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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관-102화 (102/202)

귀환무관 102화

“너무 빨리 결정한 거 아니야?”

“충분히 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말을 하는 당기준의 눈빛에는 굳센 의지가 담겨 있었다.

어떤 말을 들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그런 의지 말이다.

“좋아,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의 결정을 내린 건데?”

“아까 말했듯이 저는 독령을 제거하고 싶습니다.”

“독령을 얻게 되면 너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어. 그런데 그걸 포기하겠다고?”

“네.”

백서휘는 당기준이 무슨 생각으로 포기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숙고해서 한 선택이 이거라고? 독령을 얻었을 때의 이점을 충분히 잘 설명해 줬는데?’

백서휘가 아는 무인들은 한 구절의 무공 구결에 목숨을 걸고, 일 초 반 식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전 재산을 바치는 자들이었다.

당기준 역시 무인인 만큼 당연히 독령을 얻는 선택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당기준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왜 그런 건지 궁금했던 백서휘는 당기준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독령을 포기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죽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당기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솔직히 백서휘는 그의 말이 잘 믿기지 않았다.

여태 보인 모습만 보면 당기준은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였으니까.

후회 따윈 없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아서가 아니다.

그냥 어느 날 훌쩍 연기처럼 사라져 버려도 모를 것처럼 살았다.

같이 짝지어 다녔던 황보정석을 제외하면 다른 오룡단원들과도 친분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키우던 동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가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

물론 가지고 있겠지만 그건 자신이 가문과 은원을 정리하라고 해 저지됐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정말 마음 둘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삶에 미련을 강하게 가지다니.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하오문에서 당기준의 과거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던 일이 백서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당기준의 과거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백서휘는 당기준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오래 살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유가 있긴 한가 보군.”

“예.”

“좋아, 이 이상 더 묻지는 않지.”

“……감사합니다.”

당기준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독령은 언제 제거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봤나?”

“빠르면 빠를수록 저는 좋습니다.”

“그러면 바로 제거하자.”

“……지금 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여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되겠습니까?”

“네 편한 대로 해.”

당기준은 가부좌를 틀고 맨땅에 앉았다.

백서휘는 그 뒤에 자리를 잡은 후 오른 손바닥을 명문혈에 가져다 댔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니, 일단은 네 통제력이 닿는 내공들을 한쪽에 집결시켰다가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만만한 독기들을 잡아먹으면 돼. 알았어?”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한다.”

백서휘는 오른손의 장심을 통해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당기준은 통제력이 닿는 내공들을 한쪽에 집결했다.

‘몸집을 키운다.’

백서휘는 주입한 내공의 덩치를 빠르게 키워 나갔다.

처음에는 겨자씨만큼 작았던 내공이 어느새 독령보다 훨씬 더 커져 버렸다.

‘이 정도면 되겠지.’

지금보다 주입한 내공이 작을 때도 독령을 농락하는 일이 가능했다.

이전보다 더 커진 지금은?

독령을 압살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진입한다.’

코끼리처럼 거대한 덩치를 가진 백서휘의 내공이 하단전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내공이 품고 있는 힘에 놀란 당기준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독령은 백서휘의 내공을 경계하며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침을 만들었다.

‘겨우 침으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백서휘는 내공에 강검의 무리를 변형시켜 적용했다.

그러자 내공에 담긴 힘이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대해졌다.

‘가라!’

백서휘는 주입한 내공을 독령에게 달려들게 하였다.

그의 내공과 독령이 맞부딪히며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당기준의 하단전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첫 접전부터 큰 충격을 받은 독령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백서휘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기회다!’

정신을 차리기 전에 최대한 많은 상처를 입혀놔야 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그의 공격에 독령을 중심으로 뭉쳐 있던 독기가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승기를 잡은 백서휘는 당기준에게 바로 신호를 보냈다.

당기준이 기다렸다는 듯 본인의 내공을 조종해 이리저리 흩어진 독기를 잡아먹었다.

정신을 차린 독령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백서휘의 내공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빠르기로 회피했다.

계속된 독령의 공격을 피하려고 몸을 뒤로 뺐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금빛 쇠사슬이 독령을 칭칭 감았다.

촤르르륵! 탁!

