서 낭패를 보겠지만…….’
백서휘는 기다리라고 말한 후 바깥 세계에서 여의주를 가져왔다.
“이, 이건 여의주?”
“그래, 여의주다.”
“여, 여의주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못 바칠 이유는 없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술법을 쉽게 펼칠 수 있게 되고, 여의주에 담겨 있는 힘을 쓰면 홍수나 지진 같은 재앙을 사람의 의지로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그런 귀물을 제물로 바친다는 건…….”
“신적 존재가 싫어할 물건인가?”
“아주 좋아하겠지. 착하고 좋은 신을 만날 확률도 높아지고.”
“그럼 됐어.”
“겨우 저런 이유로 여의주를 제물로 바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다. 다른 제물을 생각해 봐.”
“아니, 여의주로 하겠어.”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여의주를 제물로 바치도록 하겠다.”
목인걸은 아들의 도움을 받아 차력술을 펼칠 준비를 하였다.
한 시진쯤 기다렸을까.
두 사람은 차력술을 펼칠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내가 진언을 외우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신적 존재들이 네게 접촉해올 거다.”
“그들 중의 하나와 계약하면 되는 건가?”
“그래. 보통은 둘이나 셋 정도가 계약하러 와서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계약하면 되는데 제물이 여의주라 많이들 찾아올 거다. 건방진 행동은 절대 하지 말고, 격이 낮은 존재가 격이 높은 존재를 만나면 영혼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계약하는 게 좋을 거다.”
“그래.”
“그럼 시작하겠다.”
술법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술자는 많이 상대해 봤다.
그렇기에 지금 술법이 무언가를 소환하는 것이란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느낌을 말하는 건가.’
무거웠던 육체를 벗어던지고 혼만 쏙하고 빠져나오니 뭔가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찾아왔으려나. 어? 뭐 하는 거지? 왜 쫓아내는 거야.’
어떤 신적 존재가 자기보다 격이 낮은 다른 신적 존재들을 쫓아내고 백서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헉!’
그냥 단순하게 거리를 좁혀오는 것인데도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렸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난타.』
이름을 듣는 것과 동시에 어떤 존재인지 바로 알게 되었다.
최초이자 최후의 용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머리로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고, 모든 용왕을 통솔하는 지고한 존재였다.
‘너무 격이 높아.’
아난타는 다른 신적 존재를 압도할 만큼 강했다.
힘을 빌리면 자신의 몸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계속 들었다.
‘문제는 선택지가 아난타 말고는 없다는 건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난타에게 계약을 제안했다.
『저와 계약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한다면 계약할 의향이 있다. 네 몸에 흐르는 ‘용혈’과 제물로 바친 여의주의 출처가 어떻게 되지?』
『그건…….』
『아무것도 아닌 왼쪽 눈을 ‘용안’으로 바꿔놓을 정도로 진한 순도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살아 있는 용에게서 용혈을 선물로 받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출처를 숨기거나 거짓말하기엔 아난타가 너무 강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천천히 용의 피를 어떻게 얻게 됐는지 말했다.
『……악룡(惡龍)을 참한 것이었군.』
『일단은 그렇습니다.』
『솔직하게 말했으니 네게 힘을 빌려주도록 하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회혈과 아난타 사이에 통로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이, 이건……!’
통로를 통해 아난타의 힘에 관한 모든 지식이 머릿속으로 곧장 주입되었다.
주입된 지식 중에는 용인화(龍人化)라는 게 있었는데, 이 용인화를 쓰면 원할 때마다 왼쪽 눈을 ‘용안’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힘을 빌릴 때 제물은 뭘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제물을 꼭 주지 않아도 된다. 대신, 악업을 쌓는 자들을 죽여라.』
『악업을 쌓는 자들을 얼마나 죽여야…….』
『죽이고, 죽이고, 죽이다 보면 내 힘을 언제쯤 빌릴 수 있게 될지 알게 될 것이다.』
대답하려는데 아난타의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자신의 혼이 몸속에 다시 안착했다.
“뭐야. 왜……?”
“헉헉헉! 네가 너무 격이 높은 존재를 만나는 바람에 내 능력으로 더 버티는 게 불가능했다.”
목인걸은 모든 힘을 쓰고 탈진한 사람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존재와 계약했는지 알려줄 수 있나?”
“그건 비밀이니까 묻지 말고 이거나 어떻게 좀 해줘.”
“내 상태를 보고도 그런……. 좋다. 해주지. 대신 내가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라.”
아난타와 계약할 때 너무 많은 힘을 쓴 건지 목인걸이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리 다오.”
백서휘는 지남침과 장보도를 목인걸에게 건네주었다.
한참 동안 두 물건을 노려보던 목인걸은 진언을 중얼거렸다.
“두 물건에 피를 묻히면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다.”
백서휘는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상처를 낸 후 지남침과 장보도에 피를 떨어뜨렸다.
지남침과 장보도에서 빛이 요란하게 뿜어져 나오다가 한순간에 확 사라졌다.
“이게 끝인 거야? 뭐 더 없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지남침의 바늘은 계속 돌아가기만 할뿐, 과업이 있는 곳을 가리키지 않았다.
장보도 역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제대로 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두 물건의 주인 의식을 치르길 원한 것 아니었나?”
백서휘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뭘 원하는 건지 정확히 말해라. 그래야 도와줄 수 있다.”
“지남침이 가리키는 곳에 가서 과업을 수행하고 나면 보물을 얻을 수가 있다고 그랬는데 지금 침이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고 계속 돌아가기만 하잖아.”
