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관-126화 (126/202)

귀환무관 126화

백서휘 일행과 무림맹 측 사람들은 연회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도련 측 사람들이 오길 기다렸다.

반각이 조금 안 되게 흘렀을까.

종리혁이 일곱 문파의 문주들과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무림맹 측 인물들과 오룡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귀찮은데.

백서휘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일어나려는데 종리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어도 된다. 너라면 그럴 자격이 있어.”

일곱 문파의 문주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자에겐 그에 맞는 대접이 필요한 법이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세월을 뛰어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일곱 문파의 문주 중 하나가 불만을 토로했다.

“나도 그리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근데 세월을 뛰어넘는 천재도 세상엔 있더군.”

백서휘가 자기를 싸고도는 종리혁을 이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앉지.”

종리혁과 일곱 문파의 문주들이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연회장의 문이 열리며 추종호와 나머지 문파 문주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종리혁의 옆에 있는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이들의 표정이 썩어 있는 데 반해, 추종호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소면도객’이란 별호값을 톡톡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회를 시작해라.”

“연회를 시작하라신다!”

악단이 노래를 연주하자 하녀들이 음식과 술을 내왔다.

다들 정신없이 먹는데 당기준과 당진우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식에 이상이 있나?’

혀에 온 신경을 집중해 봤지만, 요리들이 더 맛있게 느껴질 뿐이었다.

맛 자체를 느끼기 힘든 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눈을 감고 몸을 관조해 봤다.

독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단전에 있는 독령이 잠잠했다.

‘독은 없어.’

백서휘는 당기준과 당진우에게 향했던 관심을 접었다.

그때였다.

악단이 연주하는 노래가 바뀌더니 무희들이 앞으로 나왔다.

무희들은 살랑살랑 몸을 좌우로 흔들며 춤을 추었다.

주변의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며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무희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다들 무희에 정신이 팔려 있네?’

본격적으로 종전 협정에 들어가기 전에 종리혁의 의향을 알아볼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적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백서휘는 바로 종리혁에게 전음을 날렸다.

『잠깐 밖에 나가서 이야기 좀 하는 게 어때?』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따로 하면 안 되나?』

종리혁 역시 다른 이들처럼 무희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아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래도 돈 받은 값은 해야지.’

백서휘는 다시 전음을 날려 일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중요한 이야기야.』

『뭐 얼마나 중요하길래 이러는 거야? 설마 연회 중간에 종전 협정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

『잘 아네.』

『진짜로 종전 협정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본격적으로 하자는 건 아니야. 그냥 의향이 어떤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 정도라면 지금 여기서 전음으로 얘기해도 되겠네. 의향이 아예 없지는 않아.』

『아예 없지 않다고? 진짜?』

『그래.』

백서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종리혁을 바라봤다.

종전하지 않음으로써 사도련이 얻을 이득을 생각하면 극렬하게 반대하거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여야 했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니.

종리혁에게 자신이 모르는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무희를 더 집중해서 보려고 대충 말한 건가?’

백서휘는 다시 한번 전음을 날렸다.

『무희 때문에 대충 대답한 거지?』

『나도 한 집단의 수장이다. 종전 협정처럼 중대한 사안을 가볍게 얘기하지는 않아.』

『그럼 진심으로 종전 협정을 할 의향이 있다는 거야?』

『조건만 맞으면 종전 협정 서류에 수결을 해줄게.』

『어떤 조건?』

『최소한 성 하나 정도는 비워줘야지.』

『그 정도로는 사도련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텐데?』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말이 안 되잖아. 모두를 만족할 수 없는데 종전 협정을 맺겠다니.』

『왜 말이 안 되지?』

『그럼 진짜로 아무 성이든 비워주면 그걸로 만족하겠다는 거야?』

『그래.』

『왜지?』

『……내 편이 된 놈들만 챙겨줘도 되니까.』

바로 말하지 않고 시간을 끈 걸 보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게 분명했다.

백서휘의 예상처럼 종리혁에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남들에게는 절대 밝히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종리혁은 가까운 미래에 백서휘와 종리연이 혼인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종리연은 중원제일미를 노릴 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성격도 둥글둥글한 편이라 사도련 내에서도 남자들의 구애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렇게 뛰어난 종리연이 본격적으로 유혹하면 백서휘는 무조건 넘어 올 거라고 종리혁은 생각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기름을 부은 건 종리연이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그녀는 백서휘와의 관계에 진전이 있다는 서신을 정기적으로 보냈고, 딸이 절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한 종리혁은 미래에 사위가 될 백서휘의 말을 웬만하면 들어주겠단 마음을 먹었다.

