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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24화 (124/202)

귀환무관 124화

“아직 안 온 사람이나 빠뜨린 물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 마차에 이상 있나도 점검하고.”

오룡단은 바쁘게 돌아다니며 백서휘의 명령을 수행했다.

다행히 사람도 다 왔고, 물건도 제대로 실었으며, 마차에도 이상이 없었다.

“확실히 준비 끝난 거 맞지?”

“예!”

“그럼, 뭐 하고 있어. 당장 출발하지 않고!”

“출발!”

백서휘 일행과 무림맹 소속의 사람들이 탄 마차들이 남창을 향해 달려갔다.

쉬지 않고 달리던 마차들은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불 피우고 천막들 세워.”

다른 사람들이 밤을 보낼 준비를 하는 동안, 백서휘는 마차의 지붕 위에 누워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몇몇 이들이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게 전부였다.

항의를 한다거나 욕을 할 생각은 그들도 하지 못했다.

별을 보며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누가 백서휘를 건드렸다.

오룡단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어 정좌했다.

어디서 본 얼굴을 한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도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스치듯 본 사람인 게 분명했다.

백서휘는 관심을 끄고 다시 지붕 위에 드러누우려고 했다.

‘잠깐! 우리 일행에 여자면 그 소검후 하나뿐이잖아?’

여자의 정체를 알아내니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

“오랜만이다?”

“기억하시네요?”

“기억은 못 했는데 일행에 여자라고는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게 생각나더라고. 소검후 한주희 맞지?”

“맞아요.”

“어떻게 나온 거야?”

“배 타고 나왔죠.”

“그래, 바다를 건너려면 배를 타야지. 근데 지금 내가 묻는 게 그게 아니잖아.”

“그럼 어떤 걸 묻는 건데요?”

“검후의 진전을 모두 이어받은 이후에만 보타도에서 나올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아서.”

“아! 예전에는 그랬는데 이젠 아니에요. 맹주 대리님이 왔다 가신 이후에 바뀌었거든요.”

“맹주 대리? 그런 우스꽝스러운 직함 말고 그냥 ‘관주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내가 왔다 간 이후에 바뀌었단 건 또 무슨 소리야.”

“관주님이 돌아가고 며칠 동안 스승님께서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하셨어요.”

“무슨 고민? 무공?”

“보타문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요.”

“나는 그런 거창한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없는데?”

“원래 예전부터 생각한 것들도 있고, 관주님과의 비무를 하면서 느끼게 된 것들도 있다고 해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커다란 화두가 된 거죠. 그 화두를 내내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보타문의 문호를 조금씩 개방하고 육지에서의 활동도 활발히 해야겠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무공이 발전하고, 기부금이 늘 테니까요.”

“잘 생각했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그거랑 날 툭툭 건드린 건 좀 다른 문제 같은데? 왜 건드렸어?”

“바, 반가워서요. 여기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관주님밖에 없거든요.”

“육지에서 활동을 활발히 한 거 아니었어?”

“고작 몇 개월만으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럼 중소 문파가 널 왜 추천한 거야?”

“제가 하겠다고 나선 것도 있고…….”

한주희는 바로 얘기하지 않고 제갈중헌을 살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육성 대신 전음으로 이야기를 했다.

『오대세가한테 된통 당하는 바람에 여력이 있는 문파가 몇 없어서 제가 관주님을 따라갈 수 있게 된 거예요.』

하백상을 죽인 눈덩이가 이렇게까지 굴러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누군가 그 선택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도 하백상의 목을 칠 것이다.

대신 모든 세력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준비를 좀 할 것 같았다.

“인사했으니 이제 용건은 끝인가?”

“……네.”

“그럼 가서 일해.”

백서휘는 다시 마차 지붕 위에 드러누워 별들을 봤다.

부모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장사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부모님에 대한 정보도 알아보긴 해야 하는데…….’

하오문에 가서 정보를 열어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 학무관을 열기 전에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관주님! 준비 다 끝났습니다!”

“맹주 대리님! 저희도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불침번 정한 이후에는 다들 알아서들 해. 배고픈 사람은 식사하고, 피곤한 사람은 자고, 별을 보고 싶은 사람은 별을 보고…… 옥진은 내 수발을 든다.”

“예?”

옥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이쪽을 쳐다봤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냐고 묻는 듯한 그의 눈빛이 백서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은 말로 할 때 튀어 와.”

백서휘가 으르렁거리며 말하니 옥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처음에 왜 바로 안 오고 쳐다보기만 했지?”

“자,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조금 전처럼 어리바리하게 굴면…….”

백서휘가 검지로 목을 긋는 듯한 시늉을 하니 옥진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해했어?”

“해, 했습니다. 이해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숙영지에 있는 모든 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옥진을 바라봤다.

옥진이 누구인가.

무당칠협의 대형인 백광의 제자이자 구파일방의 젊은 무인들이 모인 십익의 회주 아닌가.

그런 그가 지금 군에 막 입대한 신병처럼 굴고 있었다.

“맹주 대리가 괜히 맹주 대리가 된 게 아니었나 봐.”

“옥진이 저럴 줄은 몰랐네.”

옥진은 직접적으로 패악질을 부리지는 않았으나, 재수 없게 행동한 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무림맹만이 아니라 무당파, 십익 내에서도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숙영지에 있는 자들 중에도 옥진을 싫어하는 사람이 서너 명 있었다.

그들은 옥진이 백서휘의 수발을 드는 것을 보며 기분 좋게 식사 준비를 했다.

“배고프네.”

“드실 음식을 가져올까요?”

“맛있는 거로.”

“아, 알겠습니다.”

하나만 가져가면 실패할 거라 생각한 옥진은 모닥불들을 돌아다니며 요리를 구걸했다.

