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10화
백서휘는 우염상이 기거하는 집을 찾았다.
우염상의 집은 중원 제일의 대장장이가 머무는 곳이라기엔 지나치게 낡고 허름했다.
그때 뒤쪽에서 익숙한 기감을 가진 자가 나타났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우염상이 양손에 식자재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백서휘는 우염상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서휘?”
우염상이 걸음을 바삐 놀려 백서휘에게 다가갔다.
“여긴 웬일이냐?”
“우 대인 만나러 왔지.”
“나를? 왜? 잠깐 조금 전에 너 ‘우 대인’이라고 한 거냐?”
“그런데?”
“너 나한테 부탁할 게 있구나. 그렇지? 안 그러면 네가 날 찾아올 리가 없지.”
“아니, 그렇게 말하면 진짜 내가 무슨 부탁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사람 같잖아.”
“그럼 이번엔 부탁 없이 순수하게 날 만나러 온 거 맞느냐?”
“그건 아니고……. 부탁이 있긴 해.”
백서휘는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럼 그렇지.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나를 찾은 것이냐.”
“집 짓는 것 좀 도와달라고.”
“집? 그건 나를 찾을 게 아니라 목장을 찾아가는 게 맞을 텐데?”
“집을 지을 때 기관도 같이 만들어야 돼서 그래.”
“기관? 갑자기 기관은 왜? 아! 저번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이구나.”
축융에 의해 집과 그 근방이 쑥대밭이 된 일은 장사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응, 안전을 위해서 기관진식을 같이 설치하려는데 기관을 만들어줄 사람이 우 대인 말고는 떠오르지 않더라고.”
“널린 게 대장장이다.”
“그들이 중원 제일은 아니니까.”
“부탁할 게 없을 때는 우 노괴, 우 노괴 거리면서 놀리더니, 부탁할 일이 있으니까 우 대인, 우 대인 거리면서 사람을 이렇게 띄워주는구나. 이러다가 하늘 위로 날아가겠다.”
“하하.”
“내가 기관을 만들기로 하면 품삯은 얼마나 쳐줄 거냐?”
“원하는 조건을 말해봐.”
“금액이 아니고 조건을?”
“응.”
우염상이 식자재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사 최고의 대장장이가 받는 품삯의 두 배를 받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새로 짓는다는 집에 방 한 칸을 내어다오.”
“방 한 칸을 내어달라고? 왜?”
“혼자 살기 적적해서 그런다.”
“음……. 품삯 부분은 내가 결정해도 되는데 뒤에 건 누나 부부한테 물어봐야 돼.”
“그럼, 내가 반찬을 만드는 동안 물어보고 오너라.”
“알았어.”
백은하는 방 한 칸을 내주는 걸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덕분에 우염상을 고용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홍 씨 부자랑 제갈선우만 섭외하면 되겠네.”
부탁을 했을 때 홍 씨 부자는 흔쾌히 수락한 반면,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던 제갈선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당기준에게 ‘벌칙’이 뭔지만 말해주면 되겠네.”
기숙사로 돌아온 백서휘는 당기준을 찾았다.
“찾으셨습니까?”
“벌칙 받아야 한다는 거 잊지 않았지?”
“……네.”
“원하는 벌칙이 있나?”
“되도록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벌칙을 하고 싶습니다.”
“그거 안 됐네. 이번에 네가 받을 벌칙은 너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벌칙이거든.”
백서휘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어떤 벌칙입니까?”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공사장에서 일꾼으로 일해.”
“알겠습니다.”
못하겠다고 말하거나 똥 씹은 표정을 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당기준은 쉽게 수긍했다.
“공사장은 우리 누나가 살던 집이 있던 자리에 있으니까 2주 후부터 그리로 가면 돼. 뭐, 더 질문할 거는 없지?”
“없습니다.”
“그럼 가봐.”
당기준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 * *
“그쪽은 이름이 뭐야?”
당기준은 이름을 물어본 이에게 시선을 잠시 줬다가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말 안 할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말 걸지 마라.”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오자 작업반장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른 일꾼이 있는 곳으로 갔다.
