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42화
개관식 겸 입관식이 무사히 끝이 났다.
백서휘는 행사 준비로 고생한 학무관 관계자들과 내빈들을 위해 연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집은 준비가 안 됐고……. 학무관은 이제 관원들이 들어와서 안 되는데……. 아! 도화루를 빌리면 되겠다.’
백서휘는 학무관 관계자들과 내빈들과 함께 도화루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헉!”
점소이가 손님들의 면면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 다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본인들의 위명에 놀랐다는 걸 알고 있는 내빈들은 손님을 두고 사라진 점소이를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백서휘 앞에서 점소이가 자기들의 면을 세워줬다는 생각에 기꺼워했다.
잠시 후, 도화루의 루주이자 하오문의 호남성 지부장인 유소화가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왔다.
“밑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제가 관주님과 내빈 여러분들을 맞이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해요.”
“내가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온 거니까 죄송해하지 않아도 돼.”
유소화는 같이 온 하오문 문주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뭐라고 안 그럴 거야, 그렇지?”
백서휘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자 종리혁이 그 말을 받았다.
“하하! 이런 걸로 뭐라고 하면 사내가 아니라 고자지. 안 그런가? 맹주?”
“……맞소. 뭐라고 할 일이 아니오.”
모용중광은 어금니를 악물고 말했다.
‘둘 사이에 뭔가 있군.’
백서휘는 맹주와 련주 사이에 뭔가 일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지금은 나설 일이 아니라 생각해 가만히 있었다.
“자리는 있지?”
“네.”
사람들을 많이 데려왔는데도 충분히 감당한 걸 보면 확실히 도화루는 큰 주루였다.
“가자고.”
유소화는 사람들을 데리고 도화루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와서 술을 마시던 이들은 내빈들의 면면들을 보고는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부담스러워서 피하거나, 흥미롭다고 생각해 계속 자리에 있거나.
“안내는…….”
“잠깐만.”
백서휘는 데리고 온 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슬쩍 보니 학무관 관계자들 쪽에서도 내빈들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즐기러 온 자리에서 일하는 기분을 들게 하면 안 되지.’
백서휘는 유소화에게 질문을 던졌다.
“층을 나눠서 술이랑 음식을 먹어도 괜찮지?”
“괜찮아요.”
“그러면…….”
백서휘는 정하진에게 학무관 관계자들을 맡기고 1층과 2층에 자리를 잡게 했다.
그리고 내빈들은 그가 데리고 꼭대기 바로 아래인 4층으로 데려갔다.
유소화는 1층과 2층의 접객을 제일 경력이 긴 점소이에게 맡기고 본인이 내빈들을 맡았다.
‘긴장했나 보네.’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그녀의 보조개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직 나이가 어린 그녀가 상대하기에 부담스러운 거물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경험이 많지 않고 무공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자신 역시도 유소화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럴 만한 것이 이곳에 모인 이 중에 만만한 이라고는 흑웅표국의 표국주 한 명뿐이었다.
그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이름 높은 자들이었다.
‘심지어 스승인 하오문의 문주까지 있으니…….’
어떻게 보면 날벼락 같은 일이지만 다르게 보면 하오문 문주직에 가까이 갈 기회였다.
백서휘는 이득과 손해를 떠나서 유소화가 그 기회를 잡길 바랐다.
『나한테 한 것처럼만 해.』
갑작스러운 전음에 살짝 놀란 유소화가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는 입 모양만 움직여 ‘힘내’라고 말했다.
유소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익숙한 백서휘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주문하시겠어요?”
“내가 마구잡이로 시키면 불만스러운 사람이 나올 수 있으니까 한 명, 한 명 다 물어봐봐.”
“그럼 관주님부터 시작할 테니까 원하는 음식이나 술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나는…….”
백서휘는 곰곰이 생각하다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유소화가 마지막 사람인 하오문 문주에게까지 주문을 받고 다시 백서휘에게로 돌아왔다.
“정하셨어요?”
“나는 금존청이랑 기름진 걸로 아무 음식이나 하나 먹었으면 하는데.”
“마지막으로 확인해 볼게요. 방주님은 오리구이랑 화주…….”
다들 유소화가 말한 게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의 문주는 유소화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주문을 주방에 전하러 갔다 올게요.”
유소화가 인사를 한 후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과 술이 하나둘씩 탁자에 올라왔다.
“다들 맛있게 먹고 이 시간을 즐기라고. 정파와 사파와 상계의 인물에 관인까지 함께하는 자리가 흔치 않은 일이잖아.”
다들 공감하는 표정을 짓는데 황석준이 손을 들었다.
“왜?”
“이 자리를 만든 이로서 건배사 하나 해야 하지 않겠어?”
“건배사라……. 좋아. 해볼게.”
백서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운 걸 일일이 다 말하고 싶은데 내가 능변가도 아니고, 건배사도 길어질 것 같아서 짧게 말할게. 모두, 고마워.”
모인 이들의 대다수가 백서휘란 사람이 이런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민망하네. 빨리 넘어가자. 강호의 평화와 이곳에 모인 이들의 건승을 위하여!”
“위하여!”
정파와 사파, 무림인과 양민을 가리지 않고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고자도 술을 마실 줄 아나?”
종리학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쪽이 더 잘 알 거 아니요.”
모용중광은 무당파의 개파조사인 장삼봉이 태극권을 펼치는 것처럼 부드럽게 역공을 가하였다.
