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43화
“지금도 중원 무림은 수많은 암중단체들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어.”
“암중단체?”
“먼 과거로 갈 것도 없이 내가 수호문의 문주가 된 이후로 내가 해결한 일만 열 손가락이 넘어가. 가장 많이 알려진 건 마교의 중원진출이고…….”
“마교의 중원진출을 그대가 막았다는 것이오? 저 스스로 내분으로 망한 게 아니라?”
모용중광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그래.”
“좋소. 그렇다 칩시다. 열 손가락이 넘어간다는 건 그와 유사한 일이 열 번이 넘게 벌어졌다는 소리 아니오?”
“그래, 말이 열 번이라고 한 거지 셀 수도 없어. 작게는 사교에 빠진 마을을 없앤 것부터 크게는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뭉쳐진 괴물을 없앤 일까지……. 나는 중원 무림에 대한 위협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막아냈어.”
“시체가 뭉쳐진 괴물?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요?”
모용중광이 미친놈 보듯 백서휘를 바라봤다.
“나는 관주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소.”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우리가 이만큼 세력이 커진 게 뭐 때문인 걸 잊었소?”
“그야 하백상을, 설마…….”
“맞소. 배신자 하백상을 축출해냈기 때문이잖소. 그때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실 것 아니요. 하백상이 혈루단이란 곳에 소속되어 정사대전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군. 이 사실을 몰라 한참 동안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며 탐문을 했는데 여기서 답을 알게 될 줄이야.”
청랑신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모두의 귀가 밝아 그의 말을 다 들었다.
“무엇을 말이오?”
모용중광이 다른 이들을 대신해 대표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을 말하기 전에 관주에게 묻고 싶은 게 있소. 조금 전에 도시의 모든 사람이 시체로 뭉쳤단 곳 혹시 려강이오?”
“려강 맞아.”
“려강의 모든 사람이 죽거나 실종된 일이 있었소. 원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지.”
청랑신개가 끌끌거리며 말하자 모용중광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것 말고도 많은 일이 있지만 관주의 말할 시간을 빼앗는 것 같으니 그만 말하겠소. 관주, 하던 말 계속하시오.”
“고맙군.”
“하하.”
백서휘는 암중단체와 수호문에 대해 기밀을 제외한 모든 것을 모인 이들에게 말해 주었다.
“……이제 와서 말을 해주는 이유는 뭐요?”
“그쪽이 한 말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이젠 수호문이 아니라 중원 무림의 인간들이 스스로 지켰으면 해서.”
“우리보다 강한 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랬지.”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소.”
“이 대화의 원점으로 돌아가면 답이 있어.”
“원점이라면……. 설마 수련을 말하는 거요?”
“그래, 수련 말고는 답이 없어. 강자들을 최대한 내가 막겠지만 너희들이 막을 수 있는 건 너희들이 막아.”
수호문의 다른 문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암중단체에서 중원을 지켜냈다.
이제 자신은 할 만큼 했으니 중원 무림의 힘으로 자기방어는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나 대신 장사를 방어해 주면 좋겠는데, 본인들 문파나 가문을 지켜야 하니 안 되겠지.’
오룡단과 사범들을 최대한 키워서 써먹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자, 무거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다시 술과 음식을 즐기자고.”
다들 생각이 많은지 조용히 음식과 술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모용중광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미안하외다. 먼저 무림맹으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소.”
“저도…….”
“저도 이만…….”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각자의 문파와 가문으로 돌아갔다.
도화루에 남은 건 하오문의 문주와 금태풍, 황석준, 이곳을 다스리는 지현뿐이었다.
백서휘는 그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해가 떠 있네.”
날이 한낮처럼 밝으니 뭔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떤 걸 해야 할지 고민하다 목인걸을 찾아가기로 했다.
‘차력술이랑 천마의 보물에 관해 물어봐야겠다.’
