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139화 (139/202)

귀환무관 139화

현명은 얼음으로 된 창을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어떻게든 빙기를 자신의 몸에 침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기세가 만만치 않아.’

백서휘는 긴장된 얼굴로 검이 있는 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번개 같은 속도로 날아온 검이 그의 손에 안착했다.

‘온다!’

현명이 빙판으로 만든 땅을 미끄러지듯 달리면서 양손에 든 얼음창을 모두 던졌다.

당연히 근접전이 펼쳐질 줄 알았던 백서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얼음창들을 쳐내면서 현명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현명은 얼음창을 또 한 번 만들어내 던졌다.

백서휘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날아온 창들을 모두 베어냈다.

그때 어느새 접근한 현명이 얼음검을 만들어내더니, 그 얼음검에 강기를 담아 전력으로 휘둘렀다.

백서휘는 그의 검이 날아드는 궤적에 비스듬하게 검을 가져다 댔다.

쾅!

만년한철로 만든 검과 맞부딪혔는데도 얼음검은 부서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현명 쪽에서 힘 싸움을 걸어왔다.

백서휘는 얼음검을 부숴 버릴 기세로 부여잡은 검에 힘을 더했다.

그 순간, 두 검이 맞닿은 부분에서 얼음꽃이 피어올랐다.

쩌저저적!

백서휘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빙기가 검신을 타고 그의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검병을 쥔 손이 얼어붙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혈도와 혈맥은 북해의 대지처럼 얼어붙었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죽는다.’

한 사람의 검사로서 손에서 검을 놓는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살려면 그래야만 했다.

백서휘는 검에서 손을 놓고 현명과의 거리를 벌렸다.

현명이 빙판을 미끄러지듯 달려 그를 뒤쫓았다.

‘독령! 몸 안의 빙기를 모두 제거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반의반각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길게?’

『침투된 빙기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제기랄! 어쩔 수 없지. 시간을 끌어볼 테니까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빙기를 제거해 봐.’

『예!』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끈질긴 놈! 못 잡을 것 같으면 그만 포기 좀 해!’

위기에 닥쳤다고 생각하니, 몸속에 흐르는 용의 피가 왼쪽 눈을 향해 질주했다.

왼쪽 눈에서 통증이 일며 눈동자가 홍옥빛이 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때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현명이 얼음창을 만들어 던지고 있었다.

『침투한 빙기를 모두 제거했습니다.』

‘잘했어!’

백서휘는 전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구천현현보를 밟았다.

쐐애애액!

얼음창은 바로 조금 전까지 백서휘가 있던 곳에 꽂혔다.

‘저놈과 맞상대하려면 검이 있어야 돼.’

상대는 영혼과 선천지기를 태워 화경의 경지에서는 불가능한 위력의 공격을 자신에게 퍼붓고 있었다.

난화만천수가 약한 건 아니지만, 위협적인 적이니만큼 훨씬 숙련된 검으로 상대하는 게 맞으리라 생각했다.

‘와라!’

백서휘는 검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닥에 꽂혀 있던 검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검에서 손을 놓으면서도 의념의 끈까지 완전히 끊어내지 않았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탁!

백서휘는 손에 검을 쥐자마자 가만히 멈춰 서며 검강부터 빠르게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경천신뢰를 연속해서 두 번 펼쳤다.

얼음창이 반으로 갈라지며 양옆에 떨어졌다.

때마침 백서휘의 왼쪽 눈동자가 완전하게 홍옥빛으로 변했다.

‘두 번째 판 시작이다!’

백서휘는 이를 악물고 구천현현보를 다시금 전력으로 밟았다.

그가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자 현명의 얼굴이 굳었다.

“어디에 던질지 모르겠지?”

현명이 말소리가 난 곳으로 얼음창을 투척했지만, 그곳엔 백서휘가 없었다.

‘저놈 상태가 어떻지?’

왼쪽 눈을 통해 보니 지금 현명은 상단전에 깃든 영혼을 태우면서 나오는 힘과 중단전에 있는 선천진기를 끌어내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도 많이 남았네.’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되지만 그렇게 이기는 건 싫었다.