『사실대로 말하지?』

『난 사실대로 말했다. 믿지 못하겠다면 종전은 없던 일로…….』

『좋아, 어차피 내 입장에선 종전 협상만 해주면 되는 거니까 더 캐묻진 않겠어. 대신 종전 협정 확실히 하는 거다?』

『그래.』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연회를 즐기는 데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고 연회가 끝이 나자, 백서휘 일행과 무림맹 측 인물들은 하녀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그윽한 향기가 나는 향이 피워져 있었다.

“이 향은 뭐지?”

“피로회복에 좋은 향입니다.”

“그래? 음…….”

“안내를 마쳤으니 저는 가보겠습니다. 혹시 시키실 일이 있다면 여기 있는 종을 울려주십시오.”

“그러지.”

불침번을 설 정신도 없이 다들 깊이 잠들었다.

백서휘는 독실로 들어가 침상에 몸을 뉘었다.

신경 쓸 게 많아서일까?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단전에 있는 독령이 꾸물꾸물 움직였다.

꺼림칙한 느낌에 백서휘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부를 관조했다.

‘이건 또 뭐야?’

잠자코 관찰해 보니 숨을 들이쉴 때마다 독기가 몸에 생겼다가 독령에 의해 사라졌다.

‘뭐 때문에 이러는……. 아! 향 때문이구나!’

코가 향기에 익숙해져서 뒤늦게 눈치채고 말았다.

‘종리혁 이 개자식! 종전 의향이 있다고 해놓고 이렇게 뒤통수를 쳐?’

독령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백서휘는 콧김을 씩씩거리며 향을 다 뽑아 껐다.

그때 복면을 쓴 자들이 숙소에 들이닥쳤다.

“다들 일어나! 습격이다!”

백서휘의 외침에 다들 깜짝 놀라 일어나 무기를 찾았다.

“매, 맹주 대리님! 공력이 흩어져서 단전에 뭉쳐지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아무래도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산공독에 당한 것 같았다.

“다들 내 뒤로 물러나!”

무림맹이고, 오룡단이고 가릴 것 없이 백서휘 쪽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문제는 입구 근처에서 잤던 몇몇 이들이었다.

산공독에 중독되어 보법을 쓰지 못하는데다 복면인과의 거리까지 가까워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이!”

백서휘는 어검술로 검을 조종하는 동시에 난화만천수를 펼쳐 복면인들을 공격했다.

“어, 어떻게 공력을……!”

“분, 분명 화경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도 공력을 제대로 모을 수 없게 된다던데!”

“누가? 종리혁이 그래? 어? 그 개자식이 그랬냐고!”

백서휘가 화풀이할 생각으로 복면인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죽였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제갈진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놈들 련주 쪽 사람이 아닙니다!”

“종리혁 쪽 사람이 아니라고?”

“일곱 문파의 무공을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확실해?”

“복면을 다 까보면 연회에서 부련주인 추종호 쪽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 남은 적까지 죽이고 복면을 까봤다.

“제기랄! 진짜 추종호 쪽 사람들이잖아? 이러면 종리혁도 위험한 거 아니야?”

“우리가 곁다리고 그쪽이 원래 목표일 겁니다.”

종전 협정 이야기를 거의 끝내놨는데 이제 와서 종리혁이 죽으면 말짱 황이었다.

“젠장!”

백서휘는 밖으로 나가면서 기감을 최대한계까지 증폭시켰다.

기감의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종리혁이 잡혔다.

‘내가 갈 때까지 최대한 버텨라!’

백서휘는 응룡비천신법을 펼쳐 이동했다.

전력을 다해 움직이니 종리혁이 있는 곳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내 오늘 네놈과 일곱 개새끼를 죽여 사도련에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

“하하하! 정의?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우리 근본이 뭔지 잊은 거냐? 사파면 사파답게 이권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해라.”

종리혁은 말을 하는 와중에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백서휘를 보게 됐다.

행운이 따르는지 추종호나 그를 따르는 문주들은 몸을 틀고 있어 백서휘가 오는지 모르고 있었다.

종리혁은 살기 위해 시간을 끌 결심을 했다.

“그래, 이권 때문에 그런 거 맞다! 너희들이 주는 부스러기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도를 빼 들었다! 됐느냐!”

