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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29화 (129/202)

귀환무관 129화

여독을 풀겠단 마음으로 무려 한 달이란 시간을 휴식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단 생각에 백서휘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산적한 일들의 중요도를 고려해 순서와 처리 방식을 정하는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백서휘는 학무관과 관련된 일들을 먼저 하는 게 낫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학무관과 관련된 일은 확실한 일정을 잡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생긴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문제 중에서 큰 덩어리만 따지면 시설들과 사범들에 관한 것이 제일 심각했다.

시설과 관련된 문제는 사람이 건물을 쓰지 않고 계속 내버려 두기만 하니 생긴 문제들이었고, 사범들에 관한 것은 자신이 장사에 상주해 있지 않아 생긴 문제들이었다.

‘사범들에 관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긴 일이라 복잡해질 가능성이 커. 일단 시설부터 점검하고 고칠 게 나오면 고치도록 하자.’

백서휘는 홍 목장과 함께 학무관 내부를 돌아다니며 고칠 곳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한참 동안 돌아다니던 그들은 연무장에 조그맣게 마련된 휴식처에 자리를 잡았다.

“외부 요인으로 인해 생기는 손상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외부 요인이라면 어떤 거?”

“일단 가장 심각한 건 쥐나 흰개미, 벌, 딱정벌레 같은 것들입니다. 사람이 상주했다면 자리를 잡기 전에 쫓아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보니 꽤 많은 건물과 가구들이 손상됐습니다.”

“해결 방법은?”

“쥐는 덫이랑 약을 섞은 음식을 뿌려놓으면 되고 벌레들은 훈증 처리를 해서 쫓아내야 합니다.”

“원상복구는 힘든가?”

“완벽하게 복구하는 건 힘듭니다. 대신, 최대한 지어졌을 때랑 비슷하게 복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문제는 그렇게 하고 이제 남은 게…….”

“곰팡이가 남았습니다.”

“그래! 곰팡이, 그건 어떻게 해결해야 돼?”

“건물에 손상이 일부되는 걸 각오하고 곰팡이가 발견된 건물 전체에 약을 도포해야 합니다.”

“손상을 각오하고 도포해야 한다는 거면 곰팡이로 인해 생기는 손해가 더 큰가 보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 문제 역시 홍 목장에게 일임하도록 하지.”

“제가 복구해 놓더라도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다시 똑같은 일이 발생할 텐데 그거에 대한 해결책은 생각해 놓으신 게 있으십니까?”

“건물 유지보수하는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인원을 두려고.”

“그렇게 하실 거라면 두어 명은 두는 편이 좋을 겁니다.”

“두어 명이나?”

“학무관처럼 넓고 건물이 많은 곳은 관리자를 그쯤 두는 게 좋습니다.”

“음…….”

“그리고 나중에 사람들이 건물을 쓰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곰팡이나 벌레 같은 게 아니라 사람으로 인한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때 후회하시느니 미리 여러 명을 두시는 게 마음은 편하실 겁니다.”

그때 백서휘의 눈에 당진우와 그의 심복이 이야기를 나누며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놈은 여길 왜 또 온 거지?’

백서휘는 당진우에게 무슨 일로 온 건지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있는 쪽으로 발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래도 무인이라고 감각이 살아 있었다.

꽤 먼 거리인데도 소리를 알아듣고 백서휘 쪽을 바라봤다.

당진우와 그의 심복은 신법을 펼쳐 백서휘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무림맹에 계속 남아 있는 거 아니었나?”

“그때 무림맹으로 간 건 상의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으니까 이야기할 생각하지 말고 여기 왜 온 건지나 말해.”

“나름 심각한 이야기라서 그러는데 여기 말고 잠깐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여기서 못할 이야기야?”

당진우는 홍 목장을 눈을 굴려 슬쩍슬쩍 쳐다봤다.

백서휘는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를 바로 깨달았다.

“어느 건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했으니 나는 이만 이 치들이랑 이야기를 좀 하러 가볼게. 더 할 일이 없으면 집에 돌아가도 좋아.”

“알겠습니다.”

홍 목장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백서휘는 조심히 가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따라와.”

백서휘는 학무관 내에 마련된 관주실에서 두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집무실 안에는 아무런 장식 없이 탁자와 의자, 지필묵 정도로 정말 필요한 것들만 놓여 있었다.

“무슨 일로 왔지?”

“관주님과 오룡단을 사천으로 초대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사천에?”

“예.”

