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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25화 (125/202)

귀환무관 125화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정체불명의 고수가 누군지 알아야 했다.

“그 정체불명의 고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 수 있나?”

“무인을 보기만 하면 다 죽여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 그놈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뭐가 있는데?”

“시체를 통해 얻은 정보뿐입니다.”

“체형과 쓰는 무공 정도만 알아냈겠네.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고 권각법을 쓰는 자던가?”

“다른 지부에서 들으셨습니까?”

“아니.”

“설마 그자를 보시고…….”

“보기는 봤지. 아주 오래전에.”

“그자에 대해 아시는 게 있다면 그 정보를…….”

“줄게. 대신 내가 준 정보랑 일치하는 자인지 확인을 좀 해줘.”

“확인한 이후에 어떻게 알려드리면 될까요?”

종전 협정만 제대로 끝마치면 그 이후로는 무림맹 측 인원과 따로 다녀도 상관없었다.

‘남창에 좀 더 머물 각오를 하는 편이 좋겠어.’

원래 낚시란 건 인내의 싸움이었다.

손운산이란 대어를 낚으려면 진득하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했다.

“내가 나중에 여길 들를게. 그때 알려줘.”

“알겠습니다.”

백서휘는 머릿속으로 손운산의 특징을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강서성 지부장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됐다. 말해 줄게. 일단 그 정체불명 고수의 이름은 ‘손운산’이고 나이는 지금쯤이면 예순 살을 진작 넘었으니 미수(美壽)쯤 됐을 거야. 외모적 특징은 한쪽 눈이 없는 독안(獨眼)이고…….”

백서휘는 하오문의 강서성 지부장에게 손운산이란 걸 보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정도만 알려줘도 충분하지?”

“충분합니다.”

“그럼 가봐야겠다.”

백서휘는 품속에서 은자를 꺼내 정보료를 치르고는 일월객잔으로 갔다.

일월객잔으로 들어가니 오룡단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이상하게도 당기준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 불안함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왜 저러지? 무슨 일이 있나?’

그때 당기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냥 식사하면 안 되나?”

“당 동생은 관주님이 걱정되지도 않아?”

“그분에게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은데?”

“아니, 이건 강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잖아. 그냥 사람이 말도 없이 가버린 거니까 그러는 거지.”

말싸움이 시작되려 하자 남궁민은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입구 쪽으로 돌렸다.

“어? 관주님!”

다른 오룡단원들이 백서휘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서휘가 맞는 걸 확인하자 모두가 일어나서 그를 맞았다.

“너희들 뭐 하냐?”

“관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네.”

“왜?”

“말도 없이 사라지셨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남궁민은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누군가가 자신을 이리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니.

걱정을 끼친 게 미안하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죽은 스승이 했던 말이 백서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사람은 관계적 존재’라고 하며 자신에게 문주 자리를 물려주면 평범한 사람처럼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거라고 했었다.

수호문주의 의무에 짓눌려 소망을 이루지 못한 그와 다르게 자신은 절반 정도 이루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참 다행이었다.

‘역시 강하고 봐야 돼.’

자신이 소망을 반쯤 이룰 수 있었던 건 운도 따랐지만, 스승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일상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이것도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괜찮아지겠지.’

지금보다 더 경지를 높여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황보정석과 제갈선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너희들이 걱정할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다음부터는 내가 기다리라고 말할 때만 기다려. 알았어?”

“네.”

“다들 식사 했지?”

“안 했습니다.”

“나 때문에?”

“‘때문에’라기보다는 그냥 같이 식사하면 좋을 것 같아서 제가 기다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제갈선우가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했다.

“다음번부터는 그냥 식사 먼저 해.”

“알겠습니다.”

“밥 먹자.”

백서휘와 오룡단은 식사를 하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 * *

다음 날.

백서휘 일행과 무림맹 측 인물들이 사도련에 들이닥쳤다.

남창에 온 걸 모를 리 없다는 계산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도련은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백서휘 일행과 무림맹 측 인물들을 맞았다.

심지어 사도련은 왜 남창에 온 건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무림맹 외부에 종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도련에 오신 걸 환영하외다. 나는 부련주직을 맡은 추종호라고 하오.”

출발 전에 사도련 측 중요 인물에 대해 간단히 들은 적이 있었다.

그중에 종리혁보다 주의해야 할 인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추종호였다.

그는 어떤 일에도 허허 웃는다고 하여 소면도객(笑面刀客)이란 별호로 불렸다.

‘이놈 사문이 어디더라? 아! 나찰도문(羅刹刀門)!’

들은 지 얼마 안 된 정보였기에 금방 기억이 났다.

나찰도문은 련주의 일곱 친위세력에 속하지 않는 문파였다.

‘이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종리혁과 그의 친위세력은 종리혁 본인만 신경 쓰면 됐다.

그에 반해 반련주파는 그들 사이에서도 생각과 이념, 계파가 달라서 신경 쓸 부분이 너무 많았다.

‘사실 이건 무림맹 쪽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미덥지 않단 말이지.’

백서휘는 추종호를 조심해야 한다고 뇌리에 새기고는 그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무림맹은 그쪽이 접객하고, 백 대협 쪽 일행은 내가 접객하겠네.”

부련주인 추종호의 말에 접객 담당자는 고개를 숙이고는 무림맹 측 인물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 했다.

‘맹주 대리로 왔으니 저놈들 안전도 생각해야겠지.’

백서휘가 괜히 수락했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동작 그만.”

추종호와 접객 담당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를 의도적으로 갈라놓으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한곳에 묵기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니 양해해주시오.”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얼굴과 다르게 추종호의 말투는 지나치게 딱딱했다.