독령은 금빛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백서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열심히 독령을 상대하니까 기회가 이렇게 저절로 굴러들어 오네.’

백서휘는 독령이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걸 이용해 한 대씩 툭툭 쳤다.

당기준은 그렇게 맞을 때마다 떨어져 나가는 독기를 옆에서 열심히 주워 먹었다.

독령의 크기가 처음보다 반쯤 줄었을 때, 금빛 쇠사슬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라졌다.

원래부터 많이 약해져 있었던 봉인술이 독령의 반발이 거세지자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멸했다.

자유를 되찾은 독령은 만만한 당기준부터 들이받고 봤다.

공격받을 거란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던 당기준은 큰 피해를 보았다.

그의 입에서 왈칵 터져 나온 핏물이 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앞섶을 적셨다.

‘제기랄.’

백서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내공을 이동시켜 독령을 막으려고 했다.

독령은 그의 내공을 향해 미친놈처럼 달려들었다.

‘힘이 넘칠 때도 상대가 안 된 놈이 힘 빠진 지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내공에 깃드는 영성의 지능이 예상했던 것보다 낮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독령이 자기를 감싸고 있던 독기들을 모두 백서휘에게 내던져 공격했다.

‘뭐지? 최후의 일격인가?’

백서휘가 내공을 움직여 마지막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이제 독령만 제거하면 되는데. 어라? 어딜 간 거지?’

하늘로 솟을 수도, 땅으로 꺼질 수가 없는데 독령이 보이지를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찾았다!’

독령이 백서휘의 장심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독기를 벗어던져서 그런지 독령의 움직이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아! 나한테 오려는 건가?’

독령은 자기가 사지로 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당기준이 추가로 피해를 받을 일은 없겠어.’

백서휘의 단전은 당기준과는 비교가 안 되게 튼튼했다.

그런 단전에서 독령을 소멸시킨다면 모두가 좋은 일이었다.

일단 백서휘는 당기준의 몸에 있는 내공부터 회수하고 봤다.

‘됐다.’

백서휘는 당기준의 명문혈에 가져다 댔던 오른손을 뗐다.

다시 이런 식으로 독령이 탈출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자, 이제 어떡할 거냐.’

독령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백서휘의 단전으로 직행했다.

단전에는 당기준의 몸에 주입했던 것보다 더 많은 내공이 있었다.

그걸 본 독령이 몸을 벌벌 떨며 다시 당기준에게로 돌아가려 했다.

‘멍청한 놈.’

독령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당기준에게서 회수한 백서휘의 내공이 독령이 가려는 혈맥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압착하면 제거되겠지.’

앞뒤에서 백서휘의 내공이 독령을 조여 들어갔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독령이 백서휘에게 의지를 전했다.

『사, 살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해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런데 처음 듣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거니 압박하는 걸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전음을 보내는 거지?’

오룡단은 지금 수련하느라 바빠서 전음을 보낼 정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있나 싶어 가부좌로 앉아 있는 상태에서 기감을 증폭시켰다.

감지되는 범위 내에서는 오룡단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여기서 가만히 앉아만 있을 게 아니라 찾아 나서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서휘 가부좌를 풀고 읽어나려는 순간, 처음 듣는 목소리의 주인은 자기가 누군지 밝혔다.

『내가 네게 말을 걸었다. 나는 네 단전에 있는…….』

‘잠깐 단전에? 너 설마 독령이냐?’

『‘독령’이란 게 네 기운에 포위되어 있는 존재를 일컫는 거라면 나는 독령이 맞다. 스스로 태어난 자이며 모든 기운을 지배할 수 있는 제왕이지.』

조금만 힘을 쓰면 소멸할 주제에 독령은 있어 보이는 척을 계속했다.

『네게 내 신하가 될 기회를 주고자 한다. 나 같은 대단한 존재가 너처럼 하찮은 존재와 인연을 맺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너란 존재가 너무 갸륵하고 불쌍해 견딜 수가 없구나. 자, 어서 이 무도한 것들을 물려라.』

백서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허! 어서 물리래도!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뭣도 없는 놈이 거들먹거리는 걸 계속 지켜만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백서휘는 바로 독령에게 일침을 날렸다.

‘기본이 안 되어 있군.’

