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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40화 (140/202)

귀환무관 140화

“서휘야! 백서휘!”

백은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멀리서 뛰어와 백서휘를 껴안았다.

“갑자기 왜 이래?”

“다친 곳은 없지? 그런 거지?”

“까지거나 속이 좀 안 좋은 건 있는데 다쳤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곳은 없어.”

혈도와 혈맥에 상처도 나고, 피가 올라올 정도로 내상을 입었지만 백서휘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비명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기억이 있던 백은하의 아픔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듣기로는 내상도 입고 했다는 것 같던데…….”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거야?”

“개방 분타주가 그랬어.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최소 화경 이상의 고수 둘이랑 너랑 싸웠다고.”

백서휘는 나겁개를 다시 한번 교육해 줘야 한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싸운 거 맞아. 맞는데 누나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누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강하거든.”

“강하면 안 다치기라도 한데? 검에 베이거나 찔리면 상처 입는 건 똑같잖아.”

백은하가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걸 보니 백서휘의 가슴이 저며왔다.

“진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겁개 그 인간이 별호처럼 겁이 많아서 그런 거니까 그 인간 말은 믿지 마. 그리고……. 아, 이건 그냥 다 모인 자리에서 말하는 게 좋겠다.”

“뭘?”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매형이랑 우 노괴한테 오늘은 꼭 저녁 식사에 참석하라고 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그건 이따 들으면 알게 될 거야. 난 잠깐 사범들이랑 오룡단 애들한테 좀 가볼게.”

“……알았어.”

백서휘를 만나면 할 이야기가 백은하에겐 잔뜩 있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 백서휘를 만나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그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전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은하는 백서휘를 그냥 보내야만 했다.

백서휘는 학무관의 연무장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백은하를 비롯한 가족들이 섭섭하겠지만 일단은 오룡단과 사범진에게 먼저 말할 생각이었다.

오룡단과 사범진에게 먼저 말하는 건 자신이 부재중일 때 가족들을 맡길 만한 사람들이 그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에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라 미리 연습하려는 점도 조금 있긴 하지만…….’

연무장에 가 보니 오룡단과 사범진들이 무기를 들고 출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어디 전쟁터 나가?”

오룡단과 사범진의 눈이 커다래졌다가 이내 다시 작아졌다.

그들이 백서휘 앞에 쪼르르 모였다.

“관주님, 괜찮으십니까?”

“그자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왜 말도 없이 싸우러 가신 겁니까?”

여러 방향에서 질문들을 해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백서휘는 코에 손가락을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취했다.

“왼쪽에서부터 한 번에 하나씩만 물어봐.”

“괘, 괜찮으십니까?”

제갈선우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최상의 상태는 아니야. 됐지? 다음.”

“전투는 끝난 겁니까?”

운학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내가 이렇게 온 거 보면 모르겠어? 다음.”

“그놈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당기준이 살기를 풀풀 날리며 말했다.

“이건 조금 이따 설명해 줄게. 다음.”

“왜 저희에게 말도 없이 싸우러 가신 거죠?”

종리연이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급해서 너희들을 찾을 시간이 없었어. 다음엔 너희들한테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도움받을게. 됐지? 이제 질문 그만 받는다.”

“예? 더 안 받으신다고요?”

“그래, 내가 하는 이야기나 들어.”

“알겠습니다.”

“나랑 싸웠던 놈들의 정체는 명성교라는 곳에서 사신(四神)의 좌에 있었던 놈들인데…….”

백서휘는 명성교의 사신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암중단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수호문의 의무를 말하는 것으로 설명을 끝냈다.

“과, 관주님이 북해빙궁과 마교, 포달랍궁, 혈교, 천지회, 황실의 전복 등등을 막아내셨다는 겁니까?”

제갈선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래, 거짓말 같으면 운학이나 유소화한테 물어봐. 포달랍궁에서 동남동녀들을 납치했을 때 납치당했던 아이들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포달랍궁에서 절 구해주신 건 맞습니다. 그런데 유소화란 이름의 낭자, 도화루의 루주를 말씀하시는 거 맞습니까?”

“어, 맞아. 도화루의 루주. 하오문의 호남성 지부장이기도 하고.”

운학은 유소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맙소사…….”

“다른 암중단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덤덤히 들어놓고 이건 왜 그래?”

“그건 어느 정도 알던 이야기고, 도화루의 루주가 그때 그 세 명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거니까요.”

그때 제갈선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저…….”

“뭐?”

“관주님 가족분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서 아십니까?”

“처음 만났을 때 대충 말하긴 했지. 믿는지 안 믿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확실하게 이야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너희들에게 말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말하려고 그랬어.”

“저……. 관주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가족분들이 아니고 저희한테 먼저 말씀하신 거예요?”

남궁민이 눈치를 살살 보며 물었다.

“내가 부재중일 때 가족들을 보호할 사람이 너희들밖에 없거든. 그래서 먼저 말해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백서휘의 거의 처음으로 신뢰 어린 눈빛을 보내자 오룡단과 사범진은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관주님…….”

“크흠! 아무튼, 너희들만 믿고 있다는 것만 알아둬.”

“알겠습니다.”

“설명도 끝났고 하니 이만 가볼게.”

백서휘가 어색하게 뒤를 돌며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 운학이 다급한 목소리롤 그를 불러세웠다.

