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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18화 (118/202)

귀환무관 118화

중독자들의 치료가 끝나갈 무렵, 백서휘와 백은하 가족, 우염상이 함께 살 장원이 완공되었다.

기관진식을 설치할 공간을 마련하느라 다른 장원들처럼 방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연무장이나 마구간처럼 있을 만한 건 다 있었다.

‘연무장을 써봐야겠다.’

백서휘는 장원에 새로 지어진 연무장으로 향했다.

널따란 연무장엔 단단한 청석이 질서정연하게 깔려 있었다.

백서휘는 한동안 연무장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구석에 세워진 수십 개의 목검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았다.

매번 진검만 손에 쥐다가 오랜만에 목검을 잡으니 기분이 생경했다.

목검도 검이라고 들고만 있는데 감각들이 날카로워지고 서늘해진다.

백서휘는 연무장의 중심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몸을 좀 풀어볼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목검을 가로로 휘두르고, 세로로 내리긋고, 사선으로 벴다.

몸을 푸는 용도라 일부러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백서휘의 검은 웬만한 무인들은 다 때려잡을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다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시…….”

“서휘야!”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백은하가 연무장의 입구에서 이쪽을 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백서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연무장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널 찾아왔어.”

“손님? 누구?”

“당가에서 왔다는 사람 있잖아. 그 사람이 장원으로 왔어.”

“무슨 일로 왔대?”

“전해줄 물건도 있고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던데.”

당진우가 자신에게 줄 물건은 천왕침통 말고는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물건을 받는다는 사실에 백서휘는 살짝 들떴다.

“그놈 지금 어디 있어?”

“일단 응접실에 데려다 놨어.”

“뭐 요구하는 거는 없지?”

“무슨 요구?”

“아니야. 됐어.”

백서휘는 잰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잠시 후, 응접실에 도착한 그는 미닫이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혔다.

깜짝 놀란 당진우가 차를 먹다 말고 그를 올려다봤다.

“천왕침통은?”

백서휘는 물어보면서 응접실 안을 꼼꼼히 훑어봤다.

당진우는 찻잔을 내려놓고 품속에 손을 넣었다.

밖으로 꺼낸 그의 손에는 다섯 치(약 15cm) 정도 되어 보이는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여깄습니다.”

“이게 그 유명하다는 천왕침통이야?”

“그렇습니다.”

“사용법은?”

“구멍이 나 있는 곳을 적에게 겨누고 가운데에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막대를 누르면 안에 있는 침이 발사됩니다.”

“한 번 쏘면 끝인가?”

“내장된 침이 두 개라 최대 두 번까지 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침이 없어서 못 쏜다는 거지?”

“그런 것도 있지만 몸체가 침이 발사되는 힘을 버티질 못합니다.”

“주의할 점 있나?”

“사람을 향해 겨누지 마십시오. 잘못돼서 발사되면 맞은 상대는 무조건 죽습니다.”

“침 하나에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독이라도 바른 건가?”

“아, 아닙니다.”

당진우가 깜짝 놀라 움찔하는 걸 백서휘의 두 눈은 놓치지 않았다.

“고맙게 쓰도록 하지.”

“……이제 일정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일정을 논의까지 할 필요가 있나? 무한에 있는 무림맹에 들렀다가 맹주랑 실무진들을……. 잠깐, 지금 누가 맹주 자리에 있지?”

“건곤쌍검(乾坤雙劍) 모용중광 대협이 맹주직을 맡고 계십니다.”

“맹주 대리가 아니라 맹주 맞지?”

“예.”

백서휘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맹주는 무림맹의 주도권이 어떤 파벌에 있는지 알려주는 상징적인 직함이었다.

그런 자리를 잡음 하나 없이 모용중광이란 자가 먹었다는 건 오대세가에서 무림맹의 장악을 다 끝냈단 소리였다.

‘구파일방은 도대체 뭘 한 건지 궁금하네.’

나중에 따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백서휘는 팔짱을 풀었다.

“했던 말을 끝까지 하자면, 무한에 있는 무림맹에 들렀다가 맹주와 실무진들과 함께 사도련이 있는 남창으로 가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그러면 따로 논의할 필요도 없겠네. 그냥 후딱 끝내고 각자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고.”

“출발 시간은 그래도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는 언제 출발하길 원하는데?”

“준비할 게 많지 않다면 내일 바로 떠났으면 합니다.”

“내일은 너무 이르지 않나. 여기서 무한으로 갔다가 남창으로 또 가면 꽤 긴 여정이 될 텐데 준비를 좀 해야지.”

“그러면 언제가 괜찮으십니까?”

“일주일 후 어때?”

“휴전이 끝나는 날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남창까지 가면서 생길 변수를 생각하면 좀 더 빠르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흘 후에 가지, 뭐.”

“집결 시간은 그럼 언제가 좋으십니까?”

“사정시(巳正時, 오전 10시 30분).”

“사정시는 너무 늦지 않겠습니까?”

“이르게 출발하나 늦게 출발하나 무한까지는 어차피 같은 날에 도착할 거야.”

“그래도…….”

“이게 맘에 안 들면 따로 가든가.”

“저, 저희가 관주님 일정에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모레 사정시에 학무관 앞으로 와.”

“예.”

당진우와 그의 심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하고 장원을 떠났다.

* * *

모두가 잠든 시각.

당진우와 그의 심복은 비밀리에 학무관의 기숙사로 향했다.

“그놈이 초대에 응할까요?”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그럼 저희가 가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의미가 없지는 않아. 응할 가능성이 작다뿐이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그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겁니까? 만약에 그놈이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면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어. 계속 두드리고 조건을 바꿔 가면 그놈도 응하게 될 거다.”