“뭐 때문에?”

“무림맹 소속 문파들을 대표해서 초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종전 협정은 관주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니까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못 가.”

“어떤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당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칭만 ‘관주님’이지 관주 노릇을 안 한 지 꽤 돼서 이번에 좀 각잡고 제대로 해보려고.”

“아마 사천에 가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하실 겁니다.”

“뭐가 관련된?”

“학무관 말입니다.”

“당가가 학무관이랑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나?”

백서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범 중의 하나로 당가의 인물을 넣어보는 게 어떤지 제안하려고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넣게 되면 학무관도 좋고 저희 가문에도 좋은 일이니까요.”

‘같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한 건 아닌 거로 보였다.

“당가의 인물로 사범이라……. 가르치는 과목은 독과 암기지?”

“예, 무림에서는 여자, 노인, 아이를 조심해야 한다는 격언처럼 언제서건 독과 암기를 맞을 수 있단 걸 염두에 두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언제 어디서 몰래 독과 암기에 당할 수 있어서 하수만이 아니라 경지에 오른 고수까지 모두가 당가를 두려워했다.

“격언까지는 아니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야. 확실히 독과 암기를 조심해야 강호에 출도하고도 장수할 수 있지. 그런데 그거 하나 보고 굳이 사천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독과 암기에 한해서는 맡길 인물이 있기도 하고.”

“저희 말고 다른 쪽 사람에게 독과 암기에 대해 가르칠 사범 자리를 맡기신다는 겁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범을 파견하려는 건 아니잖아.”

“그, 그렇긴 합니다만.”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 쪽엔 아무런 조건 없이 독과 암기에 대해 가르쳐 줄 인물이 있거든.”

“그게 누구인……. 설마, 기준이를 사범으로 삼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본가의 비전(祕傳)을 가르치면…….”

“상도덕이란 게 있는데 당연히 당가 비전의 독이나 암기는 제외하고 가르치지.”

백서휘의 철벽 논리에 막히자 당진우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제안할 건 조금 전에 말한 것들이 전부인가?”

“……예.”

“그럼 사천 갈 일은 없겠네.”

당진우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백서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단 걸 깨달았다.

“……혹시 원하시는 조건 같은 게 있으십니까.”

“원하는 조건이라…….”

백서휘는 이번의 사천 초대가 그냥 서로 간에 친목을 다지려고 부른 게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초대할 이유가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원하는 조건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나지 않았다.

“딱히 없네.”

“금전적인 부분이나…….”

“돈이라면 많아. 거기다 학무관 뒤에는 만복상단이 있어서 금전적인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여자라든가…….”

“내가 그렇게 궁해 보여?”

“아, 아닙니다. 여자가 싫으시다면 무공을……. 아!”

손운산과의 전투에서 백서휘가 보여줬던 모습이 당진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당진우가 생각할 때 현시점의 무림에서 백서휘는 무신에 제일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무공이 아쉬울 리 없으니 조건을 걸어 초대하는 건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진우가 말하기도 전에 백서휘가 먼저 찌르고 들어왔다.

“도대체 뭐 때문에 조건을 걸어가면서까지 나랑 오룡단을 사천에 초대하려는 거지? 솔직히 말해주면 사천에 갈 생각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잘 생각해서 말해.”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혀 놀리는 건 그쯤하고 초대하는 목적이 뭔지 말하라는 소리야.”

백서휘가 고압적인 눈으로 당진우를 노려봤다.

당진우는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자 몹시 당황했다.

“말할 생각이 없다면 나는 여기서 일어날게.”

백서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당진우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백서휘는 더는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니 크게 압박이 됐다.

어쩔 수 없단 생각에 당진우는 사실의 일부만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마, 말하겠습니다. 대신, 조건 하나만 걸게 해주십시오.”

“조건? 아직 정신을 좀 못 차린 것 같은데…….”

“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말한 것을 알리지 말라는 조건입니다. 특히 당기준한테는 더더욱요.”

“……좋아,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겠어.”

“일단 관주님을 초대하려는 건 관주님과 오룡단이 한 몸이라서 그렇습니다.”

“혼자 다닐 때가 더 많아.”

“그러더라도 당기준은 관주님의 명령만 듣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아무튼 그런 이유로 관주님을 초대하려 했던 겁니다. 저희 가문에 지금 당기준이 무척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필요한데 집에서 내쫓아?”

“기, 기준이가 자유를 원해서 그 소원을 들어준 것뿐입니다.”