백서휘는 목인걸과 낭왕이 기다리는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는 다른 때처럼 옥좌에 앉는 게 아니라 금빛 쇠사슬에 묶인 낭왕의 위에 올라탄 채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기다렸나 봐?”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아무것도 못하고 이놈만을 구속하고 있어야 했으니까.”
“이제 풀어도 돼. 행사는 다 끝났거든.”
목인걸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언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낭왕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이런 개 같은!”
“지금 욕할 처지가 아니지 않나?”
“다,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니오.”
“그럼?”
“주술사에게 한……. 컥!”
한 번 저주에 걸린 자는 두 번, 세 번 연속해서 걸리기 쉬웠다.
그 사실을 이용해 목인걸은 다시금 낭왕에게 속박의 저주를 걸어 쇠사슬로 묶어버렸다.
콰드득!
목인걸이 의념을 강하게 발휘하자 쇠사슬은 낭왕의 살을 파고들 정도로 조여 들어갔다.
“크억! 사, 살려주시오.”
“거절하지.”
쇠사슬이 완전히 살 속으로 파고들더니 낭왕을 스물여덟 등분으로 나눠 버렸다.
“왜 멋대로 죽이고 그래.”
“멋대로 이놈을 맡긴 건 그쪽이다.”
“그렇긴 한데……. 아, 됐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 넘어가자고.”
“이 문제는 넘어가는데 다른 문제는 넘어가지 않을 거다.”
“어떤 문제?”
“내 아들.”
“아! 좋아. 기다려. 바로 데려올 테니까.”
백서휘는 다시 도화루로 가 목인걸의 아들을 데려왔다.
오룡단과 사범은 바빠서 그를 감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오문에 신병을 맡겨놓고 필요할 때마다 책 속의 세계로 데리고 갔다가 데려오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됐지?”
목인걸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할 때마다 볼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부자(父子)는 애틋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대가는?”
“지금처럼 비정기적인 만남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지.”
“정기적인 만남이라……. 그러면 네 번.”
“안 돼.”
“네 번.”
“안 돼.”
“세 번.”
“그러지 말고 두 번으로 합의하지?”
“좋다.”
목인걸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백서휘의 제안을 들었을 때부터 두 번의 만남을 노렸던 모양이다.
“그럼 이제부터 한 달에 두 번 바깥 시간으로 반 시진 동안 만나게 되는 거야.”
“반 시진이라고? 온종일이 아니라?”
“우리 서로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보자고. 그쪽은 이족들을 이용해서 황실을 전복하려 했던 위험인물이고, 나는 그걸 막았던 놈이야. 그런데 뭘 믿고 아들이랑 온종일 만나게 해주겠어. 나한테 완전히 협조한다면 모를까…….”
“협조한다면?”
“협조한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마. 저놈을 이용해서 뒤통수치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
“뒤통수치려고 한 적 없다.”
“온종일 만나려고 하는 것도 주술을 가르치려고 그러는 거잖아.”
“아들이 아버지의 업을 잇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하. 업을 잇겠다? 천지회까지 재건하려는 모양이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럼?”
“진짜 내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봐라. 어차피 천지회는 망했고, 내 아들은 네가 지키는 중원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아.”
“그렇긴 한데…….”
그냥 목인걸의 말을 믿기엔 백서휘는 암중단체들이 얼마나 음험한 놈들인지 잘 알았다.
“원한다면 네게 내 혼을 바칠 수도 있다.”
“협조한다는 건 저놈이 내 밑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건가?”
“그래.”
이미 둘 사이에 이야기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목인걸의 아들은 반발하지 않았다.
“……좋아, 밑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럼 만남은 매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건가?”
“그건 신뢰가 좀 더 쌓이면 그렇게 하고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으로 합의를 보지?”
“좋다.”
“이제부터는 그쪽이랑 그쪽 아들 둘 다 나한테 완전히 협조하는 거야. 알았어?”
“알겠다.”
술법과 관련된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 불안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협의가 끝났으니 원점으로 돌아가자. 물어보고 싶은 게 뭐지?”
“차력술과 이것들에 대해 알고 싶다.”