“그놈이 가지고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쪽이 너무 밑지는 장사 같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라.”

당진우와 그의 심복은 연무장을 가로질러 학무관의 기숙사에 도착했다.

다른 오룡단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들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저 방입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기다려.』

다른 사람들 모르게 은밀히 찾아온 거라 종을 칠 수 없었다.

당진우는 잠시 고민하다 안쪽으로 살기를 미약하게 쏘아 보냈다.

당기준이 부리나케 튀어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이야기 좀 하지.』

『이야기?』

『네게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다. 너를 당가에 초대해…….』

『꺼져.』

당기준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지도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아버지와 다른 어른들이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 한다.』

당진우가 황급히 전음을 날려 당기준을 멈춰 세웠다.

『사과로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해?』

『사과를 원한 거 아니었나?』

『겨우 사과 따위로 내가 만족할 것 같아?』

당기준의 몸에서 유형화된 살기가 피어올랐다.

당진우는 살기에 대항하기 위해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때 그의 심복이 후다닥 달려와 당진우의 앞에 섰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위험합니…….』

『어서!』

당진우의 심복은 허튼 짓 하지 말라는 의미로 당기준을 노려본 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혈육 간의 정이 없다면 거래 상대로 생각하는 건 어때? 네가 초대에 응하겠다고만 하면 돈이든 여자든 무공이든 원하는 건 뭐든 주겠어.』

당기준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살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차가운 이성이 그에게 당진우의 제안에 뭔가 있다고 경고했다.

『아니, 넌 내가 원하는 걸 못 들어줘.』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고를 따지는 건 내 일이야. 너는 원하는 걸 말하기만 하면 돼.』

당가의 멸문을 바란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당기준은 참았다.

『……좋아, 말해주지.』

당기준은 살기를 갈무리하고 심호흡을 두어 번 했다.

드디어 넘어왔단 생각에 당진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건지 솔직히 말해. 그러면 당가의 초대에 응하겠다.』

『꿍꿍이 같은 건 없다. 네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당진우의 왼쪽 눈썹이 아주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왼쪽 눈썹의 움직임은 거짓말할 때 저도 모르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당기준의 예리한 눈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여전하군.』

『무슨 말이지?』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버릇.』

정곡을 찔린 당진우가 움찔했다.

『무, 무슨 소리야. 거짓말이라니!』

『네 제안에 응하는 일은 없을 거다.』

당기준은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한 당진우는 그의 어깨를 향해 손을 쭉 내뻗었다.

당기준은 반사적으로 단검을 뽑아 당진우의 목에 겨누었다.

“죽고 싶은 거냐?”

당진우는 담담한 얼굴로 당기준을 바라봤다.

그때 당진우의 심복이 이전보다 빠르게 달려와서는 검첨을 당기준에게 향하게 했다.

“검 내려놔!”

당기준의 시선이 당진우의 심복에게로 향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죽고 싶지 않으면 검 내려놔!”

이전보다 성장한 터라 당기준이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두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당진우의 심복이 도발 아닌 도발을 하니 당기준으로서는 살의를 참기 힘들었다.

당진우의 심복은 당기준의 기도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다르단 걸 뒤늦게 눈치챘다.

“검 내려놔!”

“물러서라.”

“아까라면 몰라도 지금은 안 됩니다. 저는 소가주님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서!”

“죄송합니다.”

당진우의 심복은 당기준에게 검을 겨눈 채 꿋꿋이 서 있었다.

“지금 조용히 물러나면 보내줄 의사가 있나?”

“지금 내게 자비를 베풀라는 거냐?”

“그래.”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군.”

“내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관주님이 매우 곤란해질 거야. 너도 알잖아. 본가가 어떤 가문인지.”

당가의 힘은 조금도 두렵지 않지만, 백서휘는 두려웠다.

‘관주’란 이름을 듣자마자 당기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공포가 자극을 받았다.

차가운 이성이 다시 돌아오며 한계까지 차오른 살의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당기준이 천천히 단검을 회수하자 당진우와 그의 심복은 ‘그럼 그렇지’란 표정을 지었다.

백서휘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나 당가의 위세에는 못 미친다고 착각한 것이다.

“가라.”

당진우가 아주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의 심복은 끝까지 당기준을 경계하다가 밑으로 내려갔다.

“복수는 내 손으로 이루지 못하겠군…….”

당기준이 보아하니 당가는 백서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조금 전처럼 당가의 힘을 믿고 당진우가 까불다가 백서휘에게 징치당하는 미래가 당기준의 눈에는 보였다.

“오늘은 조금 편히 잘 수 있겠어.”

당기준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출발 당일.

백은하 가족과 우염상이 백서휘와 오룡단을 배웅하러 나왔다.

“이번에 가면 언제 오는 거야?”

백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사에서 무한으로 갔다가 무한에서 다시 남창으로 가고 거기서 헤어져서 따로 오면…….”

“오래 걸리겠구나.”

“금방 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럼 이번에 돌아오면 학무관을 여는 거지?”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러지 않을까.”

“빨리 열었으면 좋겠다.”

“자세한 얘기는 돌아와서 하자.”

“그래.”

백서휘는 정하진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무공을 모르는 자도 쓸 수 있는 암기입니다. 혹시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사용하세요.”

백서휘는 천왕침통을 정하진의 품에 넣어주고 마차에 올라탔다.

“갔다 올게!”

백서휘와 오룡단이 탄 마차와 당가의 마차는 호북성 무한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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