“당연한 것 아닌가? 이곳은 중원이 아니다.”
목인걸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곳은 책 속의 세계.
중원이 아니기 때문에 지남침과 장보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군.”
백서휘는 밖으로 나가서 장보도를 보았다.
과업을 아직 수행한 게 없어서 그런지 그려진 부분이 없었다.
백서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얼굴로 장보도를 품에 넣고 지남침을 손에 올려놓았다.
촤르르륵!
빙글빙글 돌던 바늘이 멈추더니 북동 쪽을 가리켰다.
“대충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건가.”
그때 지남침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과업이 있는 곳이 어딘지를 보여줬다.
“화산(火山)의 분화구?”
팍!
지남침의 바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른 점은 바늘이 돌아가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거였다.
“어딘지 보여줘서 힘이 빠지기라도 한 건가.”
백서휘는 지남침과 장보도를 품속에 넣고 하오문 호남성 지부로 향했다.
가까운 곳에 화산이 있다면 빠르게 갔다 올 생각이었다.
“안에 지부장 있지?”
백서휘는 호남성 지부의 부지부장에게 물었다.
“그게…….”
“왜?”
“문주님이랑 같이 있어서 지금은 만나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정보와 관련된 업무는 아예 안 하는 건가?”
“높은 보안등급을 요하는 정보만 아니라면 제가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산이 있는 곳의 위치랑 그곳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봐줘.”
“화산에 관한 정보면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그런 건가?”
“……예.”
“그러면 기다리지, 뭐.”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한 시진이 조금 안 되게 흘렀을 때 부지부장이 두루마리와 종이 뭉치를 가지고 왔다.
“종이 뭉치에는 화산의 위치와 근처 정보가 적혀 있고, 두루마리에는 지형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부지부장이 고생했다는 표가 나서 원래 줘야 할 정보료보다 더 많이 그에게 쥐여주었다.
“……흑룡강성 오대연지(五大蓮池) 의 미산(尾山)?”
위치를 보자마자 종이 뭉치를 탁자에 다시 던졌다.
이곳에서 흑룡강성을 가려면 칠천 리를 넘게 가야만 했다.
오고 가는 시간과 가면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천마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건 지금은 무리였다.
백서휘는 학무관이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면 천마의 보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 *
입관식을 했던 날로부터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관원들은 네 개의 반에 속한 상태에서 낮엔 학문과 무공을 비롯한 여러 과목을 배웠고, 밤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했다.
‘그것도 다 오늘을 위해서지.’
오늘 문(文)과 무(武) 둘 모두를 시험하는 날이었다.
둘의 성적이 어떠냐에 따라 다음 달의 서열이 정해지기 때문에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상위 서열의 명령을 거의 무조건 들어야 하는 일을 겪었으니,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싸우겠지. 오전에 있었던 학문 시험을 망친 이들은 더더욱 그럴 거고.’
재밌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질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백서휘는 잠시간 고민하다 학무관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아압!”
“핫!”
백서휘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말려 올라갔다.
‘좋을 때야.’
네 개의 반 모두가 월말 평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자신의 몸은 네 개가 아닌 만큼 구경할 반을 하나로 정할 필요가 있었다.
‘태평이랑 소유, 강호는 충분히 많이 봤으니 새로운 얼굴들을 구경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
백서쉬는 은형잠종술을 쓴 채 현무반의 시험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 어떤 성적을 받느냐에 따라 서열이 재정립된다는 거 알고 있지?”
“예.”
“다들 노력한 만큼 보답받았으면 좋겠다.”
그때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왜?”
“어차피 다 사범님들이 짜놓은 판 아닙니까? 처음 받은 순위도 그렇고 앞으로 받을 순위도 그렇고…….”
“오해다.”
“……제가 틀렸단 말입니까?”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우리가 짜놓은 판이 아니야. 그리고 순위도 임의로 막 정한 게 아니라 종합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정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순위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예.”
“현무반 서열 2위가 맘에 들지 않는 거면……. 오늘 반장 자리에 도전할 생각인 거지?”
“안 됩니까?”
“안 될 건 없지. 하지만 좀 많이 기다려야 할 거야. 하위 서열부터 비무를 할 거거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아이가 승부욕이 가득 담긴 눈으로 한쪽을 노려다 봤다.
백서휘가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차가운 얼굴을 한 아이가 있었다.
차가운 얼굴을 한 아이는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서열 2위와 서열 1위의 비무라……. 기대되는군.’
백서휘는 두 아이 모두에게 관심을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무를 시작하겠다. 가장 먼저 비무를 할 사람은 25위다. 25위는 앞으로 나와서 상대를 지정하도록!”
하위 서열이 상위 서열로 도전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의 경우 상위 서열의 아이가 하위 서열의 아이를 이겨 순위를 그대로 굳혔다.
‘순위 변화가 많아야 하위 서열이나 상위 서열이나 열심히 수련할 텐데…….’
지금보다 더 경쟁심을 고취할 방법을 생각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비무대 위로 서열 2위가 올라왔다.
“2위는 상대를 지정하도록!”
“진운! 나와!”
진운이 비무대 위로 올라오다 말고 잠시 멈춰 서서는 백서휘 쪽을 바라봤다.
“겁을 먹은 거냐?”
“아니.”
진운은 서열 2위의 도발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다시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날 봤다고? 은형잠종술을 펼친 나를?’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백서휘는 다시 비무대 위를 바라봤다.
그러다 힐끔 눈동자를 굴려 자신 쪽을 보는 진운과 눈이 마주쳤다.
‘날 본 게 맞아.’
백서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