백서휘는 품속에서 천마의 보물과 관련된 지남침과 장보도를 꺼내 보여주었다.
“술법이 담긴 물건이군.”
“꽤 강력한 봉인 같은 것이 걸려 있는 것 같더라고. 그걸 해제했으면 좋겠어.”
“작업에 시간이 걸릴 듯하니 차력술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지. 차력술은 신적 존재들에게서 힘을 빌리는 술법으로…….”
“아니, 그건 대충 알고 있어. 내가 궁금한 건 그거야. 호신 목적으로 배웠을 때 차력술이 얼마나 좋은지.”
“호신 목적으로 차력술을 배우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목인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지?”
“차력술은 쓰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한데, 그 제물이 골치 아픈 경우가 많다. 작게는 쥐의 꼬리부터 크게는 사람의 목숨을 요구하는데…….”
“사람의 목숨을 요구한다고?”
백서휘가 눈을 크게 뜨고 한 단계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힘을 빌려 쓰느냐에 다르겠지만 한 명이 필요할 때도 있고, 수십에서 수백 명이 필요할 때도 있다.”
“미친.”
“놀라운 건 사람 목숨은 제물 중에서도 구하기 쉬운 편에 속한다.”
“어려운 건 뭐가 있는데?”
“외차원에 사는 생물이나 생전 처음 듣는 술법의 지식을 요구할 때가 있다.”
백서휘가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 호신술로 차력술을 배우려는 사람의 무력 수준이 어떻게 되지?”
“일류.”
“노리는 적들의 수준은?”
“최소 절정 고수 이상이야.”
“음……. 힘을 빌리는 신마다 다르겠지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신이라면, 열 명 이상의 목숨이 필요하고 반동이 꽤 크게 올 거다.”
“반동?”
“단련되지 않은 일류의 몸으로 화경의 힘을 썼다가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생각해 봐라.”
“그러면 차력술은 긍정적인 점이 하나도 없는 술법이란 거야?”
“‘운(運)’이 따르면 긍정적인 점이 아주 많고 좋은 술법이 된다.”
목인걸은 운을 강조하듯 말했다.
“기술이나 정신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운이 따라야 한다고? 무슨 술법이 그래?”
“신적 존재의 힘을 빌리는 술법이라 그렇다.”
“좋아, 운이 따른다고 치자고. 그러면 뭐가 좋은데?”
“운이 좋아서 계약한 신이 착하고 술자와 궁합까지 잘 맞으면 제물도 작고 구하기 쉬운 걸 요구하고 반동도 적어진다.”
“모든 것이 하늘에 달렸다는 거네?”
“그렇지는 않다. 술법을 배울 자가 선덕(善德)을 쌓았고 제물로 매우 귀한 걸 바친다면 착하고 좋은 신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 음…….”
백은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성격의 인간이라 선덕을 많이 쌓지 않았다.
‘제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겠는데? 나한테 가진 것 중에 귀한 게 뭐가 있지?’
백서휘는 가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그때 목인걸이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하였다.
“사실 가장 좋은 건 네가 차력술을 배우는 거다.”
“내가?”
“위험할 때가 되면 술법이 담긴 물건으로 널 소환하면 되지 않느냐.”
“그렇긴 한데……. 그 소환할 시간을 버티는 게 중요하잖아.”
“그건 네가 수련을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닌가?”
자신이 백은하의 수련을 도와서 무력을 상승시키는 게 가장 정공법이긴 했다.
“네가 차력술을 배우면, 너는 네 경지 이상의 적도 상대할 수 있게 된다.”
지금보다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차였다.
당장에 수련으로 경지를 높일 수 없는 상황이니 차력술을 배워놓는 것도 위험 관리 차원에서 괜찮을 것 같았다.
‘누나가 아니라 내가 배운다 치면 제물은 뭘 바치는 게……. 아! 생각났다!’
백서휘는 누가 차력술을 배우든 간에 제물로써 괜찮은 물건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