“관주님!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

“……본문의 장문인께서 축하하러 오신다고 그러셨는데, 입관 행사 때 내빈 자리를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화산파는 우리랑 제자들 관련해서 협약을 맺은 곳이잖아. 당연히 내어줘야지.”

“감사합니다.”

“내가 고마운 일이지. 근데 다른 내빈이 없어서 조금 어색할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둬.”

“알겠습니다.”

그때 남궁민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주님, 저는 정 학사님한테 내빈으로 올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그래? 누구누구 오는데?”

“맹주님이랑 사도련의 련주님이랑 개방의 방주님이랑……. 아무튼 많다고 들었어요.”

당가로 가 있는 동안 정하진이 내빈으로 올 만한 사람들을 많이 초대한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온다고? 아니, 잠깐만, 그러면 지금쯤 그 사람들 장사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 내일 안으로 다들 들어오지 않을까요?”

“음……. 이건 내가 매형한테 따로 물어봐야겠다.”

백서휘는 오룡단과 사범진을 뒤로 하고 장원으로 돌아왔다.

장원에는 백은하를 비롯한 모든 가족이 상 앞에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이 있다고 들었네만.”

“저녁 식사를 한 다음에 말하려고 그랬는데, 그냥 지금 할까요?”

“처남이 편하신 대로 하시게.”

“그럼, 그냥 지금 하겠습니다.”

백서휘는 오룡단과 사범진에게 했던 말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가족들은 백서휘를 노리는 적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럼 그때 이걸 준 건…….”

정하진이 품속에서 천왕침통을 한 손에 들어보였다.

“술법이 담긴 물건도 그렇고, 천왕침통도 그렇고 다 가족들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드린 겁니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저를 노리는 적들이 무지막지하게 많거든요. 요즘은 혼천회라는 단체까지 만들어서 뭘 한다고 듣긴 했는데…….”

“혼천회?”

우염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는 놈들이야?”

“금의위와 비슷한 제의를 해온 적이 있었다.”

“금의위와 비슷한 제의?”

“금의위가 무공을 모르거나 얕게 아는 자가 고수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했던 것처럼 그들은 화경 이상의 고수에게 통할 만한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진짜?”

“진짜다.”

“제안은 그럼 거절한 거야?”

“그런 무기가 있다면 천하제일인은 나일 거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잘했어.”

혼천회가 자신을 어떻게든 죽이기 위해 곳곳에 발을 뻗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니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무공 수련을 더 열심히 해야겠네.”

“무공수련? 왜?”

“그놈들이 습격해왔을 때 목숨을 지키려면 강해져야지.”

괜히 초를 치는 것 같아 말하기 꺼려졌지만, 백은하가 무공을 열심히 수련한다고 해서 암중단체의 고수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단번에 실력을 상승시키는 방법은 없는 거지?”

천지회의 이족결합이나 혈교의 인신 공양처럼 사이한 방법들만 생각났다.

“있긴 한데 떠오르는 게 다 위험한 것들뿐이네.”

“그러면 안전하고 획기적인 방법은 없단 거네?”

“천하에 무공이고 술법이고 많으니 어딘가엔 있을 거야.”

“어딘가에 있어도 내가 쓸 수 없으면 말짱 황이잖아.”

“그렇긴 하지.”

“아, 누군가가 우릴 도와주거나 하면 좋을 텐데…….”

“도와준다? 아!”

그때 주술 중에 신에게서 힘을 빌리는 차력(借力)이란 게 있다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왜?”

“차력술이란 게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차력술?”

“나도 자세히는 몰라. 전문가한테 물어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알려줄 테니까 일단은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하고 있어.”

“알았어.”

백서휘는 입관 행사 끝나고 목인걸한테 천마의 보물과 차력술이 어떤 건지 함꼐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러다 음식 다 식겠네.”

백서휘는 가족들에게 어서 먹으라고 손짓했다.

* * *

백서휘는 백은하에게서 건네받은 옷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입으라고?”

“별로야?”

“옷 생김새가 좀 옛날 느낌이 나서.”

“그래도 입어주면 안 될까? 오늘이라서 의미가 있는 옷인데…….”

백은하가 간절한 눈빛으로 부탁을 했다.

“무슨 의미가 있는데?”

“……아버지가 관주로서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 입었던 옷이야.”

아주 어려서 납치된 터라 아버지와 공식 석상에 같이 나간 적이 없어 몰랐다.

“아, 그러면 당연히 입어야지. 학무관의 근본은 자하무관에 있는데.”

“진짜 괜찮겠어?”

“괜찮아. 오히려 내가 미안해. 바로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니야,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어. 미안해.”

잠시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이거 입고 나오면 옷매무새 가다듬는 거 도와줄 수 있지?”

“얼마든지 도와줄게.”

백서휘는 아버지가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백은하는 그가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걸 도와줬다.

“잘 어울리네.”

“다행이다.”

“이것도 해봐.”

“영웅건? 잠깐, 이것도 아버지 거야?”

백서휘가 백은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건 내가 오늘을 위해 산 거야. 그 옷에 영웅건까지 두르면 멋있을 것 같아서.”

“줘봐. 한번 해볼게.”

백서휘는 영웅건까지 이마에 두르고 백은하 앞에 섰다.

백은하는 어릴 때 봤던 아버지의 얼굴이 그에게 남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

“멋있다.”

“그럼 당연히 멋있지. 누구 아들이고, 누구 동생인데…….”

백서휘의 말에 백은하가 미소를 지으면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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