“아, 아직 안 됐다! 어차피 갈 놈이니 궁금증이나 풀어다오.”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겠다는 거냐? 그것도 천하의 종리혁이?”

추종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생각하든 좋으니 내 질문에나 대답해라. 왜 다른 때도 아니고 오늘 거사를 치른 거지?”

“무림맹에서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뜻이지?”

“무림맹에서 온 놈들은 사신(使臣)과 같은 존재다. 그들을 죽이면 무조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

“하나 더 궁금한 게 있…….”

“더는 못 봐준다! 그냥 죽어라!”

추종호가 도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이놈들!”

백서휘의 외침에 다들 그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추종호가 놀란 얼굴로 다른 문파의 문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저놈을 공격하시오. 종리혁처럼 공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니 쉽게 이길 수 있을 거요.”

열다섯 명의 복면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백서휘를 향해 돌격했다.

휙!

백서휘는 구천현현보를 전력으로 밟아 복면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종리혁의 앞이었다.

도를 휘두르는 추종호가 믿기 힘들단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공력을……?”

“유언은 거기까지만 듣겠어.”

백서휘는 추종호의 정수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를 단번에 베어버렸다.

추종호는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복면인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백서휘가 다시 한번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휙!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는 사선으로 경천신뢰를 펼쳤다.

번개처럼 빠른 검격에 세 놈의 몸이 일순간 두 개로 분리되었다.

나머지 복면인들이 기겁을 하며 도망가려 했다.

백서휘는 입구를 향해 달려가는 두 놈에게 검을 던졌다.

화살처럼 날아간 검은 두 놈의 배에 박혔다.

“크아악!”

“으윽!”

무기가 없는 백서휘를 보니 용기가 샘솟았나 보다.

두 놈이 검을 곧추세운 채 달려왔다.

백서휘는 코웃음을 치며 검이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검이 두 놈의 배에서 뽑히더니 다시 그의 손으로 날아갔다.

“이, 이기어검!”

“마, 말도 안 돼!”

전설로나 전해지는 기술을 본 두 놈이 돌격을 멈추었다.

“멍청한 놈들.”

백서휘는 작게 중얼거리며 광풍번천의 초식을 작게 펼쳤다.

두 놈의 몸이 열여섯 조각으로 분할됐다.

그것을 본 나머지 여덟 명은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의를 상실한 적을 잡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진기를 가득 담은 검으로 여덟 명의 사이를 내리쳤다.

‘회천만일!’

하늘을 돌리고 지는 해를 잡아당길 정도로 강한 힘이 여덟 명을 덮쳤다.

콰아앙!

여덟 명의 몸이 육편이 되어 온 사방으로 퍼졌다.

백서휘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지켜보고 있던 종리혁이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포옹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백서휘는 기겁하며 그를 떼어내려 했다.

“갑자기 왜 이래!”

“오! 우리 사위!”

“사위?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연이가 모른 척하라고 했지만,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어. 하하하하!”

종리혁은 끌어안았던 손을 풀더니 백서휘와 어깨동무를 했다.

“기껏 살린 목숨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적당히 해.”

“내 앞에서 연기는 그만해도 돼.”

“연기? 진짜 한번 배에 칼침 한번 맞아볼래?”

백서휘가 진심으로 살기를 내뿜자 종리혁은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 우리 연이랑 그렇고 그런 관계 아니었나?”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어…….”

“아주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종리연은 그냥 내 밑에 있는 사범 중 하나일 뿐이야. 나랑 어떤 감정적 교류도 없어.”

“여,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아무런 사이가 아니란 거야?”

“하늘에 맹세코 아무런 사이가 아니야.”

“그러면 우리 연이가 보낸 서신들은…….”

“걔가 무슨 서신을 보냈는데?”

“너랑 어딜 놀러 갔다고도 하고, 손을 잡았다느니 뭐 이런 것들을 보냈는데 그게 다 거짓이었다는…….”

“그래, 거짓이야.”

“여, 연이가 내게 거짓말을? 마, 말도 안 돼.”

종리혁은 추종호가 반란을 일으킨 것보다 종리연이 거짓말을 했단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느꼈다.

“뭐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걔랑은 아무 관계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백서휘는 그 어떤 때보다 단호하게 말했지만 종리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날 따라와.”

백서휘는 숙소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신이 남아 있는지 종리혁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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