공사장을 떠나면 어차피 안 볼 사이라 당기준은 일꾼들이 자기를 뒷담화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건축 책임자인 홍선이 허리에 공구들을 찬 채로 일꾼들 앞에 나왔다.
그는 일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공사인지, 사고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주지시켰다.
“체조 끝나면 각자 맡은 일 시작하면 됩니다!”
당기준은 체조를 한 후 잡부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일하는 중에도 왜 다른 벌칙도 많은데 공사장 잡부로 일을 시킨 건지 추측했다.
‘조직구성원으로서 내가 협동이 부족해서 이런 걸 시키는 건가?’
일을 나온 새벽부터 점심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를 않았다.
당기준은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밥알을 억지로 목 너머로 넘기고 가죽 혁대처럼 질긴 고기를 씹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가 잠시 쉬고 있는데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자가 일꾼들에게 단환 같은 걸 나눠주고 있었다.
“먹기만 하면 힘이 솟구쳐 오르는 약이니까 다들 꼭꼭 씹어서 먹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저번에 이거 먹으니까 그날 온몸에 있던 통증이 다 사라지더라고. 몸 상태도 좋아지고 말이야.”
일꾼의 말만 들으면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었다.
그때 작업반장이 당기준을 발견하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먹을 거야?”
작업반장은 단환이 올라간 손바닥을 당기준 쪽으로 내밀었다.
당기준은 단환에서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필요 없다.”
“정말 안 먹어?”
“안 먹는다고 말했을 텐데?”
당기준이 날카롭게 말하자 작업반장이 구시렁거리며 다른 일꾼들에게로 갔다.
작업반장은 자기와 친한 자들에게 단환을 하나씩 뿌렸다.
“식사 시간 끝났습니다! 다시 일 시작하십시오!”
홍선이 놋쇠로 만든 종을 시끄럽게 울렸다.
일꾼들은 공사장으로 최대한 느긋하게 돌아갔다.
“일 시작 안 합니까? 단체로 품삯 깎이고 싶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늑장 피우면 싹 다 자를 겁니다.”
장사의 건축계에서 홍 씨 부자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일꾼들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참 나! 누가 일을 안 한다고 그러나.”
“듣겠어!”
“들으라지.”
“작업반장처럼 약 같은 거라도 나눠주고 저러면 또 몰라. 주는 거라고는 품삯 조금이 다면서 노예 부리듯 일을 시킨다니까.”
일꾼들이 힘든 일을 하는 걸 알고 있기에 홍선은 뒷담화를 들었음에도 가만히 있었다.
‘이걸 몇 달이나 해야 되는 거지? 잠깐 저 사람들은…….’
당기준은 일을 하면서 신기한 광경을 목도했다.
작업반장에게 약을 먹은 자들이 작업하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옮기는 데 네댓 명이 필요한 자재도 세 명이 옮겼고 그 일이 끝난 후에도 쉬지 않고 계속 일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 단환의 약효가 진짜로 있는 건가?’
사람의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약은 많았지만 무인들은 목숨을 각오하는 게 아닌 이상 먹는 일이 드물었다.
먹은 이후에 찾아오는 반동이 너무 커 무공을 잃거나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계속 지켜보면 어떤 반동이 찾아오는지 알겠지.’
당기준이 날카로운 눈으로 일꾼들의 얼굴을 기억해 뒀다.
다음 날.
작업반장이 휘적휘적 공사장으로 걸어왔다.
약을 먹었던 이들이 그에게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당기준은 멀찍이 서서 그들이 하는 짓을 관찰했다.
“어제 반장 덕분에 일 수월하게 했어! 항상 아프던 허리가 그날 약을 먹으니까 바로 사라졌다니까.”
“나도! 나도!”
“어? 자네도 그랬어? 나도 원래 일하고 오면 팔이 안 올라가야 하는데 그날은 쑥쑥 올라가더라고.”
일꾼들은 어제 있었던 놀라운 일에 대해 증언했다.
“다들 약효를 받았다는 거지?”
“그냥 받는 게 아니라 어제는 진짜 새로 태어난 것 같았어.”