자신이 빙기로 인해 받은 고통을 저놈도 받아야만 했다.

‘저놈에게 고통을 주려면 난화만천수를 쓰는 수밖에 없는데…… 좋아, 검으로 죽이는 건 잠시 미뤄두자. 독령! 화기를 만든 다음 응축시켜!’

독령은 명령에 따라 내력을 화기로 변환시켰다.

“이놈!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거냐!”

화가 난 현명은 악귀 같은 얼굴로 얼음창을 던졌다.

그때 원하는 양만큼의 화기가 백서휘의 단전에 만들어졌다.

백서휘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현명을 바라봤다.

“내가? 도망을?”

“그래!”

“좋아! 정면으로 붙어서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백서휘는 왼손에 단전에 있던 화기를 모두 응축시켰다.

현명이 어느새 만든 얼음검으로 휘두르고 찌르는 걸 반복했다.

“겨우 이따위 검술을 보여주려고 날 도발한 거야? 무관에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관원들도 이렇게는 안 해.”

“이따위? 이이이익!”

가뜩이나 분노하고 있던 현명이 백서휘의 도발에 그대로 넘어갔다.

검을 휘두르고 찌르는 동작이 커지면서 그의 빈틈이 크게 드러났다.

백서휘는 화기를 응축시킨 왼손으로 활짝 열려 있는 가슴을 때렸다.

쾅!

현명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반쯤 부서진 객잔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백서휘는 완전히 끝내기 위해 그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방패를 만들어야 돼.”

현명은 빙기로 공기 중의 수분을 얼려 방패를 만들어 백서휘가 휘두르는 검을 막아내려 했다.

“크아아악!”

침투한 화기가 빙기를 공격해 방패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하고, 혈도와 혈맥을 불태웠다.

현명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빙기가 이동하는 경로를 바꿔 버렸다.

그의 장심에서 세상을 다 얼려 버릴 듯한 빙기가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아!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밟아 옆으로 피하며 난화만천수에 침투경의 묘리를 담아 펼쳤다.

셀 수 없이 많은 그의 손그림자가 바뀐 빙기의 이동 경로를 때렸다.

현명의 몸에 들어간 경(勁)이 혈도와 혈맥에 타격을 입혀 빙기를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됐다!’

현명의 손바닥에서 빙기가 나왔다가 나오지 않기를 반복했다.

현명은 무슨 수를 써도 다음 공격을 막을 수 없단 걸 깨달았다.

그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백서휘를 바라봤다.

푸욱!

백서휘의 검이 현명의 가슴뼈를 큼지막하게 뚫고 들어갔다.

우드드득!

백서휘는 현명의 심장이 꿰뚫리는 걸 검을 통해 느꼈다.

“……지옥에서 널 기다리겠다.”

현명은 부릅뜬 눈으로 백서휘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현명님!”

“어, 어찌 이런 일이!”

“욕수님에 이어 현명님까지…….”

명성교의 잔당들은 마지막 희망이었던 현명이 죽자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현명님의 복수를 하자! 생채기만이라도 내보자고!”

“다 끝난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백서휘는 명성교 잔당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현명의 가슴에 박아 넣은 검을 뽑았다.

백서휘가 검을 허공에 휘둘러 날에 묻어 있던 피를 털어냈다.

그러고는 명성교의 잔당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괜히 여기서 놓쳤다가 가족들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이야.’

백서휘는 명성교의 잔당들이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명성교의 잔당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다.

도망을 가려고 하면 이기어검으로 인해 죽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바보 같은 놈들.’

백서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명성교의 잔당들을 향해 검을 던졌다.

의념의 끈으로 연결된 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명성교의 잔당들을 제거했다.

푸욱!

“커어억!”

가슴을 꿰뚫려 죽는 이도 있었고.

서걱! 서걱! 서걱!

“내 팔이! 내 다리! 으아아악!”

사지가 잘리며 죽는 이도 있었고.

푸욱!

“그르르르륵!”

목에 구멍이 나며 죽는 이도 있었다.

‘돌아와!’

명성교의 잔당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죽인 백서휘는 검을 불러들여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제 낭인들만 처리하면 되는 건가.’

