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무관 103화
오룡단은 가지고 있는 약점과 해결 방법이 다 제각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도 대련을 받는 남궁민을 제외한 모두가 ‘홀로’ 수련을 했다.
백서휘는 이걸 꽤 치명적인 문제라고 인식했다.
오룡단은 소속된 인원이 소수라 그렇지 무사단(武士團)이었다.
그런 무사단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게 있었으니 바로 무력과 유대감이었다.
무력은 무사단이니 당연한 것이고, 유대감은 집단에 결속을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 오룡단에게 그러한 유대감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있기야 하지만 크지는 않다’라고 다들 대답할 가능성이 컸다.
그럴 만한 것이 일단 다섯 사람이 모여서 활동한 기간이 너무 짧았다.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전투를 치렀다.
그 덕에 전우애가 생겼지만,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큰 전우애가 생길까?’
치열한 전투? 공동의 적?
백서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지금의 작은 여유를 파괴하지 않고 현재 상태에서 조금씩이나마 서로가 가까워지는 그런 방법을 원했다.
‘고민을 좀 해봐야겠는데…….’
잠시 앉아서 생각하니 의외로 금방 방법이 떠올랐다.
방법은 간단했다.
아침이 되면 공터로 나와서 함께 몸을 푸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였다.
귀찮고 힘들더라도 꼬박꼬박 나와 몸을 풀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면, 친해지고 싶지 않아도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아.’
백서휘는 오룡단 모두에게 계획한 바를 말했다.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들도 같은 단원끼리 지금보다 더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내일부터 여기로 나와서 몸 푸는 거다.”
“네!”
다음 날.
백서휘는 대충 씻은 후 설렁설렁 공터로 걸어갔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나와 있는 사람이 황보정석 말고는 없었다.
“오셨습니까.”
황보정석이 백서휘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일찍 나왔다? 밤이라도 샌 거야?”
“혹시 몰라서 일찍 잤습니다.”
원래 졸린 눈을 가진 황보정석이 하품까지 크게 하니 두 배는 더 피곤해 보였다.
“피곤해 보이는데 그냥 들어가 봐.”
“아, 아닙니다.”
“이번만 특별히 벌칙 면제해 줄게.”
“버, 벌칙이 있었습니까?”
백서휘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농담이야. 농담. 이런 걸로 벌칙을 줄 수는 없지.”
황보정석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얼마간 침묵이 감돌았다.
악록산에서 수련을 봐줬던 적이 있어 황보정석과 자신은 그나마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어색하다는 건 자신과 오룡단 사이의 유대감에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또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 거지?’
평범한 과정을 거쳐 성립된 관계가 아니라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관주님처럼 강해질 수 있습니까?”
황보정석이 큰 기대 없이 질문을 던졌다.
대답을 들으면 좋고, 아니어도 어색한 분위기를 깰 수 있어 좋은 질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절호의 기회군.’
백서휘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수련만 해서는 힘들지.”
“아, 역시 재능이…….”
“아니,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역시 노력이 중요한 겁니까?”
“노력도 중요해.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서…….”
“재능이나 노력 말고 다른 중요한 게 있다는 겁니까?”
“그래.”
“그게 뭔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가 강해지고 싶어 하는 이유를 말해봐. 이유가 맘에 들면 재능과 노력 말고 중요한 게 뭔지 말해줄게. 한 수 가르쳐 주기도 하고.”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강해지고 싶어서…….”
“그냥 강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이유가 있는데 감추는 사람은 있어도.”
“……정말 없습니다. 그냥 관주님처럼 강호를 독보하는 그런 고수가 되고 싶은 것뿐입니다.”
“정말로?”
“저, 정말입니다.”
“나는 왜 거짓말을 하고 있단 생각이 자꾸 들지?”
백서휘가 모든 걸 꿰뚫어 보듯 날카롭게 황보정석을 바라봤다.
황보정석은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사실 이유가 있긴 합니다.”
“뭔데?”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복수라……. 흔하지만 좋은 이유지.”
“그럼 이제 노력과 재능 말고 중요한 게 뭔지 들을 수 있는 겁니까?”
“별거 아니니 알려주도록 할게. 노력과 재능 말고 중요한 건 충동, 동기, 욕구, 소망 등등 뭐라고 부르든 좋을 그런 것들이야. 나는 ‘욕망’이라고 부르지.”
“욕망…….”
“아주 강한 욕망이 있으면 누구든 고수가 될 수 있어.”
“관주님의 욕망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건 비밀이야.”
“저, 저는 관주님께 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내가 캐물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알려준 거잖아.”
“그, 그래도…….”
황보정석은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얼굴로 바라봤지만, 백서휘는 꿈쩍하지 않고 몸을 풀었다.
“정말 알고 싶어?”
“네!”
“그러면 내 대답을 들을 만한 가치 있는 걸 가져오던가.”
“끄응.”
“없지? 그러면 빨리 몸이나 풀어.”
“다른 단원들이 안 왔는데 몸을 푸는 건…….”
“한 수 가르쳐 준다고 그랬잖아.”
“아!”
황보정석은 팔과 다리를 허공에 쭉쭉 뻗으면서 어떤 가르침을 받게 될지 속으로 추측했다.
그때 다른 단원들이 하나둘씩 공터로 모여들었다.
‘어쩌지.’
다른 단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황보정석만 특별 취급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악수를 둘 수 없었던 백서휘는 잠시 고민하다 전음을 날렸다.