“내가 말했잖아. 먹기만 하면 아픈 데가 사라지고 힘이 솟아오른다고.”
“나는 그게 진짜 그런 게 아니라 추임새 같은 건 줄 알았지.”
“하하하!”
작업반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서 그러는데 오늘도 그 약을 받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자네들 주려고 평소보다 많이 가져왔어.”
작업반장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무명천으로 된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여니 안에는 단환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자, 받아! 장 씨도 받고! 송 씨도!”
그때 근처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거 나도 받을 수 있나?”
다가온 일꾼 중 하나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목 씨도 먹으려고?”
“다들 좋다고 하니 궁금해서 말이야.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아냐! 아냐! 돼!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오늘은 많이 가져왔거든.”
작업반장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온 일꾼들에게도 약을 나눠줬다.
“저기 하나 더 받을 수 있나?”
“왜?”
“아내가 허리가 안 좋아서…….”
작업반장은 팔짱을 끼고 고민하더니 큰 결정을 내린 것처럼 표정을 지었다.
“자, 받게.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특별히 주는 거니까 자네가 먹지 말고 꼭 부인 가져다가 줘야 하네.”
“알았어.”
그때 멀찍이 서 있던 당기준이 뚜벅뚜벅 걸어와 작업반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줘봐.”
“쓰읍!”
작업반장은 뭔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뭐 내 인심 썼다. 받아!”
“고맙게 잘 쓰도록 하지.”
당기준은 입에 가는 척하면서 다른 곳에 단환을 숨겼다.
‘무슨 짓을 하는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만, 수작질을 부리는 거면 넌 관주님의 분노를 각오해야 할 거야.’
작업반장의 명복을 미리 빌어주는데 종소리가 울렸다.
작업반정과 일꾼들이 공터로 달려가 빠르게 줄을 섰다.
잠시 후, 홍선이 나와서는 공기를 당기면 당길수록 품삯 외에 주어지는 추가 지급액이 커진다고 말했다.
‘뭐지? 홍선도 작업반장이랑 연관이 있는 건가?’
돈 한 푼이 아쉬운 일꾼들은 추가 지급액을 받고자 정체 모를 약을 계속 먹을 가능성이 컸다.
‘자기들은 약을 먹어가면서 공기를 당기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사람이 약도 안 먹고 능률까지 별로면 그자에게도 약을 억지로 강권할 수도 있어.’
여러모로 일이 이상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작업반장의 주의를 끌어서 정보를 캐내고 숙소에서는 약을 분석해야겠어.’
내공을 써서 힘이 강화된 척하면 일꾼들 사이에 무난히 묻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당기준은 계획한 것처럼 일부러 작업반장 근처에서 일하면서 힘이 강화된 척을 했다.
그것도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 약효가 돌고 있다는 연기를 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작업반장은 자신을 더는 경계하지 않았다.
‘이제 실험만 끝내면 되겠군.’
원래도 그랬지만 당기준은 일이 끝나자마자 숙소로 돌아왔다.
일주일 간의 동물 실험으로 얻은 결과로는 단환에 들어있는 것이 확실하게 무엇인지 알아내기 어려워서 오늘은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할 생각이었다.
‘시작하자.’
당기준은 단환에서 아주 미량을 덜어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백출, 복령, 감초, 숙지황, 천궁, 당귀, 인삼, 작약, 육계, 황기? 이건 단순한 십전대보환의 재료들인데……. 이건 뭐지? 언젠가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당가의 손만큼 무서운 게 ‘혀’였다.
고도로 훈련된 당기준의 혀는 단환에서 정체 모를 성분을 가진 무언가를 찾아냈다.
‘분명 훈련받을 때 먹어본 적 있는 건데 정체를 모르겠군.’
혀 위에서 약이 완전히 사라지려 하자 당기준은 눈곱만큼 작은 덩어리를 혀 밑으로 보냈다.
‘가진 효능으로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해야겠다.’
단환의 약효가 아주 미량이지만 몸을 돌기 시작했다.
피로감이 사라지고 집중력이 향상하며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며 행복한 감정도 들었다.
당기준이 아는 한 이러한 효능을 주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이건 빙독(氷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