“좋아, 그건 뭐 그렇다 치고, 당기준은 왜 필요한 건데?”

“저희 가문에는 먼 옛날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책이 두 권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이름은 독경(毒經)으로 독에 대한 모든 것이 적혀 있는데…….”

“저기 미안한데 자잘한 이야기들은 내가 궁금하면 물어볼 테니까 지금은 본론만 짧게 예약해서 말하는 게 어때?”

“아, 알겠습니다. 그 독경에는 ‘독령’이란 개념이 나옵니다.”

백서휘는 독령이란 말에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에 집중한 탓에 당진우는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를 보지 못했다.

“그 독령은 천하의 모든 기운을 지배해 기독(氣毒)으로 바꾸는 능력을 지녔는데…….”

“기독이 뭐지?”

“무색, 무취, 무미, 무형의 독입니다. 기(氣)로 만들어진 거라 누구든 중독시킬 수 있고 증거도 안 남습니다.”

“말만 들어도 대단한 것 같네.”

“정말 대단한 겁니다.”

“계속 설명 이어가 봐.”

“그 독령이란 게 지금 당기준의 단전에 봉인되어 있는데 저희 가문에서는 그 봉인된 독령을…….”

“말만 들어도 대단한 게 왜 당기준의 단전에 있는 거야?”

“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뭔가 있다는 걸 느꼈지만 당기준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 일부러 캐묻지 않았다.

“아, 아무튼 중요한 건 독령이 만들어질 확률은 엄청나게 낮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사실상 다시 만들기는 힘든데, 그 독령이 저희와 인연을 끊은 당기준에게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게 왜 문제야? 독령이 있다는 걸 알고도 당기준을 쫓아낸 건 너희잖아.”

“그, 그때 당시에는 다들 생각을 못 했습니다.”

“말이 좀 안 되는 것 같은데?”

“어, 어떤 부분이 말이 안 되는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전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문의 보물 같은 책에 개념으로만 등장하는 대단한 존재를 힘겹게 만들어내서 당기준의 단전에 봉인해놓고 가문에서 쫓아낸 점이 말이 안 되잖아.”

“조,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다들 생각을 못 한 겁니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잖아. 근데 그때도 그런 말이 없어놓고 이제 와서 끝난 문제를 다시 꺼내오는 저의는 뭐야?”

“한 번의 기회라니요?”

“인연을 완전히 끊을 때 말이야.”

“아…….”

“그때 말이 없었으면 끝난 문제인 게 맞지.”

“그게…….”

“지금 네 행동만 보면 쫓아낼 때랑 인연을 끊을 때는 몰랐거나 독령을 그리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 안 하다가 인제 와서 뒤늦게 뭔가를 알아차리고 회수하려는 모양새로밖에 보이지 않아. 내 말이 틀렸나?”

당진우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반박할 논리를 생각해냈다.

“인연을 끊을 때 당가의 무공을 쓰는 것만 허락했지, 본가의 재산인 독령까지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이제 와서 그 독령이란 걸 회수하겠다는 거야?”

“예.”

“그 독령이란 게 당기준의 단전에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건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야. 독령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건지나 말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독령이 어디로 간 건지 추적을 하게 될 겁니다.”

“추적한 끝에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걸 알아내면?”

“돌려달라고 할 겁니다.”

“강압적인 방법도 쓸 건가?”

“몇 번을 설득해도 안 통한다면 쓸 의향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되찾고 싶나 보네.”

“가문의 숙원이라서 그렇습니다.”

“가문의 숙원이라……. 그러면 초대에 응하도록 하지.”

“저, 정말입니까?”

“대신 아까 말한 두 가지 조건들에 하나 더 추가해야 돼.”

“어떤 조건을…….”

“두 가지 조건에 대해 묻는 거야?”

“두 가지 조건과 추가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몰라서 묻는 겁니다.”

“돈이랑 무공에 새로운 조건으로 독령인지 뭔지가 발견 안 된다고 우리 탓하지를 말고, 약속한 것들을 지키라는 게 추가되어야 한다고.”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방문은 처리해야 할 일이 다 끝나면 한 달에서 한 달 반쯤 지날 테니 그때 출발하든가 할게.”

남은 기간에 백서휘는 학무관을 열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봐.”

당진우가 나가고 백서휘는 집무실에 혼자 남아 생각에 잠겼다.

“당기준에게 독령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이동한 경로를 숨긴다면 다시는 나나 오룡단을 귀찮게 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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