『한 수 가르쳐 주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백서휘가 무슨 마음으로 전음을 보냈는지 이해하기에 황보정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죽어!”
남궁혁이 몸이 따라갈 정도로 세게 검을 휘둘렀다.
백서휘는 혀를 차며 옆으로 피한 후 그의 복부에 무릎을 날렸다.
적절한 시기에 들어간 반격에 남궁혁은 자기가 아침에 뭘 먹었는지 만천하에 공개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공격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나네.”
남궁혁이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한 백서휘는 일부러 한숨을 크게 쉬는 척했다.
“이이익!”
“화가 나면 안 되지. 이건 남궁혁 네가 멍청하게 행동해서 그런 거잖아. 계속 이런 식으로 싸울 거면 그냥 남궁민한테 몸의 주도권을 넘겨. 날 이길 가능성은 그쪽이 더 클걸?”
“으아아악!”
백서휘는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남궁혁을 그대로 걷어찼다.
퍽!
남궁혁이 피분수를 내뿜으며 왔던 방향 그대로 날아갔다.
그때 백서휘의 기감에 황보정석이 잡혔다.
걸어오는 방향이 계속 이쪽을 향하고 있는 걸 보면 자신에게 무언가 용건이 있는 듯했다.
“오늘 지도 대련은 여기서 끝이다.”
백서휘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황보정석을 기다렸다.
거의 다 왔을 때쯤 갑자기 황보정석이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 그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더니, 다시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용건 있는 거 아니었어? 나중에 시간 없을 때 와서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시간 있는 지금 와!”
백서휘의 외침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보정석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황보정석은 바로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게…….”
“나 화병 나게 하려는 거지?”
“이, 일주일 전에 관주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황보정석은 눈을 질끈 감고는 말을 빠른 속도로 내뱉었다.
“내가 한 말? 무슨 말?”
황보정석은 어느새 깨어난 남궁혁의 눈치를 봤다.
“다른 사람이 있어서 말하기 힘든 거야?”
“……솔직히 좀 그렇습니다.”
“그러면 전음으로 말해.”
『저번에 한 수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는데…….』
“아아! 그거? 잠깐만.”
백서휘가 팔짱을 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까맣게 잊고 있었네.’
갑작스럽게 단전에 자리를 잡은 독령을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느라 바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정이야 어찌 됐건 내 잘못이 맞지. 물건을 사고 돈을 안 낸 거나 마찬가지니까. 사과해야 하는 게 맞아.’
눈에서 물이 나오고,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만 사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사과’란 걸 하려고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눈물은 서열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어 힘들고, 돈은 쓸 때가 있어서 힘든데……. 제기랄!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때 백서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가 막힌 생각이 있었다.
황보정석은 하수였고 자신은 그와 격차가 말도 안 되게 나는 고수였다.
거기다 머릿속엔 황실비고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무공이 있었다.
심지어 멸문한 곳의 무공이라 주인이 나타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사이한 부분들이 걸리기는 하는데 그거야 수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은 계획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서휘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황보정석을 바라봤다.
황보정석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미안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신경 쓸 일이 하나 생겨서 그거에 집중하다 보니 생각을 못 했어.』
『가르침은 그럼…….』
『네게 새로운 도법이나 보법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 괜찮지?』
『하, 한 수 정도가 아니라 무공 하나를 통째로 가르쳐 주시겠다는 겁니까?』
백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로요?』
『그래.』
『그, 그러면 도법을 가르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호, 혹시 가르쳐 주신다는 도법이 어떤 건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면…….』
『그건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너에게 가장 잘 맞는 무공을 고를 생각이었거든.』
적당히 나오는 대로 말한 변명이지만 되게 그럴듯했다.
‘감격 좀 하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황보정석이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으로 백서휘를 바라봤다.
『내일 달이 뜨면 이리로 와.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다른 놈들한테는 말하지 마. 특별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나 내가 곤란해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황보정석은 꾸벅 인사한 후 수련장으로 돌아갔다.
“아픈 데 있으면 지금 빨리 말해.”
백서휘가 남궁혁을 보며 말했다.
“배가……. 우웩!”
“앉아서 가부좌 틀어봐.”
백서휘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섞였다는 걸 알아차린 남궁혁은 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추궁과혈 할 거니까 몸에 진기 들어간 이후부터는 입 벌리지 마.”
“네.”
백서휘는 남궁혁의 혈도를 대충대충 툭툭 쳤다.
신기한 건 손이 한 번 닿을 때마다 남궁혁의 혈색이 좋아지고 표정아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무공은 어떤 걸 가르쳐 줘야 하지?’
다른 고수들은 추궁과혈 하나를 하는 것도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다.
그런데 백서휘는 추궁과혈을 하면서 황보정석에게 가르칠 무공을 고르고, 저녁에 먹을 음식도 고민하고, 독령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연구했다.
‘승부사로서 성격을 고려하면 한 방이 있는 무공을 변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무공 중 하나를 골랐다.
그 무공은 옛날옛적에 멸문한 수라문(修羅門)의 문주가 사용하던 수라폭류도법(修羅爆流刀法)란 무공이었다.
백서휘는 이 무공을 기반으로 새로운 무공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공을 펼치다가 미쳐 버리면 안 되니까 이 부분은 빼고 화엄법륜공의 구결을 가져와서 넣자. 그다음은…….’
남궁혁의 추궁과혈을 마침과 동시에 백서휘는 황보정석을 위한 새로운 도법을 창안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