“그걸 내가 어떻게……. 설마, 내가 고자란 소리야? 내가 고자면 내 딸은? 내 딸은 어떻게 낳았는데?”
“그거야 모르지 않소. 어디서……. 크흠!”
“이 자식이!”
종리학이 검을 뽑으려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질풍처럼 달려온 백서휘가 그의 손에 힘을 주어 검을 뽑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직 해가 그대로 떠 있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좋은 날은 아직 안 끝났단 뜻이야.”
“하하하! 좋은 날엔 피를 보면 안 되지. 알고 있소. 그냥 장난 삼아서 화난 척해 본 거요.”
“정말이야?”
“그렇소. 내 사과의 의미로 맹주에게 술을 따라주겠소. 잔 좀 줘봐.”
모용중광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종리혁에게 잔을 건넸다.
종리혁은 술을 한계까지 따른 후 허공섭물로 모용중광에게 잔을 날려 보냈다.
“이건……?”
모용중광은 말을 하다 말고 허공섭물을 써서 종리혁이 날린 잔을 받으려 했다.
찰랑찰랑!
잔을 다시 줄 거였으면 허공섭물을 그만 펼쳐야 하건만, 종리혁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종리혁의 장난으로 인해 두 사람의 싸움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첫 번째 판이 말싸움이었다면, 두 번째 판은 내공 싸움이었다.
“흐읍!”
“끄읍!”
두 사람의 중간에서 잔이 흔들리며 술이 넘쳐 탁자를 적셨다.
‘이 인간들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 건가?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고 있네.’
개들의 싸움을 외부에서 개입해 막으면 서열이 정해지지 않아 계속 싸우게 된다.
‘근데 여기서 막으면 계속 싸우게 될 것 같은데…….’
막아야 하는지 막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여기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원망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때 술잔이 깨지려고 하는 게 보였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같이 동석한 지현이나 황석준 같은 이들이 위험할지도 몰랐다.
‘……까짓것 원망받지, 뭐.’
자신이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 말을 무시하고 싸우는 중이었다.
자신이 하는 말의 권위를 세우고 무공을 배우지 않은 양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막는 게 맞았다.
백서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빙글빙글 도는 빈 술잔에 손을 가져갔다.
다들 경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내, 내공 싸움에 끼어들다니!”
“거, 겁도 없는 건가!”
황석준은 ‘미친놈’이라고 중얼거리며 백서휘를 바라봤다.
백서휘는 술잔을 내공으로 완전히 감싼 후에 안에 주입된 내공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다.
‘모용중광 쪽보다 종리혁 쪽에 조금 더 많이 주입하면…….’
내공 싸움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종리혁과 모용중광은 눈동자를 굴려 백서휘를 바라봤다.
우우우웅!
벌떼 우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윽고 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종리혁과 모용중광이 고개를 돌려 백서휘를 바라봤다.
“어, 어떻게?”
개방의 용두방주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공에 대해 잘 모르는 지현과 금태풍만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들 봐?”
“내, 내공 싸움에 끼어들면 끼어든 쪽이나 싸우던 쪽이나 반병신이 되는 게 상식이잖소. 그런데 관주 당신은…….”
“그거야 멍청하게 행동하니까 그런 거지. 똑똑하게 싸움을 잘 막으면 안 그래.”
“그 똑똑한 방법이 뭔지 알려줄 수 있겠소?”
“아까 있던 잔 안에 모용중광의 내공이랑 종리혁이 내공이 담겨 있다는 건 다들 알 거야.”
지현과 금태풍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양이 모용중광은 4쯤 되고, 종리혁은 6쯤 된다고 치자고. 여기까지 이해되지?”
“이해됐어.”
“양이 파악됐다면 두 사람의 양만큼 내공을 술잔에 주입해서 서로 ‘상쇄’시키면 돼.”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잘 들어. 두 사람이 쓰고 있는 내공의 양이 10이지? 그러면 나도 딱 10만큼 내공을 술잔에 주입하는 거야.”
“거기까진 이해됐다.”
“그다음 주입된 10의 내공을 둘로 나눠서 모용중광 쪽에는 4를 보내고, 당신한테는 6을 보내서 서로 부딪히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
“아! 같은 양의 내공이 서로 부딪히면 둘 모두가 소멸해 버려서 상쇄라고 한 거군!”
“그래, 맞아.”
“……내공 싸움에 끼어들자마자 그 양을 파악하고 똑같은 양의 주입을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모여 있는 거의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가능하니까 내가 한 거지.”
“당신만 가능한 거 아니오?”
“맹주랑 련주의 경지면 이걸 자연스럽게 할 줄 알아야 돼.”
“나는 못할 것 같소.”
“나도.”
“둘 다 수련 시간이 어떻게 돼?”
“……참선하는 것도 포함이면 하루에 한 시진하고 반 정도 되오.”
“나도 비슷하다.”
백서휘가 두 사람을 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본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맹주로서의 업무도 있고 수련의 진척도 없어서 수련 시간을 줄인 거요.”
“그쪽은 자유인이라 열심히 수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둘 다 너무 안일해.”
백서휘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이 말도 안 되게 강한 거지. 우리도 강하오. 그리고 여기서 더 수련해서 경지가 올라가 봤자 개인적인 만족 아니오? 당신 말고는 우리에게 위협될 게 없는데?”
“위협될 게 없다? 하!”
수호문의 문주로서 해야 할 일을 너무 잘했다는 보람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중원 무림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중원 무림에 실질적인 위협이 계속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이들도 알아야만 돼.’
백서휘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암중단체에 대해 말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