몇몇은 옥진을 싫어해 단칼에 거절했고 몇몇은 인원수에 맞게 만들어서 거절했다.

그러다 보니 계획과 다르게 육포가 들어간 죽 하나가 전부였다.

옥진은 조심스럽게 걸어가 그 죽이 든 그릇을 백서휘에게 건넸다.

“내가 가져오란 건 맛있는 건데?”

“가, 가져올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부탁을 제대로 들어줄 의지가 없나 보네.”

“아, 아닙니다.”

옥진을 싫어하는 이들이 숨죽여 웃으며 이쪽을 바라봤다.

웃음소리가 들리자 옥진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백서휘에겐 덤빌 자신이 조금도 없지만, 다른 이들에겐 야차가 될 자신이 있었다.

“나 때리려고 그렇게 주먹에 힘 준 거야?”

“아, 아닙니다.”

옥진은 손사래를 치며 공격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오룡단!”

“네!”

숙영지 곳곳에 흩어져 있던 오룡단이 백서휘의 한마디에 집합했다.

“무슨 일로 부른 건지 알 것 같은 사람 없어?”

제갈선우가 하늘 높이 손을 들어 올렸다.

“뭔데?”

“저놈 교육하라고 부르신 거 아닙니까?”

“저, 저놈?”

옥진이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육이 덜된 게 보이지?”

“예!”

“가서 교육 좀 잘 해봐.”

“예!”

쫓겨났어도 오대세가의 인물이라 그런지 구파일방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많았다.

“흐흐흐! 넌 이제 죽었다!”

“너? 이 조그마한…….”

퍽!

남궁혁이 한 대 때리자마자 나머지 오룡단원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인의 장벽을 만들었다.

“여기서 교육받으면 네 위신이 땅에 떨어질 텐데 그래도 좋아?”

“다, 다른 곳에서 교육받겠소.”

“조용히 따라와.”

옥진과 오룡단은 숙영지에서 좀 떨어진 숲으로 들어갔다.

“으아아악!”

옥진을 싫어하는 이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식사를 했다.

* * *

여정을 함께한 모두가 무공을 오랜 시간 동안 연마한 사람들이라 위험한 일 없이 남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는 어디야?”

“일월객잔이라고 들었습니다.”

“확실해?”

“다시 한번 물어보고 올까요?”

“아니, 됐다. 내가 나중에 알아서 찾아올게.”

“예? 알아서 찾아온다는 게 무슨 말씀…… 어? 관주님!”

제갈진천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백서휘를 멍하니 쳐다만 봤다.

백서휘는 하오문의 강서성 지부를 찾아갔다.

다른 때처럼 천환역형공으로 얼굴을 바꾸거나 은형잠종술을 써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움직였으니 자신에 대한 정보가 어디든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저는 잘 지냈습죠. 귀빈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여전히 내 정보는 안 보는 모양이네.”

“그래야 귀빈님께 귀염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똑똑하군그래.”

“하하!”

강서성 지부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사도련에 대한 정보란 정보는 모두 가져와 봐.”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많아서 가져오기가 힘듭니다.”

“그러면…… 이번 종전 협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는 어때?”

“그거라면 분류에 도움이 되긴 하겠습니다. 바로 가져다드리죠.”

강서성 지부장은 여러 개의 두루마리를 백서휘에게 건넸다.

백서휘는 그 두루마리들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두루마리에는 사도련 내부에 존재하는 파벌에 관한 것과 종리혁에 관한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사도련 내에 파벌이 존재한다고? 이게 가능한 소리야? 사실상 이제 사도련은 종리혁의 사조직이 되었잖아.”

“수평적 조직인 련(聯)에서 수직형 조직인 벌(閥)처럼 바뀌었다는 말이 많긴 하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

“하하! 그게 문제인 겁니다. 종리혁과 그의 친위세력은 좋을지 몰라도 밑에 있는 다른 조직들은…….”

“거지 같겠네.”

“맞습니다.”

“그 다른 조직이 얼마나 되는데?”

“처음에는 얼마 안 됐습니다. 그런데 종리혁이 전횡을 일삼다 보니 내부에 독버섯처럼 자라나서 이제는 친위세력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문파가 반련주파라고 보시면 됩니다.”

“종리혁은 알고 있나?”

“알고 있긴 한데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신경을 안 쓴다고? 내부에 적이 있는데?”

“종리혁의 사문인 흑검문(黑劍門)과 친위세력 일곱 곳이 반련주파 쪽과 싸우면 비등비등하거나 종리혁 쪽이 조금 더 강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면 신경 쓸 만한데…….”

“반련주파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들 내부에서도 다툼이 있고 그걸 종리혁이 가끔 조장하기도 하거든요.”

“정파든 사파든 참 파벌을 열심히 나누네. 진짜 새외에서 쳐들어오거나 새로운 세력이 생기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북해빙궁이고 마교고 다 자기들 손에 무너졌는데요”

수호문에 대해 모르는 범인(凡人)들은 북해빙궁이고, 마교고, 포달랍궁이고 다 내분으로 무너진 줄 알고 있었다.

‘입 간지럽네.’

얘기하고 싶지만 믿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기에 그냥 속에 묻어두기로 마음먹었다.

“파벌 문제는 됐고 이거나 설명해 봐. 종리혁이 소성을 이뤘다는 건 무슨 뜻으로 적어놓은 거야?”

“저희 측에서는 완전한 화경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추측 중입니다.”

“이런…… 골치 아파지겠군.”

종리혁이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가져다준 것 외에 내가 알아야 할 정보는 없나?”

“종전 협정에 관한 것 말입니까?”

“그것 외에도.”

“음…… 아! 정체불명의 고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정체불명의 고수? 대어가 미끼를 물었군.”

백서휘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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