『내 말이 들렸었구나! 왜 내 말을 받들지 않은 거냐? 내가 우스운가? 스스로 태어난 자이며 모든 기운을 무릎 꿇릴 이 내가?』

‘우습냐고?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소멸되기 직전인 놈이 무슨 깡으로 이렇게 까부는 건지 모르겠네.’

독령은 내공에 영성을 부여할 수 있게 도와줄 유일한 실험체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천지 분간 못 하는 이놈을 확실하게 소멸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백서휘는 도망가지 못하게 모든 방위를 틀어막은 후 압살할 생각이었다.

『어허! 까불다니! 나는 ‘아랫것’인 네게 가르침을 주려고…….』

‘다 까불었냐? 그럼 이제 조용히 죽어라.’

『어, 언제 까불었다고 그러나. 나는 말로써 ‘자네’에게 잊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려 한 것뿐이네. 내가 못 할 말을 한 건 아니지 않은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화살은 날아갔다. 잘 가.’

『내, 내게 잘못이 있다면 당신 같은 ‘선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설쳤던 것뿐이오. 용, 용서해 주시오. 생목숨을 끊을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지 않소.』

‘끝까지 자기 잘못을 모르는군.’

백서휘가 진심으로 죽이겠다는 마음을 품자 독령이 화들짝 놀라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 살려만 주십시오. 진짜 살려만 주시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습니다. 조금 전에는 주군으로 삼아도 충분한지 제 나름대로 시험을 해본 것뿐입니다.』

‘믿지 못하겠군.’

『저, 정말입니다.』

‘아닌 것 같은데?’

『지, 진짜로 주군으로 모실 자의 성격을 알아보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좋아, 네 말이 맞아서 부하로 삼는다고 치자. 할 줄 아는 게 뭔데?’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쓸모가 없으면 제거하는 수밖에 없어.’

『자, 잘하는 것 있습니다!』

‘뭔데?’

『기, 기운을 모아서 응집시키는 것도 잘하고, 원하는 곳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옮기는 것도 잘합니다. 아! 그리고 공격을 감지하고 막는 것도 할 줄 압니다.』

독령은 자신이 영성을 가진 내공에 기대했던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시험해 봐도 되나?’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이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나?’

백서휘는 내공의 일부를 떼어낸 후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심즉동의 경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였다.

『해보겠습니다.』

눈에 바로 보일 정도로 확연한 차이는 보이지 못했지만 독령은 자신보다 빠르게 내공을 움직였다.

‘그게 최대 속도인가?’

『아직은 그렇습니다.』

독령은 여기서 더 성장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내공을 네게 보내면 너는 그걸 나한테 바로 보내면 돼. 알았어?’

『네.』

‘허튼짓하면 그대로 소멸시켜 버릴 거니까 생각 잘하면서 행동해.’

『며, 명심하겠습니다.』

백서휘가 소량의 내공을 독령에게 주었다.

독령은 받자마자 바로 백서휘에게 내공을 보냈다.

‘어라?’

백서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독령에 내공을 보내고 다시 받는 짓을 반복했다.

‘이렇게 빠를 수가 있다고?’

심즉동의 경지에 오르고 최대 속도로 내공을 움직이는 것보다 독령이 내공을 보내주는 게 더 빨랐다.

더 놀라운 건 이것 역시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확실히 이놈을 이용하면 내공에 영성을 부여하는 걸 따로 연구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이 ‘독령’이라는 놈 자체가 자신이 처음부터 만들고 완성한 게 아니라 저 스스로 영성이 생긴 놈이라는 거였다.

‘묶어놓을 방법이 없는 게 좀 걸리네. 그냥 소멸시키는 게 나으려나.’

『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소멸만은…….』

‘당장 결정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인 것 같네. 좀 미뤄야겠어.’

『그, 그럼 언제쯤 충성 맹세를…….』

‘그건 모르지. 맘에 안 들면 내가 널 소멸시켜서 충성 맹세 같은 걸 안 받을 수도 있어.’

『히익!』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탈출하려 한다거나 딴짓거릴 하다가 들키면 그대로 소멸시킬 거니까.’

『며, 명심하겠습니다!』

백서휘의 한쪽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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