장사로 올 때 호위로 낭인을 쓰는 학부모들이 있어 지금 당장은 움직이기 어려웠다.

‘낭왕에게 집결 장소에 대해 듣고 결행일에 처리하자.’

* * *

낭왕에게서 집결 장소에 들은 백서휘는 날듯이 지붕 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쉰 명의 낭인들이 모여 있는 집결 장소를 발견했다.

백서휘는 지붕 위에 은밀히 몸을 감추고 그들을 지켜봤다.

‘통일된 무기가 없는 걸 보면 낭인 맞네.’

집결 장소에 있는 자들은 일반적인 낭인과 다르게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부러 의뢰를 완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저놈들은 어찌 처리한다?’

자신에게는 칼을 겨눈 자는 살려두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낭인들은 아직 나한테 칼을 들이민 게 아니잖아?’

거기다 이 낭인들은 원한 때문에 자신을 죽이거나 손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움직이는 거였다.

‘의뢰만 아니라면 나랑 만날 일이 없는데…… 그냥 다 죽여 버릴까?’

한참을 고민하다 백서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주로 죽이는 걸 택하긴 하지만 자신이 살인광은 아니었다.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고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쓸 생각이 있었다.

‘바로 조금 있으면 학무관이 문을 여는데 좋은 일 앞두고 피를 보는 건 좀 그렇네. 기선제압을 한 이후에 살려 보내면서 낭인천에 경고해야겠다.’

백서휘는 착지할 위치를 한번 확인하고는 밑으로 뛰어내렸다.

콰아아아앙!

굉음이 일며 땅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낭인 중 몇몇이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다들 주목!”

낭인들은 안 그래도 낯선 강자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백서휘에게로 모였다.

“내가 웬만해선 이러는 사람이 아닌데, 특별히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려고 한다. 지금 내가 살려줄 때 집으로 돌아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자비를 베푼다, 만다 하는 거요?”

낭인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물었다.

‘낭왕보단 못하지만 꽤 강하네. 근데 나한테 까불 정도는 아니야. 타일러봐서 안 되면 바로 반병신으로 만들어야겠다.’

백서휘는 검을 뽑아 든 낭인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학무관의 관주다.”

“학무관의 관주면…… 내가 맡은 의뢰 대상인데?”

검을 뽑아 든 낭인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자, 장삼!

“왜?”

“빠, 빨리 검을 집어넣어!”

“왜 그래야 하는데?”

“내, 내가 봤다는 괴물 같은 자가 저 사람이야!”

“그 강기를 쓰고 했다는 무인?”

“그, 그래! 객잔도 부수고, 거대한 덩치로 변했던 조법(爪法)의 고수도 죽이고, 아무것도 없는 손에서 얼음을 만들어내는 빙공(氷功)의 고수도 죽였다니까!”

다른 낭인도 그 말을 듣고 백서휘의 얼굴을 빤히 봤다.

“헉! 지, 진짜 그 사람이잖아?”

“얼굴이 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곳곳에 흩어져 있던 낭인들이었기에 현명과 욕수와의 전투를 목격한 이들이 꽤 많았다.

“내 친우의 말이 사실이오?”

검을 뽑아 든 낭인이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백서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에 검강을 만들어낸 후 무너진 객잔의 잔해에 날렸다.

콰아아앙!

객잔의 잔해가 소멸하며 땅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저, 정말이었구려!”

“그럼 가짜인 줄 알았어?”

“……허세인 줄 알았소.”

“허세 아닌 걸 알았으면 얼른 돌아가.”

“알겠소.”

낭인은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살려준 은혜 잊지 않겠소!”

“봐주는 건 이번뿐이야. 진짜 은혜를 갚고 싶으면 내 말이나 낭인천에 대신 전해. 나나 내 친인들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거나, 납치하라는 의뢰를 받으면 그날로 낭인천이 사라지는 날이라고.”

“그, 그러겠소.”

낭인들은 일제히 낭인천으로 되돌아갔다.

“이 정도로 선업(善業)을 쌓았으면 하늘이 학무관을 점점 더 잘되게 해주겠지.”

백서휘는 작게 중얼거리며 학무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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