“그니까 이건 순전히 내 오해다? 아무런 의도가 없이 그냥 한곳에 다 몰아넣기엔 인원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다?”

“그렇소.”

“지금 나랑 장난해? 코딱지만 한 객잔도 아니고 넓디넓은 사도련 안에서 끽해야 2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한곳에 묵을 곳이 없다고? 누굴 지금 개호구로 아나.”

“정말 없어서 그런 거니 양해를 좀 해주는 게 어떻겠소?”

“우리가 좁게 쓸 테니까 한 곳에 묵게 해줘. 이것도 안 되면 우리는 어제 묵었던 곳에 머물 거야.”

추종호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곧 다시 미소를 띠웠다,

“그럼 한곳에 머물 수 있게 준비해드리겠소. 안내해드리게.”

“알겠습니다.”

추종호는 접객 답당자에게 모두를 맡기고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저녁에 연회가 있을 예정인데 참석해줄 수 있겠소?”

원수에게 연회를 열어줄 정도로 사도련 쪽 인물들이 자비심이 깊던가?

아니었다.

음모와 모략의 냄새가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 났다.

“꼭 참여해야 하는 건 아니지?”

“그렇긴 하지만 종전 협정을 하고 싶다면 참석하시는 게 나을 거요.”

“왜 그래야 하지?”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우리 련주님의 속이 그리 넓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소.”

“협박인가?”

“하하!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그냥 많은 분이 참석해 주셨으면 해서 농담 삼아 한 말이니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소.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소.”

추종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겠어.’

백서휘 일행과 무림맹 측 인원들은 접객 담당자의 뒤를 따라갔다.

“이곳입니다.”

추종호의 말과는 다르게 숙소는 모두가 머물 만큼 컸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 맞네.’

종리혁의 뜻인지, 추종호의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 중 하나는 종전 협정을 반기지 않는 게 분명했다.

‘휴전 협정이 끝나고 신나게 두들겨 패는 일만 남았는데 종전 협정에 응해 줄 리가 없지.’

영역을 넓히면서 얻게 되는 유·무형적 가치의 이득이 있는데 사도련 쪽에서도 그걸 포기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물론 백서휘는 사도련이 이득을 강제로 포기하게 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누군가가 천만금을 주더라도 이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이해득실에 민감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민감하게 여기는 게 힘의 균형이었다.

지금 여기서 사도련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정파 쪽은 한 세대 이상 고개를 들기 힘들어지게 된다.

‘힘의 균형은 유지되어야 돼.’

암중세력으로부터 중원을 지키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게 만드는 게 수호문주가 해야 할 일이었다.

* * *

“련주님, 결행 일은 오늘 밤입니까?”

“아직 종리혁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네. 실수로라도 입 밖으로 나오면 곤욕을 치를 수 있으니 련주란 호칭은 조심해서 말하게나.”

추종호가 껄껄 웃으며 못 말린다는 듯 부하의 팔뚝을 약하게 때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하지 않아도 되네. 내가 곧 련주 자리에 오르는 건 맞는 사실 아닌가.”

“‘곧’이면 결행일이…….”

“오늘 밤에 련주와 그놈이 키우는 일곱 마리의 개새끼들을 모두 처리할 걸세.”

“무림맹 놈들은 어떡합니까?”

“그놈들도 같이 처리해야지.”

추종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냥 처리하지 않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 되네. 무조건 처리하게.”

“그 맹주 대리로 온 자가 화경의 경지에 이르러서 처리하는 것보다는 그냥 두는 게…….”

“그 건방진 놈이 화경이라고?”

“네.”

추종호가 한참을 생각한 후에 다시금 입을 열었다.

“종리혁에게 쓰기로 한 독이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도 통하는 거로 아는데?”

“그 독은 한 사람에게 쓸 정도만 있는 데다, 중독시키려면 독을 먹은 상태에서 향을 맡게 해야…….”

“난도가 높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네.”

“그러면 종리혁에게만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제일 확실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래도 둘 다 처리해야 하네. 종리혁에게 반을, 그 건방진 놈에게 반을 쓰게나.”

련주 자리에 오른 이후에 무림맹과의 전쟁에서 확실하게 승리를 하려면 화경의 경지에 오른 백서휘를 죽일 필요가 있었다.

“끄응.”

“‘독을 준 자들’의 설명이 맞다면 시간이 짧아진다뿐이지 공력이 흩어지는 효과는 줄어들지 않을 걸세. 걱정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연회에서 보세나.”

“예!”

시간이 흐르고 연회가 열릴 시간이 되었다.

추종호는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장에 가까워질수록 그와 함께하기로 한 문주들이 붙어 일행의 규모가 점점 커졌다.

“저거 련주 아닙니까?”

종리혁과 일곱 문파의 문주들이 연회장으로 가다 말고 추종호가 있는 곳으로 왔다.

“여전히 인기가 많군그래.”

“하하! 제게 덕장(德將)의 기질이 있나 봅니다.”

“우리 모두 칼날 위에 사는 자들 아닌가. 그러면 덕장보다는 맹장(猛將)이나 용장(勇將)의 기질이 있어야지.”

“저도 그러길 원했으나 성격이 이런 걸 어떡하겠습니까.”

“그래서 자네가 부련주인 거야.”

“하하! 련주님 말이 맞습니다. 제 깜냥이 그것밖엔 안 되나 봅니다.”

추종호는 억지로 웃었다.

“설마 화난 건가?”

“화 안 났습니다.”

“화난 것 같은데?”

“하하! 정말 안 났으니까 그만하십시오.”

“진짜 화내면 감당하기 어려우니 여기까지만 해야지. 자, 다들 들어가세나.”

추종호는 입만 웃은 채로 종리혁과 일곱 문주들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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